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회 - 뉴퀘스트콘
홍보대행사는 오종석의 요청을 받고 미리부터 뉴퀘스트 컨퍼런스 홍보 계획을 마련해 두었다. 우선 주요 일간지 및 각종 경제지, 게임잡지와 웹진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광고를 내는 미디어 패키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컨퍼런스 홈페이지 개발, 인터넷 포털 광고, 커뮤니티에 소식 퍼가기 이벤트 등 종이 매체와 온라인 매체, 커뮤니티 바이럴을 다양하게 믹스해 계획을 촘촘하게 짰다.
동종 업계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 발표 내용이 정리되고, TW 개발도 자리를 잡아가는 만큼 일반 게이머에게도 보여줄 내용이 어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뉴퀘스트는 이제 연말 컨퍼런스 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 뉴퀘스트 올 연말 COEX에서 단독 컨퍼런스 개최한다! 2002년 뉴퀘스트 컨퍼런스.
- 코엑스에서 함께하는 뉴퀘스트 게임 한마당, 뉴퀘스트 컨퍼런스 개최. 게임 개발자를 위한 컨퍼런스 파트와 일반인 대상 게임 데모 파트로 구성.
- 개발자 컨퍼런스에 뉴퀘스트 한국, 미국, 유럽 오피스의 리더급 총출동. 게임 개발과 마케팅에 관한 생생한 노하우 푼다.
- <영건 블러드> 및 <젤리 러쉬> 제작 과정, 게임 엔진 개발, 스토리 및 게임 아트까지 게임 개발에 관련한 모든 뒷이야기 공개.
- 2002 E3 최고의 화제작, 최고의 그래픽으로 손꼽힌 RPG <어둠 속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데모 버전 최초 공개.
- ‘어둠 속으로’ 미국보다 더 깊이 들어갈 기회 온다. 뉴퀘스트 컨퍼런스에서 새로운 데모 공개.
- COEX, 뉴퀘스트와 손잡고 12월 한 달 동안 코엑스몰을 뉴퀘스트 게임 아트 오픈 전시장으로 탈바꿈.
- 컨퍼런스 홈페이지 공개, 내달부터 티켓 예약 시작.
- 뉴퀘스트 대표 황제국, “연말 컨퍼런스는 지난 5년간 축적된 뉴퀘스트의 성과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 그동안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게이머들에게 다시 돌려드리고, 노하우 공유로 한국 게임 개발 생태계에 보탬이 되고자 마련.”
여러 매체에 일제히 뉴퀘스트 컨퍼런스 소식이 발표되었다. 그러자 곧바로 한국 게임 커뮤니티가 들썩거렸다.
보도자료에는 차현주가 디자인 중인 코엑스몰 오픈 전시회의 컨셉 이미지가 몇 장 포함되어 있었다. 인터넷 게임 커뮤니티와 각종 인터넷 카페에서 컨퍼런스 소식을 퍼다 날랐다. 인터넷 게시판은 가는 곳마다 뉴퀘스트 컨퍼런스 얘기로 도배 되어 있었다.
- 뭐야? 뭐야??? 이게 뭐야????? 뉴퀘스트가 컨퍼런스를 연다고라고라고라???
- 흐어어어, 드디어 한국에서도 <어둠 속으로> 해 볼 수 있는 거냐? 그런 거야???
- E3 스크린샷 보고 침만 흘렸는데. <어둠 속으로> 데모 버전이라고 했으니 짧게라도 해 볼 수 있는 거겠지?
- 당연한 듯. 그래픽도 그래픽인데 게임쇼 반응에서 액션이 진짜 쩐다고 하던데. 난 그게 너무 궁금함.
- 뉴퀘 진짜 대인배네. 개발자 컨퍼런스 열어서 게임 개발 노하우를 싹 푼다니.
- 진짜. 나 같으면 특허 등록이든 뭐든 해서 꽁꽁 싸매고 어떻게든 혼자 다 해 먹으려고 할 텐데.
- 딴 사람은 몰라도 제국이는 그러면 안 되지. 병역법까지 바꿨는데.
- 뭔소리? 달러 벌어오라고 법 바꾼 거지. 나라가 거지꼴이 돼서 달러 한 푼이라도 아쉬운 판이니까.
- <젤리 러쉬> 해외 매출이 얼만지는 알고 저런 소리 하나? 이번 보도자료 보면 작년 연말에 출시하고 올해 6월까지 최소 1,500억이 넘음. 무려 1억 2천만 달러임.
- <영건 블러드>가 6백만인가, 7백만 달러 벌고 황제국 특별법 생겼는데. 법 바꾸자마자 20배를 벌어오네;;;;
- 와~~, 게임 하나로 1억 2천만 달러라고?!?! 진짜 대단하네. 그깟 젤로 옷 입히는데 돈을 그렇게 많이 쓴다는 거야?
- 조선시대 선비 또 한 명 납시셨네. 네에~~, 한국이고 미국이고 다들 젤로에 미쳐서 돈 펑펑 씁니다. 이해가 안 가시나 보네. 님 타마고치 안 해보심?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들 코엑스 오픈 전시회 이미지 봤어요? 코엑스몰 입구에 초대형 젤로가 등장합니다. 와~~, 무조건 가서 사진 찍고 와야 함 이거는.
- 다들 회사에서 그 얘기뿐임 ㅋㅋㅋㅋㅋ. 지금 회사 여직원들 연말에 코엑스 몰려간다고 함. 초대형 젤로 봐야 한다고. 참고로 여기 부산이에요······.
- 우리도 비슷해요. 사람 미어 터지겠드아~~~.
- 컨퍼런스는 참여 안 해도 초대형 젤로 보려고 코엑스 가는 사람도 많을 듯. 물론 저는 게임하러 갑니다. <어둠 속으로> 참을 수가 없엉!
- 사람이 암만 많아도 월드컵 4강 때 시청 앞 광장보다 많겠어요? 이제 몇만 정도 모이는 거는 뭐 껌이죠.
- 어······ 그렇게 말하니까 바로 납득되네요. 그러게요. 우리 빨간악마들이 고작 몇만 명 정도 모인다고 무슨 문제라도? ㅎㅎㅎㅎ
- 게임 회사 다닙니다. 지금 회사에서 뉴퀘콘 팀장급 이상은 무조오오껀 참석하라는 지시 떨어졌네요. 아마 한국 게임 회사들 여기 다 모일 듯요.
- 이런 기회 놓치면 안 되죠. 이미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게임 회사가 자진해서 노하우 공유해 준다는데. 많이 배우고 오세요.
- 배우는 것도 배우는 건데, 황제국 대표님 직접 뵐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떨리네요. 하······, 완전 제 롤모델이신데ㅠ.ㅠ
- 황제국도 발표하나요? 제가 아직 프로그램 확인을 못 했는데.
- 컨퍼런스 발표는 각 게임 PM이랑, 본부장급에서 하고요. 황제국 대표님은 컨퍼런스 첫날 기조연설 하십니다. 연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컨퍼런스 기사가 나간 날, 황제국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 반응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모두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초대형 젤로 얘기가 많은데, 현주 AD님? 완전 이번 컨퍼런스랑 오픈 전시회의 마스코트가 될 거 같아.”
“그래야지. 내가 이거 제작하느라고 지금 얼마나 머리가 빠개지고 있는데. 제작 가능한 업체 찾아 삼만리라고.”
“가능할 거 같아?”
“응, 내가 진짜 대학 교수님들까지 찾아가고. 그래서 해외 유명 설치미술가들한테도 연락했거든? 초대형 튜브 제작해서 안에는 가스 채워서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제작 기간은?”
“솔찍히 아슬아슬한데. 그래도 가능할 거 같아.”
“다행이네. 비용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잘 만들어. 코엑스에서 컨퍼런스 끝나면 전국 투어 돌자. 서울,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제주까지 찍고.”
“찍고?”
“미국이랑 유럽에도 가야지. <젤리 러쉬>는 엄청나게 유명한 게임이야. 초대형 젤로 인형이 세계적인 명소에 있으면 그 자체로 엄청난 마케팅이 될 거야. 뉴욕 타임스퀘어, 파리 세느강, 런던 템스강에 초대형 젤로를 놓는다고 생각해 봐. 완전 난리 날걸? 한 번 쓰고 말 거 아니니까 최대한 잘 만들어 줘. 너만 믿을게.”
“OK! 알았어. 걱정 마.”
차현주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차현주는 <젤리 러쉬> 작업에, 코엑스 오픈 전시회 꾸미기는 물론, 초대형 젤로 인형 만들기에 컨퍼런스 발표까지 준비하느라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차현주뿐만 아니라 젤리 러쉬 라이브팀 디자이너들도 모두 달라붙어서 컨퍼런스 작업을 돕고 있었다.
젤리 러쉬 라이브팀 개발자들이 <젤리 러쉬> 겨울 스포츠 버전을 만드느라 애쓰는 사이, 디자인 팀은 컨퍼런스 준비에 한창이었다. 모두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트팀은 게임 아트로 새로운 게임 문화를 선도한다는 마음에 누구보다 기쁘게 일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큰 사랑을 받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사람들은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 차현주와 젤리 러쉬 아트팀은, 그들의 게임 아트가 코엑스를 무대로 컨퍼런스 전면에 나선다는 사실에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코엑스에는 <젤리 러쉬> 아트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영건 블러드> 아트도 들어갔고, <어둠 속으로> 컨셉 아트도 함께 전시할 계획이었다. 또한 컨퍼런스 공간 중 하나는 지금까지 게임을 만들면서 아트팀이 그렸던 다양한 아이디어 스케치와 미공개 캐릭터들, 모델링 과정 등 다양한 미술 자료도 전시할 예정이었다. 차현주가 황제국에게 말했다.
“비록 내 개인전은 아니지만 이렇게 코엑스에서 오픈 전시에 컨퍼런스까지 하니까 정말 좋다. 오히려 내 개인전보다 나은 거 같아. 스케일도 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볼 테고. 우리 컨퍼런스 초대장 얼마나 나와? 나 자퇴할 때 뒷담하던 놈들한테 컨퍼런스 초대장 보내줘야 하는데.”
“그런 녀석들이 있었어?”
“있었지 당연히. 없었겠어? 뭐, 그런 것도 그림이냐는 말부터, 갤러리에서 승부 못 볼 거 같으니까 게임으로 도망친다는 소리도 들었고, 축하한다면서 사실은 비아냥거리는 녀석들도 있었지. 물론 진짜 응원해주는 친구가 더 많았지만.”
“어처구니가 없네. 천하의 차현주가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어?”
“거기서 한바탕 뒤집어 버릴 수도 있었는데. 내가 그런 놈들하고 싸워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 어차피 나야 과에서 내놓은 사람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녀석들한테는 최고의 복수가 따로 있거든.”
“그게 뭔데?”
“그건 있지. 졸라 성공하는 거야. 그냥 성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러러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마주쳐도 말도 걸기 힘들만큼 유명해지고 성공하는 거. 나 싫어하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잘되는 게 최고의 복수거든. 안 그렇겠어?”
“하긴 진짜 그렇네. 현주 이제 보니까 득도했구나?”
“제국이 너야 컴공이니까, 수업 중에 게임 만드는 과정까지 있으니까 게임 만드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우린 아니라고. 만화는커녕 상업용 일러스트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물며 게임은? 어땠겠니?”
차현주가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주 너가 게임 만드느라 과에서 그정도로 핍박을 받는 줄은 몰랐는데? 왜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얘기 안 했어?”
“얘기하면? 뭐가 달라지나? 왜? 너랑 종석이랑 우리 과에 쳐들어와서 게임 무시한 놈들이란 한 판 붙기라도 하게?”
“음, 진짜 그랬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근데 그런다고 걔들이 정신을 차릴까? 설령 너희가 이긴다고 해도 과에서 내 평가만 더 나빠질 게 뻔하지.”
황제국은 지난 5년 동안 처음 듣는 얘기였다. 황제국은 새삼 차현주가 뉴퀘스트에 합류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구나. 진짜 몰랐어. 그런 일로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뭘, 내가 말 안 하고 있었던 건데.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니까 얘기하는 거야. 무엇보다 게네들이 날 쳐다도 보지 못할 만큼 이제 성공했으니까. 누가 감히 20대 초반에 코엑스를 자기 작품으로 꾸밀 수 있을까? 나밖에 없을걸?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지. 나도 열심히 했지만, 제국이 네 덕분에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차현주가 진지한 얼굴로 황제국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표시했다.
“너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내가 더 고맙지. 나도 열심히 했지만, 현주 너랑 아트팀 도움이 없었으면 이만큼 올 수 없었을 거야.”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차현주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유난히 깨끗하고 통쾌하게 들렸다.
컨퍼런스 계획을 발표하고 뉴퀘스트는 더욱 바빠졌다. 뉴퀘스트 컨퍼런스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해외에까지 퍼져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컨퍼런스를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남은 몇 달간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대표님. 신작 얘기는 쏙 빠졌네요. 컨퍼런스에서 신작 공개하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장경일이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컨퍼런스 관련해서 이슈가 너무 많거든요. 게임 업계는 우리가 무슨 주제로 노하우를 얼마나 공개할지 관심이 쏠려 있고, 일반 게이머는 초대형 젤리 러쉬 인형이랑 <어둠 속으로> 데모에 관심이 쏠려 있구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나가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게임인데 제일 먼저 알려야 하지 않나요?”
“물론 그냥 묻어 두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일단 작전상 비공개니까요.”
“작전상 비공개요?”
장경일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황제국은 더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2주만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2주 후에는 전화기는 잠시 꺼놓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컨퍼런스 홍보를 시작하고 2주 후, 뉴퀘스트는 후속 보도자료를 냈다.
- 뉴퀘스트, 인기 만화가 장경일 전격 영입! 차기작 아트디렉터로 게임 아트 진두지휘.
- 일본 진출 노리던 장경일, 진로를 바꿔 게임 업계로. 뉴퀘스트와 손잡고 메가톤급 게임 개발한다!
- 만화와 게임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장경일의 게임 아트를 내세운 뉴퀘스트 차기작 연말 컨퍼런스에서 최초 발표!
이날 장경일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전화를 받는 중에도 전화가 왔다. 그의 휴대폰 배터리는 오전을 넘기지 못하고 다 닳아 버렸다.
그는 그냥 휴대폰 충전을 포기하고 황제국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누리웹에 들어가자 게시판은 이제 장경일과 뉴퀘스트 차기작 이야기로 뒤덮여 있었다. 장경일은 그제서야 함박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