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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회 - 사출도(四出道)

세계관은 모든 RPG의 기본이다. 끝없이 플레할 수 있는 MMORPG에서 세계관은 전투 시스템 이상으로 중요하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혼자 칼 들고 싸울 수는 없다. 핵심 콘텐츠인 전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투가 벌어지는 기반이 될 ‘세계’가 필요하다. 세계관은 게이머를 현실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게이트와 같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인식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세계관이 필수다.

아직 손 봐야 할 구석이 있었지만 반자동 전투 시스템은 이제 뼈대가 갖춰졌다. 그렇지만 게임을 떠받쳐 줄 세계와 세계관이 없으면, 전투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재밌는 게임을 만들 수 없었다.

흥미로운 전투 시스템은 재밌는 게임을 완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캐릭터가 싸우려면 싸우는 이유가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는 명분은 MMORPG에서도 중요하다.

게임 안에서 궁극적으로 캐릭터가 추구하고 갈구하는 것, 쟁취하려는 목표가 필요하다. 게임 초반 낮은 레벨에서는 그저 싸우고 아이템 얻고, 경험치 먹고, 레벨 올리며 강해지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그렇지만 단편적인 성장의 재미는 오래가지 않는다.

만약 ‘강해지는 것’ 그 자체가 게임 내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면, 게임은 무한 생존 경쟁, 레벨 경쟁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것 역시 게임 세계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잘만 구성하면 크게 성공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98년으로 돌아오기 전, <길드&파이트> PD로 일할 때 사장이 요구했던 방식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황제국은 아직도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과거의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그걸로 되겠어?”

황제국이 회사에서 과감한 결정을 내릴 때면 <길드&파이트> 업데이트 PT에서 들었던 남현진 사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옛날의 보스가 사업을 하면서 매출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고 뭐 하고 있냐고 조롱하며 비웃는 듯했다.

뉴퀘스트 창업 이후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이제는 미국에서도 주목받는 게임 개발사가 되었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매 순간 ‘더 쉬운 길로 가자’는 유혹이 황제국의 마음속에서도 속삭였다.

<어둠 속으로> 제작을 결정하고 나서 황제국은 꿈속에서 끔찍했던 그날의 PT 장면을 다시 마주했다. 남현진 사장이 게임이 망해 회사가 위험해지지 않겠냐고 집요하게 황제국을 추궁했다. 하워드와 회사 재정 상황을 여러 차례 검토 후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황제국은 꿈속에서 쩔쩔매다가 잠에서 깼다.

잠시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헷갈리던 황제국은 자기가 팔로 알토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식은땀까지 흘렸지만 황제국은 오히려 웃었다.

“다행이네. 제대로 가고 있어.”

어려운 결정을 내리거나,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남현진 사장은 황제국의 판단에 근거를 제시하라고 공격적으로 몰아세우고, 대놓고 조롱했다. 그러면 황제국은 옛날의 그로 돌아갔다. 남현진 사장은 진리의 재판관이었다. 감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국은 그 꿈이 여전히 자기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약한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렵게 이룩한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운 나머지 남현진 사장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것뿐이었다.

황제국은 약한 자신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안도했다. 그만큼 그가 처음 98년으로 돌아왔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황제국도 그가 뉴퀘스트를 얼마나 성장시키고,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몰랐다.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잘 흘러왔지만 그의 그릇이 글로벌 게임 회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회사가 커질수록 버는 돈의 단위가 달라지고,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숨어있던 불안감이 이렇게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불안함을 억지로 떨쳐내려 하지 않았다. 그가 98년으로 돌아왔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했듯이, 떠오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불안하다는 것은 그만큼 도전적인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그는 불안함이 오히려 고마웠다.

물론 이번에도 황제국이 옳았다. <어둠 속으로>는 E3에서 호평받고, 최고의 그래픽으로 선정되어 뉴퀘스트가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였다.

“나 불렀어? 회장님?”

“네, 들어오세요.”

전유진이 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틈으로 고개만 쏙 내밀고 물었다. 황제국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전유진이 익숙하게 구석 탁자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어 먹으며 소파에 앉았다. 황제국이 물었다.

“요즘 어때요?”

“나? 나야 별일 없지. 예전에는 하루하루 새로운 맵 만들고 다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유저 데이터 보는 게 일이야. 지금도 월드컵에 맞춰서 축구장 맵 데이터 보다 왔는데, 다들 미니 축구에만 몰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플레이 데이터가 별로 없네?”

“일은 할 만하세요?”

“솔직히 처음에는 데이터 들여다보는 게 무슨 암호 같아서 영 어색하고 별로였어. 알잖아? 나 완전 문과 체질인 거. 맥락 있는 텍스트가 아니면 일단 머릿속에 입력이 잘 안된단 말야. 태권 선배 붙들고 데이터 읽는 법 배우느라 한참 걸렸어. 근데 이게 또 조금 익숙해지니까 슬슬 어떤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러니깐 좀 재미가 생겼어.”

“글은 어때요? 요즘은 소설 안 쓰세요? 누나가 쓴 소설 읽어 본지 오래됐는데.”

“소설? 없어. 재작년에 영건이 소설 탈고하고 나서는 거의 못 쓰고 있어. <젤리 러쉬> 일에 적응하느라 한참 바빴더니 나도 까먹고 있었다.”

뉴퀘스트는 <영건 블러드> 관련 두 권의 소설책을 출간했다. 하나는 <영건 블러드>의 스토리를 상하 두 권으로 나눈 소설책이고, 이수련의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가 또 한 권 있었다. 전유진은 스핀오프를 직접 썼고, 3만 부 이상 판매되며 작가의 꿈을 이뤘다. 그녀의 책은 S대 도서관 대여 순위 상위권에 올랐고, 전국 도서 대여점에서도 인기였다.

“대학 때는 소설 읽고 쓰는 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는데. 정말 신기하게 딱 졸업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쉽지 않네. 와, 이럴 수가! 소설을 써 본 게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라니.”

전유진은 새삼 놀랍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국은 그녀의 눈빛에 드러나는 진한 아쉬움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이야기를 쓰고 싶으세요?”

“나? 그야 당연하지. 방금 전까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쉬고 있는지 몰랐어. 어쩐지 요즘 사는 게 왜 이리 허전할까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 오늘부터는 퇴근하고 한 시간이라도 조금씩 다시 써보기 시작해야 겠다. 회장님이 사 준 타자기 집에 있거든. 리본에 잉크 다 말라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지 말고 회사에서 쓰는 건 어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요? 회사에서? <영건 블러드> 새로운 스토리가 필요해? 부분 유료화 상당히 효과가 괜찮다더니 혹시 다음 편 만들어?”

전유진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황제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영건 블러드> 얘기가 아니에요. 전혀 다른 걸 생각 중이에요.”

“전혀 다른 거?”

“이리로 와 보세요.”

황제국은 전유진을 컴퓨터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 네이트&올슨 콤비가 만든 반자동 전투 시스템을 보여 주었다.

“오! 이거 괜찮다.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 강제로 타겟을 지정해 줄 수도 있어요.”

전유진은 기사로 검을 휘두르며 재밌어했고, 황제국은 반자동 전투 시스템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때요? 재밌어요?”

“응. 싸우는 느낌이 재밌어. 내가 클릭할 때만 공격하니까 진짜 싸우는 느낌도 나고. 이런 걸 손맛이라고 하나? <영건 블러드>처럼 조준이 어렵지도 않고.”

전유진은 뉴퀘스트에서도 대표적으로 게임 컨트롤에 미숙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도 금방 조작법을 익히고 흥미를 느낄 정도라면 전투 난이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황제국은 잠시 전유진이 싸우는 장면을 지켜봤다. <어둠 속으로> 만큼은 아니지만 반자동 시스템도 싸우다가 불리하면 간격을 벌려 체력을 회복하고, 상황에 맞게 스킬을 사용하고, 강제 타겟팅으로 쉬운 상대부터 상대하는 등 다양하게 싸울 수 있었다. 전유진은 그냥 달려들어 싸우는 것밖에 못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어 보였다.

“이 전투 시스템으로 새로운 MMORPG를 만들 생각이에요. MMORPG는 보통 RPG보다 훨씬 방대한 스토리와 세계관이 필요해요. 선배님한테 이걸 맡겨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정말???”

게임에 열중하던 전유진이 황제국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어찌나 급하게 돌렸는지 목에서 뚜두둑 뼈 소리가 났다.

“네, 그런데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요. 이걸 지켜 주셔야 해요.”

“뭔데? 내용이야 당연히 디렉터의 말씀에 따라야지. 어떤 걸 생각하고 있어?”

전유진이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의 눈빛으로 황제국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이토록 생기가 도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우선 컨셉은 동양 판타지에요.”

“동양 판타지? 서양 중세가 배경이 아니라?”

“서양 중세 판타지는 우리가 아니라도 개발하는 회사가 많으니까요. 또 미국에서 <어둠 속으로>를 개발하고 있기도 하구요.”

“아, 맞다. 하긴 그렇지.”

“그래서 우리는 동양풍으로 만들어 보려구요. 동양 판타지로 세계에서 히트하는 MMORPG를 예전부터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회장님한테 그런 꿈이 또 있었구나. 몰랐어. 그럼 뭔가 생각해 놓은 시나리오가 있어?”

“컨셉 정도만요. 누나 부여의 사출도(四出道) 기억하세요?”

“부여 사출도? 그거 뭐였지? 부여면 마가(馬加), 우가(牛加), 구가(狗加), 저가(猪加) 그건데?”

“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요. 수능 본지 한참 됐는데.”

“나 아직 안 죽었거든?”

전유진이 뻐기듯 말하다 웃었다. 황제국이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부여는 연맹 국가였어요. 세력이 큰 부족이 가축의 이름을 땄죠. 말은 마가, 소는 우가, 개는 구가, 돼지는 저가. 이렇게 네 개의 큰 부족이 있고 중앙정부는 왕도에 사출도라는 길을 내서 각 부족 세력과 연락을 취하며 나라를 다스렸다고 알려져 있어요.”

“응, 맞아. 사출도가 동서남북으로 길이 나 있었다고 했던 얘기 기억나. 그럼 우리는 부여로 게임을 만드는 거야? 근데 사료가 거의 없을 텐데?”

“아니요. 역사에 기반한 게임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거기서 모티프만 가져오는 거죠. 아주 먼 고대에 아사달이라는 거대한 대륙이 있었어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크고,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땅이죠. 이 땅에는 크게 네 개의 세력이 있는데 각각 자신의 부족을 상징하는 수호 동물이 있어요.”

“그게 말, 소, 개, 돼지?”

“동물은 게임에 맞게 우리가 바꿔야겠죠? 말이나 소 정도는 괜찮은데 개나 돼지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호랑이, 늑대, 곰 같은 위협적인 동물도 좋고, 아니면 매처럼 하늘을 사는 새나, 아니면 용처럼 상상속의 동물도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그게 뭔데?”

“각각의 부족은 부족 수호 동물의 힘을 빌려서 쓸 수 있어요. 가령 말을 섬기면 빨리 달릴 수 있고, 소를 섬기는 부족은 체력이 엄청나게 강하겠죠. 호랑이나 늑대는 용명하고 공격력이 좋고, 매나 용은 신성한 힘을 발휘하는 식으로요. 높은 레벨에 오른 전사는 수호 동물의 요소를 이용해서 신체 일부를 변신해서 싸울 수도 있어요. 그러면 힘이 아주 강해지죠.”

“오~, 도술이나 법술처럼?”

“비슷해요. 동양풍의 배경에 그런 신비로운 느낌을 가미하는 거예요. 그리고 적과 싸울 때는 방금 했던 반자동 시스템으로 전투가 벌어지고요. 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사실은 고대 아사달이라는 비밀스러운 땅에 늑대를 섬기는 부족의 부족장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늑대 가죽과 뼈로 만든 갑옷을 입고, 늑대 이빨과 발톱을 몸 이곳저곳에 부적처럼 두르고 있어요.”

황제국의 말에 전유진은 마치 눈앞에 늑대 전사가 있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가죽과 미늘을 덧댄 갑옷을 입고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날카로운 인상의 늑대 부족 전사가 떠올랐다. 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멋지다! 분위기가 전혀 다를 거 같아. 그럼 그 부족 전사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어? 네 부족은 서로 싸우는 건가? 아니면 다른 거대한 적에 맞서 협력하는 사이야? 주인공은 누구야?”

전유진이 빠른 속도로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자 황제국이 전유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이제부터 누나가 만들어야죠.”

“아아, 그래! 재밌겠다. 진짜 재밌을 거 같아. <영건 블러드>도 한국인이 등장하는 만주 이야기였으니까 RPG도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지. 기획이 좋네. 역시 우리 회장님이야. 당장 내일부터 시작할까?”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조건이 하나 더 있어요.”

“뭔데? 다른 설정이 있어?”

“아니요. MMORPG 게임 세계관과 스토리는 누나 혼자 할 수 없어요. 반드시 팀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 조건이에요.”

“스토리를? 팀으로?”

전유진이 미간을 구기고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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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겜의 제국 1998 - 갓겜의 제국-2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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