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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지안카를로가 박장대소를 터뜨린 이유는, 오토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오토는 잘츠부르크 가문이 역적의 오명을 뒤집어쓰길 원하지 않았다.

또한, 아라드 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에 개입하는 것 역시 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라드 제국을 무너뜨리는 건 잘츠부르크 가문을 뺀 연합군의 힘만으로도 충분했기에, 구태여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잘츠부르크 가문을 반란에서 제외시키느냐.

단순히 방관하게끔 내버려두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충신 중의 충신인 잘츠부르크 가문은 반란을 방관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충분했다.

연합군이 아라드 제국의 수도를 공격하는데도 손 놓고 방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충(不忠)이라 사실상 반란에 동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여지가 충분했다.

그래서 오토가 부득이하게 떠올린 방법은, 명목상으로나마 북부대공 지안카를로를 체포하고 잘츠부르크 가문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

그렇게 하면 반란을 방관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있을뿐더러, 대업을 완수한 뒤에도 뒤처리가 매우 편했다.

왕조가 바뀌고 이미 대세가 기운 이상 더는 고집을 부리기 어렵다는 걸 핑계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황제인 오토에게 충성하기로 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오토는 북부제국의 침공에 맞서 대륙을 구원한 영웅 대신 기회를 틈타 제국을 찬탈한 간웅(奸雄)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즉, 지금 오토는 잘츠부르크 가문과 함께 사이좋게 똥물을 뒤집어쓰는 대신에 독박으로 악역을 자처하고 있었다.

기왕 뒤집어쓸 오명이라면, 함께하는 것이 아닌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토가 잘츠부르크 가문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또 예우해주는지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아라드 제국에 충성하며 저 북부제국과 야만부족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내는 수호신 역할을 맡았던 가문이니만큼, 그에 따라 명예만은 지켜주려는 것.

“허허.”

지안카를로는 오토의 속내를 읽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 손녀사위 하나는 정말이지 잘 들였구먼. 과연 엘리제의 배필로서 부족함이 없는 녀석이로다.”

기어코 지안카를로의 입에서 오토를 인정하는 발언이 흘러나왔다.

그간 농담 반 진담 반 사기꾼 취급을 했었는데, 오토가 이렇게까지 해서 잘츠부르크 가문의 명예를 지켜주려 하니 지안카를로로서는 기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좋다.”

지안카를로가 카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체포당해 주도록 하마.”

“대공 전하의 아량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카심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지안카를로를 예우했다.

어차피 이번 사건이야 명목상의 체포이고, 무장해제일 뿐 지안카를로는 언제나 오토의 집안 어른이었다.

게다가 아라드 제국의 내전이 끝나고 새로운 왕조가 열리면, 잘츠부르크 가문 황가의 일원이 될 터였다.

케레스와 로웨나의 정략결혼으로 인해 잘츠부르크 가문에도 황위 계승권이 생길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 시간부로 대공 전하께서는 공식적으로는 체포되셨으며, 이곳 잘츠부르크 가문의 영지에 유폐되는 겁니다.”

“알겠다.”

“공식적으로 개인 수련이나 군사 훈련도 모두 중단될 것이고, 가문에 속한 모든 이들은 검을 착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지안카를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츠부르크 가문은 오토에 의해 철저하게 무력화된 것이 되어야 했다.

비록 누군가가 죽거나 갇히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영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며 검을 포함한 모든 무기의 소지와 휴대도 금지해야 밖에서 볼 때는 잘츠부르크 가문이 무력화된 것으로 비칠 테니까.

“당분간은 가문의 행사나 모임도 자제하셔야 합니다.”

“어련히 알아서 몸을 바짝 낮추고 쥐 죽은 듯 있을 터이니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그렇게 지안카를로는 공식으로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날 오후.

“지금부터 가문의 모든 이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무장해제하라. 또한, 당분간 3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하고 외부활동도 자제할 것을 명령한다. 무기의 휴대와 개인수련을 포함한 모든 군사훈련도 중지시킬 것이다.”

지안카를로는 잘츠부르크 가문의 무장해제를 선언하고, 식솔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그런 지안카를로의 명령에 잘츠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군말 없이 근신 아닌 근신에 들어갔다.

가주인 지안카를로가 그러한 명령을 내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고, 또한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기에 순순히 명령에 따랐던 것이다.

카심은 오토의 명령에 따라 지안카를로를 체포(?)하고 잘츠부르크 가문을 무장해제 시키자마자 즉시 연합군을 소집했다.

북부장벽에 대기하고 있던 연합군 병력은 무려 50만.

이오타 왕국, 키이우 왕국, 툰드리아, 그리고 야만부족까지.

잘츠부르크 가문과 아라드 제국군이 빠졌지만, 지금의 연합군의 군세는 여전히 강력했다.

게다가 드레이크가 지휘하는 이오타 해군이 바다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아라드 해군을 쳐부수는 것도 가능한 상태였다.

물론 오토가 트리톤 5,000기를 황제에게 바쳐서 전력이 약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연합군, 정확히는 이오타 왕국은 아라드 제국에 보고하지 않는 트리톤 1,000기를 더 지니고 있었다.

아라드 제국이 당장 트리톤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이오타 왕국이 보유한 1,000기의 트리톤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한 전력이었다.

“전군, 진격하라.”

카심은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써, 50만 대군을 이끌고 즉시 아라드 제국의 수도를 향해 남하했다.

척! 척! 척! 척!

쿵! 쿵! 쿵! 쿵!

1,000기의 트리톤을 앞세운 연합군의 행군은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오토가 알렉스 국왕으로부터 빼앗은 대지의 군화.

그 효과는 아군 전체의 행군 속도를 높여주고, 피로를 줄여주는 것.

덕분에 연합군은 평소보다 5배는 빠른 속도로 행군하며 아라드 제국의 수도를 향해 나아갔다.

* * *

“이런 불충한!!!”

한편, 황제는 로웨나가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테르테미안의 영토를 공격해 들어가자 크게 분노했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으로서 명령했건만,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이었다.

그 와중에 테르테미안은 계속해서 지원군을 보내 달라 연일 서신을 보내오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파라곤은 대체 뭘 하는가!”

막내 파라곤이 테르테미안을 도와주라는 황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무슨 굼벵이 마냥 꿈쩍도 않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황제를 더욱 분노케 했다.

당장 군대를 일으켜 테르테미안을 도와주어야할 파라곤이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는 건 황제의 입장에서 매우 화가 나는 일일뿐더러,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적신호였다.

만약 파라곤마저 황제의 통제를 벗어나 반란을 일으킨다면, 이 갑작스러운 내전이 엄청나게 커질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아라드 제국이 4등분이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그렇게 되면 반란을 모두 진압한다 한들 전후처리가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노라.”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황제가 대소신료들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북부대공 지안카를로를 속히 입궁하라 전하라. 또한, 엘리제 역시 함께 입궁하라 전하라.”

“예, 폐하.”

기어코 황제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인 잘츠부르크 가문을 동원해 반란을 진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엘리제가 있었다.

전쟁의 여신이라 불리는 엘리제의 무력이라면, 아라드 제국군을 이끌고 로웨나군을 쳐부수기에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황제의 바람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

“뭐, 뭐라?”

황제가 제 귀를 의심했다.

“북부대공이 연합군에 의해 체포당했다? 심지어 잘츠부르크 일가가 유폐되고 가문의 기사들이 무장해제까지 당했다는 말인가?”

“그,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 이 무슨?”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보고가 아닐 수 없었다.

지안카를로가 체포되고 유폐되었다면, 잘츠부르크 가문도 무력화되었다는 뜻.

연합군이 오토의 처갓집인 잘츠부르크 가문을 상대로 그러한 짓을 벌일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사건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연합군 50만 대군이 수도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사옵니다!”

“……!”

“저들의 행군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고 하옵니다!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수도에 도착할 것이옵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연합군이 쳐들어오다니! 그렇다면……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짐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말이 아니던가!”

황제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트리톤을 무려 5,000기나 바치며 연합군의 해체를 약속했던 오토가 이렇듯 갑작스레 공격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로웨나와 테르테미안 간에 벌어진 내전을 수습하기도 바쁜데, 연합군이 5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면 수도를 방어해내기란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연합군이 트리톤을 무려 1,000기나 앞세워 진격해 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1,000기?!”

“예, 폐하!”

“이런 빌어먹을……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 개 같은 놈이 감히 짐을 속였구나!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비열한 노오오옴―!!!”

황제의 입에서 분노에 찬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연합군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격해오는 상황.

아라드 제국군은 당장 트리톤을 앞세운 연합군을 막아낼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대 트리톤 전용 대전차화기인 게이볼그마저 보유하고 있지 못했기에, 수도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버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뭣들 하는가! 당장 본국이 보유한 트리톤들을 기동할 수 있도록…….”

그 순간.

“……!”

뭔가를 깨달은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현재 아라드 제국의 수도에는 트리톤이 무려 5,000기나 있었을뿐더러, 연합군에서 보내준 트리톤 조종사들도 같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이상 오토가 보내 주었던 트리톤들조차 믿을 수 없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렇다는 말은, 지금 코앞에 연합군의 트리톤 5,000기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 5,000기의 트리톤들이 갑자기 들고 일어나 날뛰기 시작하면, 수도를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트리톤을 바친다고 할 때 넙죽 받았던 것이 호랑이 새끼를 들인, 아니 다 큰 호랑이들을 내 집 안방에 들여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설마…….”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황제가 자신이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릴 그 무렵.

“폐, 폐하아아아아아! 큰일 났사옵니다! 수도방위사령부에 배치되어 있던 트리톤들이 아군 군사시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

“폐하! 비상사태이옵니다! 일부 트리톤들이 황궁 입구를…….”

콰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일부 트리톤들이 황궁으로 돌진해오면서, 성문을 때려 부수고 있는 게 분명했던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찌 된 일이냐는 말이다…… 아아…… 아아아……!!!”

황제가 털썩 주저앉아 허망하다는 듯 탄식했다.

제국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더니…….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한 대제국 아라드가 이런 식으로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 * *

마칸 왕궁 지하로 간 오토 일행은 망설임 없이 지혜의 샘 밑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지저세계의 끔찍한 괴물인 아가르타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서, 사실상 사지(死地)나 다름없었다.

대륙 지하에 자리한 아가르타의 영토란 수백, 수천 개의 땅굴과 <샴발라>라 불리는 거대한 지하공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약 발각됐다간 오도 가도 못한 채 아가르타들에게 둘러싸여 산 채로 뜯어 먹힐 것이 분명할 터.

간단히 비유하자면, 성난 말벌 떼가 득실득실한 벌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오토는 한 점 망설임 없이 지혜의 샘 밑으로 몸을 던졌다.

슈우우우우우우우우!

오토 일행은 거의 1킬로미터를 자유낙하한 뒤 반중력 주문을 이용해 사뿐히 착지했다.

오토는 지혜의 샘 밑으로 내려가자마자 즉시 대학살의 서를 펼쳐 일행 전체에 기척을 감춰 주는 주문을 사용했다.

말소리, 숨소리, 심장박동소리, 발걸음, 냄새 등등등.

인간이 내는 모든 종류의 소음, 진동, 냄새를 감춰 주는 주문이 펼쳐지자 지독한 적막이 감돌았다.

“이건 무슨 마법입니까? 귀가 먹먹합니다.”

“소음이랑 진동을 없앴어.”

오토가 대답했다.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지만…….”

“아가르타들은 눈이 퇴화돼서 아무것도 보지 못해.”

“……!”

“청각과 후각, 그리고 진동 감지로 사물을 판단하고 반응하지. 지저세계에서 시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아!”

“이제 야시경만 끼면 놈들은 우리가 코앞을 지나가도 몰라. 대놓고 공격해도 누구에게, 어떻게 죽는지도 모를걸?”

오토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 위험천만한 지저세계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은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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