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회 - 부분 유료화 개시
<젤리 러쉬> OBT를 시행하고 한 달이 지났다. <젤리 러쉬> 가입자는 처음 목표였던 100만 명을 훌쩍 넘어 138만명을 넘어섰다. 동접자는 평일에도 항상 7~8만 이상을 유지하고, 주말이면 20만을 넘을 때도 있었다.
OBT를 준비할 때 서버 용량을 크게 늘려 놓아 서버는 괜찮았다. 문제는 인터넷 회선 비용이었다.
“원래는 정식 런칭까지 100만이 목표였는데, 이대로면 200만도 가능하겠네요.”
“그러게요. 제가 <젤리 러쉬>를 너무 과소평가했나 봅니다. 벌써 이 정도라니 게임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네요 정말.”
황제국은 <젤리 러쉬> 인기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OBT 중인 <젤리 러쉬>는 현금을 1원도 벌지 못하고 있었다. PC방 역시 프로모션 기간이라 아직 수익이 없었다.
지금까지 <젤리 러쉬>를 개발하며 들어간 개발 비용, 픽사 CF 애니메이션 마케팅 비용, OBT 오픈 이후 매일매일 발생하는 인터넷 회선 비용 등 지금까지 투입한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지금 생각하니 미국에 <영건 블러드> 런칭하면서 야후 배너 광고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게 우습게 느껴지네요, 하워드.”
“그게 1년 6개월 정도 지났나요? 저야 그때 없어서 얘기만 들었지만 당시 회사 규모를 생각하면 과감한 투자였죠. 미국에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맞아요. 보장은 없었죠.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죠? 제가 대표님 나이 때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다가 방학 되면 인턴 자리 구하려고 뛰어다니는 정도였는데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기회가 눈앞에 왔으니까요.”
“그게 전분가요? 너무 단순한 이유 아닙니까?”
“글쎄요. 제 생각에는요, 하워드. 크고 중요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문제의 본질에만 집중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언제 다시 미국에 도전할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었어요. 그렇다면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서 쏟아붓는 수밖에요.”
“비슷한 사례를 학교에서 수도 없이 배웠고, 현장에서도 많이 봤죠. 그런데 막상 실제로 하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모든 걸 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그렇겠죠. 하지만 하워드도 모두가 선망하는 투자은행을 박차고 규모로 치면 개미보다 작은 뉴퀘스트로 왔잖아요? 전 똑같은 거라고 봐요.”
“그거야 저는 그렇게까지 과감하게는 못 하니까 저보다 더 과감한 사람에게 붙은 거죠. 대표님 같은.”
“그럼 앞으로도 딴생각하지 말고 착 붙어 있으세요. <젤리 러쉬>가 성공하면 <영건 블러드>하고는 차원이 다른 성과를 낼 테니까요.”
황제국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젤리 러쉬>의 모든 지표는 황제국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하워드는 젤로 패션 아이템의 가격 체계를 완성하고, 오종석과 함께 패션 아이템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가격을 매기고 재차 확인했다.
서버 본부는 부분 유료화를 위해 OBT 로그 데이터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했다. 모든 아이템이 열려 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디자인과, 어느 디자인 카테고리를 가장 많이 선택하는지는 중요한 데이터였다.
사람들의 선호도를 분석해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캐릭터 디자인을 더 많이 선보이는 것이 앞으로의 매출과 게임의 성공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박태권은 OBT 오픈 후 한 달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거 진짜 며칠 밤을 새서 준비한 거야. DB 뒤지고, 데이터 테이블 짜 맞추느라 엄청 고생했어.”
“네, 수고하셨어요. 잘 살펴볼게요. 선배님 덕분에 우리 게임도 크게 성공할 겁니다.”
황제국은 생색내는 박태권을 다독여주고는 보고서를 살폈다. 대부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음······, 역시 캐릭터 디자인 선호도에서는 동물이랑 과일이 압도적이네. 둘이 합쳐서 73%가 넘어.”
“그치? 나도 디자인 하다 보면 역시 그쪽이 제일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일단 친숙하고, 또 과일류는 이게 과일 젤리처럼 보여서 맛있어 보이기도 해서 더 좋고.”
“맞아. 그렇기는 한데 사실 이 데이터에는 함정이 있어.”
“함정? 무슨 함정?”
“우리가 준비한 캐릭터 디자인 역시 동물과 과일이 제일 많다는 거. 그리고 락커룸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위치에 있다는 거.”
“어, 하긴. 그런 점도 무시 못 하지. 그게 제일 귀여워 보여서 밀어줬으니까.”
“항상 데이터를 볼 때는 전제를 잘 살펴야지. 잘못하면 해석할 때 오류가 생기니까. 앞으로 2주 정도는 락커룸에 패션 아이템 노출 위치를 바꿔보자.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기는지 살펴보고, 여전히 동물이랑 과일이 높으면 앞으로도 주력은 그쪽으로 밀고.”
“알았어. 나도 좀 더 카테고리를 늘릴 수 있도록 더 다양하게 연구해 볼게. 이제 시간도 많으니까.”
차현주는 새 학기가 되자마자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학업에 신경 쓰지 않고 <젤리 러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젤리 러쉬팀은 정식 런칭에 추가할 콘텐츠를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유진이 졸업하고, 차현주가 자퇴하면서 이제 학기로 인한 공백은 크게 줄었다. 덕분에 젤리 러쉬팀은 4월 말로 예정된 정식 런칭을 향해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OBT 데이터는 디자인 외에 맵 설계에도 이용되었다. 전유진과 남명호는 OBT에 공개된 55개의 맵에서 비정상적인 로그 데이터를 관찰했다. 게이머들이 제작 의도대로 장애물에 걸려 진행이 느려지거나, 게임이 난장판이 되는 구간도 있었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게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는 구간이 있었다.
맵 디자인을 다시 살펴보면 유저들이 길을 헷갈려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장애물을 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유저들이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거나, 똑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걸려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아, 여기서 사람들이 걸릴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그리고 친절하게 오른쪽으로 가라고 화살표도 만들어 줬는데 왜 자꾸 왼쪽으로 가는 거죠? 거긴 낭떠러진데?”
“미처 못 봤을 수도 있고, 왼쪽에는 뭐가 있나 궁금했을 수도 있죠. 사람들이 너무 쉽게 걸려드는 함정은 좀 수정하는 게 좋겠어요. 최대한 많은 젤로가 끝까지 완주하게 만드는 게 이 게임의 장점이니까요.”
차현주와 전유진은 <젤리 러쉬>를 준비하면서 패키지 게임과 인터넷 게임의 차이점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패키지 게임인 <영건 블러드>는 개발 중에는 미친 듯이 바빴지만 일단 출시하고 나면 콘텐츠 팀에서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반면 <젤리 러쉬>는 런칭 과정만 해도 삼단 로켓처럼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고, 단계마다 할 일이 더 늘어났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수정하고 새로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인터넷 게임 개발은 계속 길 위에 있는 거 같아. 끝이란 게 없구나.”
“맞아요. 처음 소냐에서 지금 <젤리 러쉬>를 생각해 보세요.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죠? 아마 1년, 2년 후 <젤리 러쉬>는 지금하고 또 다를 거예요. 우린 항상 그 과정 어딘가에 있는 거죠.”
뉴퀘스트가 <젤리 러쉬> 정식 출시를 위해 BM부터 결제 시스템, 콘텐츠까지 전 분야에 걸쳐 게임을 손보고 있을 때, 게임 업계는 과연 <젤리 러쉬>가 부분 유료화에 성공할 것인가에 관심이 쏟아졌다.
“그게 될까?”
“글쎄. 분명 돈을 쓰는 사람은 있겠지. 근데 얼마나 되겠어? 이 프로? 삼 프로? 정말 많아야 오 프로 정도 될까?”
“지금 가입자가 150만이라니까 5프로하면 7만 5천 명. 그 사람들이 전부 한 달에 5천 원씩 쓴다고 가정하면 대충 3억 7천쯤 나오겠네.”
“그냥 4억이라고 쳐도 일 년에 48억.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거기에 PC방 매출도 있을 테고.”
“아니지. 영건이 때랑은 달라. 회선 비용이 몇 배로 든다고. 게다가 지금 영건이 인터넷 회선 비용도 계속 나가고 있는데, 여기에 젤리까지 더해지면 뉴퀘 지금 고정비 장난 아닐 걸?”
“그럴라나?”
“게다가 야, 봐라. 정액제 <레가시>가 작년 매출만 대충 560억 정도야. 48억은 회원의 5%가 매달 5천원씩 꼬박꼬박 써준다는 가정하에 나온 계산이고. 정액제가 회원 수 늘리기는 좀 빡세도, 한 번 고객 만들면 꾸준하다고. 매출 예측도 훨씬 수월하고.”
“하긴 그건 그래. 부분 유료화? 그건 아마 잘 팔리는 디자인 나오는 달이랑 아닌 달이랑 매출 차이 꽤 날 텐데. 그렇게 매출 출렁거리면 회사 운영하기는 더 힘들어질 테고.”
“그러니까. 난 아무래도 황제국이 이번엔 실수한 거라고 본다. 영건이가 뭔가 다른 이슈로 한 번 더 터지지 않으면 뉴퀘도 앞으로 위험해질걸? 아마 올해가 고비일 거다.”
“지금까지 너무 잘나가긴 했지. 잘 버틸 수 있을라나? 그래도 뉴퀘 덕분에 사람들이 게임에 꽤 관심 가져주는데.”
“가입자 모은다고 픽사에서 애니메이션 할 때 내가 알아봤지. 마케팅에 돈을 너무 썼어. 부분 유료화로 얼마나 회수하겠냐? 반이나 하려나?”
“너 그 광고 나왔을 때는 엄청나다고 좋아했잖아?”
“그거야 그냥 광고가 멋지니까 한 소리고. 경영 측면에서 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이거야. 사람들이 하도 띄워주니까 폼나는 걸로 계속 이슈 만들고 싶어서 한 거 같은데 솔직히 나한테 그 돈 줬으면 영건이보다 좋은 게임 최소 2개는 더 만들 수 있을걸?”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모였다 하면 <젤리 러쉬>가 과연 정식 런칭 후 부분 유료화까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타 게임사 임직원들도, 게임 유통사도, PC방도, 게임 기자들도, 비디오 게임 산업에 관심이 많은 게이머들도 모두 뉴퀘스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황제국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뉴퀘스트가 게임 업계에서 매출과 사이즈로 1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는 단연 선두였다. 그만큼 뉴퀘스트를 주목하는 눈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는 황제국과 뉴퀘스트가 잘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황제국이 언제 실수하고 무너지는지 기다리는 시기와 질투의 눈빛도 엄연히 존재했다.
작년 CES와 E3로 급격하게 유명해진 이후로 황제국은 언제나 언행을 조심했다.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고,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저 어린 녀석이 잘나간다는 이유로 시기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황제국은 그런 시선에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 역시 이전 인생에서 게임 프로젝트마다 좌절되었을 때, 성공하는 게임을 보면 괜히 화가 나곤 했었다.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황제국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젤리 러쉬>를 재밌게 즐기고 사랑해주는 게이머들을 생각하고, 게임을 더 재밌게 만드는 편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4월 20일 금요일, <젤리 러쉬>가 약 두 달간의 OBT를 끝내고 정식 런칭을 하는 날이었다.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 동안은 런칭 준비로 잠시 서비스가 정지되었다. 이틀 동안 서버 본부는 <젤리 러쉬> 퀘스트넷을 리셋하고, 모든 것을 초기 상태로 돌려놓았다.
OBT 기간 동안 <젤리 러쉬>에 가입한 회원은 총 186만 명. 그중 한 번이라도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은 160만 명이었고, 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접속한 사람도 80만 명을 넘었다.
“이제부터 진짜네요.”
뉴퀘스트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금까지 오직 이날만을 위해 달려왔고, 부분 유료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도 끝냈다.
하워드는 <젤리 러쉬> 정식 런칭 이벤트로 2주 동안 1,000원을 결제할 때마다 젤리를 하나씩 추가로 증정하기로 했다. 서버가 열리는 시각은 오전 10시 정각. 뉴퀘스트 멤버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 함께 랩실에 모여있었다.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OBT와 같은 흥분은 없었다. 누구도 <젤리 러쉬>에 사람들이 몰릴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돈을 내고 게임 속 화폐 ‘젤리’를 구매하는가였다.
“<젤리 러쉬> 오픈합니다.”
오전 10시 정각, 황제국이 담담한 목소리로 엔터키를 눌러 <젤리 러쉬>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멤버들은 모두 고깔모자를 쓰고 준비한 폭죽을 터뜨리며 <젤리 러쉬>의 첫 공식 생일을 축하했다.
“하워드, 그럼 개시해 주세요.”
“네? 제가 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하워드가 해야 더 의미가 있어요.”
황제국의 손짓에 하워드는 컴퓨터 앞에 앉아 본인 아이디로 퀘스트넷에 접속했다. 동접자를 표시하는 모니터링 모니터 옆에는 또 다른 모니터링 모니터가 있었다. 바로 유료 결제액을 표시하는 모니터였다.
황제국은 첫 결제 기회를 하워드에게 넘겼다. 고사는 치르지 않았지만, 매출이 잘 나오길 기원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하워드는 어떤 캐릭터를 살지 이미 정해 두었다.
“저는 황금 파라오를 사겠습니다. 그럼 만원 결제하겠습니다.”
하워드는 그답지 않게 살짝 긴장했다. 그는 속으로 웃었다. 고작 만원을 쓰면서 이렇게 긴장해보긴 처음이었다.
그는 락커룸에서 ‘젤리 구매하기’로 들어가 만원을 선택하고 카드 결제를 눌렀다. 그리고 개인 카드 정보를 입력했다. 그가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띵-!
결제 모니터링 시스템이 반응했다. 그러자 하워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 아직 클릭 안 했는데? 벌써 결제됐어요? 시스템 오륜가?”
“아닌데요? 결제 금액이 3천원이에요. 누가 본부장님보다 먼저 결제했나 봐요.”
“응?”
띵-!
띵-!
띵-!
띠딩!
띠디딩!
띠디디디디딩!
하워드가 황당해 하는 틈에 젤리 구매량 그래프가 우후죽순처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워드도 더 늦기 전에 얼른 만원을 결제했다. 첫 결제로 정식 오픈 첫 개시를 하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하워드는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젤리 러쉬> 정식 오픈 첫날, 젤리를 구매하려고 1,000원 이상 결제한 사람은 모두 25만 명을 넘었다. <젤리 러쉬> 첫날 매출액은 10억 2,783만 7천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