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회 - 용서받지 못한 자(The Unforgiven)
(뉴퀘스트x퓨처)와 랩실의 대결은 계속 이어졌다. 게임에는 오종석에 이어 황제국과 이진수도 참여했고, 뉴퀘스트와 퓨처 멤버들이 뒤섞여 게임을 했다. 전유진은 유희철과 게임을 하다가 그 대신 총에 맞아 죽으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5대5 섬멸전은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게임이 끝나고 랩실 사람들이 뉴퀘스트 동방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기분 끝내준다. 자, 저녁 먹으러 갑시다. 오늘은 제가 쏩니다!”
“가자~~~!!!!!!!”
유희철이 앞장서서 사람들을 고깃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신나게 삼겹살을 구우며 게임 얘기를 이어갔다. 소주잔이 몇 바퀴 돌고, 박태권이 나서서 분위기를 띄웠다.
이진수는 구석에서 전용선과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퓨처의 드러머 김태수가 호기심에 귀를 기울여 봤지만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분위기가 한참일 때, 황제국이 잠시 술도 깨고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그걸 본 유희철이 조용히 따라 나왔다.
“여~, 제국이.”
유희철은 번쩍번쩍한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황제국에게 내밀었다. 필터 끝이 노란, 카우보이 마초 이미지를 앞세운 독하기로 유명한 담배였다. 황제국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담배는 안 피워요, 형.”
“그래? 잘 생각했다. 이거 한번 시작하면 끊기 졸라 힘들어. 나도 어제 끊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피는 거야.”
그는 웃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유희철은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한참을 내뱉었다. 둘은 잠시 그렇게 있었다. 담배를 다 피울 때쯤, 유희철이 말했다.
“너희 동아리, 뉴퀘스트? 애들 다 착하고 좋네.”
“그렇죠? 퓨처 형님들도 다 좋으신 분들이던데요.”
“좋기는 개뿔. 전부 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인데.”
유희철이 연기를 코로 내뿜으며 말했지만, 얼굴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여름 밤공기가 시원했다. 유희철이 슬쩍 황제국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 솔직하게 얘기할게.”
“무슨 얘긴데 그러세요?”
“나, 처음에 게임 음악 한다고 했을 때는 그렇게 진지하지 않았거든? 열심히 하긴 하겠지만 그냥 후배들 도와준다. 이런 마음이었단 말이야.”
“그러셨어요?”
“근데 오늘 해보니까 아니더라. 적당히 했다가는 나중에 팬들한테 졸라 욕먹을 거 같아. 겁나 열심히 만들어야겠어.”
유희철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웃긴다는 듯 킥킥거렸다. 황제국도 그냥 웃고 말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고백하는데,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주제가 말이야.”
“네, 형.”
“뭐 혹시 생각해놓은 분위기 같은 거 있어? 배경 음악이랑 비슷할 거 같지만 혹시 특별히 원하는 방향이 있나 해서.”
“그걸 둘이서만 얘기해도 돼요? 다 같이 미팅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저 사람들 취해서 지금 음악 얘기 못해. 나중에 또 모이기엔 서로 시간 아깝고. 게임 보니까 퀄리티 장난 아니던데 저거 방학 안에 끝내려면 너도 앞으로 죽어날 거잖아?”
“그렇죠.”
황제국도 인정했다. 그가 정말 좋아해서 하는 일이지만 게임 개발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특히 프로젝트 리더인 그는 결정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하루종일 집중하고 있어야 해서 체력 관리도 중요했다. 20대로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감히 게임 엔진을 직접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분위기면 좋겠다고 생각한 노래는 있어요.”
“오, 그래? 뭔데?”
유희철이 담배를 구두 밑창에 비벼 끄고는 꽁초를 바닥에 있는 깡통에 집어넣었다.
“음, 메탈리카(Metallica) 노래 좋아하세요?”
“메탈리카 형님들? 말해 뭐해. 좋아 죽지.”
유희철이 갑자기 기타 치는 흉내를 내며 상체를 흔들었다. 메탈리카는 그의 락 스피릿을 자극하는 이름 중 하나였다.
“메탈리카 음반 중에 5집 있잖아요. 검은색 배경에 뱀 그려진.”
“어, 있지있지. 91년에 나온 거.”
“그 음반 중에서 <디 언포기븐(The Unforgiven)>이나 <낫싱 엘스 매터(Notthing Else Matter)>같은 분위기면 좋을 거 같아요.”
“<디 언포기븐>, <낫싱 엘스 매터>라······.”
유희철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황제국은 퓨처가 주제곡을 맡는다고 한 이후로 어떤 느낌이 주제곡에 어울릴지 고민해 보았다.
단순한 멜로디에 신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락이나 펑크 락은 무난한 선택일 것 같았다. 너바나(Nirvana) 등장 이후 핫해진 그런지 락 느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건 블러드>의 주제가로는 역시 진중한 락 발라드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적이면서도 비장미가 있고, 거친 남성의 슬픔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분위기. 락 발라드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곡은 역시 감성을 적셔주는 발라드였다.
황제국은 일하면서 다양한 락 발라드를 골라 들었고, 그중 메탈리카의 5집 앨범에 꽂혔다. <디 언포기븐>은 어두운 분위기가 변절자 이록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것 같았고, 메탈리카 최고의 락 발라드 <낫싱 엘스 매터>의 그윽한 분위기는 <영건 블러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야, 황제국.”
“네, 형.”
“나보고 지금 메탈리카 형님들이 만든 전설의 명곡 정도 되는 곡을 가져오라고 하는 거냐?”
“퓨처가 한국에서 활동해서 그렇지, 형님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메탈리카만큼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
“전 그렇게 생각해요.”
“햐~~!”
유희철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으로 황제국을 바라봤다. 솔직히 그는 음악을 하면서 한국에 태어나서 아쉬울 때가 있었다.
처음부터 미국에서 음악을 하고, 영어로 곡을 썼으면 훨씬 크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물론 그가 태어난 한국을 사랑하고, 우리말 가사도 누구보다 멋지게 썼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 시장은 미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시장 크기의 차이는 많은 것을 갈라놓는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은 없지만, 사석에서는 가끔 그런 푸념을 늘어놓고는 했다.
한국 음악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기까지는 앞으로도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때는 주류 음악이 완전히 아이돌로 넘어가긴 하지만, 한국 음악은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하나의 흐름이 된다.
게임은 한국이 인터넷 게임을 크게 히트하고, 프로게이머가 생기면서 일찌감치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다른 문화 영역은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을 타고, 적절한 플랫폼이 갖춰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혹시 아나요? <영건 블러드>가 성공하고 형님 노래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될지도 모르죠. 그러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공연하게 될지도 몰라요.”
“흥, 맨해튼 5번가에서 버스킹이나 하는 게 아니고?”
“그건 그거대로 또 낭만적이지 않아요?”
“이 짜식이~!”
유희철은 황제국의 목에 팔을 두르고 헤드락을 걸며 웃으며 장난을 쳤다. 황제국도 일부러 버둥거리는 척하며 장단을 맞춰줬다. 그는 팔을 풀더니 진지한 얼굴로 황제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진짜 세계를 노리는 거냐?”
“그게 아니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황제국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 편하게 돈이나 벌고자 했다면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었다.
대학 시절 적당히 놀다가 앞으로 유명해질 게임 회사에 입사한 다음, 돈을 모아 20년 후에도 살아남는 최고의 IT 기업에 장기 투자하면 그만이다. 그가 아무리 재태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앞으로 국내외 게임 시장의 흐름과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군림할 IT 공룡들은 죄다 알고 있다.
그러다 돈이 모일 때마다 강남에 아파트를 하나씩 사는 거다. 비트코인이 등장하면 채굴 공장도 하나 차리고.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적처럼 다가온 기회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돈을 모으더라도,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기엔 그는 게임을 너무나 사랑했고, 이루지 못했던 꿈이 너무나 컸다. 이번에야말로 자기 손으로, 게임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유희철은 황제국의 자세한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집념과 크기를 알 수 없는 꿈을 읽었다. 뭘 하든 적당히 하고 말 사람이 아니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유희철 그와 아주 비슷한 부류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어쩔 수 없네. 그럼 내가 메탈리카 형님들도 울고 갈 노래 만드는 수밖에.”
“부탁드립니다. 형님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끝내주는 노래 만들어 주시면 제가 퓨처를 온 세상에 알릴게요. <영건 블러드>를 전 세계에 수출해서요.”
“크크크크크, 짜식. 이빨이 장난이 아닌데? 응? 장난이 아니야. 야, 근데 말이야. 이거 총소리는 좀 심심하지 않냐?”
“많이 심심하죠. 근데 총소리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영건 블러드>의 멀티 플레이용 캐릭터는 일곱 명이었지만, 총소리는 다 비슷했다. 권총, 소총, 기관총, 샷건 등 총의 종류는 물론 총알의 크기에 따라서도 총소리가 모두 다른데 총기 소지가 불법인 한국에서 다양한 총소리를 수집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 그거라면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겠다.”
“네? 어떻게요?”
“내가 퓨처 음반 만들 때 미국에서 작업한 적이 있었거든. 아, 한국에서는 암만해도 양키 놈들 사운드가 안 나잖아. 그래서 화딱지 나서 비행기 타고 날아갔지.”
“아, 퓨처 2집 녹음할 때요? 기사 읽은 기억이 나요.”
“응, 그때 미국에서 실력 있는 믹싱 엔지니어를 알게 됐는데, 그 녀석이 또 총기 매니아거든.”
“그래요?”
“응, 총포상이랑 사격장 주인하고도 엄청 친하고. 나도 따라가서 총 몇 번 쏴봤는데, 와~ 손맛 죽이더라. 그 진동이~, 크으.”
유희철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두 눈을 감고 총 쏘는 시늉을 했다.
“암튼 내가 그 친구한테 총소리 좀 녹음해달라고 해볼까? 권총부터 샷건까지 다양하게? 아마 그놈 빈티지라면서 옛날 총도 꽤 가지고 있을 거야. 그런 거 좀 녹음해달라고 하면 어때?”
“완전 좋죠, 형님. 꼭, 꼭, 꼭!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내가 한번 얘기해 볼게. 이제 들어가자.”
유희철이 황제국의 등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다시 삼겹살집으로 돌아갔다. 박태권은 퓨처 멤버들에게 밴드 비하인드 얘기를 듣느라 여념이 없었고, 오종석은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게임의 전투 밸런스를 묻고 다녔다.
“폭렬왕 너무 느려. 완전 굼벵이야.”
“황산 쌍권총이 약해. 겨우 접근해도 암만 쏴도 적이 죽질 않는다고.”
“다이너마이트 던지기가 좀 더 쉬웠으면 좋겠어.”
“빅토르는 장탄수 좀 더 챙겨줘. 파괴력은 알겠는데 두 발 쏘고 재장전이라니. 너무 불리해.”
“저런~, 그뤈가요?”
오종석은 메모장에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적으면서 그때마다 소주를 받아 마셨다. 그는 이미 혀가 반쯤 꼬부라져 있었다. 뉴퀘스트와 퓨처, 그리고 랩실 식구들은 늦게까지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그들은 노래방에서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회식의 여파는 상당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이진수만 멀쩡하게 다음날 날 아침에 나왔다. 차현주와 오종석은 숙취로 앓아누워 하루를 보냈다. 전유진은 숙취는 아니었지만, 유희철을 만난 후유증으로 심장이 떨려서 하루 동안 집에서 요양이 필요했다. 황제국도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동방에 나왔다.
본래 목요일은 정규 개발 회의였지만 황제국은 어쩔 수 없이 취소했다. 비록 정규 회의는 하지 못했지만 퓨처의 방문은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갖춰진 배경과 캐릭터 모델링을 적용해 인터넷으로 5대5 섬멸전을 시험했다. 게임은 문제없이 돌아갔고, 플레이한 사람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황제국은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 게다가 유희철을 통해 큰 고민거리였던 다양한 총소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네트워크 기능을 도와주고 있는 전용선도 아주 만족했다. 그는 점점 자기 연구를 미뤄두고 <영건 블러드>의 멀티 플레이와 서버 프로그래밍에 더 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벽에 막혀있던 연구에 비해 손을 대면 곧바로 결과가 나오는 게임 서버 쪽이 훨씬 재미있었다. 5대5 섬멸전도 그의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초반에는 그냥 난타전이었지만 갈수록 팀플레이가 성립하면서 전략의 재미까지 있었다. 게임이 꼬여도 한 판이 금방 끝나기 때문에 다음 게임에서 얼마든지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제 황제국의 설계안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용선이 뉴퀘스트 일에 몰두하자 랩실 사람들도 좋아했다. 까칠하고 냉소적이던 전용선이 신이 나서 작업하니까 랩실 분위기까지 좋아진 것이다.
“이게 다 ‘황제국 효과’야.”
박태권은 여기에 이름을 붙였다. 랩실 사람들은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가능성을 확인한 황제국은 이진수와 함께 게임 엔진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이진수는 이제 움직임을 더 부드럽게 하고, 더 화려한 이펙트 효과에 집중했다. 황제국은 사운드 엔진을 손보는 동시에 게임 엔진 최적화에 박차를 더했다.
그렇게 7월이 다 끝나갈 무렵, 스튜디오 X로부터 메일이 왔다. <판타지 삼국지>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