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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화 불가능한 꿈

대회 마지막 날은 경기가 없다. 그러나 모두 다 경기장으로 나갔다. 그것도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1등만 기억되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반대로, 1등을 했기에 세상이 기억해 주는 것이다. 신문에 대문짝하게 난 기사들. 드디어 우혁이 각종 포털사이트를 다시 독차지하고 있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귀국을 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계영이 있는 날이다. 우혁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나름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외국에 나오니 애국심이 더 투철해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한국 사람이 당연히 이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남들도 자신의 경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뭉클해졌다. 그러면서 약간 반성이 된다. 자신이 너무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부분을.

달라져야겠다고 생각을 해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게 지금까지 형성된 성격이기에. 흔히 습관은 고칠 수 있어도 성격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은 절묘한 조합으로 정체성이 탄생하는 것이라 어디 하나를 고치게 되면 정신 이상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잘못하면 다중 인격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혁은 계영을 하는 내내 마음속으로만 응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미지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동료의 기를 북돋는 말을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나마 가끔 팔짱을 끼고 관심을 가지며 동료들을 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였다.

“형, 팀 문제는 어떻게 되었어요?”

“빨리도 물어본다.”

“그동안 정신없었잖아요.”

순빈이 일부러 그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도 있다. 훈련에 집중하도록, 승부에 몰입하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굳이 복잡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승낙했어. 아니, 오기 전까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오늘 전화가 왔어. 팀을 구성하라고.”

“그래요?”

“아마 간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아마도 네가 우승한 게 즉효약이 되었던 것 같아.”

실업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존재하는 팀들이 있다. 그런데 이게 참 유명무실하다. 거의 개인 훈련이나 마찬가지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한 창단이다. 그리고 실제로 수영장도 없다. 선수들은 동네에 있는 센터로 훈련을 다닌다.

결국은 대표 상비군으로 뽑히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혁은 참 운이 좋았다. 당시에 상비군으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일단 훈련장의 개방을 그에게 허용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이런 것이 많아야 한다고. 많은 실업팀과 많은 수영 선수가 장래에 한국 수영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가 그린 밑그림은 간단했다. S 생명이 수영 실업팀 창단. 기업 이미지가 좋아짐. 매출 증진. 너도 나도 실업팀 창단. 수영 인구 및 저변 확대. 미래의 많은 우수한 선수들이 나오기 시작함.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목표를 그렇게 설정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수영에 대해 애국자가 된 것처럼 행동 하냐고 묻는다면 수영을 사랑해서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 우연치 않게 발을 들여 놓게 되었지만 그는 이 스포츠를 진정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전 수영인 모두가 다 자신이 하는 이 종목을 사랑할 것이다. 다만 비빌 언덕이 없었을 따름이지.

그의 눈에 3위를 하고 나오는 계영 선수들이 보였다. 어제 그 영광은 어디 갔는지 축 쳐져 있다. 저들의 어깨를 피게 하고 싶었다. 일단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그가 하고 싶었다. 무엇이 되든지 그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니까.

“코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그 날 저녁 모든 대회 일정을 마치고 그는 영욱을 찾아 갔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표정을 보고 그를 들인다.

“뭐지? 표정이 장난이 아닌데?”

“S 생명에서 실업팀을 창단합니다.”

“응? 네 소속팀이잖아. 이미 창단이 다 된 거 아냐?”

“맞긴 한데, 솔직히 우리나라 실업팀 중에 제대로 된 게 별로 없지 않습니까?”

“에이,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래도 우리에게는 고마운 팀이야. 몇 없지만 있으니까 우리가 그나마 이 정도 할 수 있는 거지.”

“그 말에 동의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 S 생명에서는 대대적으로 투자를 한답니다. 국내 최고의 수영장도 만들기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이게 정말이라면 엄청난 이야기다. 물론 이를 위해서 그는 AK 스포츠와 1년 계약이 끝나고 난 후 S 생명에서 추진하는 모든 것을 물심양면 돕기로 했다. 즉, 새로운 스포츠 매니지먼트가 탄생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코치님이 저희를 이끌어줄 감독님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

이런 이야기일 줄 몰랐다. 그는 갑작스런 그의 제안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곤란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지금 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십시오. 눈치 보지 않고 열심히 가르치는 일만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저도 이리 저리 불려 다니는 코치님만 보면 안타깝습니다.”

“음…”

사실 그랬다. 연맹에서는 과정보다 결과를 훨씬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탁상행정은 엄청나다. 뭔가 결론을 얻기 위해서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진짜 열 받기 딱 좋다. 그러나 사실 그는 국가 대표 감독을 꿈 꿨다. 이런 형태는 처음 보는 시스템이다. 민간 기업에서 창단하는 거라 거의 클럽 시스템인 해외와 비슷한 형태의 운영법인 것 같았다.

“내가 그럴 능력이 될까?”

“저를 키우시지 않았습니까?”

“네가 컸지.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아니요. 전 코치님 때문에 큰 겁니다. 코치님이 처음 저를 받아주시지를 않았다면 과연 제가 계속 수영을 했을까요?”

“내가 처음 널 우습게 봐서 오기로 한 거라며…”

“그건…”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을 얕보는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수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계기가 되기는 했어도 자신을 잡아 준 사람은 엄연히 영욱이다. 그는 그것을 말하는 것인데…

“농담이다, 이놈아. 하하하.”

“하…”

“어쨌든 생각을 해 보자. 바로 답을 줄 수는 없다. 창단은 언제 하는데?”

“아마 바로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창단 하자마자 수영장 공사에 들어갈 거고, 내년 초에는 완공이 가능하댔어요.”

“그럼 그 때 보자. 그 이전까지는 시간 있는 거지?”

“네.”

실질적인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대표 상비군 밖에 비빌 언덕이 없다. 그나마 이것도 지원이 끊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재목이 없는 종목에 그동안 투자했었던 것은 박태원 때문이다. 그가 은퇴하자 상시로 선수들을 불러들이고 훈련장 개방을 했던 것을 철회한다는 게 정부에서 검토 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선수들은 실업팀으로 돌아가서 훈련을 하다가 이런 대회를 앞두고만 모일 것이다. 몇 년 전으로 퇴행하는 것이다.

그의 대답.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그는 결심했다. 새롭게 창단하는 팀의 감독은 그가 되어야 한다는 것. 변함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많이 변화한 것이다.

또 있다. 이번에 순빈이를 통해 그는 장애인을 돕는 자선기금을 모을 생각을 밝혔다. 그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 그가 겪었던 그 경험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 가면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출국을 하기 위해 하네다 공항을 갔을 때 그의 어머니는 또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무래도 그가 간다는 것.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되는 것이다.

“에이, 엄마는…”

이럴 때는 또 완전 어린애다. 아직 덜 자란 것 마냥. 그래서 영욱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향해 그의 아버지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항상 폐를 끼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정말 운이 좋은 지도자입니다. 우혁군과 같은 선수를 지도할 수 있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인사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 나타난 유카리 미호. 그녀는 교복을 입고 나왔다. 그렇게 입으니 확실히 어린 티가 난다. 그의 곁에 오자마자 손을 잡는 그녀. 그 모습을 보고 빛나의 쌍심지가 또 불이 켜졌다.

“오니짱,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요?”

“이 손 놔줄래?”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거예요. 저를 꼭 기다려 줘요.”

무슨 신파를 찍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지는 않았지만 대사가 완전히 옛날 것이다. 어이가 없어하는 우혁. 그리고 빛나. 그런데 일수가 그것을 보고 이야기를 했다.

“일본 고등학교는 여름에 방학을 안 하나?”

“전학 수속 때문에 학교에 가야 했어요. 우리 학교는 이런 때도 꼭 교복을 착용하는 게 교칙이라서.”

“아, 네.”

그렇게까지 자세히 말을 해 줄 줄은 몰랐는지 일수는 얼굴을 붉힌다. 이렇게 막판 촌극을 뒤로 하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탄 대표팀. 일본의 하늘도 한국의 하늘과 같은 색이었다. 구름 위로 올라온 뒤 창 밖을 보니 여러 상념이 떠오르는 우혁.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을 다잡고 그는 다시 한 번 결심을 한다.

‘이번에는 1500미터였지만, 다음에는 전 종목이다. 반드시, 언젠가 반드시 해 낼 것이다.’

다시 한 번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는 그의 굳은 의지. 어쩌면 한국 수영은 그로 인해 중흥기를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 박태원으로 인한 전성기의 시작이 최우혁으로 마무리되는 게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지평을 열 것이라는 예감. 아마도 영욱만 하는 생각은 아니리라.

============================ 작품 후기 ============================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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