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회 - 벤처 기업 창업(1)
“종석아, 우리 동아리 통장 좀 보여 줘.”
“통장? 잠깐만.”
다음날 황제국은 뉴퀘스트 통장을 확인했다. 오종석은 뉴퀘스트 회계용 엑셀을 열고, 통장을 꺼내 잔액을 보여주었다.
“2,138만 7,350원. 생각보다 많이 줄었네.”
“그러게. 처음에 받을 때는 3,748만원이면 졸업할 때까지는 쓸 줄 알았는데. 컴퓨터 사고, 가구 사고, 콘솔 사고, 게임 사고, 이것저것 운영비하고, 모델러 비용 쓰고 하니까 생각보다 쑥쑥 줄어든다.”
“회사면 더했지. 그나마 우리는 아직 동아리라 월급을 안 받으니까.”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기업이란 숨만 쉬어도 돈 먹는 괴물이라고 했는데. 동아리만 해도 이런데 진짜 그 말이 맞나 봐.”
황제국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게임 기업 같은 IT 소프트웨어 기업은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 대부분은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정도다. 초기 비용도 가구, 컴퓨터, 그리고 자잘한 사무용품 정도면 된다. 제조업처럼 생산 설비에 크게 투자할 필요가 없다.
만약 친구들과 집에 있는 컴퓨터를 쓰기로 하고, 장소도 집에서 일하면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일단 창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수많은 IT 기업이 자기 집 창고에서 창업해 ‘차고 창업(Garage Startup)’이라는 말까지 있다.
뉴퀘스트는 아무것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하느라 돈이 제법 깨졌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개발에 필수적인 컴퓨터 등의 장비에 쓴 돈이다. 일하는 데 없으면 안 되는 필수적인 장비인 만큼, 소비가 아니라 투자였다. 다행히 널찍한 동아리방을 얻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돈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유희철 선배님이 음악 그냥 해준다고 해서 진짜 다행이다.”
“그건 정말 행운이지.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진짜 큰돈 들어갈 일은 따로 있어.”
“진짜 큰돈?”
“응. 퀘스트넷 서버 구축.”
황제국은 블리자드의 배틀넷처럼 뉴퀘스트가 서비스할 네트워크 이름을 ‘퀘스트넷’이라고 지었다. 이미 뉴퀘스트닷컴, 뉴퀘스트닷넷, 퀘스트닷컴, 퀘스트닷넷, 영건블러드닷컴 등 관련 도메인 주소까지 구매 완료한 상태였다.
“아아아······.”
“지금이야 테스트 서버로 충분하지만 게임을 출시하면 저걸로는 어림도 없어.”
“그렇겠지?”
“PC방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서버에 최소 억 단위 이상 설비 투자를 해야 할 거야. 거기다 회선 이용 비용은 또 별도고.”
“억 단위???”
“뭘 그리 놀래? 서버로 쓸 컴퓨터 대당 넉넉하게 500 잡으면, 20대만 사도 1억이야.”
오종석은 입을 쩍 벌렸다. 황제국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대학교 동아리에서 입에 올리기엔 너무나 큰 비용이었다.
이미 황제국은 이진수, 전용선 선배와 서버 구축에 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용선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난번 테스트 결과도 그렇고 네트워크 시스템 설계는 나쁘지 않아. 아니, 괜찮아. 문제는 스케일 아웃(Scale Out, 서버를 여러 대 확충해 시스템을 확장하는 방법)이지.”
황제국도, 이진수도 그가 말한 진짜 의미를 이해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전용선의 합류로 처음부터 대규모 확장을 염두에 두고 시스템을 설계했다.
진짜 문제는 스케일 아웃에 필요한 비용이었다. 서버 역시 기본적으로 컴퓨터와 똑같았다. 다만 일반 컴퓨터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요청을 CPU가 처리한다면, 서버는 다른 컴퓨터로부터 들어오는 네트워크 정보 요청을 CPU가 처리해 내보낸다.
요청이 적으면 CPU가 좀 느려도 큰 문제가 없다. CPU가 처리할 명령 자체가 적으니까. 하지만 수백, 수천, 수만 대 이상의 다른 컴퓨터가 동시에 요청을 보내면 서버는 그야말로 명령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만큼 빠른 처리 속도가 필요하다. 대신 3D 그래픽이나 사운드 처리 같은 부가적인 기능은 필요 없어진다. 그래서 서버는 갈수록 CPU와 램, 저장장치만 극대화된다.
모두 <영건 블러드>를 향한 황제국의 비전과 야망을 알고 있었다. 황제국은 최소한 동접(동시접속자) 5만 이상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만, 5만이라. 동시에 접속할 사람이 5만 명이면, 이 게임이 얼마나 팔려야 하는지는 알지? 아는 거지?”
“선배님. 그 정도가 최소한이에요. 그것조차 달성하지 못하면 <영건 블러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하, 글쎄. 난 지금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가 5만 명이 되는 지도 모르겠는데?”
“1년이면 세상이 바뀔 겁니다, 선배님.”
“진수, 너도 동의하냐?”
“네, 네.”
“왜?”
“제, 제국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하아···, 알았다.”
전용선은 납득하지 못했지만 황제국은 P2P 방식에 동의했을 때와 달리 뜻을 꺾지 않았다. 한국 FPS 최고의 히트작인 <서든리 어택>은 2000년대 중반에 최대 동접 35만을 찍기도 했다.
물론 패키지 게임이 아니라 순수 온라인 게임이라 <영건 블러드>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앞으로 인터넷 게임 시대에 소수가 즐기는 매니아 게임이 아니라 ‘인기 게임’이 되려면 적어도 동접이 최소 2~3만 명 이상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
“그래, 그렇게 해 볼게. 쉽진 않겠지만 할 수는 있을 거야. 근데 진짜 문제는 비용이야. 서버 비용은 어쩌려고?”
전용선의 질문에 황제국은 곧 방법을 찾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통장을 확인해 본 결과 이제는 정말 돈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황제국은 게임 유통사를 찾으면서 퀘스트넷 서버를 대신 구축하고 운용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볼까 생각해 봤다. 하지만 곧 포기했다.
기술은 이광철 랩실에서 산학협동으로 해결하고, 유통사가 비용만 내서 서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해도, 그런 식이면 유통사에서도 퀘스트넷에 대한 권리가 생긴다. <영건 블러드>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인터넷 게임을 선보일 생각인 황제국 입장에서, 그 기반이 될 퀘스트넷은 게임 엔진인 퀘스트 엔진 만큼이나 중요하다.
퀘스트넷 서버에 저장될 회원 정보와 그들의 게임 로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미래 자산이다. 이를 돈 때문에 유통사에게 일부라도 권리를 넘겨준다는 건 너무나 큰 리스크였다.
퀘스트넷 소유권을 놓고 유통사와 소송이라도 벌어진다면? 유통사가 퀘스트넷 서버를 셧다운 시키겠다고 협박한다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결국 직접 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최소 3억. 아니, 5억 이상.’
황제국은 어떻게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궁리해 봤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출.
또 하나는 투자.
두 가지 모두 뉴퀘스트를 법인으로, 주식회사로 만들어야 가능한 옵션이다.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원금과 이자를 갚을 능력만 된다면 돈을 마련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다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98년은 돈을 빌려주는 은행조차 망하는 IMF 시대였다. IMF는 우리나라에 금융 지원을 하면서 조건 중 하나로 금리 인상을 요구했다.
시중 은행들은 98년 초에 예금 금리를 20%대로 높였다.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맡기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은행이 망하면 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해서 돈을 선뜻 은행에 맡기지 않았다.
게다가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은 대출 이자도 올라간다는 뜻이다. 황제국은 <영건 블러드>에 자신이 넘쳤지만 세상일은 결코 알 수 없었다. 중간에 일이 꼬이거나 <영건 블러드>의 반응이 생각보다 더디면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서 엄청난 자금 압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사소한 일로 출시 연기만 일어나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게임에 대한 인식이 몹시 낮은 지금, 시중 은행이 IMF 시대에 대학생이 창업한 게임 회사에 몇억씩 대출을 해줄 리도 없었다.
‘결국 투자를 받아야 한다.’
황제국은 다시 1998년으로 돌아와 게임을 개발하면서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길드&파이트> PD 일을 하면서 경영진과 충돌하긴 했지만, 그 역시 돈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충분한 자본 없이는 결코 회사가 성장할 수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도 없다. 그는 다만 오직 돈과 매출을 기준으로 게임을 생각하고, 돈에 매몰되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다행히 98년은 한국에 벤처 붐이 막 기지개를 켜는 시기였다. 벤처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대박을 노리는 ‘벤처 캐피탈’이 한국에 처음으로 생기는 시기이기도 했다. 심지어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한다고 하면 별다른 아이템도 없는데도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투자를 받으면 큰돈이 생기지만 남의 돈을 받는 데 장점만 있을 리는 없다. 투자를 받으면 그만큼 투자자에게 기업의 지분을 넘겨줘야 한다. 여러 번 투자를 받다가 창업자 지분이 쪼그라들어 경영권을 방어하지 못하고 자기가 일군 회사에서 쫓겨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투자는 큰돈이 오가는 일인 만큼 받는 사람 역시 신중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대학 동아리 형태로 투자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퀘스트 엔진의 기술력이 뛰어나고, <영건 블러드>의 콘텐츠가 재미있어도 합법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려면 뉴퀘스트는 법인이어야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5개월, 그의 손으로 공대에 게임 개발 동아리를 만들고 학교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일하느라 힘든 시기는 있었어도 사람 때문에 고달픈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게 즐겁고, 함께 있어 늘 힘이 되는 존재였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황제국은 잘 알고 있었다.
황제국의 마음 한 켠에는 동아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까지 뉴퀘스트 멤버들은 ‘성공’을 바라고 <영건 블러드>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영건 블러드>를 만드는 게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황제국은 게임이 성공한다는 비전과 믿음을 주었지만, 성공해서 얼마를 벌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진수에게 페라리를 약속했고, 또 그 약속을 지킬 테지만, 페라리조차 일종의 상징일 뿐이었다.
페라리를 약속받은 이진수도 억대 연봉을 목표로 퀘스트 엔진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렴풋한 성공의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성과, 그걸 해내는 성취감과 성장,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 모든 행운이 가능한 이유가 아직 돈 문제가 얽히지 않은 동아리이기 때문이라고 황제국은 생각했다. <삼국지:공성전>의 성공 덕분에 뉴퀘스트는 동아리 수준에서는 돈이 차고 넘쳤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무언가를 함께 만들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동아리를 법인으로, 주식회사로 만들면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분위기와 문화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래서 황제국은 뉴퀘스트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동아리’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 분명한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뉴퀘스트가 앞으로도 개성 있는 게임을 만드는 소규모 인디 게임 집단으로 남을 게 아니라면 이제 조직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였다.
며칠을 고민하던 황제국은 결국 마음을 먹었다. 그는 이광철 교수를 찾아갔다. 매주 이진수와 퀘스트 엔진을 들고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응, 제국이. 어서 와. 혼자 무슨 일이야?”
이광철 교수는 뭔가를 예감하고 있다는 듯 황제국에게 손수 차를 내주었다. 황제국은 잠시 차를 홀짝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광철 교수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황제국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교수님.”
“그래.”
“교수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거 같은데? 또 무슨 도움이 필요하지?”
“기술적인 도움은 아닙니다.”
“그러면?”
“공대 실험실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