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회 - 확장과 성장통
구름처럼 밀려드는 지원자들의 파도 속에 뉴퀘스트 HR 부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뉴퀘스트는 우선 젤리 러쉬팀을 채용하는 데 집중했다.
사무실 입구에 붙어 있는 작은 미팅룸에는 항상 면접을 보는 사람과 면접을 보려고 대기 중인 사람들로 하루종일 북적였다. 다른 게임 회사 경력자가 지원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어? 니가 여기 웬일이냐?”
“뭐야? 너도 뉴퀘스트 지원했어?”
“요즘 뉴퀘스트 면접실에 게임 업계 다 모인다더니······.”
“니는 <젤리 러쉬> 유치해서 별로라매?”
“야, 내가 언제? 그러는 넌 <영건 블러드> 밸런스 개똥이라며?”
사람과 시스템이 조화를 이뤄야지만 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황제국은 최종 면접에는 꼬박꼬박 참석했다. 빨리 인력을 늘려서 <젤리 러쉬> 콘텐츠를 추가하고, 젤로를 활용한 마케팅에 시동을 걸어야 하지만 황제국은 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급하다고 아무나 뽑으면 나중에 훨씬 더 골치가 아파집니다. 뽑을 때 최대한 신중하게 뽑아야 해요.”
기회와 위기는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황제국의 생각대로 새로운 오피스 홍보와 뉴퀘스트 임직원 인터뷰는 뉴퀘스트를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수많은 지원자들이 뉴퀘스트에 몰려 들었지만 그중에는 뉴퀘스트에 환상을 품고, 높은 연봉과 근무 환경에만 혹해서 지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걸러내야 했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인가요?”
전문성과 함께 황제국이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게임’을 향한 기본적인 애정과 이해도였다. 가장 쉬운 방법은 게임을 얼마나 했는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뭔지, 왜 좋아하는지 묻는 것이다. 보통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물으면 90% 이상은 무조건 <영건 블러드>나 <젤리 러쉬>라고 대답한다.
“뉴퀘스트 게임을 제외하면요?”
“어······.”
이때 고민하느라 답변이 늦어지는 경우는 크게 두 부류였다. 한쪽은 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고, 뉴퀘스트 게임조차 벼락치기 하듯 PC방에서 한두 시간 해보고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금만 깊게 질문하면 금방 밑천이 드러났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른 회사 게임을 언급하거나, 평소에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황제국은 더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다른 한쪽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부류였다. 장르 별로, 회사 별로, 플랫폼 별로 좋아하는 게임이 많아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게임을 무조건 많이 해봤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게임이라는 매체에 관한 애정,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과 분석하는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황제국은 이신우에게 강조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게임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입니다. 제품과 산업에 애정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채용할 수 없어요. 어떤 게임에 관한 견해가 다를 수는 있어요. 그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하지만 게임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건 큰 문제입니다.”
“곱하기가 안 되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단순히 게임을 팔면 끝이 아닙니다. 게임을 파는 우리도, 영건이든 젤리든 구매하는 유저도 행복해야 합니다. 이게 핵심이에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우리와는 맞지 않는 거죠.”
프로그래머를 뽑을 때는 이진수도 종종 함께 면접에 들어왔다. 때로는 일부러 엉터리 코드를 주고 즉석에서 코드 리뷰를 하기도 하고, 며칠 시간을 주고 코딩 문제를 내주기도 했다. 개발자들은 설령 면접에 통과하지 못해도 퀘스트 엔진을 만든 황제국과 이진수를 직접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겼다.
- 아직 부족한 제가 감히 뉴퀘스트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영광이었습니다. 실력을 키워서 다음에 꼭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누구에게든 불합격 통보를 하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유독 프로그래머 직군에서는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다시 도전하겠다는 회신이 많았다. 이신우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황제국과 이진수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뉴퀘스트는 최대한 꼼꼼하게 인재를 검증하며 인력을 늘려나갔다. 한 명, 두 명씩 회사에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스무 명이 조금 넘는 규모로 서로가 서로를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지내던 뉴퀘스트는 순식간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팀마다 새로운 사람이 대폭 늘었다.
차현주가 리드하는 아트팀은 원화 아티스트를 늘리고, 외주 모델러도 정직원으로 추가로 입사시켰다. 또한 배경을 전담할 디자이너도 뽑았다. 젤로 캐릭터와 패션 액세서리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젤리 러쉬>에서 아트 팀 채용은 최우선으로 진행되었다.
전유진이 담당하는 맵 개발 역시 두 명에서 다섯 명으로 늘었다. 남명호는 새로 입사한 사람들에게 맵 제작 시스템을 알려주었다. 새로 합류한 사람들은 시리얼 넘버처럼 되어 있는 맵 카테고리를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유진과 남명호에게는 익숙한 기호였지만 새로 입사한 이들에게는 암호와 같았다.
가장 많이 늘어난 쪽은 개발이었다. 이진수는 게임 엔진 본부에 시니어 개발자 두 명을 뽑았다. 경력 10년에 가까운 베테랑들이었지만 퀘스트 엔진의 우수함을 알고 기꺼이 이진수 밑에서 함께 개발하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젤리 러쉬팀도 황제국을 제외하고 기존에 세 명이던 개발 인력이 열 명으로 늘었다. 황제국은 갈수록 개발에 시간을 쏟기 어려워졌고, 콘텐츠 인력이 늘어난 만큼 개발 인력도 훨씬 많이 필요했다. 또한 <젤리 러쉬>뿐만 아니라 차기작까지 염두에 두고 우수한 인력들이 몰릴 때 미리 채용했다.
새로운 사람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갑자기 규모가 늘어나자 전에 없던 이슈도 생겼다. 누가 누군지 몰라 복도에서 마주쳐도 뻘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사소한 생활 문제에서부터, 문서와 기록을 중시하는 뉴퀘스트 형식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경력직도 있었고, 예전의 정요한처럼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뉴퀘스트 문화를 잘 모르고 왜 자기에게 일을 시키지 않냐고 이신우에게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민소영 역시 처음으로 PM으로서 리더의 역할에 고민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모두가 민소영을 PM으로 인정해 존중했고, 오히려 경험 없이 PM을 맡은 민소영을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로 새로 입사한 사람 중에는 민소영을 건너뛰고 바로 황제국과 얘기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황제국이 몇 번 얘기를 나누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민소영에게 확인해 보니 역시 PM인 민소영을 건너뛰고 있었다.
“내가 두 사람을 내 방으로 부를게. 거기서 소영 PM이 확실하게 얘기해야 해.”
“제가 직접이요?”
“그럼. 앞으로 계속 PM을 하려면 그래야지. 물론 내가 옆에 있을 테지만, 말은 소영 PM이 직접 해야 해.”
황제국은 그날 퇴근 무렵 두 사람을 방으로 불렀다. 민소영은 주먹을 단단히 쥐고 말했다.
“앞으로 <젤리 러쉬> 관련 개발 이슈에 관해서는 먼저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PM인 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때 디렉터와 더 깊이 있게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절차에 미흡했네요. 미안합니다.”
그는 황제국의 눈치를 슬쩍 한 번 보고는 민소영에게 사과하고 방을 나갔다. 황제국이 민소영에게 말했다.
“잘했어. 생각보다 단호하게 말했네.”
“저 지금 막 머리 밑에 땀나고 있어요. 심장도 막 뛰고. 제 목소리 떨리지 않았어요?”
“살짝 그러긴 했는데. 크게 티는 안 났어.”
“근데 지금도 선배님 눈치 보고 알았다고 하는 거 같던데요.”
“아마 그렇겠지. 계속 그러면 내가 다시 교통정리에 나서긴 할 텐데 소영 PM도 이제 자기 권위를 세우는 연습을 해야지.”
“권위요?”
“응, 권위. 말이 이상해?”
“어쩐지 저희랑 안 어울리는 단어인 거 같아서요.”
“우리가 자유로운 분위기에 알아서 일하는 문화는 맞지. 하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책임을 맡은 자리라면 권위는 꼭 필요해. 상대에게 강요하고 윽박지르라는 뜻이 아니야. 결정을 내릴 권한과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라는 뜻이지.”
“결정을 내릴 권한과 능력······.”
“우리는 열린 회사를 지향하고, 무슨 의견이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어. 이상한 소리 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죠.”
“하지만 의견을 내는 것과 책임을 지고 결정하는 건 전혀 달라. 말과 행동의 차이랄까?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중요한 결정은 어디까지나 매니저와 디렉터의 권한이야. 그걸 팀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식시켜야 해.”
민소영은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회사가 커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소영 PM도 차차 느끼게 될 거야. 어쩌면 이제부터가 PM으로서 진짜 시험대가 될지도 모르지.”
“앞으로 제 자리에 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 볼게요.”
갑자기 성장한 회사에서 새로 입사한 사람들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었다. 늘 익숙하게 해오던 일과 시스템도 사람이 늘어나면서 변화가 생기고, 기존 멤버들 역시 적응이 필요했다.
회사에는 발매 직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혼돈이 휘몰아쳤다. 착착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여기저기서 삐걱거렸고, 서로의 틈새를 메꾸느라 일은 사람이 늘기 전보다 더 느렸다.
황제국은 조직 관리에 신경 쓰며 성장통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회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한 번은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사람과 달라진 환경에 뉴퀘스트가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이, 뉴퀘스트를 지탱해 준 것은 역시 게임이었다. <젤리 러쉬> 회원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매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운동회 열기가 사그라들고 여름에 들어갈 무렵, 황제국은 <젤리 러쉬>에 ‘선물하기’ 기능을 추가했다.
친구로 등록된 ID에 젤리를 선물할 수도 있고, 특정 캐릭터나 액세서리를 선물할 수도 있었다. 선물과 함께 짧은 코멘트를 달 수 있었는데, 여학생들 사이에서 친구끼리 소소한 젤로 액세서리를 선물하면서 짧은 편지를 쓰는 게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손으로 쪽지나 편지를 쓰던 학생들이 손 편지 대신 <젤리 러쉬>에서 예쁜 액세서리와 함께 쪽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 특히 고등학생 사이에서 이 유행은 행운의 편지처럼 변했다. 친구에게 선물을 받고 48시간 안에 답례를 보내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능을 망치고 대학에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 선물하기 기능에는 어떠한 행운이나 저주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선물을 하는 분과 받는 분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뿐입니다. ‘48시간 안에 답례하지 않으면 수능을 망친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뉴퀘스트는 이러한 소문과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퀘스트넷에서 48시간 행운의 젤리에 관해 계속 문의하자 엄지원은 FAQ에 답변을 올렸다. 선물하기 기능은 여유 있는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많이 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액 선물이 가능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훨씬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어느 학생의 사연이 라디오를 타면서 선물하기 기능은 또 한 번 폭발적인 유행을 타게 됐다.
- 네, 오늘은 땡땡 고등학교 2학년 별명이 너구리인 학생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저에게는 중학생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알게 된 동네 남자아이가 하나 있어요. 편의상 A라고 부를게요. 같이 매점도 가고, 복도 청소하면 도와주기도 하던 착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다 제가 여고에 진학하게 되면서 자주 못 보게 되었어요. 어느 날 주말에 평소처럼 학원에 갔는데 그날따라 왠지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랑 땡땡이를 치고 떡볶이를 먹는데 친구가 <젤리 러쉬>를 하러 가자고 했어요. 이름은 들어봤지만 해본 적이 없어서 싫다 했는데 친구가 하도 졸라서 그냥 구경만 하겠다며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글쎄 PC방에 A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A도 자기 친구들이랑 <젤리 러쉬>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는데, A는 대충 인사하고 말더라구요. 못 보던 사이에 키가 훌쩍 컸던데, 데면데면하게 구는 A의 모습에 이상하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단 친구랑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 A가 화장실 가는 길이라며 슬쩍 오더니 제 ID를 물어보더라구요. 저는 안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옆에서 친구가 말해버렸어요. 다음 주말에 혹시나 해서 다시 PC방에서 <젤리 러쉬>에 접속해 보니 쪽지가 수십 통 들어와 있었습니다.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열어보았습니다. A가 그때는 친구들이랑 있고 당황해서 인사를 제대로 못 했다고 미안하다면서 저에게 ‘바나나 젤로’ 캐릭터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가 바나나 우유 좋아하는 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던 거 있죠! 제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그려지고 말았습니다. A가 보낸 쪽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저도 한참을 고민하며 답장을 했어요. A와 즐겁게 보냈던 중학교 시절도 떠오르고, 자꾸만 가슴이 설레는 제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습니다. 요즘 주말이면 꼭 PC방에서 가서 A와 함께 <젤리 러쉬>를 합니다. 이제는 남자친구인 A가 롤링 어택으로 저를 넘어뜨리고는 재밌다며 웃는 모습을 보면 정말 얄미워 죽겠어요. 그래도 저와 A를 이어준 <젤리 러쉬>에게 고맙다는 인사 꼭 전하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너구리와 친구 A의 사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자 학생들 사이에서 <젤리 러쉬>로 선물하면서 고백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누리웹에는 매일매일 고백 성공과 실패 사연이 줄을 이었다.
일부 게이머들은 신성한 퀘스트넷에서 연애가 웬 말이냐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퀘스트넷에서 새로운 연애가 시작하는 것은 세상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뉴퀘스트가 수면 아래에서 힘든 성장통을 겪는 사이, <젤리 러쉬>는 도리어 선물하기를 타고 온통 꽃바람이 불고 있었다. 황제국과 멤버들은 힘든 와중에도 게임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게이머들의 사랑은 언제나 게임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고, 지금 뉴퀘스트에 가장 필요한 힘이었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드디어 황제국이 기다리던 제안이 들어왔다.
“대표님, 젤리 회사에서 미팅 요청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