##105 105화 그녀가 우리나라에서 사는 일
때로는 눈은 진실을 말한다. 그 어떤 부모라도 자식의 눈을 보면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한다면 속아주신다. 당장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더 나은 아들딸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지금 은환이 보는 우혁의 눈. 진실이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의 정신이 이상하다고?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황당하다고 그것을 믿지 않거나 그의 정신이 나갔다고 호도하는 것은 오히려 세상에 한 단편만을 보는 사람들의 특징이 된다.
“믿겠다.”
“여보!”
“네 말을 믿겠다. 단, 책임을 지는 것은 네가 해라. 우리는 옆에서 돕겠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우혁이는 제 정신이 아니라고요.”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은환은 못 들은 척 한다. 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우혁이를 이십년 넘게 키웠잖아. 우리라도 아들 편이 되어야 해. 그렇지 않아? 비록 어렸을 때 아파서 성격이 약간 편협하긴 하지만 우리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그… 그건.”
은환의 말을 들은 지연. 지금까지 우혁을 키워왔던 세월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작년 초. 기적같이 회복한 하반신을 보고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을 했다.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들이 최소한의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이제 욕심이 더 생겼나 보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지 않는가?
은환은 문 밖을 나갔다. 그리고 거실에 있는 세실리아를 보았다. 그 큰 눈망울은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감으로 말이다.
“아가씨, 들어와요. 들어와서 이야기를 좀 해요.”
그는 세실리아를 방으로 초대했다. 방금 전까지 부모 자식 간에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던 격론장으로 그녀를 들이는 것. 아무 편견 없이 그녀를 보겠다는 의미이다.
부모의 눈에 비친 세실리아.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세상에 미의 기준이 있다면 아마도 그녀에 의해서일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어라니?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은 그들의 아들이 한국 여자, 그것도 아주 평범한 여자와 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의미에서 미래의 직업도 그들에게는 고려 대상이었다. 연예인과 짝이 되면 아들이 힘들어질 것은 자명했으니.
다만 그의 아들 역시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나름 연예인 못지않은 삶을 살고 있으니 그냥저냥 받아들였던 것일 뿐이다. 차라리 그들은 빛나가 더 나았다. 지난번 도쿄에서 본 그녀의 조신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험, 험. 그래, 우혁이한테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이 상황이 우리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아요. 다만 자식 말을 믿고 싶을 따름이요.”
“아직 우리말이 서툴러요.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은환이 말하자 우혁은 그녀를 변호했다. 이미 그녀가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그는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시점이다. 자신을 믿어준다고 했지만 그것은 부모자식 사이라서 그런 것이다. 이 세 명의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그녀를 집어넣느냐 아닌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녀가 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제가 어떻게?”
“세실리아, 난 우혁이 엄마니까 말을 놓을게. 그리고 천천히 말하마. 내 이야기를 이해 못하면 못한다고 말하렴.”
“네.”
이번에는 지연이 차례다. 그녀는 방금 자신의 행동에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그를 믿어주는 것은 최소한 그의 부모인 이상,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게 범죄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몰아붙였던 자신이 창피했다. 그래서 말투도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다.
“네가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난 이제 상관없다. 아마 이이도 마찬가지일거고.”
그녀의 말에 자신을 지칭한 부분이 나오자 은환도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우혁이가 사랑하는 여자라면 우리는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물어보자.”
“네.”
“우리 우혁이를 사랑하니?”
끄덕끄덕. 당연한 질문이지만 그녀는 진심을 담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세상에 예의와 절도. 그녀는 그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급조해서 요 며칠간 우혁이가 그녀에게 주입시켰던 유교주의. 그런데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심이 중요한 것이다. 그녀의 진심이 지연에게 전달되고 있다.
“그럼 됐다. 그럼 됐어. 난 할 말 끝.”
“그럼 이제 내가 할 말을 하겠어요.”
지연은 다시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사실 우혁이의 부모님은 매우 긍정적인 성격이다. 그런 성격이 그가 아팠던 세월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그의 앞에서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을 정도로. 이렇게 그녀의 말이 끝나자 은환이 다시 나섰다. 이번에도 긴장한 우혁과 세실리아.
“현실적인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정부의 일을 외국에 나가 대표하고 있는 직업이라 그러는데 세실리아는 지금 국적이 없어요.”
“여보,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알아듣기 힘들 것 같아요.”
“아, 그런가? 그럼 우혁이한테 이야기하마. 지금 세실리아의 상태는 불법체류자다.”
불법체류자. 외국인이 허가를 받지 않고 남의 나라에서 머물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혁이 모를 리가 없다. 당연히 그가 계획했고 그가 입국시켰으니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이 상태는 국외 추방이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책을 세워 놓았느냐?”
은환은 이 부분이 막힌다는 것을 그에게 주지시켜주고 있다. 국외추방. 그런데 어느 나라로 그녀를 추방할 것인가? 원래의 국적에 따라 추방하는 것이 나라의 법이다. 그런데 그녀가 속한 나라는? 독일인가? 아니면 인어 나라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에게 이야기 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실 불법적인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불법?”
“이번에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귀국하면서 태국에 들리려고 했어요. 암시장이 있어서…”
“그건 안 된다. 이미 세실리아를 들여온 것만 해도 그건 범죄행위에 속한다. 비록 내 아들이지만 내 직업은 공무를 집행하는 일인데, 몰랐다면 모르지만 이다음 상황에서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게 둘 수는 없다.”
“여보, 그럼 어떻게 해요? 추방을 당하도록 놔두자는 말인가요?”
“적법한 절차를 찾아야 하지. 그러면 되잖아.”
“참, 답답하시네요. 아까는 아들의 편이 되자고 하시더니, 지금은 또 고지식하게 법만 외치고 계시네요. 적법한 절차가 있긴 하나요?”
그 말에 은환은 입을 잠시 다물었다. 머릿속에는 국제법 및 이민법이 여러 가지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세실리아의 원래 국적이 문제가 되었다. 무국적.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찾아 봐야지.”
“그런…”
“일단 지금은 찾아 봐야 한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어요. 아까 말했듯이 최선을 다해서 돕는 방법은 나도 그리고 당신도 찾는 수밖에 없어.”
우혁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또 한 번 인정했다. 그냥 그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했을 뿐인데, 그 뒷일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은환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잠시 후 입을 뗀 것은 지연이다.
“우혁아, 한 가지 엄마가 부탁할 게 있다. 휴가가 끝나더라도 엄마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야. 여기에 머무르며 세실리아를 알아가고 싶구나.”
“그… 그건.”
“안다. 불편하겠지. 내가 왜 모르겠느냐? 너희 둘이 어떤 사이이고, 남과 여가 한 집에 있으면 어떤 일이 있을지 나도 알고 있어.”
그 말을 듣자 얼굴을 붉히는 우혁.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알고 있다. 그와 세실리아는 이제 자주 동침하는 사이이다. 젊은 피가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는 않는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오히려 그녀와 알고 난 후 한동안 참았던 것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 입장으로서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있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구나. 그러니 집을 구해서 네가 나가든 아니면 나와 세실리아가 나가든 하자. 보고 싶으면 자주 오면 되지 않니.”
“그럴게요. 제가 나갈 게요.”
지연은 그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고집을 부리지 않는 모습. 이제 그녀의 아들이 많이 컸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에게 항상 ‘최씨 고집’이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때를 상기했다. 부전자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제 이성적으로 자리가 잡혀가는 것처럼 보였다.
“태릉에 합숙한다고 말할게요. 아마 될 거에요.”
============================ 작품 후기 ============================
제가 모자랐네요. 저를 믿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있는 줄 모르고 또 혼자 착각했습니다. 다들 제 글을 싫어한다고... 전혀 공감하지 않을 이야기를 한다고...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맞습니다. 초봄님 말처럼 기존에 읽어주시는 독자님을 위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써야죠. 다음에 또 이렇게 흔들리면 잡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만 와아아아, 정말 스트레스는 좀 받아요. 하하. 주인공의 영향을 제가 받는듯. 다음 작품 쓸 때는 진짜 말씀하신 대로 밝고, 호탕하며, 시원하고 거기다가 난봉꾼인 그런 캐릭터를 쓴다고 혼자 다짐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캐릭터인 우혁이 왜 이렇게 답답한지...
어쨌든 모든 격려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다시 달리겠습니다. 어제 비축분 다 넣어서 오늘 다시 쓰면서 또 비축하고 그래야겠네요. 밑천 떨어진 장사꾼이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