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회 - 축융과 귀갑병
- 화르르르르르륵!
맹화조가 아슬아슬하게 땅을 훑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변은 온통 불바다로 변했다.
맹화조의 첫 타는 피하거나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오직 몸으로 버텨야 했다. 그런데 서 있는 구역마다 피해 데미지는 랜덤이었다. 어디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매뉴얼 따위는 없었다. 아무리 대비를 해도 변수가 생기도록 일부러 만들어 놓은 장치였다.
“저 죽었어요!”
“아니 여기서 힐러가 죽으면 어떡해요?!”
첫 타에 힐러가 죽어버리자 파티가 허둥거렸다.
“바로 다시 내려옵니다!”
부활하고, 체력을 회복하고 제대로 파티를 재정돈할 틈도 없이 맹화조가 깃털처럼 사뿐하게 땅으로 내려앉았다. 거대한 맹화조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됐다.
공격대는 혼란에 빠졌다. 이번에는 거대화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을 막아도 맹화조는 날아오르면 그만이다. 게다가 거대화되면 움직임이 느려지는 약점이 있다. 힐을 받아도 평소보다 효율이 20~30% 떨어진다.
맹화조는 불을 쓰는 세 가지 패턴이 있었다. 입에서 불을 뿜어 일직선에 있는 적을 태워버리거나,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와 바닥의 절반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중 가장 무서운 건 날아올랐다가 바닥으로 돌진해 그냥 부딪히는 것이다. 만약 바닥 돌진 패턴일 때 피해 구역에 있으면 캐릭터가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었다. 무조건 즉사였다.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패턴이었다.
문제는 날아올랐을 때 불바다인지 돌진인지 바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맹화조가 날아오르면 바닥에 내려오기 직전, 피해 구역이 빨간색으로 반짝인다. 범위가 넓으면 불바다, 작은 원형이면 돌진이었다.
“여기 힐 좀!”
“죽는다~~~~~!”
“돌진이야! 피하세요!”
황제국이 회피 스킬로 몸을 날려 돌진하는 맹화조를 가까스로 피했다. 그는 곧바로 맹화조에게 달려들어 반격했다.
“돌진 패턴은 가장 위험하지만 그만큼 기회를 주는 패턴입니다. 돌진 직후 맹화조는 땅에 처박혀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때를 노려 공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맹화조가 돌진할 때는 무조건 멀리 떨어지지 말고 적당한 간격 안에서 피하세요. 그리고 곧바로 반격하세요!”
황제국의 뒤를 이어 공격대가 맹화조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곧 정신을 차린 맹화조가 반격하기 시작했다. 싸우며 전열을 재정비할 틈도 없었다. 많은 파티원들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끈질기게 버텼다.
맹화조의 체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자 작은 맹화조 두 마리가 추가됐다. 맹화조 세 마리의 맹폭 속에서 황제국은 오로지 대형 맹화조만 쫓아다니며 공격을 퍼부었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혈투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마침내 황제국이 대형 맹화조의 숨통을 끊는 데 성공했다.
- 드디어!!!!!!!
- 우와, 이거 뭐야~~~~~~
- 보는 내가 숨막힘 ㅋㅋㅋㅋㅋ
- 드뎌 끝났네 ㅎㅎㅎ
- 졸라 정신없네;;;;
- 이긴 거임? 이긴 거야?
- 저 불사조 바닥에 꼴아박 할 때는 보고있는 나도 무섭네;;;;;;
- 나도 지옥에 와 있는 줄. 졸라 덥다. 보일러 꺼야겠어 ㅎㄷㄷ
- 두 번째가 이 지경이면 세 번째는 어쩔 ㅋㅋㅋㅋ
- 세 번째가 문제야? 지귀랑은 어케 싸울 거냐고 ㅋㅋㅋㅋ
- 지귀지귀지귀지귀지귀지귀
- 나였으면 중간에 그냥 항복할 듯 ㅎㅎㅎ
- 지귀박령 저거 또 왔네
맹화조와의 숨 가쁜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했다. 황제국도 갈증에 물을 한 잔 마셨다. 현실 세계의 공격대도 땀을 닦고 음료수를 마시며 겨우 한숨 돌렸다.
“겨우 물리쳤네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 문지기, 축융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들 준비되셨나요?”
“네!”
황제국 공격대는 아이템을 챙기고, 치료를 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세 번째 관문을 향해 움직였다. 아까와 달리 넓은 길에는 잡다한 악귀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적막해 긴장감을 높였다. 길을 따라 움직이는 공격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세 번째 수문장 축융은 아주 강력한 고위 악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길이 잘 되어 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여기는 귀갑병이 다니는 길입니다. 귀갑병은 축융이 거느린 군대입니다. 지옥에서도 악명 높은 축융의 군대가 다니는 길이라 자잘한 악귀들조차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그럼 왜 축융을 위한 길이 없냐고 하면 사실 축융은······.”
황제국이 축융을 향해 가는 길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데, 웅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 멈춰라!
하늘에서 작은 용을 타고 있는 괴물이 외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땅이 울릴 정도였다. 공격대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서 섬뜩한 안광이 번쩍였다. 황제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바로 저 악귀가 지귀의 본거지를 지키는 세 번째 수문장, 축융입니다. 축융은 용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길이 따로 필요가 없죠.”
공격대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호령하는 축융의 목소리에는 화동과는 다른 위엄이 서려 있었다. 축융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몸은 온갖 짐승들의 타다 만 몸뚱아리로 이루어져 끔찍했다. 그는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뒤틀린 신체 구조를 숨길 수 없었다.
- 너희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든 모두 헛수고다. 이 세상은 본래 더러운 곳. 모두 불에 타 버려야 한다. 지귀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라. 어차피 모든 것은 언젠가 결국 불에 타 없어진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늦는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축융이 공격대를 향해 마치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토템 워>의 수많은 NPC들은 각자의 스토리와 성격이 있었고, 전유진과 스토리랩은 이를 대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이려고 노력했다.
레이드에 등장하는 수문장 등 고위 악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없이 다음은 대사는 당대 최고의 성우 수십 명을 동원해 녹음하고, 캐릭터 성격에 맞게 다시 세심한 조정을 거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축융의 목소리는 마치 위엄과 품격이 넘치는 대장군 같았다.
- 오, 듣고 있으니까 꼭 내가 혼나는 거 같음 ㅋㅋㅋ
- 목소리 멋있네. 모두 타서 없어진드아~~. 그거시 세상의 이치다~~!
- 불에 미친놈들 ㅋㅋㅋㅋㅋ 뭐가 불에 타 없어져 ㅎㅎㅎ
- 드디어 세 번째!
- 세 번째쯤 되니까 뭔가 분위기가 다르네 ㄷㄷㄷ
- 기다려 지귀야~~~ 형이 금방 갈게~~~~
- 잡설이 길다. 고고고고고고고!
시청자는 더욱 늘어나 이제 채팅을 읽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모니터링 중인 민소영은 혹시 퀘스트.tv 서버가 뻗는 건 아닐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동시 시청자는 이제 4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옵니다. 준비하세요.”
하늘에 떠 있던 축융이 땅으로 내려오자 황제국이 말했다. 용이 머리를 하늘로 한 번 치켜들더니 공격대를 향해 불을 뿜었다. 용이 불을 내뿜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불줄기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좌우로 크게 꿈틀거렸다. 황제국과 원정대는 불이 퍼지는 경로 밖으로 재빨리 움직여 피해를 줄였다.
“흩어져서 둘러싸세요!”
황제국의 지시에 원정대가 재빨리 움직여 축융이 탄 용을 원형으로 둘러싸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용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앞발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했다. 축융은 공격대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대의 공격 역시 용에게만 들어갈 뿐, 축융에게는 아직 1의 데미지도 입히지 못했다. 발톱으로 내리찍던 용이 앞발을 들어 공격대를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앞발에 챈 공격대는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5초간 상태 이상에 빠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용은 앞발과 불을 뒤섞어 가며 공격했다. 용을 둘러싸고 공격하던 공격대는 불을 쓰면 일단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용을 공격했다. 용의 체력이 50% 이하로 줄어들자 갑자기 용이 괴성을 지르며 하늘로 올라갔다. 축융이 하늘에서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우웅!
그러자 땅이 크게 울리더니 갈라지면서 땅속에서 병사들이 줄을 지어 나타났다.
저벅! 저벅! 저벅!
축융과 똑같은 갑옷을 입은 족히 수백은 돼 보이는 군대가 축융 아래에 도열했다. 축융이 부리는 군사, 귀갑병이었다.
귀갑병의 위용은 대단했다. 그들은 모두 눈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귀갑병은 축융처럼 불에 타 죽은자들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귀갑병의 등장에 채팅창은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귀갑병은 움직임이 전부 똑같이 움직였다. 사실 이는 시스템 부하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애니메이션 프레임을 약간 낮추고, 디테일은 최대한 감췄다.
군대 전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움직이니까 병사 하나하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딱딱한 움직임은 오히려 절도 있고, 기괴하면서, 웅장해 보였다. MMORPG에서 움직이는 유닛 하나는 전부 시스템 리소스를 잡아먹는다. MMORPG 보스 레이드에서 전쟁 규모의 군대를 재현한 귀갑병은 미술, 개발, 서버의 피, 땀, 눈물이 담긴 장면이었다.
하늘에서 축융이 팔을 높이 들어 그의 무기 채찍을 뽑았다. 축융의 오른팔은 관절이 두 개였다. 이상한 각도로 움직였지만 움직임은 자유자재였다.
- 화살 준비!
축융이 불길이 타오르는 채찍을 휘두르자 진영 뒤쪽에 포진해 있는 귀갑병 궁사들이 활을 들었다. 축융이 다시 채찍을 휘두르자 화살촉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 발사!
축융의 명령과 함께 궁사들이 화늘에 불화살을 날렸다. 귀갑병의 활에서는 한 번에 여러 대의 화살이 날아갔다. 하늘이 갑자기 빨갛게 물들며 엄청난 불화살 무리가 공격대를 향해 날아왔다. 시청자들은 하늘을 뒤덮은 불화살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제 뒤로 모이세요!”
황제국이 다시 한번 거대화 되어 화살을 온몸으로 맞았다. 공격대는 황제국 뒤에서 화살을 피했다. 거대화된 황제국 캐릭터에 화살이 꽂혀 고슴도치처럼 되었다. 힐러 둘이 번갈아 가며 계속 거대화된 황제국에게 힐을 걸었다.
- 발사!
- 진격!
또 한 번의 화살 공격이 끝나고 귀갑병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앞줄에는 칼을 든 귀갑병, 뒤에는 창을 든 귀갑병, 맨 뒤에서는 여전히 불화살을 날리는 귀갑병들이 있었다. 용을 상대하던 공격대는 이제 귀갑병 군단을 상대해야 했다.
“하나하나 상대하지 말고 광역기 위주로 공격하세요!”
황제국도 공격대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귀갑병 하나하나의 전투력도 상당했지만, 화동이나 맹화조 등 보스급 수문장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만렙의 공격대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축융이 아니었다. 그는 뿔피리로 작은 맹화조를 소환했고, 소형 맹화조들이 주기적으로 내려와 불을 뿜으며 공격했다.
맹화조까지 나타나면서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힐러들이 누구에게 힐을 줄 짬을 내기도 어려웠다. 뒤에서는 계속 불화살이 날아왔다.
“암살조! 뒤에 있는 궁수부터!”
황제국이 맨 앞에서 공격을 받아내는 사이, 은신 스킬이 있는 두 명의 딜러가 공격대에서 빠져 전장의 뒤로 움직였다. 그들은 귀갑병 궁수와 창병들을 공격했다. 체력이 약한 귀갑병 궁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귀갑병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전투가 조금 수월해졌다. 하지만 귀갑병들의 수가 줄어들자 축융이 몸소 땅으로 내려왔다.
- 미력한 것들이!
축융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채찍을 폭풍처럼 휘둘렀다. 축융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대 암살조 두 명이 한 방에 죽어버렸다.
“축융의 채찍은 불에 의한 추가 데미지가 무시무시합니다. 반드시 불에 강한 토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채찍 범위 밖으로 계속 도망 다니는 수밖에 없어요. 조심해야 합니다!”
황제국은 한순간에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에서도 공격대를 이끌면서 방송 스트리머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는 전황을 소개하며 왜 공격대에 전사자가 나왔는지 빠르게 설명했다. 축융이 공격에 가담하면서 이제 축융과의 전투도 마지막 페이즈에 이르렀다.
“축융의 채찍에 당하지 않으려면 안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계속 밖으로 도망 다니고 싶어지지만 아니러니하게도 안쪽이 가장 안전해요. 당연히 축융은 다가오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여기서 탱커가 채찍 범위 안에서 버텨주면서 축융에게 계속 어그로를 끌어 주세요. 그 틈에 딜러가 축융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누구든 축융에게 바짝 붙어야 합니다. 그의 공격을 계속 당해낼 수는 없어요!”
안으로 뚫고 들어가려는 공격대와 채찍이 닿는 범위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축융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황제국이 끈질기게 버티며 빈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축융이 오른손에는 불타는 채찍을, 왼손에는 장검을 들고 공격대를 계속 몰아냈다. 휘몰아치는 채찍 폭풍과 기묘하게 꺾이는 검술에 맞서 공격대가 반격하는 모습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저 들어왔어요!”
마침내 딜러 하나가 불채찍을 뚫고 태풍의 눈으로 들어갔다. 그는 측융 바로 뒤에 들러붙어 공격을 퍼부었다. 축융의 방어선이 한 번 무너지자 다른 공격대원들이 하나, 둘 축융의 저지를 무너뜨리고 축융에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축융이 타던 용이 내려와 불을 뿜으며 싸움에 가세했다. 이미 체력이 거의 떨어진 용은 힐러들이 합세해 물리쳐야 했다. 다시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축융의 체력이 많이 떨어지자 그의 갑옷이 사라졌다. 그러자 온갖 짐승들의 타다 만 신체로 이루어진 몸이 드러났다. 그러자 축융이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쳤다.
- 보지 마! 보지 마라! 날 욕하지 마! 미천한 것들이! 가소로운 것들이!
축융이 소리 지르며 마지막 저항을 했다. 하지만 대세는 기울어진 후였다. 축융의 체력이 거의 다한 것을 확인한 황제국이 치우족 전사의 스킬인 치수검무를 펼쳤다. 검의 움직임을 따라 물줄기가 갈라지는 화려한 연출 속에 마지막 일격이 가해졌다.
- 아니야.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이 세상 모두가 불의 무서움을 알아야만 한다! 온 세상을··· 태워야만··· 해!
축융이 쓰러지면서 고통스럽게 외쳤다. 그의 채찍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사라졌다. 귀갑병의 눈에서 불길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멈췄다.
“축융은 마음이 완전히 뒤틀린 악귀죠. 자기가 불에 타는 극심한 고통 속에 죽었으니, 다른 이들도 똑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공평하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더럽다고 말한 건 그냥 겉으로 내세우는 대의명분이에요. 자기보다 더 강한 지귀의 힘을 빌려 온 세상을 고통에 빠뜨리고 싶어 하는 것뿐입니다.”
공격대가 축융의 아이템을 나눠가지자 하늘에서 작은 맹화조 한 마리가 내려와 축융의 시체 위에 앉았다. 그러자 축융의 시체에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바람결에 사라졌다.
황제국과 공격대는 잠시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게임 속의 디지털 캐릭터였고, 악한 캐릭터였지만 그 순간에는 모두 축융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황제국은 공격대원들을 쓱 훑어봤다. 어느덧 레이드에 진입한 지도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피로가 몰려올 타이밍이었다.
“지금까지 정말 잘 해주셨어요. 자, 이제 최후의 보스만 남았습니다. 개발자들의 명예를 위해서, 파이팅!”
“파이팅!”
황제국이 마지막 지귀와의 싸움을 앞두고 공격대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채팅창에서도 너도나도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수많은 파이팅 메시지가 빛의 속도로 채팅창을 지나갔다.
축융을 불태운 맹화조가 하늘을 빙빙 돌더니 천천히 한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황제국이 맹화조를 따라가며 말했다.
“가시죠. 지귀가 저희를 부르고 있습니다.”
공격대는 맹화조의 뒤를 쫓아 달렸다. 조금 달려가자 어두운 하늘과 땅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나왔다. 공격조는 오직 맹화조를 보고 달렸다. 네비게이션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맹화조 없이는 어디도 찾아갈 수 없는 광활하고, 공허한 땅이었다.
“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네요. 거의 다 왔습니다.”
황제국의 말대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공격대가 걸음을 멈췄다. 거기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있었다. 그냥 바다가 아니라 펄펄 끓는 용암의 바다였다.
지귀가 억겁의 세월 동안 모은 용암이 얼마나 많은지 파도치는 용암이 보여주고 있었다. 용암의 바다는 그 끝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곳은 마치 노을이 지는 것처럼 용암이 하늘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지만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잠시 후,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서서히 용암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한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용암의 바다에서 걸어 나왔다.
지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