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회 - 프로리그 창설 준비(2)
“네? 저작···권료···라니요?”
기획 본부장은 마치 태어나서 ‘저작권료’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몸을 슬쩍 뒤로 뺐지만,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황제국의 예상대로였다. 협회 준비 위원회는 <영건 블러드> 리그를 열고 방송까지 할 계획을 세우면서 뉴퀘스트에 게임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말씀을 쭉 들어보니 협회 취지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특히 게임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 가슴 깊이 공감합니다.”
“네, 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저작권료 말씀이 없네요. 저희가 지난 1년 밤을 새워가며 개발한 <영건 블러드>로 게임 리그를 열고, 심지어 방송국과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상황에서 개발사에 지급할 저작권료 말씀이 전혀 없어서 이상합니다. 이래서야 앞서 말씀하신 ‘게임의 위상’이 바로 설 수 있을까요?”
“아···, 그, 저기···, 하지만······. 프로 스포츠를 봐도 축구나 농구에 저작권료를 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구기 종목과 e스포츠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축구를 발명했는지 알 수 있나요? 농구야 네이스미스가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룰과는 전혀 다르고, 또 네이스미스 박사님은 고인이 되신지 오래지요. 경우가 전혀 다릅니다.”
“아······.”
본부장은 황제국의 명백한 논리 앞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목을 긁적이고, 턱을 매만지고, 무릎을 쓰다듬으며 두뇌를 풀가동해 대응할 말을 찾았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 제기라 당황했다. 황제국이 말했다.
“영화만 해도 개인이 비디오테이프로 보는 건 상관없지만 공공장소에서 트는 건 엄연히 저작권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뉴퀘스트는 <영건 블러드>의 스토리, 캐릭터, 무기, 음악, 총소리 등에 관해 다양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서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고 관중들이 대회를 즐기죠. 저희가 개발한 게임 없이는 게이머들의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네, 네에.”
“방송을 통해 송출되는 게이머들의 플레이 영상은 저희가 소유한 저작권을 활용한 2차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에 따른 저작권료가 발생합니다. 방송 준비를 하시면서 이미 법률 검토를 거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그, 그렇지만 저희가 게임 리그를 열면 <영건 블러드>도 엄청난 홍보가 될 텐데요?”
“물론 프로리그가 열리고 실제로 방송이 나간다면 <영건 블러드>가 큰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간접적 효과로 얻는 홍보 효과와 직접적인 저작권 침해는 전혀 다른 사항입니다. 저희가 프로리그로 인해 아무리 큰 홍보 효과를 얻는다고 해도 적법한 저작권 계약과 저작권료 지급이 없다면 저작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저희 협회에 회원사로 가입할 의향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저작권료 문제를 확인하려는데 본부장이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황제국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말했다.
“본부장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뉴퀘스트의 대표 자격으로 게임의 저작권에 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건 저희가 협회에 회원사로 가입하느냐 마느냐, 홍보로 이익을 얻느냐 마느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그럼 뭘 원하시는 겁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는 협회 창설을 환영하고, <영건 블러드>의 프로 리그 개설과 활성화를 적극 지지합니다. 다만 <영건 블러드> 프로 리그가 생기고 방송으로 나간다면, 그에 따른 응당한 저작권 사용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저희를 지지한다면서 저작권료 운운하시는 건,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닙니까?”
본부장은 이제 반쯤 화를 내며 말했다. 황제국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저작권에 관한 개념이 희박하던 때라고는 하지만, 개발사 대표의 적법한 요구에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영건 블러드>와 <스타크래프트>가 엄청나게 팔리며 PC 게임 패키지 시장을 이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게임 불법 복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터넷 시대가 된 이후 게임 불법 복제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예전에는 주변 친구에게 게임을 빌려 복사하거나, 컴퓨터 가게에 가서 디스켓 당 ‘돈을 내고’ 게임을 복사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누군가 게임을 인터넷에 올리면 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다운로드했다. 게임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정작 게임 개발사는 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게임 회사가 자기의 저작권을 지키기가 정말 어려운 시대였다. 황제국은 프로 리그 개설과 e스포츠 게임 문화 발전을 위해, 그리고 게임 저작권 인식 개선을 위해 상징적인 액수만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기획 본부장은 계약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있었다.
“계속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본부장님. 저희가 e스포츠를 지지하는 입장과 저작권료가 발생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애초에 이건 저희 입장과는 상관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법리 검토를 받아보실 충분한 시간을 더 드릴까요?”
황제국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법적인 검토를 한다고 해도 <영건 블러드>를 방송에서 이용하도록 허가할 권리는 뉴퀘스트에게 있었다.
본부장 역시 황제국이 저작권을 언급하는 순간 이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보려 했지만 황제국은 전혀 말려들지 않았다.
‘그럼 차라리 영건 쪽은 빼버리고, 스타만 가지고 협회를 열까?’
순간 본부장 머리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황제국은 본부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극단적으로 협회가 이미 모인 <영건 블러드> 팀을 빼버리고 프로 리그를 열 수도 있었다. 영건 팀의 반발이 있겠지만, 뉴퀘스트가 협조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핑계를 댈 것이다.
황제국은 그런 본부장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본부장은 황제국의 웃음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미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만 하세요. 그럼 우리가 <영건 블러드> 팀을 따로 모아서, 별도의 협회를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영건 블러드 프로 리그를 만들면 그만입니다.’
뉴퀘스트와 오공실업이 직접 게이머를 설득하고, 협회를 만들고, 방송사와 협의해 영건 블러드 프로 리그를 만들자면 일과 비용이 몇 배로 늘어난다. 하지만 못할 일도 아니었다. 다만 이제 시작 단계에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쪼개지면 e스포츠가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기우뚱거릴 위험은 있었다.
그래도 황제국은 여기서 저작권 문제를 적당히 뭉개고 갈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많은 게임사가 저작권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도 거론하지 않고 넘어갔다. 방송을 통한 게임 홍보 효과를 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게임사도, 협회도 덩치가 커지고, 방송 중계권료 등 나눠 먹을 파이가 커진 후에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면 여러 문제가 얽히면서 일이 훨씬 더 커지고 복잡해진다.
애초에 시작할 때 깨끗하게 못을 박고 깔끔하게 진행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여기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미적거리다간 나중에 법적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컸다.
한참 고민하던 본부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 만약 저희가 뉴퀘스트와 저작권 협약을 한다면 말입니다.”
“네, 본부장님.”
“어디까지나 만약입니다만, 어느 정도의 저작권료가 발생할까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방송국이 어디인가, 시청률과 시청자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협회 및 방송사와의 관계는 어떤가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주 많습니다만.”
황제국이 말을 한 번 끊었다.
“저희는 e스포츠에 아주 긍정적입니다. 또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협회와 프로 리그를 생각했을 때······.”
“생각했을 때?”
본부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황제국의 입만 바라보았다.
“우선 초반 2~3년 정도는 프로 리그와 게이머들을 지원한다는 생각으로 상징적인 저작권료만 받겠습니다.”
“상징적인 액수라면······?”
“만원입니다.”
“네? 만원이요? 큰 거 한 장이 아니라 세종대왕 한 장이요?”
본부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김상혁도 옆에서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습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저희도 홍보대행사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기사를 내고 홍보하겠습니다.”
“아, 네! 네! 좋습니다. 당장 계약할까요?”
본부장은 그제야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그는 황제국이 많은 돈을 요구할까 봐 겁을 잔뜩 먹었다가 겨우 만원을 부르자 얼른 태도를 바꿨다.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게 당장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줄 태세였다.
얼굴에 생각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본부장을 보며 황제국이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다만, 조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네? 어떤······?”
“협회가 정식으로 발족하면 협회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위해 이사회를 구성하시겠지요?”
“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아직 조직도가 완성된 건 아니지만 다들 바쁘신데 모든 이슈에 회원사 여러분을 불러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협회와 프로 리그를 위해 저작권료를 양보하는 만큼, 저는 앞으로 구성될 이사회에 뉴퀘스트와 오공실업 각각 하나씩 총 두 자리를 요구합니다.”
“네? 이사회에 두 자리를?”
본부장은 의자에서 몸을 들썩거렸다. 저작권료 얘기가 나왔을 때보다 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저, 그······. 하지만, 이사회 자리란 것은. 일단 아직 협회가 정식으로 생긴 것도 아닌 상황이라······.”
“아까는 분명 준비를 거의 마쳤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방송국과 구체적인 얘기까지 오간 상황이면 그리 먼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본부장의 미간과 볼이 따로따로 일그러졌다. 황제국은 다시 한번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정당한 권리인 저작권료까지 대폭 낮추면서 양보했습니다. 그런 저희가 협회 중요 안건에 발언할 권리조차 없다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본부장님?”
“네,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제가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드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도 법리 검토도 해보고, 이것저것 논의하고 준비할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의사는 충분히 전달한 것 같으니 오늘은 이만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미팅 즐거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제국과 김상혁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김상혁이 황제국에게 물었다
“정말 시원합니다, 대표님. 그런데 왜 저작권료를 단돈 만원에 내주십니까?”
“e스포츠는 아직 모두에게 낯선 경기입니다. 당장 방송을 한다고 해도 자리 잡고, 리그로 수익을 내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릴 겁니다. 어차피 적자가 뻔한 사업인데 지금은 만원으로 명분만 얻어도 충분합니다.”
“아!”
“그리고 과장님도 보셨지만 벌써 모든 판을 스타 중심으로 짜고 있습니다. 갈수록 더 심해지겠죠. <영건 블러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선수와 팀이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으려면요.”
“저도 그동안 영업에만 신경 쓰느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대표님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대신 앞으로 그만큼 더 협회 일에 힘을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확실하게 챙기겠습니다!”
김상혁이 굳게 다짐하며 말했다. 두 사람이 떠나자 본부장은 기운이 쪽 빠져서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어린 노무쉐끼가. 뭐가 법이 어쩌고, 저작권이 어쩌고 떠들어?! 겨우 게임 하나 만들었다고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부장은 담배를 입에 꽂아놓고 불을 붙였다. 짙은 담배 연기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분명 황제국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 것뿐인데, 그의 눈에는 황제국이 날강도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황제국 앞에서는 한마디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그 사실이 더 열이 받았다.
그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변호사를 수소문해 저작권료에 관해 상담했다. 어디서든 대답은 한결같았다.
“게임사와 별도 협약 없이 게임 대회를 열어 방송을 송출하신다구요? 당연히 저작권 위반입니다. 상대방이 얼마를 요구하던가요?”
“만원을······.”
“네? 근데 왜 여기 계십니까? 상담 비용이 훨씬 비싼데요? 허허허.”
어디에서도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기획 본부장은 다양한 방법을 검토했지만 황제국이 저작권료 1만원을 제시하는 바람에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황제국은 e스포츠를 위해 적극 협조한 대인배 이미지만 더해질 게 뻔했다.
결국 준비 위원회는 황제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황제국은 윤 변호사를 통해 협회와 프로 게임 리그 방송송출권 등에 관한 저작권 사용 계약을 맺기로 했다.
“본부장님,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저희가 만원에 저작권 계약을 해드렸으니 아마 블리자드 측에서도 저작권료로 큰돈을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앞으로도 한국 게임 문화 발전과 성숙을 위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대표님.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본부장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황제국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황제국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영건 블러드>가 대중 앞에 나서게 될 프로 리그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