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회 - 굿바이 1998
뉴퀘스트는 스키 엠티 계획을 짰다. 90년대는 한국에 스키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때다.
주말이면 스키를 타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숙소를 잡기도 힘들었다. 이미 대학은 겨울 방학을 시작했으니 그들은 주중에 스키장으로 떠나기로 했다.
“1박 2일은 스키 몇 시간 타고 저녁 먹고 밤에 술 마시면 끝나. 둘째 날은 타기도 애매하고. 가는 데도 한참 걸리는데 이왕 스키장 갈 거면 2박 3일 가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배님.”
전용선이 제안하자 오종석이 전용선 손을 덥석 잡았다. 뉴퀘스트 멤버 중에서 표면적으로 스키를 타 본 사람은 그 두 사람뿐이었다.
황제국은 이전 생에 스키를 타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을 뻔히 아는 오종석이 있어서 타봤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근데 그동안 퀘스트넷은 어쩌죠? 2박 3일이면 서버 상태를 체크할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요.”
“물론 2박 3일이나 랩실을 비울 수는 없지. 그래서 내가 이럴 때 쓰려고 비장의 카드를 아껴놨어.”
“아, 그러면?”
“응, 태권이한테 2박 3일 맡기고 그동안 서버 관리 잘하면 백업으로 채용하려고.”
“실전 채용 면접인가요?”
“생각하기에 달렸지. 물론 가기 전에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은 싹 알려주고 갈 거야. 걱정 마. 태권이 걔가 입이 싸서 그렇지, 시키는 일은 잘해. 시키는 일은.”
전용선이 시키는 일을 두 번 강조했다. 전용선이 스키 엠티에 의지를 불태우자 황제국도 수긍했다. 아직까지 특별한 장애가 발생한 적은 없었고, 주중인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깐깐한 전용선 선배가 인수인계를 대충 할 리도 없었다.
그들은 12월 30일 스키장으로 떠나기로 했다. 스키장에서 98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계획이었다.
약속한 12월 30일 아침, 뉴퀘스트 멤버들은 아침 일찍 공대 주차장에 모였다. 황제국과 전용선이 렌트카 업체에서 고급 밴을 렌트해 왔다. 황제국은 운전은 할 줄 알지만 아직 면허를 따지 못했기 때문에 전용선이 학교까지 조심조심 몰고 왔다.
‘다음 프로젝트 들어가기 전에 면허부터 따야겠다.’
아무래도 차를 몰 수 없으니 어딜 가려면 불편했다. 앞으로 서울과 경기권은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촘촘해지겠지만, 아직은 삽도 뜨지 않은 노선이 많았다.
“와~, 통 크게 대형 밴을!”
오종석은 고급 밴을 보자 맘에 들어 했다. 다들 차가 신기해서 구경하기 바빴다.
“차는 구경하는 게 아니라 타는 거다. 언능 가자.”
전용선의 재촉에 모두 짐을 뒤에 싣고 밴에 올랐다. 3열짜리 차에 운전은 전용선, 보조석은 황제국이 앉았다. 전유진이 제일 뒤로 가자, 차현주가 얼른 따라가서 전유진 옆에 앉았다. 오종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2열에 이진수와 함께 앉았다.
“태권아. 서버 잘 보고 있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고!”
“걱정 마십쇼, 선배님.”
“뭔가 평소랑 다르면 일단 전화해. 함부로 손대지 말고. 일단 전화부터 해.”
“넵넵, 알겠슴다. 자자, 이제 출발. 오라이~, 오라이~~~.”
박태권이 주차장에 다른 차도 없는데 온갖 수신호를 했다. 전용선은 막상 박태권에게 맡기고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기어를 바꾸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주차장을 벗어났다.
“출발~!!!!!”
“기다려라, 스키장~!!!!!”
뉴퀘스트는 고급 밴을 타고 강원도 용풍 스키장으로 향했다. 전유진이 믹스 테이프를 만들었다며 내밀었지만 오종석에게 커트 당했다.
“누님은 죄다 유희철 노래만 해오셨을 거잖아요?”
“퓨, 퓨처 노래도 있어.”
전유진이 소심하게 대답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황제국이 라디오를 틀자 때마침 신나는 댄스곡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하늘을 봐! 새하얀 눈이 내려와~!”
스키장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모두 목청껏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이 밴이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잔뜩 샀다. 알감자, 버터구이 옥수수, 반건조 오징어, 호두과자, 핫도그에 소시지, 오뎅까지 메뉴를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는 듯 간식을 싹쓸이했다.
이진수는 구운 감자에서 올라온 김 때문에 안경에 온통 서리가 꼈다. 알감자 한 알을 한 입 먹은 이진수는 뜨거워서 입안에서 감자를 굴리다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진수는 선 채로 알감자 한 통을 다 먹고는, 한 통을 또 사서 밴으로 돌아왔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뉴퀘스트는 뻥 뚫린 길을 달려 강원도에 진입했다. 스키장이 가까워지자 스키복과 스키 장비 렌탈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키복까지 스키장에서 빌리려면 비싸요. 종류도 별로 없고. 스키복은 여기서 빌리고, 장비만 스키장에서 빌려요.”
회사 재정은 빵빵하지만 쓸데없는 지출은 참지 못하는 오종석의 제안에 스키복은 렌탈샵에서 빌리기로 했다. 오버핏에, 형광색으로 알록달록한 스키복 사이에서 멤버들은 맘에 드는 스키복은 물론, 고글과 스키 장갑까지 필요한 장비를 빠짐없이 빌렸다.
스키복을 빌린 뉴퀘스트는 스키장이 있는 용풍 리조트에 들어갔다. 전용선이 차를 주차장에 멈추자 멤버들은 먼저 입구에 있는 호텔에서 체크인을 했다. 스키장 성수기였지만 다행히 취소된 방을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 방은 두 개를 빌려 남자들이 4인실에, 여자들이 2인실에 들어갔다.
“우와~~. 뷰가 미쳤어요, 언니!”
차현주가 방에 있는 테라스로 나가자 스키 슬로프가 한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눈이 쌓인 스키 슬로프에서 개미보다 작은 사람들이 빠르게 스키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오, 진짜 뷰가 좋네.”
“뭐야? 어딜 불쑥 여자 방에 들어와. 미쳤어! 미쳤어!”
“아! 아! 나갈게! 나갈게!”
차현주가 방 구경을 온 오종석의 등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매섭게 때렸다. 오종석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도망쳤다. 전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좋을 때네······.”
호텔 뷔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멤버들은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러 매표소로 향했다. 여섯 명의 리프트권과 스키 장비 렌탈 비용에 전유진은 깜짝 놀랐다.
“우와, 무슨 리프트권이 이렇게 비싸? 그냥 걸어 올라가면 안 돼?”
“누님, 그럴 수 있다면 제가 굳이 이걸 왜 사겠습니까? 꼭 필요해요. 절 믿으세요.”
“그래? 근데 난 하나도 모르는데 초급 강좌 너무 비싼데? 정말 들어도 돼?”
“2박 3일 동안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회사가 전부 부담할 거예요.”
“우리 회사 진짜 좋은 회사구나!”
이진수와 전유진은 초급 강좌를 끊었다. 차현주는 오종석이 초급자용 슬로프에서 가르쳐주기로 했다. 황제국은 알아서 타보겠다고 대충 둘러댔다.
“재밌게 타세요. 대신 다치면 안 됩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에요.”
“알았어. 나중에 보자.”
“나중에 봐요~!”
그들은 스키장에서 각자의 실력에 맞게 쪼개졌다. 이진수와 전유진은 강습반으로 향하고, 차현주와 오종석은 초급자 슬로프에 황제국과 전용선은 중급자 슬로프로 올라갔다.
“처음이라며? 진짜 괜찮겠어?”
“네, 대충은 알아요. 타면서 배우는 거죠.”
“어떻게 멈추는 건지는 알아?”
“스키를 앞으로 모으면 되잖아요.”
“흠, 딴 사람이면 내려보낼 텐데, 제국이 너니까 알아서 하겠지. 나중에 나한테 가르쳐달라고만 하지 마라.”
리프트에서 내린 전용선은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먼저 내려갔다. 황제국은 스틱으로 눈을 톡톡 두드리며 잠시 아래로 기울어진 슬로프를 바라봤다. 새하얀 슬로프가 시원하게 쭉 뻗어 있었다.
황제국은 가볍게 발을 움직여 출발했다. 돌아와서 스키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몸으로 익혔던 감각이 살아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내려갔다. 황제국이 S자 궤도를 그리며 슬로프를 따라 내려갔고, 조금씩 속도가 붙었다.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느껴졌고, 그 스릴이 스키를 더욱 재밌게 만들었다.
“훠우~!”
중간부터는 완전히 감을 되찾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거의 10년을 타지 않아 한두 번 정도는 넘어질 줄 알았는데 다행히 몸의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게다가 가장 체력이 좋을 20대 초반이었다. 황제국은 신이 나서 다시 리프트를 타고 중급 코스로 올라갔다.
눈 위에서 신나게 바람을 가르며 스키를 타다 보니 어느새 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났다. 오랜만에 혹사당하는 허벅지는 비명을 지르며 불에 타고 있었다. 1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던 황제국은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느꼈다.
‘내일은 보드도 타봐야겠다. 내년부터는 운동도 좀 해야지.’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몸이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가는 걸 느꼈던 황제국이다. 이번 생에는 젊을 때부터 미리미리 관리하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이 필수였다.
황제국은 오랜만에 타는 스키에 흠뻑 빠져 내리 세 시간을 탔다. 지금 당장 동방으로 달려가서 스키 게임을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저녁이 되어 멤버들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모두 재밌게 즐겼지만 혹사당한 몸은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모두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다. 저녁을 먹은 그들은 다시 의기투합해 슬로프로 나섰다.
조명으로 어둠을 밝힌 슬로프는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눈의 나라에서 누구라도 로맨틱한 기분에 빠지게 만들었다.
오종석은 차현주 옆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꼬맹이들 틈에서 강습했던 전유진과 이진수는 초급자 슬로프에서 주춤주춤 스키를 탔다. 전용선과 황제국은 고독한 늑대가 되어 오직 스키 타는 재미에만 빠져 있었다.
다행히 퀘스트넷은 아무 일 없이 평온했다. 야간 스키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술을 먹자고 자리를 깔았지만 다들 맥주 한 캔만 마시고 뻗어 버렸다.
둘째 날이 밝았다. 호텔 조식을 먹고 각자 능력에 맞게 코스를 골라 움직였다. 황제국은 오전에는 스키를, 오후에는 스노보드를 빌려 보드를 타러 갔다. 보드까지 타자 허벅지에서 근육통이 성난 황소처럼 몸부림쳤다. 황제국은 이를 악물고 다리를 두들겨가며 보드와 한 몸이 되어 눈 위를 스치며 나아갔다.
몇몇 사람들이 선수처럼 멋지게 눈 위에서 기술을 부렸다. 황제국은 그들의 스타일리쉬한 움직임을 보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동작에 WASD를 적용해 머릿속으로 콤보를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직업병.”
넓은 스키장에서 코스별로 뿔뿔이 흩어져서 놀던 뉴퀘스트 멤버들은 어쩌다 리프트에서 마주치거나, 슬로프에서 서로를 발견하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마치 먼 이국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둘째 날 밤에는 스키를 타지 않고 방에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몸도 지쳤지만 스키만 타느라 별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술 모자란다.”
“냉장고에 있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으으으으~!”
허벅지가 아픈 건 황제국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기적 같은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어느새 밤 12시가 다 되어 갔다. 오종석이 화장실을 가는 황제국을 슬쩍 방으로 불렀다.
“나 이따 중대 발표를 할 거야. 너만 알고 있어. 놀라지 마라.”
“중대 발표? 뭔데?”
“그런 게 있어. 하여튼 있다는 것만 알아.”
오종석이 황제국의 가슴을 퉁퉁 두드렸다. 황제국은 무슨 발표인지 다 알 것 같았지만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밤은 깊어가지만, 슬로프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호텔 방에서 술을 마시는 뉴퀘스트 멤버들은 조금씩 취하기 시작했다.
“어? 쫌있으면 12시다. 테레비! 테레비!”
전유진이 서둘러 TV를 켰다. 종각 보신각이 화면에 나왔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었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새해다~~!!!”
“굿바이~, 1998!”
“해피 뉴 이어~~!”
뉴퀘스트 멤버들은 탁자를 두드리고, 박수를 치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새해를 맞았다. 그 누구보다 뜻깊은 98년을 보낸 황제국은 또 다른 설렘으로 가득했다.
멤버들과 함께 만들 <영건 블러드> 확장판도 기다리고 있었고, 새로운 사람을 뽑아 더욱 성장하고 확장할 것이다. 그리고 새해에는 새로운 게임에도 도전할 것이다.
새해 축하를 마치자 오종석이 차현주 눈치를 보더니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박수를 쳐서 주의를 집중시켰다.
“주목해주세요! 제가 여러분께 할 중대발표가 있습니다.”
“오오오~! 뭘까? 과연 그게 뭘까?”
이진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궁금한 척했다. 오종석이 차현주의 팔짱을 끼고 일으켜 세웠다.
“오와아아아아아~!!!!!!”
사태를 파악한 멤버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진수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을 따라 했다.
그러자 차현주는 민망한 듯 얼굴이 빨개져 괜히 딴청을 피우고 딴곳을 바라봤다. 오종석이 큰소리로 외쳤다.
“저희 이제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습니다. 뉴퀘스트 식구들에게 제일 먼저 밝히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오오오~!!!!”
“축하해!”
“그럴 줄 알았지.”
사람들이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리고 곧장 청문회가 시작됐다.
“언제부터 사귄 거야?”
“누가 고백했어?”
“누가 먼저 좋아했냐?”
“현주 어디가 좋아?”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게임 제작 회의를 할 때보다 훨씬 진지하게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종석과 차현주는 질문에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때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용선이 말했다.
“알았어. 둘이 좋아 죽겠다 이거잖아? 근데 나는 잘 못 믿겠거든? 진짜 사귀기로 했으면 뽀뽀해 봐. 그럼 믿어 줄게.”
“오오오오오오오오~!!!!!!!!!!!!”
“뽀뽀해! 뽀뽀해! 뽀뽀해!”
갑자기 모두 한 목소리로 뽀뽀를 외쳤다. 전용선이 구호를 외치듯 팔까지 번쩍 치켜들었다.
“어떡하지? 할까?”
“미쳤어? 너 하기만 해 봐?”
“우우우우우우우~!!!!!!”
오종석이 물었지만 차현주는 질색을 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금세 야유로 바뀌었다. 오종석은 갑자기 이상한 압박감을 받았고, 압박감은 용기와 무모함으로 뒤바뀌어 급발진했다.
“에잇!”
그는 차현주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입을 맞췄다. 차현주가 깜짝 놀라 안경 너머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와아아아아아아~!!!!!!!!!!”
오종석의 용감한 돌진에 술자리는 아비규환이 됐다. 전유진은 손으로 눈을 가렸고, 이진수는 턱이 땅으로 떨어질 만큼 입을 크게 벌렸다. 전용선은 소리를 질렀고, 황제국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미쳤어! 미쳤어! 사람들 앞에서! 진짜! 미쳤어~~!!!!”
“아! 아! 잠깐만! 잠깐만!”
차현주는 오종석을 밀어내고 그의 등을 두들겨 팼다. 평소보다 훨씬 아파 보였다. 오종석은 급히 방으로 피신했고, 차현주가 씩씩거리며 들어갔다. 문이 쾅 소리가 나며 닫혔다.
“휘후~! 벌써 방 잡는 거야? 요즘 애들 진도 빠르네!”
전용선이 휘파람을 불고는 재밌다는 듯 큭큭 거렸다.
“자, 애인 없는 사람들끼리 거국적으로 한잔하자!”
전용선이 남은 네 사람 중 세 사람에게는 술을, 이진수에게는 콜라를 가득 따라주었다. 문밖으로 차현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려나?”
“글쎄? 종석이 새해와 함께 차이는 거 아냐?”
“아마 싹싹 빌고 있을 거예요.”
“그래, 커플 일은 커플이 알아서 하겠지. 우린 우리끼리 술이나 마시자.”
모두 전용선이 따라 준 술잔을 들었다. 전유진이 술을 꿀꺽 원샷으로 넘겼다. 황제국은 차현주에게 빌고 있을 오종석을 생각하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99년을 시작하면서 98년은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