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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어릿광대의 공략법은, 사실 이곳 무의 공간을 이용하는 거였다.

어릿광대는 단순히 빠른 게 아니었다.

사실 이곳 무의 공간을 늘렸다 줄였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오토를 농락했던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오토가 무의 공간에 대한 비밀을 깨달아 버린 이상 어릿광대는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어, 어떻게!”

어릿광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글쎄.”

오토가 어느새 어릿광대의 등 뒤에 나타나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히익?!”

“뭔가 이상하더라고.”

오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 어쩌면 이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게 아닐까, 하고.”

“또, 똑똑한데?”

“결정적인 계기는.”

오토가 땅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을 가리켰다.

“난 분명히 널 쫓아서 뛰었는데, 내 핏자국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고?”

“하하… 하하하….”

“한참을 달렸는데 내 핏자국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게 뭔가 이상했지. 그게 결정적이었어.”

“결국 깨달았구나? 하하하.”

어릿광대가 웃었다.

“그래, 맞아. 축지(縮地)의 비밀은 공간을 주무르는 거야.”

“축지?”

“공간을 압축하는 권능. 축지라고 불러.”

어릿광대가 훌쩍 재주를 넘어 보이더니 설명했다.

“의지의 힘으로 공간을 압축시키는 거야. 그 압축시킨 공간에 몸을 던지면, 누구보다 따르게 움직일 수 있지.”

“으음.”

“축하해.”

어릿광대가 오토를 축하했다.

“축지의 비밀을 깨달았구나. 넌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거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세상이 모두 네 발 아래에 있을 거야.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래, 그렇겠지.”

오토는 어릿광대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릿광대.

그의 진짜 이름은 트릭스터.

그 권능을 온전히 사용하려면, 더욱 성장해야 했다.

오토가 아직 칼립소의 눈이나 야만용사의 포효의 상위급 권능들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다 네 마음에 달린 거야.”

트릭스터가 오토에게 조언했다.

“이거.”

트릭스터가 손가락의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게 중요해.”

“머리?”

“그래, 머리. 생각. 생각하는 힘. 의지. 네가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믿음. 그것만 기억해. 그러면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는 거야.”

오토는 솔직히 트릭스터의 말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명심할게.”

“헤헤헤.”

트릭스터가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 그럼 난 이ㅁ….”

“잠깐.”

“……!”

“어딜 튀려고?”

오토가 트릭스터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 그야 네가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이제 나는 가야지? 하하, 하하하하.”

“응, 못 가.”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3일 동안 사람을 약 올렸으면 대가는 치러야지?”

“히익?!”

“넌 좀 맞아야 돼.”

“꾸웨에엑!”

오토는 트릭스터를 그냥 보내줄 생각이 단 1도 없었다.

3일 동안 트릭스터를 쫓아다니느라 얼마나 약이 올랐는데, 이렇게 쉽게 보내주기는 싫었던 것이다.

* * *

“속 시원~ 하다.”

오토는 트릭스터의 던전을 나서며 손을 툭툭 털었다.

그런 오토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트릭스터의 힘을 얻고, 화풀이까지 했더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확 날아갔던 것이다.

[트릭스터의 재간]

무적황제의 다섯 가지 권능 중 하나.

장난의 신 트릭스터의 힘으로서,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더욱 강력해진다.

- 현신 (사용가능)

- 분신술 (사용가능)

- 축지법 (사용가능)

- 도약 (사용불가)

<트릭스터의 재간> 스킬체계는 최후의 권능인 <도약>을 뺀 나머지 3개 모두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오토가 상태창을 보고 그걸 알아낸 건 아니었다.

상태창은 여전히 흐릿해서, 눈여겨봐도 뭐라고 쓰였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토는 자신이 어떤 기술을 쓸 수 있고, 어떤 기술을 쓰지 못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굳이 상태창이 없더라도 스스로가 가진 힘을 잘 파악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조용히 빠져나가야지.’

오토는 콘라드에게 붙잡히기 싫어서, 살금살금 쥐새끼처럼 성역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녀석이 왔으면 진즉에 보고를 했어야지! 왜 이제야 보고를 하느냐는 말이냐!”

밖에서 콘라드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 죄송합니다.”

“소가주님께서 비밀로 해 달라 부탁하시는 바람에….”

뒤늦게 오토가 온 사실을 알아챈 콘라드가 기사들을 갈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시끄럽다! 녀석이 성역에 든지가 벌써 3일이 지났거늘!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것이냐!”

콘라드는 오토가 걱정되었는지, 아주 노발대발이었다.

‘내가 하도 안 나오니까 기사들이 보고를 했나 보네.’

오토는 오가는 대화 내용을 통해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쩝. 몰래 튀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얼굴을 비춰야 할 것 같았다.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오토가 성역을 나서 콘라드에게 예를 취했다.

“앗!”

콘라드는 오토가 멀쩡하게 성역을 빠져나온 걸 보고 펄쩍 뛰었다.

“이 녀석아! 괜찮은 것이냐!”

“당연히 괜찮습니다.”

“이놈! 왔으면 이 할아비에게 문안 인사라도 올렸어야지! 어찌 그리 매정한 것이냐!”

“죄송합니다.”

오토가 서운해하는 콘라드를 달랬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미처 찾아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 녀석아! 살짝 귀띔이라도 해 줬어야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사정이 있었습니다. 1분 1초가 급한 일이 일어서요.”

“음?”

“그게 그러니까.”

그 순간.

“이놈!”

콘라드가 버럭 화를 냈다.

“감이 이 할아비의 눈을 속여 넘길 수 있을 것 같더냐!”

“예?”

“이 교활한 녀석 같으니!”

콘라드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토가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사실 성역 밖으로 나가 콘라드를 상대한 건 진짜 오토가 아니라, 분신술을 통해 만들어 낸 가짜 오토였던 것이다.

과연 콘라드.

검과 마법의 쿤타치 가문의 가주답게, 눈앞에 있는 오토가 진짜가 아닌 분신술을 통해 만들어 낸 것임을 금세 간파한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헤헤헤.”

진짜 오토는 모퉁이를 돌아서, 이미 성역 근처에서 멀어져 버린 뒤였다.

콘라드에게 분신을 내어주고, 정작 자신은 홀라당 내뺀 것이다.

‘쩝. 아직 좀 부족하네. 너무 빨리 걸렸어. 상대가 상대긴 하지만.’

오토는 분신이 금세 들통난 걸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괜찮았다.

처음 사용해 본 것치고 이만하면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상관없지. 앞으로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분신은 더 진짜 같아질 테니까. 나중에는 뭐가 분신이고 뭐가 본체인지 나조차도 헷갈릴 정도로.’

<트릭스터의 재간>의 분신술은 흔해 빠진 분신술이 아니었다.

사용자의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분신술의 위력은 상상 그 이상.

지금은 그저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

“오토 이놈!”

저 멀리 콘라드가 쫓아오는 게 보였다.

“이 할아비에게 문안인사도 올리지 않을 작정이냐!”

“제, 제가 좀 바빠서요!”

오토는 잔소리를 듣기가 싫어서, 곧바로 현신을 사용했다.

팟!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무호흡 텔레포트.

따로 캐스팅이 필요 없고, 재사용 대기시간도 없는 이동기술답게 눈 깜짝할 사이에 왕궁 밖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쩌, 쩐다.’

오토는 <현신>의 엄청난 위력에 놀랐다.

게임을 통해 사용했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현실에서 사용해 보니 정말이지 엄청나다는 말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다만 마나 소모가 너무 심했다.

단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도 전체 마나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또한 괜찮았다.

마나 소모가 크다는 점을 빼면 단점이 없는 기술이라, 차근차근 마나를 늘려간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했기 때문이다.

‘축지법은 어떻지?’

오토는 기왕 왕궁을 벗어난 김에 축지법도 사용해 보았다.

“오?”

오토는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주변 풍경이 휙휙 달라지는 걸 보고 다시 한번 감탄했다.

마치 매우 빠른 무빙워크를 탄 것처럼, 천천히 걷는데도 속도가 가히 어마어마했다.

트릭스터의 말처럼, 정말 공간이 압축되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마나 소모 또한 현신보다 현저히 적어서, 꽤나 오래 유지하는 게 가능해 보였다.

“괜찮은데?”

오토는 품속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켜며, 계속 축지법을 사용해 이동했다.

“허허허.”

콘라드는 오토가 저 멀리 축지법을 사용해 이동하는 걸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분신술과 텔레포트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축지법까지 쓰는구먼. 허허허허.”

콘라드는 화내지 않았다.

씨익-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오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콘라드의 입장에서 오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유일무이한 직계 혈육.

문안인사도 올리지 않고 내뺀 게 괘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오토에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콘라드는 오토가 새로운 권능을 얻고, 그것을 사용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유일무이한 직계 혈육이 무적황제의 권능을 하나하나 얻어가고, 점점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던 것이다.

* * *

이오타 왕국으로 복귀한 오토를 기다리고 있는 건 와지르 대공의 불호령과 더 많이 쌓여 있는 서류 더미였다.

“일을 끝낼 때까지는 나올 생각도 하지 마라.”

“…눼에.”

와지르 대공은 오토의 집무실에 쇠창살을 설치하고, 아예 자물쇠까지 걸어 잠가 버렸다.

“밥은 하루 세 번 넣어 주고, 간식까지 넣어 줄 터이니 걱정 마라.”

“…….”

“한 번만 더 도망치면 네놈의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 버릴 것이다. 알겠느냐?”

“…눼에.”

결국, 오토는 꼼짝없이 집무실에 갇혀서 일하는 기계가 되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오타 왕국에는 행정업무가 엄청나게 많았다.

발틴·슬레인·로우레딘을 정복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 체로키 왕국까지 흡수했으니, 일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오타 왕국의 모든 행정 관련 공무원들은 야근이 일상인 상황이었다.

즉, 오토 역시도 국왕으로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고, 내 팔자야.”

결국, 오토는 꼼짝없이 쇠창살이 설치된 집무실에 갇혀서 행정업무를 해야만 했다.

제아무리 와지르 대공이 국정업무 대부분을 대신해 준다고 해도, 국왕인 오토가 직접 처리해야만 하는 사안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오토는 그해 가을을 행정업무에 파묻혀 지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이오타 왕국군은 체로키 왕국의 복구작업에 힘쓰며, 정복한 영토들을 재정비하며 내정을 다져 나갔다.

그러던 중.

“전하, 고블린 상인 에고가 전하를 뵙기를 청하옵니다.”

고블린 상인 에고가 오토를 찾아왔다.

“전하,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요.”

오래간만에 만난 에고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죠?”

“에르제베트 왕국에서 본국과의 무역 거래를 중단하고, 본국으로 통하는 모든 유통 경로를 차단했습니다요.”

“아.”

오토는 에고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숨에 눈치챘다.

“에르제베트 왕국에서 우릴 말려 죽이려 한다는 말씀이시죠?”

에르제베트 왕국.

현재 이오타 왕국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자리한 국가로서, 대륙의 여러 강대국들 중 하나였다.

즉, 체로키 왕국에 이어 이번에는 에르제베트 왕국이 이오타 왕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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