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회 - 입금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황제국은 탈진하기 직전이었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켜 손정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황제국의 손바닥이 젖어있는 것을 느낀 손정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미 결정은 내려졌다.
“미스터 황과 같은 젊은 인재와 파트너를 맺게 되어 다행입니다. 번거롭겠지만 내일 오전에 다시 와주세요. 서류 작업을 진행할 변호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야말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황제국은 비틀거리지 않게 최선을 다하며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르네상스 호텔 로비에서 소파 위에 풀썩 쓰러졌다. 방금 전 그는 현금 15억을 손에 넣었다. 뉴퀘스트가 진짜 게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줄 돈이었다.
IT 거인 손정인의 투자를 끌어냈다는 사실이, 그러면서 지분과 경영권을 확실히 지켜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뿌듯했다. 황제국은 간신히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황제국은 곧바로 손정인의 스위트 룸으로 올라갔다. 손정인은 한국에서의 일 처리를 도와줄 법률 사무소를 선정해 두었다. 황제국은 윤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투자 계약서부터 지분 정리, 입금까지 책임지고 맡아 줄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윤 변호사가 황제국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손정인이 말했다.
“나는 이런 거로 시간 끄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처리할 겁니다. 그리고 입금 후 적당한 시간에 우리가 뉴퀘스트에 투자했다는 기사가 나갈 겁니다. 미스터 황이 경험이 없을 테니 경제 매체 쪽은 변호사님께서 적절하게 조율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경제면에 나올 거라는 말을 들으니 황제국은 이제야 현실감이 들었다. 소프트펀드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면 순식간에 경제신문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동안 황제국이 말할 수 있는 창구는 게오동 게시판과 PC 게이머 잡지 정도였는데, 순식간에 판이 바뀌는 것이다. 황제국은 흥분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큰일을 치렀으니 잠시 산책이나 갈까요? 근처에 조선 시대 무덤이 있다고 들었는데, 가본 적 있습니까, 미스터 황?”
“선정릉 말씀이시군요.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황제국과 손정인은 둘이서 잠시 선정릉을 걸었다. 수많은 최첨단 IT 기업이 들어서게 될 테헤란로 바로 근처에 조선 시대 왕릉이 자리하고 있었다. 복잡한 도심에서 선정릉으로 한 걸음 들어오면 어느새 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선정릉을 걸었다. 황제국은 투자로 흥분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손정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 줄 알지만, 난 어떤 면에선 조선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손정인이 이어서 말했다.
“기업을 경영해보니 10년을 살아남기도 아주 힘듭니다. 나 역시 목표가 큰 만큼 얼마나 많은 역경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기업 하나 꾸리기도 이런 데 나라를 5백 년이나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조선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맞습니다.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긴 세월을 지켜냈습니다.”
재일교포 3세인 손정인은 할아버지가 살았던 나라의 오래된 왕릉을 감회에 젖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알게 모르게 일본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자랐다. 그 모습을 보자 스튜디오 X의 재일교포 개발자 야마모토도 생각났다.
“미스터 황, 나는 말입니다. 조선왕조만큼 오래 가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10년, 20년, 30년이 아니라 100년, 200년, 300년이 가는 기업 말입니다.”
“저도 100년은 몰라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즐기는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게임이란 기술 개발이 아주 빠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전 아직도 어릴 때 했던 게임을 가끔 합니다. 좋은 게임은 시대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문화예술에는 클래식이라는 게 있죠.”
“그렇습니다. <영건 블러드>를 그렇게 만드는 게 꿈입니다.”
“미스터 황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내 100억을 단칼에 뿌리쳤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하하하!”
거절당한 손정인이 오히려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황제국은 민망한 듯 목덜미를 매만지며 함께 웃었다. 이번에는 황제국이 물었다.
“투자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투자금 사용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나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보다 미스터 황이 그 돈을 더 가치있게 쓰는 방법을 더 잘 알겠죠. 나는 게임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니까. 다만 분기별로 뭘 했는지, 앞으로 뭘 할 예정인지 계획 정도는 간단히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그리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윤 변호사 통해 얘기하세요. 우리는 법률 사무소 말고도 세무회계 사무소와 계약되어 있습니다. 게임 개발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전문가의 손을 많이 빌리도록 하세요. 그편이 빠르고 확실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도움 좀 빌리겠습니다.”
“미스터 황이 빨리 성장해야 나한테도 이익입니다.”
손정인은 당연하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황제국은 투자와 동시에 스타트업 액셀레이터의 도움을 받는 느낌이었다. 실리콘 밸리에는 인터넷 창업 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와 같이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돕는 액셀레이터가 등장했다.
이들은 스타트업에 투자는 물론, 창업자에 대한 멘토링, 사업 전략 수정, 제품 개발, 마케팅, 재무회계 등등 전 분야에 걸쳐 컨설팅해준다. 수많은 투자와 창업 과정을 통해 누적된 노하우를 창업자에게 전수하는 셈이다.
손정인의 투자는 스타트업 액셀레이터와는 다르지만 황제국에게는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제의 협상에서 황제국은 세상을 더 크게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변호사를 통한 법률 자문이나, 재무회계에 관한 도움 역시 꼭 필요했다. 오종석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초짜 학부생에 불과했고, 회계나 세금 처리는 잘 모르고 진행했다간 자기도 모르게 경제사범이 될 수도 있다.
손정인의 말대로 믿을 수 있고, 유능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 이런 일은 돈이 있어도 누가 믿을 만한 전문가인지 가려내기 어려운데, 손정인의 소개라면 믿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손정인은 깜빡 잊을 뻔했다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명함 케이스였다.
“혹시 경영에 대해 조언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그냥 인생 선배가 필요하면 메일 주세요.”
그는 명함을 꺼내 황제국에게 건넸다. 황제국은 명함을 받고는 민망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아직 명함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디자인하는 친구가 캐릭터 디자인하느라 너무 바빠서.”
“괜찮습니다. 난 오히려 벤처 기업의 그런 점이 좋아요. 한쪽으론 정말 프로페셔널인데, 다른 쪽으로는 정말 어설프거든. 그 시절이 정말 좋은 겁니다. 하하하하!”
손정인은 기분 좋게 웃었다. 100억으로 뉴퀘스트를 사실상 인수하려다 실패한 아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더 좋은 기회가 반드시 또 온다는 것이 손정인의 투자 철학이기도 했다.
“그럼 열심히 해 주세요. 기대가 큽니다.”
“고맙습니다.”
선정릉 산책을 마친 손정인은 차를 타고 공항으로 떠났다. 테헤란로에 혼자 남은 황제국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상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지갑에는 이제 손정인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 계약서 작성을 마치면 뉴퀘스트 통장에는 15억이 들어올 것이다.
‘뭐부터 해야 하지?’
막상 모든 일이 성사되자 황제국은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는 평일 아침의 테헤란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S대 공대 48동 앞이었다. 황제국은 피식 웃으면서 계단을 걸어 올라가 312호로 들어갔다. 안에서 이진수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황제국의 CPU에 전력이 공급되듯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의 머릿속에서 당장 해야 할 명령어들 수십 개가 죽 나열됐다.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이제는 뉴퀘스트 ‘직원’이 된 멤버들에게 투자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진수는 아직 황제국이 들어온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진수 옆에는 반쯤 마신 단지 우유가 놓여 있었다. 황제국은 조용히 우유를 다른 곳에 치우고, 그 자리에 손정인의 명함을 올려두었다.
4분 17초 후, 이진수가 우유를 마시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우유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를 더듬다가 명함을 집었다.
명함을 쳐다본 이진수는 3초간 고개를 갸웃하더니 도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러다 8초 후, 다시 깜짝 놀라 명함을 바라보았다.
孫正人(손정인).
명함의 이름을 다시 확인한 이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제국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되, 되, 된 거야?”
“네, 형.”
“얼마나?”
“15억이요.”
“15억! 그, 그 정도면 서버로 집을 지을 수도 있겠는데?”
이진수가 상기된 표정으로 먼저 손을 들어 올렸다. 황제국도 힘차게 그의 손을 마주쳤다. 짝! 소리가 시원하게 울렸다.
황제국은 뉴퀘스트 사람들을 모아놓고 투자 유치 성공 소식을 알렸다. 모두들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15억!!! 15억이라고?!?!?!?!”
오종석은 황제국을 얼싸안고 둥실둥실 춤을 추었다. 모두가 동참했다. 동방에서 때 이른 강강수월래가 벌어졌다. 모두와 기쁨을 만끽한 황제국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모두 여러분이 믿고 기다려주신 덕분이에요.”
“무슨. 우리야 그냥 하던 일 하면서 기다린 거뿐인데.”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 돈을 한 방에 마련했어?”
황제국은 손정인과의 협상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다들 손정인이 100억을 제시했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100억을 그 자리에서 몇 분 만에 결정했다고?”
“이건 통이 큰 정도가 아닌데? 그냥 스케일이, 아니 세계관이 다른 거야. 우리랑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거라구.”
“칫, 돈 좀 있다고 우릴 그냥 꿀꺽 삼키려고 했단 말야?”
“좋게 생각해. 그만큼 우리 뉴퀘스트와 <영건 블러드>를 유망하게 본 거니까.”
“그럼 그럼.”
손정인을 만난 후 손정인의 팬이 되어버린 오종석이 새삼 감탄했다. 반면 차현주는 약간 기분 나빠했다.
“자, 이제 큰 산을 넘었으니 앞으로 달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큰돈을 투자받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우린 여전히 여기서 예전과 똑같이 일할 거예요. 다만 이제부터 게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할 겁니다.”
당장 퀘스트넷 서버를 구축하고, 3D 모델러를 늘리고, 컷신마다 등장할 성우들 목소리도 녹음해야 했다. 황제국은 엔진으로 게임 콘텐츠를 만들 프로그래머를 고용할 것도 고려했다.
“그래도 투자를 받았는데 월급은 좀 올려야겠죠? 매달 100만원씩 드리겠습니다!”
“헐, 진짜???”
“네, 여러분이 해주시는 일이 비하면 솔직히 이것도 아주 적은 돈인데 우리가 아직 매출이 전혀 없잖아요. 제대로 돈을 벌 때까지는 당분간 이 정도로 할게요.”
“무슨 소리, 대학생한테 100만원이 어디야?”
돈 100만원에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웃었다. 황제국은 그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았고, 고마우면서 또 미안했다.
지난 여름 방학 동안 그들은 방학을 완전히 반납하고 <영건 블러드>에 올인했다. 월급 100만원으로는 턱도 없는 보상이었지만, 투자를 받자마자 창고를 활짝 열 수는 없었다. 그래도 98년 대졸 초임 평균이 125만원인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액수였다. 잔치는 <영건 블러드>가 제대로 성공한 이후로 미뤄 둘 생각이었다.
황제국은 광화문에 있는 윤 변호사의 법률 사무소에 찾아갔다.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사무실에서 윤 변호사는 친절하게 투자 계약서 조항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다.
“신주 발행에 따른 새로운 주주 명부를 다시 확인해 주세요.”
[ 뉴퀘스트 주주명부 ]
1. 황제국 13,600주 - 59.13%
2. 소프트펀드 3,000주 - 13.04%
3. 이진수 2,400주 - 10.43%
4. 전용선 1,600주 - 6.9%
5. 오종석 800주 - 3.47%
6. 차현주 800주 - 3.47%
7. 전유진 800주 - 3.47%
투자를 통해 액면가 1,000원짜리 주식이 50만원으로 인정되었다. 황제국이 보유한 주식은 무려 68억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장부상의 가치일 뿐이다. 이제 그는 소프트펀드와 합의한 미래가치 이상으로 회사를 키워야 한다.
변경된 주주 명부를 보니 황제국은 손정인과의 협상 때가 생각났다. 그가 제시한 100억에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아찔함이 다시 몰려왔다.
다행히 소프트펀드가 제시하는 계약서에는 연대보증이나, 투자금 조기 상환 같은 창업자에게 불리한 독소 조항은 없었다. 오히려 황제국이 보기에 너무 창업자에 유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황제국이야 투자금을 한 푼도 헛되게 쓸 마음이 없지만, 세상 모든 창업자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새삼 이런 투자를 몇 분 만에 결정한 손정인이 다르게 보였다. 또한 소프트펀드에게 뉴퀘스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15억을 투자하지만, 사실 소프트펀드에게 우리는 수많은 투자처 중 ‘원 오브 뎀(one of them, 집단 속에 묻혀 있는 하나)’일 뿐. 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중요성은 한참 낮다.’
황제국은 이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소프트펀드의 투자는 뉴퀘스트와 소프트펀드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다. 뉴퀘스트는 소프트펀드가 한국에서 투자하는 첫 번째 기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황제국은 또 다른 책임감이 느껴졌다. 뉴퀘스트가 크게 성공한다면, 소프트펀드 뿐 아니라 국외의 다른 투자자들도 앞으로 한국 벤처에 눈을 돌릴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뉴퀘스트와 황제국에는 소프트펀드의 투자 실패 사례로 항상 꼬리표가 붙을 것이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검토를 마치고 윤 변호사가 황제국에게 만년필을 내밀었다. 황제국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기업가치 100억에 투자금 15억을 더한, 무려 115억짜리 서명이었다.
창업과 투자 유치는 생애 처음인 만큼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삼국지:공성전>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황제국의 손길에 따라 만년필에서 잉크가 흘러나와 서류 위에 길을 만들었다. 투자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자 황제국 역시 새로운 길 위에 들어섰다.
“수고하셨습니다. 투자금은 오늘 중으로 입금될 겁니다. 입금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기업 명칭과 게임 타이틀의 상표 등록은 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회사 로고가 나오지 않아서요.”
“CI(Corporate Identity, 로고 등 기업 정체성과 브랜드를 담은 시각적 상징물)가 없더라도 이름이 있으면 상표 등록은 먼저 하셔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등록 우선주의라서 만약 누가 ‘뉴퀘스트’ 이름을 먼저 등록해 버리면 정작 우리가 사용에 제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네요.”
“네, 우선 회사 이름은 ‘뉴퀘스트’와 게임 제목인 ‘영건 블러드’ 먼저 상표 등록을 진행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희 법률 사무소에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관리하는 변리사님도 계신대, 저희가 맡아서 진행할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외에 특허나 디자인 등도 출원하실 게 있으면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투자 소식이 나가기 전에 관리하는 게 좋습니다. 자칫하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먼저 등록해서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일이 많네요.”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요.”
윤 변호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이마의 주름만 봐도 수없이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았다. 황제국은 우선 상표 출원을 요청하고 게임 엔진 특허와 디자인 등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을 정리해 전달하기로 했다.
확실히 창업 이후에는 게임 개발 외에도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았다. 게임 개발처럼 재밌는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창작물은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행히 손정인의 투자를 받으면서 꼭 필요한 전문가 집단을 만날 수 있었다. 황제국은 마치 그의 뇌에 외장 CPU를 추가로 장착한 느낌이었다. 15억의 투자금만큼이나 든든한 느낌이었다.
투자금은 오후 늦게 입금되었다. 황제국은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오종석과 은행으로 달려갔다.
입금액 1,500,000,000.
“야, 제국아. 이거 진짜 맞는 거지. 영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진짜 15억 맞지?”
오종석은 15억이 맞는지 계속 숫자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벌써 성공한 듯 감격에 잠겼다. 반면 황제국은 입금을 확인하자 오히려 냉정을 되찾았다. 돈의 무게가 느껴졌다. 큰 투자금은 날개가 되어 그를 높이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놓아버리면 추락은 한순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황제국은 곧장 랩실로 돌아가 전용선, 이진수 선배들과 퀘스트넷 서버 구축 논의를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멀티 플레이를 위한 퀘스트넷을 구축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