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회 - 리텐션
<영건 블러드>는 순조롭게 팔려나갔다. 출시 두 달 전부터 황제국이 게임을 널리 알려 기대작으로 만든 덕분이었다.
소프트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업계 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대학 축제를 기점으로 <영건 블러드>는 대학생들은 물론 게이머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PC 게이머에서 번들로 풀린 온라인 데모가 입소문에 기름을 부었다.
황제국은 게임 잡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늘 비슷한 인사를 들었다.
“<영건 블러드>는 한국 패키지 게임의 희망입니다.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손정인 투자 소식이 나오고 그 회사 뭐냐고, 아는 것 좀 없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이 우리나라 게임 회사에도 관심을 가져주니 뿌듯하더라구요.”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영건 블러드>가 살아야 한국 게임도 삽니다.”
이미 넥손에서 MMORPG <바람의 왕국>을, 엠지소프트에서 <레가시>를 서비스 중이긴 했지만 본격적인 인기를 타기 전이었다. 아직 부분 유료화라는 BM이 도입되기 전, 한국의 MMORPG는 매달 일정 비용을 받고 플레이하는 정액제 모델이었다.
<레가시>는 월 29,700원을 받았고, <바람의 왕국>은 초기에는 무려 5만원에 육박하는 요금을 받았다. 패키지 방식과 달리 게임을 하려면 무조건 서버에 접속해야 하고, 요금을 내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으니 초반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MMORPG의 특성상, FPS나 RTS처럼 한 시간에도 몇 게임 짧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사냥을 통해 레벨을 높여야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르라 유저들이 성장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PC방에서 즐기려고 해도 그만큼 다른 게임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MMORPG가 본격적인 대세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틈을 치고 들어와 한국 PC방의 왕좌를 차지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가 되었다. 게임 기자들은 <영건 블러드>가 <스타크래프트>의 대항마가 되길 바랐다. 그들은 <영건 블러드> 기사를 쓰며 일부러 <스타크래프트>와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황제국은 이런 대결 구도를 반겼다.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게임이 가장 인기 있는 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교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게이머들에게 게임의 존재를 알리고, 호기심이 들게 만든다.
물론 어디까지나 <영건 블러드>의 퀄리티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었는데 게임의 퀄리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초반에 잔뜩 기대를 모았던 열기가 급격히 식으면서 도리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출시 전, 황제국의 우려는 그것뿐이었다. 잔뜩 높여 놓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게임이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그의 지식, 경험, 창의력, 그리고 뉴퀘스트 팀원들 각자의 전문성과 열정을 몽땅 쏟아부어 만든 게임이었고, 완성도 또한 98년에 나온 어떤 게임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렇지만 ‘흥행’이란 아무도 모르는 도깨비 같은 존재다. 완성도는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었다.
런칭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출시 초반 게임도 순조롭게 팔려나갔다. 이미 PC방에서 사전 예약만으로 2만 5천 장 이상이 나갔고, 오공실업의 집계로는 출시 첫날에만 전국에서 1만 5천 장 이상이 팔렸다.
“심상치 않습니다, 대표님! 판매량은 계속 예의주시하겠습니다. 재고가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절대로 없도록 하겠습니다.”
오공실업이 처음에 제시했던 MG 5억원은 패키지 약 5만 장을 팔았을 때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런 속도면 출시 1주일 만에 5만 장을 넘을 기세였다. 오공실업은 신규 사업으로 나선 PC 게임 유통에서 첫 작품부터 대박의 기운이 느껴지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사전 판매량을 듣고 퀘스트넷 서버 용량을 늘렸던 전용선도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그는 기능별로 쪼개 놓은 서버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만약 서버 머신 중 하나라도 수용 능력의 60%를 넘으면 이후 5%를 넘을 때마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도록 프로그래밍해놨다.
2학기를 등록한 뉴퀘스트 멤버들은 평소처럼 수업에 들어갔다. 오종석은 9월 말부터 이미 수업을 많이 빠진 상태였다. 그는 뉴퀘스트 투자 기사와 S대 축제, 게임 출시 기사 등을 잔뜩 스크랩해서 교수님들을 찾아다녔다. 현업에서 기업 활동을 하고 있으니 출석이 모자라도 이해해 달라고 읍소하기 위해서였다.
전유진이 전공 수업에 들어가면 그녀를 보고 수군거리는 걸 느꼈다. 예전의 그녀라면 아마 그런 상황조차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과사람들과는 많이 소원해졌고, 그런 일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빈말로라도 게임 출시를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많이 씁쓸했다.
차현주는 점점 수업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림은 갤러리에 걸리는 게 아니라 모니터 안에 있었다. 방학 동안의 강행군과 게임 정식 출시를 거치면서 뉴퀘스트 멤버들의 내부에서도 무언가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2학기를 등록하지 않은 황제국과 이진수는 동방에서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둘은 같이 <영건 블러드>를 하기도 하고, 얼마 전 발매한 SF FPS의 명작 <하프라이프>를 플레이하며 비교하기도 했다. 황제국은 간간이 출시 후 판매량을 물어보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판매량을 들은 기자들은 황제국보다 더 흥분했다.
“제국아~.”
그리고 게임 출시 후, 전에 없던 방문자들이 생겼다. 황제국의 98학번 컴공 동기들이 동방을 깜짝 방문했다. 그들은 케이크를 하나 들고 왔다.
“게임 출시했다며? 축하한다.”
“어, 고마워. 생각도 못 했는데.”
“선배님도 축하드립니다!”
“어, 그래. 고, 고마워.”
그들은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황제국은 한 학기 만에 휴학했고, 1학기에도 과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아서 특별히 친한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98학번 동기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큰 투자를 받고, 게임을 성공적으로 출시한 황제국이 자랑스러웠고, 또 부러웠다.
“야, 제국아. 프로그래머 더 필요 없냐?”
“자리야 늘 있지. 앞으로 많이 필요할 거야. 우린 프로그래머한테 딴 거 안 봐. 진수 선배 서포트할 실력만 있으면 돼.”
“드드득.”
“야, 무슨 사람을 뽑기도 전에 만리장성부터 치냐?”
“그런가? 근데 이게 농담이면서 진담이야. 결심이 서면 언제든 연락해.”
컴공 친구들도 황제국이 뉴퀘스트라는 철옹성 같은 동방에 처박혀 무슨 게임을 만드는지 잘 몰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들은 온라인 데모를 뿌리면서 그제야 황제국과 뉴퀘스트의 진가를 알아봤다.
황제국의 말이 농담이며 진담이듯, 친구들의 질문도 역시 농담이면서 동시에 진담이었다. 황제국의 창업과 학교에서 밀어주기 시작하는 벤처 창업 열풍에 공대에는 창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거 들었어? 구현범 선배가 자기도 실험실 벤처 하겠다고 이광철 교수님 찾아간 거?”
“그랬어? 요즘 통 과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교수님이 창업 아이템이 뭐냐고 물었더니 뭔가 인터넷으로 거창한 거 할거 처럼 얘기 했나 봐. 근데 교수님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만들어서 가지고 와보라고 하셨데. 그냥 까인 거지.”
구현범은 황제국이 동아리를 만든 직후, 동아리에 발을 걸치고 싶어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묻지마 투자자도 아니고, 이광철 교수를 상대로 말발로 창업하려고 했다니 도무지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게임 판매량은 어때?”
“순조로워. 사전 예약 2만 5천 장에, 첫날에만 1만 5천 장 이상 나갔어.”
“와우! 그럼 합쳐서 4만 장이 넘네. 게임이 얼마였지?”
“3만 2천원이니까 매출이 12억 8천.”
“야, 약 5.82 페라리.”
“헐? 그걸 출시 하루 만에?”
“그게 다 우리 돈은 아니야. 유통사 마진이랑 소매점 마진도 있으니까.”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진짜 대단하다.”
“그래도 아직 몰라. 사람들 진짜 반응이 나와야 알 수 있어.”
“진짜 반응?”
“그래. 진짜 반응. 싱글 플레이 엔딩도 보고, 멀티 플레이도 다양하게 즐겨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계속 플레이하는가를 봐야지. 지금은 화제성 때문에 팔리는 거야. 이게 진짜 인기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지.”
“넌 무슨 남이 만든 게임처럼 말하냐?”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거야.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
“왜 그래야 하는데?”
“상황을 냉정하게 봐야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조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또?”
“안 그러면 기대와 흥분과 초조함 때문에 심장이 터질 거 같거든.”
“뭐야, 그게? 크크크큭!”
황제국의 대답에 친구들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친구들은 다음 수업이 있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동방을 나서는 그들의 마음은 제각각 달랐다. 누구는 그저 신기했고, 누구는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크게 자극을 받았다. 누구는 부러워하고, 누구는 존경심마저 느꼈다.
여러 사람들의 기대와 칭찬 속에서 황제국은 차츰 런칭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람들의 진짜 반응을 살폈다. 그가 체크하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들이 남기는 후기나, 전해 듣게 되는 소감이었다. 인터넷 시대라면 출시 후 몇 시간 만에 각종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마다 후기가 올라온다. 다소 성급한 후기들이긴 하지만 출시와 동시에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창구였다.
지금도 PC 통신 게시판에 <영건 블러드>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인터넷 시대에 비하면 반응을 모니터링할 창구가 적었다. 게다가 게오동 같은 곳은 황제국이 워낙 유명해서 이미 <영건 블러드>를 찬양하는 게시물이 줄을 서 있었다.
황제국은 이를 즐겁게 바라보면서도 게이머들도 출시의 흥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짜 반응이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또 하나는 퀘스트넷의 동접자와 게임 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퀘스트넷 게임 로그는 사람들이 말로 하지 않는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알려 주었다. 사람들이 한 번 접속하면 얼마나 플레이하는지, 플레이는 주로 어떤 모드로 하는지, 무슨 맵을 즐겨하는지, 처음부터 팀을 짜서 하는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과 섞여서 하는지 등등 결코 숨길 수 없는 모습이 로그 데이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람들의 후기가 게이머의 말이라면, 퀘스트넷 로그 데이터는 게이머의 몸짓이라 할 수 있었다. 말도 그렇지만, 몸짓은 의미 있는 데이터로 만들려면 적절한 편집과 해석이 필요하다.
황제국은 전용선과 퀘스트넷을 만들 때부터 필요한 데이터를 보기 쉽게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데이터 테이블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전용선이 정리하고 황제국이 확인하지만, 나중에는 게임 데이터만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필요해질 것이다.
출시 직후, 황제국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수치는 리텐션(retention, 한 번 이용한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는 비율)이었다. 3일, 5일, 일주일, 보름, 한 달 등 일정 시간을 기준으로 퀘스트넷에 접속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이 퀘스트넷으로 돌아오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황제국은 매일매일 전용선과 리텐션 수치를 확인했다. 출시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리텐션 수치가 88%를 넘었다. 그러나 사흘째인 월요일이 되자 리텐션 수치는 뚝 떨어졌다.
“이건 평일이라 그래. 암만 열성 게이머라고 해도 월요일에는 일상 생활해야지.”
“그렇죠. 이번 주말에 얼마나 회복되는지가 관건이에요.”
황제국과 전용선은 서로를 다독이며 결과를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출시 첫날 밤에 동접 1만을 넘은 이후, 주말 내내 새벽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평일이 되자 동접자는 계속 1만을 밑돌았다.
황제국은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른 일에 착수했다. 한국 게이머는 누구보다 인터넷 게임 콘텐츠 소비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했다. 무슨 게임이든 올라오면 하루 안에 엔딩을 보고야 마는 민족이다.
<영건 블러드> 역시 20개가 넘는 맵을 준비했지만 자주 플레이하는 맵은 서너 개로 편중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유입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 모드와 게임 맵을 개발해야 한다.
황제국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 일에 매달렸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마음을 졸이는 시간에 맵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이득이었다. 이진수는 오공실업 소비자센터로 들어오는 질문을 취합해 추가적인 버그가 없는지 살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게임 발매 후 첫 주말이 되었다. 황제국은 다시 용산을 둘러보았다. 많은 게임 상가들이 활발하게 <영건 블러드>를 팔고 있었고, <영건 블러드> 뮤직비디오가 가게마다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내가 너무 조급한가? 더 멀리 봐야 하는데.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많은데.’
사실상 첫 게임을 출시한 황제국은 생각보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려 애썼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랩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쩐지 공기가 달랐다. 전용선이 <영건 블러드> 메인 테마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물고 있었다. 비장한 멜로디인데, 어쩐지 달콤하게 들렸다.
황제국이 들어오자 전용선이 몸을 돌렸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제국아.”
“네?”
“우리 띄엄띄엄하지 말자.”
“네? 뭘요?”
“그냥 랙 한 줄 더 미리 사자.”
전용선이 모니터링 프로그램 대시보드를 손으로 가리켰다. 동접자가 2만 명을 뚫고, 리텐션율은 92.36%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