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회 - 젤리 모드
<어둠 속으로>는 파죽지세로 PC 게임 시장을 점령해 나갔다.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며 8월 한 달 동안 한국, 미국, 유럽에서 100만 장을 추가해 순식간에 15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디지털 다운로드 판매까지 합쳐 <어둠 속으로>의 누적 판매액은 불과 5주 만에 700억 원을 돌파했다.
<어둠 속으로>가 돌풍을 일으키자 전 세계 게임 유통사가 뉴퀘스트 앞에 줄을 섰다. 일본과 중국에서 <젤리 러쉬>를 운영하는 소프트펀드와 만센트는 자기들이 <어둠 속으로>도 함께 유통하겠다고 나섰다.
아직 뉴퀘스트가 진출하지 않은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를 비롯한 중남미의 게임 유통사들도 서로 자기들이 <어둠 속으로>를 판매하겠다고 미팅을 요청했다. 글로벌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뉴퀘스트는 문을 두드리는 유통사마다 조건을 비교해보고 입맛에 맞게 고르기만 하면 되었다.
황제국이 유통사에 내건 첫 번째 조건은 뉴퀘스트 런처 설치와 다운로드 판매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둠 속으로>를 통해서 뉴퀘스트 런처를 세계 곳곳에 뿌리내릴 생각이었다. 황제국은 전용선과 함께 퀘스트넷 서버를 확충할 지역을 먼저 선정하고 유통사와 협의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뉴퀘스트 글로벌 게임 전선의 범위를 넓혔다.
황제국은 지금 급한 것이 없었다. <어둠 속으로>의 성공은 그에게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무작정 빨리 게임 판매 지역을 넓히는 것보다 뉴퀘스트의 인프라를 세계 곳곳에 차근차근 탄탄하게 확장하는 게 우선이었다.
판매 시장 확대 외에도 <어둠 속으로>는 새로운 이슈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미국 추수감사절에 맞춰 11월에는 PS2/엑스박스용 <어둠 속으로>가 출시 대기 중이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2년 2월 22일 플레이스테이션2가 공식 발매했다. 2002년에 한국에서 30만 대가 팔린 PS2는 2003년까지 한국에 약 50만 대가 보급될 전망이었다. 소니는 한국에서 뉴퀘스트의 명성과 게임의 재미, 완성도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에서만 PS2용 <어둠 속으로>가 최소 20만 장 이상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PS2/엑스박스는 비록 DLC 판매는 어려웠지만 새로운 게임 팬들과 만날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네이트와 올슨은 콘솔판 마지막 퀄리티 검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황제국은 콘솔 외에도 <어둠 속으로> 관련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올랜도를 통해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몇 명과 연락을 취했다. <어둠 속으로> 영화화를 위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게임이 엄청나게 팔리고는 있지만 도도한 헐리우드 제작사와 얘기를 쉽게 진행하려면 일단 시나리오 초고 정도는 준비해두는 게 좋겠죠.”
“저는 이게 잘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보스. <파이널 판타지>가 남긴 상처가 아직 크게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2001년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 <파이널 판타지>가 3D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서 개봉했다. 제작비만 1,700억 이상 들어간 데다 피부 주름까지 생생한 CG 디테일로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고 그로 인해 영화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게임 개발사까지 파산 위기에 처할 정도였다.
“분명 영화사들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는 영화가 재미없어서 실패한 거지, 결코 게임을 영화화했기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 홍보와 마케팅에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죠.”
“그건 분명 그렇지만 헐리우드가 어떤 면에서는 아주 꽉 막힌 곳이라서요.”
“저는 <어둠 속으로>가 <던전 속으로> 였던 때, 처음 컨셉을 봤을 때부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이야기가 직선적이면서 힘이 있고, 주제도 깊이가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게임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아, 이 장면은 영화로 만들면 아주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요.”
“저는 영화 제작사와 공동 투자 형식으로 갈 생각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어요. 게임의 컨셉과 영화 고유의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 줄 감독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음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구요.”
“미술 감독도 그렇죠.”
올랜도가 황제국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 황제국도 웃으며 말했다.
“그야 당연한 일을요. 다만 일정이 문제죠. 확장판과 2편 제작 일정이 또 있으니까요.”
“일정이야 제가 어떻게든 맞추겠습니다. 세상에 저보다 <어둠 속으로> 영화의 미술 감독을 더 잘 해낼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런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습니다.”
올랜도가 진지한 얼굴로 굳은 의지를 보이며 누차 강조했다. 황제국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보다 더 잘 알겠지만 영화 제작이라는 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거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감독이랑 주연까지 정하고도 엎어지는 게 영화니까요.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적어도 몇 년은 올랜도를 뉴퀘스트에 붙잡아 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
황제국이 반농담으로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절반은 진심이기도 했다.
아무리 제작 노하우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조직에 축적해도 창의력 넘치는 직원은 게임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그림 실력도 출중하면서 아트팀까지 무리 없이 이끌 수 있는 좋은 디렉터를 구하기란 아주 힘들었다.
<어둠 속으로> 영화화 추진은 아무리 빨라도 3년 이상은 걸릴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올랜도를 회사에 더 단단하게 붙잡아 놓을 구실이 된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었다.
“그럼 만약 제가 영화를 찍고 꿈을 이뤘으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걱정말아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황제국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둠 속으로> 영화는 분명 잘 될 테고, 그럼 영화도 2편, 3편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올랜도가 아니면 누가 미술 감독을 하겠어요?”
“아······.”
올랜도는 반박하지 못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몇 년간은 뉴퀘스트보다 일하기 좋고, 재밌는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는 게임 회사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역시 뉴퀘스트에서 오랫동안 멋진 게임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어둠 속으로>가 PC 게임을 평정하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와중에도 뉴퀘스트의 다른 게임들은 매일매일 열심히 라이브 서비스 중이었다. 98년 출시하며 뉴퀘스트의 출발점이 되었던 <영건 블러드>는 어느덧 서비스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영건 블러드>는 2002년에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부분 유료화를 게이머들이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이자 2002년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부분 유료화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PM 유필승은 부분 유료화 상품으로 무엇을 만들지 계속 고민했다. 그는 나름의 답을 들고 황제국을 찾았다.
“아이돌 캐릭터요?”
“네, 영건은 <젤리 러쉬>처럼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맞춤형 맵을 제공하기도 곤란하고, 서로 죽이는 총싸움에 자기 브랜드를 걸고 싶은 곳은 별로 없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죠.”
“그러다 <젤리 러쉬> 일본 마케팅을 보고 답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유명 캐릭터가 아니라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아이돌을 섭외해서 <영건 블러드> 특별 캐릭터로 판매하면 부분 유료화에 제격일 것 같습니다.”
황제국도 유필승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아이돌 캐릭터는 기간제 캐릭터가 되겠지만 새로운 유저를 끌어들일 확실한 동인이 될 겁니다. 새로운 마케팅으로 사람들 시선도 끌 수 있구요. 다만 연예인은 항상 스캔들 같은 사건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계약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획사들과 미팅해보고 좀 더 구체적인 윤곽을 짜보겠습니다.”
부분 유료화를 도입한 후 황제국은 영건 블러드 라이브팀에 다시 활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좋은 게임도 오랫동안 큰 변화가 없으면 훌륭하던 팀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웠다. <영건 블러드>에 대한 자부심으로 버티던 라이브팀은 새로운 BM과 마케팅으로 새로운 활력소를 얻었다.
한편, 젤리 러쉬 라이브팀을 총괄하는 민소영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작년 크리스마스 업데이트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개발팀 내에 겨울 스포츠 준비 유닛을 따로 꾸렸다. 겨울 스포츠 유닛은 눈썰매 젤로 코드를 재정비하고, 2003년 크리스마스에 스키 젤로를 업데이트를 목표로 움직였다.
<젤리 러쉬>는 2002년에 초대박을 터뜨렸다. 2002년 월드컵 마케팅과 연말 맥&도널드 해피해피밀 출시, 초대형 젤로 전시에 뉴퀘스트 컨퍼런스까지 이벤트가 겹겹이 겹쳤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은 최고의 실적을 냈다고 끝이 아니다. 1년 서비스하고 마는 게임이 아니기에 최고의 실적을 낸 다음 해에도 서비스는 이어진다. 그러면 오히려 작년의 막대한 실적이 부담이 된다.
“작년에는 예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작년만큼 하겠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장을 미루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불필요한 매출 압박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황제국은 리더십 미팅에서 <젤리 러쉬> 2003년 실적에 관해 미리 못을 박아두었다.
“어떤 실적 그래프도 언제나 우상향만을 그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성장 곡선은 없어요. 올라갈 때가 있으면 잠시 내려갈 때도 있죠. 중요한 건 그때를 잘 버티고 다시 올라갈 힘을 만드는 겁니다. 멀리 봤을 때 우상향을 만들어야지 무조건 오늘보다 내일 더 높은 매출을 찍겠다고 달려들면 결국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고 맙니다.”
황제국의 당부에 민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작년에 중국과 일본에서 런칭한 <젤리 러쉬>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 <젤리 러쉬>는 출시 후 3개월도 되지 않아 회원 수 1천 5백만을 달성하며 중국의 국민 게임으로 떠 올랐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회원 수에 비해 매출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회원 수 대비 매출도 한국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이에 만센트가 절치부심하며 2003년부터 상품 라인업을 대폭 늘리면서 2003년부터는 중국 매출이 눈에 띄게 상승 중이었다.
<어둠 속으로>와 중국에서 <젤리 러쉬>의 대성공으로 뉴퀘스트는 2003년 재정적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황제국이 <어둠 속으로>를 영화사와 공동 투자를 생각하는 것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물론 재정적 뒷받침이 되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실적으로 압박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젤리 러쉬>는 글로벌에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민소영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황제국과 작년 크리스마스부터 만남을 이어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젤리 러쉬> PM으로서는 아니었다. <젤리 러쉬>가 미국에 이어 중국에서도 큰 매출을 내자 그녀는 한국 라이브팀이 상대적으로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유명 탄산음료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해 여름 초입부터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온 사방에서 물총을 쏴대고, 병 모양의 맵을 돌고, 공기 방울을 타고 강을 건너는 등 참신한 연출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견고한 매출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젤리 러쉬>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이 민소영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비록 인구가 적어서 미국이나 중국만큼의 매출을 낼 수는 없지만, <젤리 러쉬>를 처음 만든 만큼 아이디어와 마케팅, 개발력에 있어서 만큼은 이 게임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라이브팀 사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마땅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황제국이 <어둠 속으로> 영화화를 위해 잠시 출장을 간 사이, 민소영은 <젤리 러쉬>를 한 단계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대부분 스케일만 크거나, 게임에 무언가를 덧입히는 쪽이었다. 민소영은 좀 더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찾고 있었다. 소냐가 젤로로 변신했던 빅 점프처럼, 젤로가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았다.
“오빠가 항상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었는데.”
수많은 회의를 거치던 중 민소영은 문득 처음 <젤리 러쉬>를 만들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황제국은 무언가 게임에 새로운 걸 적용할 때는 항상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조언했었다.
황제국을 떠올리자 민소영은 갑자기 그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황제국은 미국 출장 중이었다. 민소영은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옛날 컴퓨터 폴더를 뒤적거렸다.
“<삼국지:공성전>! 그때 화면 움직이게 하느라고 진짜 고생했었는데. 와···!”
민소영은 폴더 속에서 옛 추억과 마주했다. 뉴퀘스트 동방에 무작정 찾아갔던 시절의 추억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우와, 진짜 못 봐주겠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황제국이 숙제로 내주었던 코딩 과제를 다시 열어보았다가 도저히 눈 뜨고는 봐줄 수 없어 얼른 다시 닫았다. 그녀는 자신이 황제국을 만난 후 몇 년 동안 얼마나 빨리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살면서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황제국 곁에서 배운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선배와 후배, 대표와 인턴 사이였던 황제국과의 사이는 훨씬 더 깊어졌다.
“이건 뭐였지? 맵 에디터?”
민소영은 <삼국지:공성전> 폴더를 둘러보다 황제국이 만든 맵 에디터를 발견했다. 그녀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맵 에디터를 열어보았다. 황제국이 고등학생 때 만든 프로그램이었지만 깔끔한 인터페이스 디자인부터 직관적인 사용법까지 허투루 만든 구석이 없었다. 그녀는 새삼 황제국의 괴물 같은 실력에 감탄하며 이리저리 맵 에디터를 만져 보았다.
‘응? 맵 에디터라고? 잠깐만.’
순간 민소영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젤리 러쉬> 게이머 중에도 자기가 직접 맵을 만들어서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민소영은 황제국의 조언을 떠올리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