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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화 첫 만남에서 친구가 되다

“우혁아, 우혁아, 잠깐만.”

미래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잠시 멈추었다. 날씨는 참 쌀쌀했다. 그녀의 옷차림이 그녀를 견디게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늦가을은 이렇게 일교차가 심하다. 잘못하면 감기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걱정이 되었다.

“뭐 하러 나와? 그리고 좀 걸치지?”

특히나 이곳은 서울 외곽이다. 아무래도 연예인들이 모이는 곳이라 외곽에 가든을 빌렸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 그렇지만 단점은 강한 바람이다.

“괜찮아. 나 추위 별로 안타. 어쨌든 정말 이렇게 가는 거야?”

“응.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넌 더 재미있게 놀다 와.”

“아이 참. 오늘 기대 했었는데. 나 오늘 스케줄 다 뺐단 말이야. 이런 종방연은 끝까지 있어야 한다고 소속사에서 다 빼줬어.”

그녀는 정말 아쉽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약해진 우혁. 그래도 이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 다시 들어가기는 싫어.”

“언제 끝날 줄 알고? 추운데 어떻게 밖에서 기다려?”

“괜찮아. 순빈이형 부르려고 했는데, 잘 됐지 뭐야.”

원래 오늘 그녀가 바래다준다고 이야기가 되었다. 아마도 회식이 늦게까지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는 순빈이를 보냈다. 연예인들의 낮과 밤을 책임지는 매니저. 그는 자신이 연예인이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를 고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최소한 퇴근 시간은 보장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보낸 것이다. 하지만 가야할 교통수단이 마땅히 없으니 그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잡고 있다.

“걱정 마. 나 좀 뛰어야겠어. 머리도 식히고 운동도 하고 좋지 뭐. 하하하.”

다시 그가 웃는다.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를 위해. 아직 초저녁이지만 해가 떨어졌다. 그래도 그의 웃음은 밝았다. 그녀가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로. 결국 그녀는 그에게 기습 키스를 시도했다. 탁.

“이제, 기습은 안 먹혀. 그만.”

“너, 정말 나쁘다.”

“무슨 소리? 나는 자기 방어에 충실한 것뿐이지. 그럼 들어가. 난 뛴다.”

벌써 몇 번 미래에게 당했다. 그는 친구, 그녀는 연인으로 생각하는 이 관계. 절충점은 없는 게 바로 이런 사이다. 언젠가 그가 넘어가든지 아니면 빛나처럼 그녀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빛나에게 연락이 통 없었다. 훈련장에서 잠깐 보지만 그 때에는 각자의 훈련과정으로 인해서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 친구로서 남자던 그녀의 말. 아예 친구도 뭣도 아닌 사이가 되어 버렸다. 아니 마치 헤어진 연인 같은 관계?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었다. 물론 우혁 입장에서는 억울하기까지 했다. 차인 기분이다. 자신이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요즘은 생각을 해봐도 결론은 아니라는 점.

그녀가 좋아했고, 자신은 마음을 열었다. 그러다가 벌어진 일. 서투른 그의 대처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꼭 자신만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하는 성격인데 그런 사과를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나마 그는 최선을 다 한 것 같았다.

“헉, 헉.”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뛰었다. 달밤에 체조를 하는 것인가? 뛰고 다시 뛰고. 그리고 몸을 풀고, 하늘을 보았다.

“밝구나, 달이.”

보름달이다. 누르스름한 빛. 저 안에 진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을까? 피식. 그는 웃었다.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 그러다가 유년기 시절의 읽었던 그런 동화들이 생각났고 그 끝은 인어공주였다. 가끔 그렇게 상념의 끝에 다다랐다. 마지막에는 늘 인어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다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었다. 로렐라이 언덕으로 가서 다시 그녀를 찾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한 번 해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성장을 하고 있는가? 요즘 들어 감정의 제어가 약간씩 되고 있다. 나름 충동적인 것, 특히 흥분을 잘 참아내고 있다. 사회화가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원래 유전적 결함은 없다. 그의 부모 둘 다 성격 좋기로 유명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의 치료를 할 때도 그랬다. 돈이 부족하면 지인들은 앞을 다투어 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빚을 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상당히 줄여놓고 있다. 요즘 그는 잘 번다. 광고 수입이 나쁘지 않다. 초특급 연예인은 아니더라도 거의 상급에 해당한다. 억대 광고비는 이제 기본이 되었다. 그 돈으로 부모님 돈도 갚고 이것저것 부대비용으로 쓰고 있다.

기부도 많이 한다. 애초에 크고 작은 규모와 상관없이 대회에 우승을 하면 장애인을 위해 기부한다고 순빈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매니저의 역할은 이를 잘 활용하는 것. 결국 언론 보도를 탔고, 그래서 사실 그의 아마추어 대회 참여가 더 큰 화제를 몰고 왔었던 것이다.

“저기요…”

다시 회식을 하는 가든 앞에 뛰는 것을 멈추고 몸을 풀고 있을 때였다. 그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전혀 모르는 얼굴이다.

“안 추우세요?”

“네? 아, 네. 괜찮습니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요. 날씨가 꽤 추워졌는데 계속 운동하시네요. 역시 운동선수는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해야 하나 봐요.”

이 말에 대답은 없었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또 발동 되는가? 그는 다시 무시하고 한 바탕 뛰려고 하려다가 그녀의 다음 말을 듣고 멈추었다.

“혹시 미래랑 사귀나요?”

“아니요. 친구입니다.”

“아, 그래요? 둘이 정말 절친한가 봐요. 전 미래랑 우혁씨랑 사귀는 줄 알았어요. 너무 다정해 보여서. 아 참, 저 같은 소속사에요. 같이 단역으로 들어갔는데 그녀만 빵 떴어요. 호호호.”

“그렇군요.”

미래랑 같은 소속사. 그 이야기를 듣고 일단 다시 뛰려는 것을 접었다. 그래도 자신의 친구와 같은 곳에 소속된 여자다. 나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역시 예뻤다. 연예인들이 다 이렇다. 뜨거나 안 뜨거나 사실 외모로서는 일반인에 뒤지지 않는다. 오목조목 신의 조화가 다 그녀의 얼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반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진짜로 예쁜 얼굴을 알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외모라고 해야 하나? 그 때 만난 인어다. 진심으로 그 이상 가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기준은 바로 인어다.

“아, 제 이름은 세희예요. 양세희.”

“아, 네.”

“푸훗, 역시.”

“네?”

“아까 회식 자리에서부터 봤는데 ‘아, 네.’ 이 말만 하시더라구요. 얼마나 웃겼는데요?”

“아…”

이번에도 ‘아, 네.’를 하려다가 관 두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입에 붙었는지 계속 그 말만 하게 된다. 그 역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데 그 미소를 보고 세희의 마음이 흔들린다. 여자의 마음을 한 번에 빼앗아 올 수 있는 웃음. 그래서 그렇게 자주 웃지 않나 보다. 온 세상의 여자들의 마음을 다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럴 의도로 잘 안 웃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네요. 저도 모르게 그 말이 입에 붙었네요.”

“그런데 미래 기다리는 중이에요?”

“네, 맞아요. 같이 가려고요. 집도 근처거든요.”

“그러다가 오해 받아요. 둘 다 유명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가끔 아침 운동 같이 할 때도 후드를 꽉 눌러씁니다. 불편하네요. 친구도 대놓고 만나지도 못하고.”

“연예인 같이 말씀하시네. 아, 거의 연예인이구나.”

“아닙니다. 무슨…”

그는 손사래를 쳤다. 스스로 연예인이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강하게 부정을 하는 것이다.

“본인만 인정하지 않는 거죠. 사실 오실 때 사람들 표정 못 봤어요? 연예인들이 같은 연예인을 봐도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요. 그런데 우혁씨가 아까 회식 자리에 등장하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보는 표정들이었어요.”

“그래요? 전 모르겠는데…”

“맞아요. 여배우들 사이에 오늘 계속 화제가 되셨죠. 아, 아까 아시잖아요. 수연 선배. 꼬리 치다가 바로 그 꼬리가 잘렸죠. 통쾌했어요. 호호호.”

그녀는 그렇게 웃으면서 주변을 보았다. 혹시나 수연이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실수 한 번으로 이 세계는 잘못하면 매장 당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그런가요? 전 그냥 귀찮아서…”

“당연히 그러시겠죠. 그런데 여자가 싫으신 것은 아니죠?”

그녀의 물음. 많은 뜻이 담겨 있다. 혹시 남자 취향이냐는 질문도. 물론 그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 여자 친구를 사귀겠죠. 사실 조금 외롭긴 합니다.”

“그래요? 언젠가가 아니라 곧 사귀시겠네요. 원래 외로우면 사람을 사귀게 되어 있거든요.”

“전 사람을 잘 사귀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도 친구라고는 몇 명 없습니다.”

“저런. 역시 하늘은 공평하네요.”

“네?”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제 말은 하늘은 모든 능력을 다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잘생긴데다가 사교성까지 있어 봐요. 딱 바람둥이지. 그런 의미에서 저 또한 친구가 되어 드릴게요. 어때요?”

우혁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의미일까? 눈빛이 순수해 보였다. 별 뜻 없이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리라. 그런데 그는 아니다. 친구를 하나 만들 때 얼마나 신중한지 몰랐다. 그래서일까?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한다. 무안해진 그녀.

“역시 제가 자격이 없죠?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제 성격이 원래 이렇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녀의 안색에 화색이 돋았다. 그 말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말이다.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다. 사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회식자리에서 나왔고, 우연하게 그를 보았다. 말이라도 걸어볼 요량으로 이렇게 발전이 되니 너무 좋았다.

“고마워요. 아까 봤는데 언니처럼 전화 번호 따고 그러지는 않을 게요. 호호호. 보니까 서서히 친구가 되어야지 급하게 발전하는 관계는 경계하시는 것 같아서…”

“아, 네.”

“또 그 말씀이시네요. 호호호.”

그녀의 맑은 웃음. 그리고 뒷머리를 긁적이는 우혁. 그의 인간관계가 하나 더 확장이 되는가? 우연한 기회에 만남. 처음 본 사람과도 친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사회성은 성장해 나가고 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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