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세례는 오우거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촤라락!
바퀴 달린 수레에 장착된 거대한 석궁으로부터 쇠사슬 달린 쇠꼬챙이가 쏘아져 오우거들의 몸을 관통했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
“크어어어어어!”
오우거들은 이오타 군의 기습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느라 기진맥진 체력이 다 닳아 있던 터라, 인간들의 공격에 맞서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털썩!
쿵! 쿠웅!
그렇게 오우거들이 하나둘 쓰러져갔다.
“계속 쏴.”
하지만 오토는 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계속해서 원거리 공격만을 고집했다.
‘냉정하다.’
카미유는 내심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격 명령을 안 내리시다니.’
지금이라면 충분히 돌격 명령을 내려도 좋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오직 원거리 공격만을 지시하고 있었다.
마치 병사들이 오우거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걸 꺼린다는 듯이….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크어어어어….”
“우어어….”
오토는 오우거들이 쓰러져 숨이 넘어가기 직전임에도 돌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사격 끝!”
“여기도 사격 끝!”
오토가 돌격 명령을 내린 건 가지고 온 화살이 다 떨어지고 난 뒤였다.
“전군, 돌격하라.”
오토가 그제야 돌격 명령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잡아라!”
우르르! 몰려간 병사들은 죽기 일보 직전인 오우거들의 목에 창을 인정사정없이 찔러 넣어 숨통을 끊어놓았다.
근접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다 죽어가는 오우거들을 향한 살육만이 있었을 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오토가 폭정을 저지르던 지난 몇 년 동안 오우거 사냥은커녕, 그 흔한 고블린조차도 토벌해보지 못한 이오타 영지의 군대였다.
그런 군대가 오우거들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으니,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건 당연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런 걸 가지고. 이제 시작인데 뭘.”
이 지역 일대에 서식하는 오우거들은 어림잡아 40~50여 마리.
씨를 말리려거든 이런 작전을 3~4번은 더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승전은 승전입니다.”
“고마워.”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복귀해서 쉬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오우거 토벌 작전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 * *
카미유가 놀랐다시피, 오토가 주도하는 작전은 철저히 실용주의에 입각해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오토는 암컷 오우거들을 수컷 오우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인한 뒤 서로 싸우게 하고, 충돌을 철저히 피하면서 오직 원거리 공격만을 통해 이득을 보았다.
단 1명의 병력 손실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실제로 오우거 토벌 작전 4회 차가 되었지만 죽거나 다친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있기는 있었지만, 그마저도 험한 산길을 타다가 발목이 접질리거나 나뭇가지에 긁히는 등의 가벼운 부상이 고작이었다.
‘만약 전쟁터에서 이런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지휘관을 만난다면….’
카미유는 오토의 전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군.’
전에 콘도르를 상대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 보니 확실히 감이 왔다.
카미유가 보기에, 오토는 절대로 지는 싸움을 안 했다.
오토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이 이길 판을 깔아놓았다.
그러니 무리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고, 손해 볼 일도 없었다.
그저 상대방을 철저하게 압박하고, 농락하고, 결국엔 스스로 무너지게끔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마치 탈수기에 넣어져서 탈탈 털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도대체 언제 이런 전략 전술을 공부하신 건지….’
카미유는 오토의 변화가 참 낯설고, 또 놀랍기만 했다.
“오늘이 마지막인가? 룰루랄라.”
오토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오우거 토벌이 거의 끝났잖아. 그럼 이 지역 일대가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교역로가 될 테고, 난 통행세를 따박따박 받게 되겠지. 후후후.”
“돈이 그렇게 좋으십니까?”
“좋지, 안 좋아?”
오토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되물었다.
“우리 같은 가난뱅이한테 제일 필요한 건 돈이라고. 지금도 재정이 간당간당하잖아.”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마침 타이밍도 좋고.”
“예…?”
“아니~.”
오토가 너스레를 떨었다.
“때마침 유망한 상단 하나가 납품 기일 맞추려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우리 교역로의 첫 고객이 될 수도 있잖아~.”
“……?”
“그 상단이 잠재력이 뛰어나서 앞으로 크게 될 수도 있고? 우리랑 좋은 관계를 쌓아나가다가 함께 윈윈하는… 그런?”
“뭐…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현실로 이루어질지는….”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오토의 바람 정도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마지막 오우거 토벌 작전도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어느덧 작전은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우어어어어어!”
“우어! 우어어어어!”
떡실신 당한 수컷 오우거들을 두고, 암컷 오우거들끼리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며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제 암컷 오우거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슬슬 공격 명령을 내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럴까? 전군! 돌격하라!”
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지친 오우거들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날아옵니다!”
한 기사가 저 멀리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설마?’
불현듯 오토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놈이 벌써…?’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개 달린 거대한 사자가 이쪽을 향해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자의 머리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
“어흥!”
가운데 큰 머리는 사자의 것이었지만, 나머지 두 개는 아니었다.
“캬아아아아악!”
“메에에에에!”
사자의 머리를 중심으로 좌우에 와이번의 머리와 염소의 머리가 하나씩 더 달려 있었던 것이다.
키메라.
오우거쯤은 한 끼 식사 거리로 삼는 무시무시한 몬스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오토는 키메라를 보고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 * *
오토는 이 지역 일대에 키메라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키메라는 랜덤하게 등장하는 이벤트성 몬스터로, 주로 캐릭터의 각성 후에나 등장하곤 했다.
물론 아주 간혹 낮은 확률로, 게임을 1,000판을 하면 1번 정도는 게임 시작 직후인 극초반에 등장하기도 했다.
게이머 김도진도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키메라가 나타나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오토 드 스쿠데리아를 꿀꺽 삼켜버리는 바람에 회색 화면과 함께 가 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은 게임을 수천 번 하면서도 딱 한 번 있었던 일이라, 오토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떨 때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키메라가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어서, 딱히 의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키메라가 하필 이럴 때 나타날 줄이야….
“후퇴, 후퇴하라!”
오토가 버럭 소리쳤다.
“전 병력 신속하게 후퇴하라! 모두 흩어져!”
오토는 키메라와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왜?
키메라는 일반 병사들이 화살을 쏴댄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으니까.
“모두 흩어져라!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도망쳐라!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
카미유 역시 오토의 판단에 동의했는지,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키메라는 도망치는 병사들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키메라의 입장에서, 인간이란 야들야들한 육질을 가진 맛있는 간식(?)이었다.
그러니 병사들이 도망친다고 해서 사냥을 멈출 리가 없었다.
슈우우우우우우!
거의 수직으로 급강하한 키메라가 도망치던 병사 하나를 덮쳤다.
콰직!
그리고는 병사를 산 채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병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고 죽는 걸 떠나 산 채로 사자, 와이번, 그리고 염소의 머리에 동시에 뜯어 먹힐 때의 공포감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일지….
으득!
오토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며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왜일까?
두려움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병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는 저 키메라를 쳐 죽이고 싶었다.
“이 새끼가.”
오토는 자기도 모르게 인벤토리에서 <카이로스의 징벌> 아이템을 뽑아 들었다.
지금 저 키메라를 해치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이로스의 징벌>을 들고 때려죽이는 것 외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미유. 뒤를 부탁해.”
오토는 카미유를 돌아보며 그 말을 남기고는, 키메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스으으으!
오싹한 한기가 엄습하며 알 수 없는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악마와 계약해 무시무시한 존재로 거듭났던 콘도르를 쳐 부숴주었던 바로 그 힘이!
- 하나만 물어보자.
그때, 카이로스의 영혼이 오토에게 말을 걸어왔다.
* * *
‘뭔데? 빨리 말해.’
오토는 카이로스의 물음에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 아르곤 그 새끼가 대륙을 통일하고 대제의 칭호를 받았다고 했나?
‘그랬지.’
- 그 후엔 어떻게 됐나?
‘뭐가 어떻게 돼?’
- 놈이 일군 제국이 아직도 건재한가?
‘지금은 망했지. 150년 전쯤?’
- …그렇군.
카이로스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했다.
- 알겠다. 가르쳐줘서 고맙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놈이 나를 배신하면서까지 일구어낸 제국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지 말이다.
‘아하?’
- 힘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군.
‘그래.’
- 당분간 짐이 빌려주마. 대신….
카이로스가 조건을 걸었다.
- 더 이상 짐의 힘이 필요치 않게 될 시기가 오면… 철퇴를 파괴해다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 의형제… 친형제만큼이나 믿고 아끼던 놈에게 배신을 당한 게 한이었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으음.’
- 그게 원인이 되어 짐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철퇴에 깃들게 된 것일 테지. 하지만 이제 와 복수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미 너무나도 긴 세월이 흘러버렸으니….
‘그래서?’
- 언젠가 짐의 힘이 더는 필요치 않을 때가 오면… 철퇴를 녹여다오.
‘뭐?!’
- 복수할 대상도 없는 마당에 이승에 남아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짐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이런 철퇴에 들러붙은 채 이승에 남아 있느니,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가는 게 낫다.
오토는 그 말을 듣고 어쩌면 카이로스가 역사서에 기록된 것처럼 무시무시한 폭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섣부른 믿음을 주었다간 뒤통수를 맞을 수 있었기에 경각심을 놓지는 않았지만….
- 어떤가? 더는 네놈의 육체를 빼앗으려 들지 않겠다. 대신 때가 오면 철퇴를 녹여다오. 이제 그만… 쉬고 싶군.
‘그래, 그렇게 하자.’
오토는 일단 카이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각성 후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게 되면 <카이로스의 징벌>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터.
카이로스의 영혼이 안식을 취할 수 있게 철퇴를 파괴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좋다. 저 괴물을 처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마.
‘어떻게…?’
- 철퇴를 던져라.
‘던지라고?’
- 그냥 던지란 말이다!
‘알겠어.’
오토는 카이로스가 시키는 대로 철퇴를 있는 힘껏 집어던져 보았다.
쒜에에에에에에엑!
그러자 철퇴가 키메라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키메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촤라락!
키메라는 철퇴가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는, 몸을 살짝 틀면서 뱀으로 이루어진 꼬리를 마치 채찍처럼 휘둘렀다.
- 쉭! 쉬이익!
키메라의 꼬리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철퇴를 튕겨내려던 그때.
휘리릭!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철퇴가 스스로 궤적을 바꾸더니, 채찍처럼 휘둘러진 꼬리를 휙! 하고 피해버렸다.
휘리릭!
콰앙!
철퇴가 키메라의 세 개의 머리 중 염소의 머리를 강타했다.
“……!”
오토가 그 광경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 뭐야?
설마… 어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