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회 - 불티
<영건 블러드> 확장판은 출시와 동시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김상혁은 PC방 사전 예매 분량만 이미 6만 장을 넘긴 만큼 10만 장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제 앞으로 새로 오픈하는 PC방은 무조건 본편과 확장판을 동시에 사야 합니다. 진짜 매출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동감입니다, 과장님. 사람들이 계속 즐기게 하려고 멀티 플레이 기능을 강조한 거니까요.”
“대표님 혜안에는 정말 놀랍습니다. 인터뷰를 보니까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셨던데 대체 이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니고.”
김상혁의 말을 황제국은 민망한 듯 웃어넘겼다. 사실은 진짜 미래에서 왔기에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인터넷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 멀티 플레이는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다. 친구가 친구를 끌어들이면서 유저는 계속 늘어난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 사람은 일단 인기 게임부터 해보기 마련이다.
<영건 블러드>의 싱글 플레이도 물론 재미있지만, 싱글 플레이 게임은 아무리 큰 사랑을 받아도 게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다. 그에 반해 인터넷 게임은 꾸준한 업데이트와 적절한 운영이 받쳐주면 사실상 게임의 생명도 무한하다는 것을 황제국은 이미 경험했다.
<하프 라이프>는 FPS 게임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장르를 새롭게 재창조한 걸작이다. 그렇지만 정작 게임의 인기는 <하프 라이프>의 모드 중 하나를 온라인 게임으로 발전시킨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더 높았다. 타임 지가 선정한 50대 비디오 게임에서도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게임의 모체인 <하프 라이프> 시리즈보다 순위가 더 높았다.
<스타크래프트>가 몇 년에 걸쳐 한국에서만 수백만 장이 넘게 팔린 비결 역시 여기에 있었다. <영건 블러드>의 인기도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만약 지금 SNS가 있었으면 곧바로 SNS에 콜렉터즈 에디션을 구매한 사람들의 인증샷과 확장판에 관한 소감으로 넘쳐났을 것이다.
황제국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게이머들의 진심 어린 찬사는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몇 년 후 소셜 미디어가 각광 받기 시작하면 황제국은 뉴퀘스트만의 게임 소셜 미디어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미리 전달받았던 게임 잡지들은 7월호에 앞다퉈 <영건 블러드> 확장판을 자세하게 리뷰했다. 그들은 싱글 플레이 스토리와 신규 캐릭터를 소개하고, 신규 캐릭터로 인해 앞으로 예상되는 전략 변화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예측했다.
게임 잡지들의 <영건 블러드> 확장판에 관한 평가는 이제 호평을 넘어 찬양 수준이었다.
- 확장판이 나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그만큼 본편의 퀄리티가 너무 뛰어났다. 과연 더 보여줄 게 남았을까? 싶었는데, 기자의 착각이었다. 뉴퀘스트는 아직도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게 더 많은 회사다. 한국 게임의 현재고, 미래다.
- 검은 황소가 등장했을 때 전율했고, 엔딩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게임을 단순한 오락물, 폭력물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꼭 해봐야 하는 게임이다.
- 확장판은 그래픽의 변화보다 움직임과 특수 효과에 더 신경을 쓴 티가 난다. 황제국 대표는 오직 검은 황소가 움직이는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싶어 영화 특수효과팀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이토록 퀄리티에 집착한 게임이 지금까지 있었나?
-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이번 확장판에서 놀랍게 진화한 것은 AI다. 본편에 비해 몰라보게 똑똑해졌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퀘스트넷으로 가서 AI 모드를 해보길 바란다. 아쉽게도 당신은 더이상 슈퍼맨이 아니다.
- 유철 캐릭터가 나왔을 때 눈을 의심했다. 저거 유희철인데? 에이 설마. 그런데 진짜 유희철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였다. 그는 OST에 무료로 참여하는 대신, 게임 속 캐릭터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철의 총소리는 어쩐지 음악 소리를 닮았다. 총소리가 4분의 3박자로 나온다. 진짜다. 기자가 메트로놈으로 계산해 봤다.
- 뉴퀘스트는 <영건 블러드>로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영건 블러드>가 대부분의 미국 게임보다 재미있고 심지어 뛰어나다. 그것도 훨씬!!!
<영건 블러드> 본편으로 한국 게임의 돌풍을 일으켰다면, 확장판은 왕관을 쓰는 느낌이었다. 확장판 발매로 게임판이 시끌시끌한 가운데, 영건 아레나 시즌 2 종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장판 발매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했다. 사람들이 확장판을 하느라 아레나의 접속률도 떨어졌다.
시즌 1에서 막판에 역전당했던 송진호는 시즌 2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아레나 1위를 차지하며,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했다. 그러나 확장판 이슈에 완전히 묻히는 바람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국은 홈페이지에 시즌 2 TOP 100 순위를 발표하고, 시즌 3부터 아레나는 확장판 서버에서만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된 만큼 당연한 조치였다.
아레나 공지 이후 본편의 퀘스트넷 접속률은 더 떨어졌다. 강호의 고수들은 모두 확장판으로 떠나갔다. 확장판 발매와 함께 이수련, 유철, 미국 갱스터 스미스, 프랑스 사기꾼 피에르 등 새로운 캐릭터의 이용률이 급증했다. 새로운 맵도 대거 공개됐다. 그중 인기 있는 맵은 검은 황소의 내부였다.
본편의 무기고 맵과 같이 기본적으로 길이 좁았고, 갈래 길은 더 많았다. 검은 황소 내부로 침투하는 미션이 없어 아쉽다는 오종석의 말에 유필승이 만든 맵이었다. 마치 잠수함 내부처럼 좁은 통로가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맵을 숙지하는 게 중요하지만, 연결되는 통로가 많은 만큼 우연성 또한 컸다. 게이머들은 그 스릴과 우연성을 좋아했다.
확장판 발매의 기쁨도 잠시, 황제국과 뉴퀘스트는 퀘스트넷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엄지원은 퀘스트넷에서 이루어지는 채팅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했고, 유필승과 박태권은 시간 단위로 사람들의 플레이 통계를 내서 사람들의 반응을 추적했다.
싱글 플레이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이어질 뿐, 본편과 확장판 플레이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퀘스트넷은 달랐다. 확장판 캐릭터가 추가된 만큼 캐릭터들의 파워 발란스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유필승과 오종석은 수 없는 테스트를 거쳐 파워 발란스를 조정했지만 어차피 완벽한 발란스란 없었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특정 캐릭터에 너무 사용자가 몰리지 않도록 업데이트해야 했다.
예상과 달리 신규 캐릭터 중 가장 인기를 끄는 캐릭터는 미국인 갱스터 스미스였다. 그는 낮에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밤에는 갱스터가 되는 인물답게 폼을 중시했다. 중절모를 쓰고, 황량한 만주에서도 유럽산 고급 정장만 고집하는 남자였다. 그는 롱코트 안에 원판형 탄창을 쓰는 소총을 숨기고 다녔다.
이수련은 총의 파괴력이 이록보다 더 올라간 대신, 이록보다 다루기가 더 힘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스치게 하기가 어려웠다.
“이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요. 이수련이 메인 캐릭터라서 일단 해보겠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캐릭터니까요.”
“그쵸. 대신 익숙해지기만 하면 이록보다 더 무섭죠. 이록만 하는 이록 매니아들 중에 얼마나 이수련으로 전향할지 궁금하네요.”
이수련은 외모가 예쁘다고 만만하게 보고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초보자를 배려해서 일부러 쉽게 만든 왕소현과는 차이가 컸다.
한편 유철은 기타를 닮은 총이라는 점 때문에 게이머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다. 애초에 개성이 워낙 강한 캐릭터였다. 정작 유희철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황제국은 발매 후 유희철과 통화하다가 유철 캐릭터 이야기가 나왔다.
“엉? 내 캐릭터가 호불호가 갈린다고? 당연한 거 아냐? 어떻게 모든 사람한테 사랑을 받아?”
“형님, 생각보다 쿨하시네요? 감히 누가 날 싫어해?! 이러실 줄 알았는데.”
“무슨! 내 친구가 유철 캐릭터 개구리다고 하면 이단옆차기를 날려줄 테지만, 그냥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런 거지. 뭘 어째? 대신 유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
“네, 유철 좋다고 유철만 하는 사람도 있어요. 특이해서 좋다면서.”
“그래, 그럼 된 거야. 제국아, 내가 대중의 사랑을 먼저 받아 본 선배로서 하는 말인데, 사람들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라. 좋은 말도 흘려듣고, 나쁜 말도 흘려들어. 그래야 오래 가.”
유희철은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조언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게임 하나 출시해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사랑과 피드백에 목마른 황제국에게는 아직 어려운 충고였다. 하지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야, 그리고 나 뉴욕에서 공연은 언제쯤 하는 거냐?”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국에서 운영 좀 안정화 되면 곧장 미국 지사 차려서 진출할 거예요. 유통망도 소프트펀드하고 다 얘기되어 있어요.”
“하~, 우리 제국이. 역시 빈틈이 없네. 그럼 난 너만 믿고 다음 앨범 준비하고 있을게!”
“네, 같이 미국을 뒤흔들러 가시죠, 형님.”
“당연히 그래야지! 크하하하하하!”
유희철이 만화 속 악당 캐릭터처럼 신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황제국은 유희철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확장판 발매 축하 전화를 받았다.
이광철 교수에게는 교수실로 찾아가 VIP를 위해 따로 준비한 콜렉터즈 에디션을 증정했다. 이광철은 커다란 케이스를 받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야~~, 우리 제국이 점점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네. 응?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 흐흐흐!”
“다 교수님이 잘 키워주신 덕분입니다.”
“아부도 여전하고, 응?”
이광철은 손수 차를 내주며 황제국과 담소를 나눴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가만 있어 봐. 그때가 언제야? 제국이가 여기 찾아와서 벤처 기업 창업하고 싶다고 했던 게 작년 여름 방학이었지?”
“네, 그랬었죠.”
“그럼 아직 1년도 안 됐네. 그때는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 안 받아주면 어쩌나 하면서 서류 준비하고 그랬었는데. 야~, 1년이 참 길면서도 짧아. 그치?”
이광철 교수가 추억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뉴퀘스트는 15억을 투자받고 <영건 블러드>와 확장판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한국 게임 회사의 대표 기업으로 떠올랐다.
“아 참, 그리고 보니 민소영이. 걔가 너네 인턴이라며?”
“네, 갑자기 찾아와서 채용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황제국은 민소영이 인턴으로 합류하게 된 이야기를 전했다. 이광철은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들었다.
“어쩐지 보통내기가 아니더니.”
“수업 시간에는 어때요?”
“뭘 어째? 그냥 백지장이지. 아는 게 없어요. 하나도. 근데 또 해맑기는 엄청 해맑아. 자꾸 엉뚱한 거 물어보고. 아주 내가 답답해 죽겠어.”
이광철 교수의 수업 중 게임 엔진 수업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 수업이었다. 민소영 같은 초심자가 듣기에는 벽이 높았다.
“근데 말야, 애가 아주 끈질긴 면이 있어. 내 생각에 얘는 아주 대성하거나, 아니면 과를 바꾸든, 재수를 하든 할거라고 봤거든. 내가 학생들한테 촉이 좋아요. 그래서 내가 잘 구슬려서 대학원으로 꼬셔와야겠다 했는데. 근데 얘가 뉴퀘스트로 들어갔다네? 아니, 왜 내가 좀 예뻐하려고만 하면 다 제국이 네가 데려가는 거냐? 엉?”
“저는 데려간 적 없습니다, 교수님. 소영이가 제 발로 찾아왔어요.”
이광철 교수가 항의 아닌 항의를 했지만 황제국은 적어도 민소영 케이스만큼은 당당했다. 그는 민소영이 동방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그녀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광철 교수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말을 듣자 그녀에게 좀 더 신경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그리고 교수님.”
“왜? 너가 또 뭔가 부탁할 게 있나 본데?”
“역시 촉이 여전하십니다.”
“무슨 부탁인데?”
“뉴퀘스트를 병역지정업체로 만들고 싶어서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렇지. 군대가 걸리는구나?”
이광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버팀 전용선과 박태권은 군필이었지만, 게임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황제국과 이진수는 모두 미필 상태였다. 황제국은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 이진수는 3학년에 휴학 중이라 대비가 필요했다.
“흠, 마침 소프트웨어 기업이랑 벤처기업을 병영지정업체로 등록할 수 있게 추진 중일 거야. 아마 매년 두 번 신청할 수 있나 그럴 텐데. 추천장도 필요할 테고. 너희는 실적이 워낙 탄탄해서 문제없을 거야. 내가 좀 알아보마.”
“고맙습니다, 교수님.”
“지금 뉴퀘스트에 직원이 몇 명이지?”
“인턴까지 총 10명입니다.”
“그사이 제법 늘었네. 대신에 내 대학원에서 뺏어간 애들 잘 챙겨줘라. 진수랑 소영이까지 포함해서.”
이광철이 믿는다는 듯 황제국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손길에서 황제국에게 거는 기대가 느껴졌다.
출시 이후 방학에 들어서면서 콘텐츠팀은 겨우 한숨 돌렸다. 반면 유필승과 엄지원은 더욱 바빠졌다. 확장판 출시와 함께 대학은 여름 방학에 들어갔고, 수많은 학생이 PC방으로 몰려들었다.
전용선은 접속자 현황을 계속 주시하며 퀘스트넷 확장 준비를 했다. 그가 설계한 분산형 서버 덕분에 서버 확충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김상혁 역시 PC방과 게임 소매점에 물량을 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는 가만히 식당에 앉아 밥 한 끼 먹을 시간도 없어서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에게 당분간 편안한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영건 블러드>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불이 붙었다. 15만 장을 준비했던 초도물량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김상혁은 마음이 바빠졌다. 본편과 확장판 모두 추가 제작을 서둘러야 했다.
김상혁은 <영건 블러드>의 성공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영건 블러드>의 성공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게임의 인기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출시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확장판은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이제는 김상혁조차 <영건 블러드>의 인기가 무서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