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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 - 스팀펑크

“스팀펑크? 으으음······.”

오종석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게임을 좋아하고, 여러 장르를 제법 접해 본 그였지만 감이 확 오는 않았다. 황제국은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생각해 보라고 하려다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가만? 아직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가 개봉 전인가?’

그도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개봉 연도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SF 영화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 <매트릭스(Matrix)>와 같은 해 개봉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트릭스>가 개봉한 것은 세기말의 정점, 1999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스팀펑크가 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국과 달리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스팀 보이>, <헬 보이>, <9: 나인>,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모털 엔진> 같은 스팀펑크 분위기의 영화도 볼 수 없었다.

‘종석이가 <바이오 쇼크(Bioshock)>를 한 번이라도 해보고, 해저 도시 랩처(Rapture)랑 빅 대디를 봤으면 금방 이해할 텐데.’

콘텐츠 경험에서도 미래를 경험한 황제국과 1998년의 사람들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20년이 넘는 세월은 기술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팀펑크를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다들 선뜻 이해가 안 가나 보네?”

“응. 만주 웨스턴은 과거인데, 사이버펑크랑 비슷한 판타지면 SF 느낌이잖아?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아.”

“그게 스팀펑크의 매력이야. 그럼 같이 시청각실에 가보자. 내가 도움이 될 만한 걸 보여 줄게.”

황제국은 스팀펑크에 관한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회의를 중단하고 공대 미디어랩 건물로 이동했다. 미디어랩 건물에는 학생들이 언제든 원하는 영화를 골라 감상할 수 있는 시청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오~, 모야? 우리 학교에 이런 곳도 있었어?”

“공대생이 아니면 여기 잘 모르더라. 학생증 맡기고 들어가면 돼.”

뉴퀘스트는 시청각실 입구에서 학생증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청각실 한쪽 벽에는 거대한 책장에 수많은 비디오테이프와 ‘차세대’ 영상 기록 미디어인 DVD가 쭉 늘어서 있었다. DVD는 아직 초창기라 타이틀이 별로 없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은 비교가 안 되네. 앞으로 뭐 보고 싶으면 여기 와야겠다. 근데 우린 뭐 찾는 거야, 제국아?”

“비교할 걸 해야지. 여긴 할리우드나 한국 영화 말고 유럽이랑 남미, 일본 영화까지 다 있어. 잠깐만. 이건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게 빠를 텐데······. 아, 여기 있다.”

황제국이 애니메이션 코너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집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였다. 그는 비어있는 TV로 가서 비디오테이프를 VCR에 넣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초간 화면이 지지직거리더니 ‘德間書店作品 1986’이라는 타이틀이 나왔다.

“어? 이건 그거 안 나오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들을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걸 다 외우네? 이건 일본 비디오니까 당연히 없지.”

“아~, 그런가? 난 왠지 그게 안 나오면 비디오를 본 느낌이 없어서.”

“시작한다. 내가 몇 장면만 골라서 보여줄게. 스팀펑크가 뭔지 감만 잡아.”

아직 일본 문화 개방 전이라 한국에는 지브리 애니메이션도 공식 수입되지 않았다. 비디오는 일본 비디오였고, 당연히 한국어 자막도 없었다.

애니메이션이 시작하자 거대한 구름 사이로 해적단 비행기와 커다란 비행선이 나타났다. 비행선은 유람선 만큼 거대한데 작은 프로펠러 몇 개 만으로 공중에 떠 있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비행체였다. 사람들 복장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같았다.

“뭐지? 뭔가 이상해야 하는데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이네?”

“그렇지? 분명 저 시대 과학 기술로는 말이 안 되지. 요즘도 저렇게 큰 비행기는 못 띄우잖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제성이 없지. 근데 스팀펑크 세계에서는 말이 돼. 타이틀 화면을 잘 봐.”

황제국이 TV를 가리켰다. 증기 기관이 연기를 뿜어내고, 수많은 톱니바퀴가 착착 맞물려 돌아간다. 그리고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증기 기관 비행선들이 보이고, 이어서 하늘을 나는 성, ‘천공의 성, 라퓨타’가 보였다.

“오오······.”

황제국은 중간중간 빨리 감기를 통해 스팀펑크적인 요소들만 보여줬다. 라퓨타를 지키는 외로운 로봇을 끝으로 비디오는 끝났다.

“어때? 이제 뭔지 대충 알겠지?”

“응, 대충은.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멋지네. 새롭게 디자인할 요소도 엄청 많은 거 같아!”

차현주가 의욕이 솟는 지 두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오종석도 접수완료 했다는 듯 손으로 OK를 그렸다. 이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스팀펑크 맘에 드세요?”

“응, 조, 좋아. 라퓨타, 꼭 콤퓨타 같아. 므므.”

“네?”

이진수의 감성 코드는 이해가 불가능했지만 어쨌든 맘에 든다고 하니 문제는 없었다. 동방으로 돌아온 황제국은 화이트보드를 깨끗하게 지운 다음 ‘스팀펑크 만주 웨스턴 FPS’라고 적었다. 뉴퀘스트의 FPS 프로젝트는 마침내 컨셉을 확정했다.

“자, 이제 컨셉을 확정했으니까 본격적으로 스터디에 들어가자.”

“스터디? 무슨 스터디?”

“그야 장르 스터디지. 아직 우린 스팀펑크도, 만주 웨스턴도 이해가 부족해. 배경지식 없이 곧바로 설정에 들어가면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게임이 나오기 십상이야.”

“흐음.”

“특히 현주는 스터디가 많이 필요할 거야. 30년대 만주식 비주얼에 웨스턴을 가미하고, 거기에 스팀펑크 스타일의 각종 기계 장치와 도구들을 디자인해야 하니까.”

“와우! 나 그럼 일복 터진 거야?”

차현주가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만세를 불렀다.

“일단 나랑 진수 선배님이 게임 엔진 개발을 할 동안 두 사람은 장르에 관한 스터디를 해줘. 종석이는 자료 스크랩해서 정리해주고, 현주는 비주얼 스타일 연구하면서 생각나는 인물이나 기계 장치들 있으면 스케치해 줘.”

“알았어. 마침 미대 도서관에 참고할 아트북이 엄청 많아. 진짜 이 세상에 아트북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니까? 영화 아트북도 많더라.”

“올~, 차현주. 도서관에도 가봤어? 맨날 술집만 가는 줄 알았는데?”

“야, 나 물감 살 돈도 없거든? 니가 술 한 잔이나 제대로 사 줘봤냐?”

오종석이 한마디 거들자 두 사람은 또 티격태격 거렸다. 황제국은 뉴퀘스트를 대학에서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은 상상력이라고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기본적인 지식이 필수다. 또한 좋은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접해봐야 한다.

만약 대학 밖에서 뉴퀘스트를 창업했다면 자료 조사부터가 허들이다. 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지역 도서관에서 자료를 빌려야 하는데, 아트북은 가격도 비싸다.

예술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해도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지금은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성공한 게임 회사는 회사에 도서관을 만들어 자료를 탐욕적으로 수집한다.

반면 대학은 그야말로 자료의 천국이었다. 다양한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은 보통 도서관보다 규모도 크고, 희귀 자료도 많다. 대학원 도서관에 가면 각종 석/박사 논문들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자본력이 부족한 뉴퀘스트에게는 최적이었다.

황제국은 대학이라는 공간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는 필수로 봐야 할 책과 영화 목록을 작성해서 전달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우선 비슷하게 맞춰 놓고, 그 외에 스터디 활동은 자유롭게 하도록 권장했다.

“근데, 제국아?”

한참 스터디 계획을 짜는데 오종석이 물었다.

“내가 이걸 찾아보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지난번 공성전 게임 만들 때는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 줬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네?”

“다르지. 다를 수밖에 없지. 기억나? 그때는 내가 이미 게임의 틀과 기본적인 내용을 다 정리한 다음에 개발을 시작했어.”

“응, 그랬었지.”

오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 FPS는 달라. 나 역시 내용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프로젝트야. <삼국지:공성전>은 내 머릿속에 완성된 모델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너희들과 같아. 안개 속을 더듬거리며 답을 찾아야 해.”

“그러니까··· 제국이 네가 답안지가 아니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렇게까지 과격한 건 아닌데 비슷해.”

황제국은 ‘답안지’라는 말에 웃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표현이었다.

수많은 개발자가 사장이 원하는 데로, PD가 말하는 데로, 위에서 명령하는 그대로 따르는 탑-다운 방식에 길들여 진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제안을 해보지만 몇 번 벽에 부딪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점점 타성에 젖게 된다.

PD 중에는 마치 자기가 완성된 비전, 즉 ‘모범 답안지’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리더라면 무조건 카리스마,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든 것을 아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 누구도 ‘정답’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시키는 데로 일정에 쫓기며 힘들게 만들어도, 정작 나중에 그게 아니라면서 빌드를 되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바쁠 때는 허탈감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지만, 반복될수록 소모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애초에 게임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일이다. PD나 개발팀 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을 지언정, 정답이 있을리 만무했다.

“나는 프로젝트 리더지만 내가 지시하면 너희가 그대로 만드는 게 아니야. 우린 이 게임이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함께 그림을 그려나갈 거야. 설계도부터 같이 시작하는 거지.”

“그렇구나. 확실히 전하고는 다르겠네.”

“사실 <삼국지:공성전>은 개발 과정이 너무 깔끔했지. 그게 이상했던 거야. 설령 전처럼 단번에 풀리지 않는다고 조바심내지 마. 그랬다간 금방 지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걱정 마.”

“그래. 나도 얼마든지 안개 속을 걷겠어. 마침 장르도 안개 자욱한 ‘스팀’ 펑크네. 선배님도 그렇죠?”

오종석이 이진수에게 묻자 이진수가 입술을 찌그러뜨리고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아, 안개? 안개 같은 특수 이펙트는 아직 없는데? 그건 조, 쫌만 기다려.”

“네?”

완전히 핀트가 다른 이진수의 대답에 나머지 세 사람은 벙 쪘다. 그러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뉴퀘스트는 어렵게 게임 컨셉을 정했다. 그렇지만 콘텐츠는 여전히 뿌연 안개 속이었다. 그들은 다 함께 스팀펑크의 안개 속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FPS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왔다. 5월의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뉴퀘스트에도 좋은 소식이 들어왔다.

황제국은 스튜디오 X로부터 라이선스 계약금을 입금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총 350만 엔. 황제국은 연락을 받자마자 오종석과 교내 은행 창구로 달려갔다. 액수를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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