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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 소속감

전유진은 빠르게 뉴퀘스트에 녹아들었다. 처음 황제국은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그녀의 태도 때문에 과연 동아리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일 뿐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일을 좋아했고,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 게임의 메인 줄거리는 거인병 혹은 거대 요새 설계도를 빼돌린 변절자를 추격하는 것으로 잡았고, 이제는 만주를 횡단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짜야 할 차례였다.

황제국은 전유진에게도 공대 미디어랩의 시청각실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시청각실을 보자마자 입을 딱 벌렸다.

“우와아아~, 여긴 완전 천국이네?”

“보통 작가는 도서관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동아리 분위기에도 많이 익숙해진 그녀는 이제 황제국과 후배들에게 말을 놓았다.

“물론 대학 도서관 처음 들어갔을 때도 엄청 좋아했지. 그 오래된 책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너무 좋았거든. 근데 나 영화도 좋아해. 여긴 내 두 번째 천국으로 삼아야겠다.”

그녀는 곧장 영화 목록을 살피더니 웨스턴 영화를 닥치는 대로 골랐다. 1930년대 고전 중의 고전인 <역마차>부터 시작해서, 98년 기준 최신작 웨스턴인 <용서받지 못한 자>까지 빠짐없이 골랐다.

“그걸 다 보시려구요? 그보다 스팀펑크 영화를 몇 편 보시는 게 어때요?”

“아니, 우선은 웨스턴부터 제대로 섭렵하려고. 내가 웨스턴 영화 스토리를 잘 모르기도 하고, 뭣보다 우리 게임의 근본은 웨스턴이라고 생각하거든. 만주 웨스턴은 웨스턴의 변형이고, 스팀펑크는 재미를 위해서 차용한 외부 장치잖아?”

“그렇죠. 뿌리는 분명 웨스턴이죠.”

“그러면 일단 웨스턴의 이야기 방식부터 확실히 파악하는 게 우선인 거 같아.”

그녀는 노트를 펼쳐 메모할 준비를 해놓고 39년작 <역마차>를 VCR에 집어넣었다. 흑백 화면이 떠오르자 그녀는 곧 황제국을 잊어버리고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모습은 꼭 진수형 같네.”

황제국은 혼잣말을 하며 시청각실을 나왔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전유진의 역할이고, 그녀의 영역이었다. 작품을 준비하는데 그녀가 선호하는 방법이 있으면 황제국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는 각자 일하는 스타일과 속도를 존중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전문가들이 협업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이 황제국의 역할이었다.

전유진은 이후 며칠을 시청각실에 처박혀 웨스턴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영화에서 참고할만한 주요한 요소들을 메모하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직업과 성격, 관계들을 정리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그녀는 이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국 서부에 관한 각종 자료를 직접 찾아봤다. 마을의 구성과 보안관의 역할, 기차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와 소 떼를 몰고 위험한 서부를 가로질러야 했던 거친 카우보이들, 탐험가들과 폭력배, 매춘부들의 삶까지 가능한 한 꼼꼼하게 살폈다.

다음에는 30년대 만주에 세워졌던 만주국과 중국 군벌들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중국 군벌은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완전히 파악하려면 자료 조사만 몇 달이 걸릴 판이었다. 그녀는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게임에 넣을 수 있는 요소들을 살피려고 애썼다. 그렇게 그녀는 마음속 이야기의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지식을 쏟아부었다.

그녀는 밥 먹고, 수업을 듣는 시간 이외에는 온통 시청각실과 도서관에만 있었다. 뉴퀘스트 게임 개발에 너무나 열심히 임하는 모습에 전유진 자신도 놀랐다. 시험 기간에도 이 정도로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전유진은 뉴퀘스트 멤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비록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들이지만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소속감이었다.

지금까지 대학 어디에서도 내가 이들과 한 식구라는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대화는 하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무언가를 공유하거나 통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뉴퀘스트에서는 달랐다. 안락한 동방과 친근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일할 때는 아주 진지하고, 치열했다. 회의 때는 근거 없이 떠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 구심점에는 황제국이 있었고, 게임이 있었다.

그 점이 충격이었다. 전유진은 지금까지 오직 글이, 문학이 그녀를 잡아주는 유일한 구심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문학 공동체에서 겉도는 자신이 틀렸다고 여겼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

지금껏 그녀는 게임을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재밌게 즐기기는 하지만 그저 한때의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게임에도 문학과 같은 가치가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뉴퀘스트에 합류하고 첫 아이디어 회의와 환영회를 마치고, 그녀의 생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게임은 재미를 위해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했다. 소설을 읽기는 쉽지만, 재밌는 소설을 쓰기란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아는 그녀는 문학과 게임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장르 문학을 ‘문학’의 범주에 넣지 않는 사람들의 편협함에 질리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 역시 게임을 ‘문화’의 범주에 넣지 않는 편협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세계관이 뒤엎어질 만큼의 충격이었다. 전유진은 그동안 게임을 낮춰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뉴퀘스트 멤버들에게 미안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 자신을 발견하고 받아 준 사람들에 관한 고마움이 뒤섞여 그녀 안에서 고화력 에너지로 작용했다. 비록 책으로 출간되는 일은 없겠지만, 전유진은 뉴퀘스트의 스팀펑크 만주 웨스턴 FPS에 최고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어?”

그렇게 며칠을 시청각실과 도서관에서만 보낸 전유진은 제작 회의를 위해 뉴퀘스트 동방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다. 전에는 없던 그녀의 자리가 생긴 것이다.

“나는, 그냥 의자 하나만 새로 놔도 되는데······.”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 게임의 스토리를 책임질 중요한 멤버인데. 자기 자리가 있어야죠. 그리고 선배님한테는 특별한 선물이 하나 더 있어요.”

“선물?”

“짜잔!”

“헉!”

오종석이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천을 마술사처럼 멋지게 걷어냈다. 거기에는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마라톤 2벌식 타자기에요. 새 거는 아니고 중고에요. 그래도 깨끗하고, 잘 작동해요.”

“맙소사······. 그냥 했던 말인데······.”

“제국이 얘가 은근 섬세한 데가 있어요. 언니 준다고 중고 매장 다니면서 상태 좋은 거로 찾아왔더라구요.”

“한번 쳐보세요. 리본도 새로 갈았어요.”

“그래도 될까···?”

전유진은 감격해서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가 종이를 넣고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가늘고 예쁜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렀다. 그러자 레버가 움직이면서 잉크를 머금은 리본을 때렸고, 종이에 글자가 나타났다. 타자기의 리드미컬하고 기계적인 사운드가 기분 좋게 귀를 때렸다.

“어때요?”

“끝내준다! 너무 좋아!”

전유진은 활짝 웃으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황제국은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움직였다.

“그럼, 이제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제작 회의를 시작하자 분위기가 금세 바뀌었다. 전유진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가 스터디한 내용 중 핵심적인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사람들과 공유했다. 게임 속에 등장해야 하는 장소와 그에 맞는 인물들, 어울리는 사건에 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동안 스터디에 치중했던 터라 아이디어는 아직 정제되지 못한 날 것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아이디어는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녀가 던진 아이디어에 관해 얘기 하다 보면 고구마 줄기처럼 새로운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황제국은 스토리에 관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설정과 충돌은 없는지, 전투 구성이 흥미로운지, 그리고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한지 등을 따졌다.

그렇게 아이디어 중에서 좋은 것들로 옥석을 가려서 분별했다. 살아남은 아이디어는 게임 속에서 작은 퀘스트 단위가 될 것이고, 전유진은 그것들을 모아 마치 구슬을 실로 꿰듯이 이야기로 엮어낼 것이다.

“채택하지 않았어도 버리지 말고 꼭 메모로 남겨 두세요. 나중에 상황이 바뀔 수도 있고, 또 언제든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알았어. 잊지 않고 정리 잘해 놓을게.”

전유진은 황제국이 요구하는 문서 정리에도 금세 적응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노트 정리의 달인이었던 그녀에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전까지 뭐가 될지도 모른 채 설정만 쌓고 있던 FPS 콘텐츠는 전유진이 합류하고 나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뉴퀘스트 동방의 자체 ASMR에는 코딩하는 이진수의 기계식 키보드 타이핑 소리에, 전유진의 타자기 타이핑 소리가 추가되었다.

그녀에게도 컴퓨터를 구매해 주었지만, 초벌 원고는 꼭 타자기로 쳤다. 타자로 친 초벌 원고를 연필로 수정사항을 체크하고는 컴퓨터로 옮겨 적었다. 비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전유진이 타자기를 워낙 좋아해서 말릴 수 없었다.

“나는 있잖아. 어쩐지 글은 일단 종이에 적힌 걸 읽어야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는 거 같아서 말이야.”

“어쩔 수 없네요. 선배님 방식대로 하세요.”

콘텐츠 개발에 속도가 붙는 것과 함께, 게임 엔진 개발도 착착 진행 중이었다. 이진수는 렌더링 엔진에 이어 물리 엔진을 어느 정도 개발한 상태였다. 물리 엔진은 물체 사이의 충돌을 감지하고, 그 효과를 계산할 때 필요하다. 특히 FPS에서는 총알의 움직임과 목표의 명중 판정이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했다.

그런데 황제국은 게임 엔진을 완벽하게 만들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는 이진수에게 물리 엔진을 잠시 멈추고 애니메이션 엔진 작업을 먼저 해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아직 무, 물리도 다 안 됐는데? 벌써?”

“네, 흐름을 끊는 것 같아 죄송한데 미진한 부분은 나중에 보충할 수 있잖아요. 일단은 기본적인 충돌 감지를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면 되니까 애니메이션 부분을 해 주세요. 코어 시스템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고 있구요.”

“할 수는 있는데, 왜, 왜 그래야 하지?”

평소 황제국의 의견을 머릿속으로 점검해 보고 토를 달지 않는 이진수가 물었다. 작업의 흐름을 끊는 일인 만큼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게임 엔진 완성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 브브.”

“프로토타입 제작이요.”

“······.”

이진수가 입술을 찌그러뜨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게임 개발 과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게임을 개발할 때는 최대한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처음 아이디어가 맞았는지,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 될 수 있는지 검증할 수 있다.

그런데 뉴퀘스트의 FPS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게임 엔진을 함께 개발하다 보니 콘텐츠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쌓이고 있는데도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가 없었다.

엔진을 완성하고 콘텐츠를 엔진에 붙여서 하나의 게임이 단번에 탄생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검증은 제작 단계마다 필요하고, 첫 검증은 빠를수록 좋았다.

이진수의 뇌에서는 효율을 위해 하던 걸 마저 해야 한다는 로직과 전체 게임 개발을 위해 우선 구동만 가능하게 만들자는 로직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였다.

그는 이대로 개발을 끌고 가서 완벽하게 끝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리더인 황제국이 무엇을 바라고, 왜 바라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아, 아, 알았어. 그렇게 해, 해, 해, 해볼게. 드드득.”

“고맙습니다, 선배님!”

이진수는 방향을 틀어 잠시 물리 엔진을 놔두고 애니메이션 파트로 넘어갔다. 황제국은 주인공 장건과 메인 빌런인 변절자를 3D 모델링으로 대충 만들었다. 이제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들을 검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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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겜의 제국 1998 - 갓겜의 제국-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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