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회 - 퀘스트.tv
홍보 대행사는 뉴퀘스트가 개발 중인 MMORPG 제목이 <토템 워>로 정해졌다고 알리는 동시에 2003년 제2회 뉴퀘스트 컨퍼런스를 예고했다. 제2회 뉴퀘스트 컨퍼런스에서는 세계 최초로 <토템 워> 게임 데모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2002년 뉴퀘콘의 즐거운 기억을 간직한 게이머들은 두 번째 컨퍼런스 소식에 환호했다.
- 만세~~!!!!!! 드디어 내 기도가 통했다. 올해도 뉴퀘콘이 열리는구나ㅠ.ㅠ.ㅠ.ㅠ
- 호옥시 올해는 안 하고 넘어가는 건가... 했는데 역시 열리네 ㅎㅎㅎ
- 당근 열어야지!! 올해도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어둠 개발 과정도 발표해야 하고, 토템 데모도 하고 싶고.
- 작년 개발자 발표 세션 엄청 유용했어요. 올해 <어둠 속으로>는 무슨 얘기 해 줄지 벌써 기대됩니다.
- 마지막 제작 발표회 때 예고편 봤던 거 완전 전율이었는데. 진짜 어떤 게임이 나올지 너무 궁금하다!!!
- 뉴퀘콘은 무조건 가야죠. 올해도 당근 갑니다!
- 내용 보니까 1회보다는 규모를 살짝 줄였네. 대신 토템 데모 부스가 작년 어둠 부스보다는 훨씬 넓다.
- 잘했네. 작년에 어둠 데모하려고 세 시간 넘게 줄 섰던 기억 나네.... 그래도 재밌었지만 여튼 데모 부스는 무조건 커야 함.
- ㅇㅇ 올해는 토템 데모하러 가는 사람이 제일 많을 거 같으니까.
사람들은 두 번째 뉴퀘콘에서 선보일 <토템 워>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했다. 이를 예상한 뉴퀘스트는 2회 컨퍼런스에서는 <토템 워> 데모 부스를 주력 컨텐츠로 삼아 데모 부스를 크게 확대했다.
2003년 뉴퀘스트는 특히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여름에 발매한 <어둠 속으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PC 게임 시장을 석권했고, 전 세계 유통망도 계속 늘리고 있었다. 여기에 <젤리 러쉬>가 중국에서 매출이 크게 올랐고, <영건 블러드>가 부분 유료화 BM을 도입하면서 게임을 잠시 떠났던 옛날의 게이머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3개의 게임이 모두 견고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퀘스트 엔진 2 역시 <어둠 속으로>가 성공하자 라이선스 문의가 다시 폭증하고 있었다. 덕분에 뉴퀘스트의 2003년 전체 매출액은 최대 6,000억 원 정도로 내다보고 있었다. 98년 창업 첫해와 비교하면 창업 6년 만에 무려 300배 이상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이거이거, 이러다가 내년에는 매출 1조 원까지 확 달성해버리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내년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3년 안에는 가능하겠죠. <토템 워>가 얼마나 해주느냐에 달렸지만요.”
“하하하하. 이것 참. 벌써 매출 1조 원을 얘기하다니. 진짜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게임 3개로 5천억을 돌파해 버릴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게임이 많다고 전부가 아니니까요. 이럴 때 보면 하워드가 은근히 소박할 때가 있다니까요?”
“네, 여기 입사할 때만 해도 저는 제가 과대망상이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반대였어요. 전 소박하다 못해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하하!”
하워드는 황제국이 놀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는 잘나가는 투자 은행에서 안정되고 탄탄한 미래를 거부하고 스페셜 원이 되기 위해 뉴퀘스트에 합류했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뉴퀘스트는 창업 6년 동안 겨우 3개의 게임만을 발매했다. 결코 많은 수가 아니었지만 나오는 게임마다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수년이 흘러도 꾸준한 운영과 마케팅으로 확고한 팬덤을 이어갔다. 2003년을 기점으로 황제국은 이제 뉴퀘스트가 매출은 물론 회사라는 시스템이 탄탄한 기반 위에 섰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MMORPG <토템 워>로 2000년대 MMORPG 시대의 전성기를 이끄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뉴퀘스트 런처를 기반으로 온라인 게임 스토어를 오픈하고, 모바일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퀘스트 엔진의 가치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10년 후에는 뉴퀘스트 게임을 하는 사람이 10억 명을 넘고, 연 매출도 1조가 아니라 10조 원은 되어 있을 겁니다. 소심한 하워드 본부장님.”
황제국은 하워드의 말을 빌려 ‘소심한 하워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10조 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황제국의 머릿속에는 게임의 규모와 퀄리티를 모두 놓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성장하기 위한 로드맵을 차곡차곡 그리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MMORPG <토템 워>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비주얼은 서양 판타지 이상으로 더 화려하게 꾸밀 수 있었다. 청동, 황동, 금, 철, 털과 가죽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화려한 비단옷으로 기존 MMORPG와 차별화된 스타일링이 가능했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갖가지 비녀는 물론 노리개와 장신구를 통해 더욱 화려한 연출이 가능했다.
장경일은 <어둠 속으로>의 노하우를 이어받아 아트팀을 잘 이끌어 나갔고, 특유의 강하고 개성 있는 그림체를 잘 살려 게임을 만들어 나갔다. 문제는 비주얼이나 액션이 아니었다. 게임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친숙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그 이상의 홍보/마케팅 비용이 들어갈 <토템 워>는 <젤리 러쉬> 이상의 동접자를 목표로 했다. 문제는 <젤리 러쉬>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어서, 한두 번만 해보면 어떤 게임인지 어린아이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토템 워>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게임이었다. 여러 부족과 직업, 수많은 조합이 가능한 천지인 성장 시스템, 드넓은 아사달 대륙과 천상 및 지옥의 세계, 기본 스토리와 필드에서의 전투 및 던전 레이드, 반목하는 부족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PvP, 각종 재료 채집과 아이템 제작, 집을 만드는 하우징까지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나 다양했다.
게다가 황제국은 <토템 워>를 동양 세계관 속에만 묶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몇 년 후에는 사자 토템 등 유럽/서구형 부족, 코끼리 토템과 같이 아시아에서도 느낌이 다른 부족을 추가할 생각이었다. 바이킹의 침입 같은 시나리오도 생각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함대전 콘텐츠도 생각하고 있었다.
MMORPG에는 게임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이 너무나 다양했고,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게임이 나올 예정인 2004년에는 게임의 다양한 면모를 사람들에게 쉽게 보여줄 방법이 없었다. 간단한 던전 공략법을 보여주려고 해도 블로그에 일일이 사진과 글로 복잡하게 설명해야만 한다. 대부분 게임을 직접 해봐야지만 알 수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는 이제 충분히 보급되고 있었지만, 아직은 동영상의 시대가 아니었다. 케이블 게임 채널과 연계해 <토템 워> 특별 방송을 편성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인터넷 게임 방송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없으면 직접 만들어야지.’
황제국은 뉴퀘스트에서 인터넷 게임 방송용 서비스를 직접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게임 이외에 인터넷 서비스에 손을 대기로 한 건 처음이었다.
마침 2003년에는 MPEG-4 기반 표준 비디오 압축 코덱인 H.264가 발표되었다. 인터넷 게임 방송 서비스 개발을 위한 기술적 토대는 마련되어 있었다. 황제국은 게임 방송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를 런칭하자는 아이디어를 리더십 그룹에 공유했다.
“그런데 동영상을 웹에서 보려면, 그것도 게임 방송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를 하려면 잘은 모르지만 기술적인 제약이 엄청날 것 같은데요?”
“물론 그럴 겁니다. 처음에는 녹화 위주로 가고, 메인 방송은 우리가 제공하는 스튜디오에서 전문 장비와 초고속 인터넷을 갖춘 환경으로 제한이 되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질 겁니다.”
“실시간 인터넷 게임 방송이라니. 그러니까 온게임넷 같은 방송을 개인이 집에서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영건 블러드>를 학교 축제에서 공개하고 게임 대회를 열었을 때, 직접 게임 중계와 해설도 맡았었죠. <토템 워>를 런칭하면 제가 이벤트 삼아 보스 레이드 장면을 직접 방송해 볼 생각입니다.”
“대표님이 직접이요?”
“그러면 일단 한국에서는 시청률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겠는데요?”
리더십 그룹은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구현 가능성에는 반신반의했다. 황제국은 어디까지나 실험적으로 사내 벤처의 형식으로 소규모로 시작하겠다고 리더십 그룹을 설득했다.
황제국은 ‘퀘스트.tv’라는 가칭으로 팔로 알토에 비밀 개발 조직을 발족하기로 했다. 그는 샌디에게 자세한 서비스 개요 문서를 전달하고 적당한 인재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인터넷 방송, 그것도 실시간 게임 방송을 웹에서 구현한다는 것이 2003년에는 엄청난 도전 과제였다. 뛰어난 실력만큼 다소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했다. 한국보다는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겠다고 황제국은 판단했다.
2004년, 늦으면 2005년 <토템 워>가 정식 출시하는 즈음에 서비스 시작을 목표로 퀘스트.tv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샌디는 동영상 관련 기술을 보유한 개발자들의 리스트를 쭉 뽑아서 살피는 동시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학생들이 없는지 모니터링했다.
뉴퀘스트는 몇 년 전부터 스탠포드에 기부금을 내고 있었고, 인터넷 기술과 게임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었다. 샌디는 뉴퀘스트 장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등을 듣고 있었다.
“동영상이요? 그거라면 네드가 전문 분야인데.”
“네드? 스탠퍼드 학생이야?”
“네, 컴퓨터과학이요. 지금 2학년인데 실력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쫙 놨어요. 근데 조금······.”
“조금?”
“약간 또라이 같아서요.”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동영상 플레이어를 직접 만들어서 테스트한다고 학교 강의를 캠코더로 몰래 녹화했었나 봐요. 그걸 디지털로 변환해서 압축을 했는데, 실제로 압축 효율도 꽤 좋았다고 들었어요. 근데 학교 서버를 해킹해서 거기다 몰래 올려놓고 미디어 서버처럼 쓰려고 했나 봐요.”
“후!”
“결국 학교에도 걸렸죠. 청문회까지 열리고, 거의 퇴학 당할 뻔했다가 어떻게 넘어갔나 보더라구요.”
“제정신은 아닌 것 같네. 확실히.”
“절대 아니죠. 청문회에서 ‘학교 강의니까 학교 서버에 올렸는데요?’라고 반문했다고 하더라구요. 그걸로 돈을 받거나 한 건 아니라서 퇴학은 면한 것 같았어요. 인터넷으로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만들어서 교육비를 혁신적으로 낮추겠다고 하던데. 세계에서 제일 비싼 학비 내고 다니면서 이상한 소리 한다고 다들 또라이라고 하는데, 녀석은 엄청 진지한 거 같더라구요.”
“그 친구,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
샌디가 웃으면서 물었다. 퀘스트.tv에 딱 맞는 인재를 찾은 느낌이었다.
샌디의 제안에 네드는 처음에는 자기만의 서비스를 창업할 거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샌디는 스탠퍼드 대학생을 누구보다 잘 다룰 줄 알았다.
“나도 오래 일해달라고는 안 해. 딱 1년. 어쩌면 1년 6개월? 전부 너 하기에 달렸지. 네가 빨리 끝내면 그보다 짧아질 테니까. 서비스 정식 런칭할 때까지만 도와줘. 이걸 성공적으로 런칭하기만하면 인터넷 교육 서비스?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백만장자들 이 동네에 널렸을 걸? 지금 넌 아무도 아니지만, 만약 뉴퀘스트의 비밀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지지. 넌 그 순간부터 천재 스탠퍼드 대학생이 되는 거야. 이 바닥에서 그런 소문은 빛보다 빨리 퍼진다는 거, 너도 알지?”
네드는 빠르게 수십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샌디는 자기 설득이 먹혔다는 것을 직감했다.
“네. 생각보다 쉽게 찾았어요, 보스. 스탠포드에 장학금만 수십만 달러씩 뿌린 보람이 있네요.”
샌디른 곧 네드를 중심으로 우선 3명으로 팀을 꾸렸다. 팔로 알토 오피스에서도 퀘스트.tv 프로젝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샌디는 뉴퀘스트 오피스에서 좀 떨어진 곳에 퀘스트.tv 팀이 이용할 작은 오피스를 따로 얻었다.
“누가 뭐 하는지 물어보거든 뉴퀘스트에서 QA 일을 파트 타임으로 하는 중이라고 해. 알았지?”
샌디는 네드에게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비밀 유지 항목을 설명하면서 거듭 강조했다. 네드는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샌디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인터넷 게임 방송 서비스 개발을 시작한 황제국은 <토템 워> 개발에 집중했다. 연말 뉴퀘스트 컨퍼런스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때까지는 전사의 계곡과 게임 데모를 손봐야 했다. 사람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밸런스에 신경을 쓰고, 부족과 직업을 추가하는 것은 물론 데모에는 지옥의 일부를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뉴퀘스트는 바쁘게 움직여 두 번째 컨퍼런스를 준비했다. 1회를 성대하게 치렀던 만큼 노하우가 쌓여서 2회는 보다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2회 컨퍼런스는 구성이 다소 바뀌었다. 개발자 세션과 출시 예정작 게임 데모 부스는 그대로 유지했고, 여기에 퀘스트 엔진2를 라이선스해 개발 중인 다른 게임 회사의 부스를 추가했다. 특히 무료 라이선스를 받아 게임을 개발 중인 대학생 창업자들에게는 특별 부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지난 E3에서 게임온뮤직 홍성준 대표님을 만나고 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저도 대학에서 벤처 기업을 창업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대학교에서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춘 창업자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황제국은 컨퍼런스에서 새로운 지원책도 발표할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2003년 두 번째 뉴퀘스트 컨퍼런스가 막을 올렸다. 수많은 게임팬들이 다시 코엑스로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