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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뭐지? 다른 데 있나? 아닌데.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 있어야 정상인데.’

오토는 아도니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적잖이 당황했다.

로웨나는 아도니스를 마치 자신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끔 했고, 하루 24시간 중 24시간을 붙어 있을 만큼 늘 곁에 두곤 했다.

심지어 로웨나가 아도니스를 침실로 끌어들여 매일 밤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했다.

괜히 아도니스가 로웨나의 애첩(愛妾)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 간 거겠지? 공부하고 있거나?’

로웨나는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과외선생님들을 초빙해 와서 아도니스에게 붙여 주었다.

장차 황제의 남편이 될 남자라고 생각했기에, 그에 걸맞은 지적 소양과 교양을 갖춰 주기 위한 후원을 해 주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도니스가 공부할 때면 로웨나는 바로 곁, 혹은 옆방에서 행정업무를 보곤 했다는 것.

이렇듯 공식적인 자리라면 아도니스가 로웨나의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뭔가 바쁜 일이 있겠지. 이따 물어보자.’

오토는 자신을 대하는 로웨나의 태도가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일단은 아도니스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아도니스도 아도니스였지만, 지금은 로웨나에게 잘 보여서 이오타 왕국과 동맹을 맵을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연회에서 뵈었던 것보다 더욱 아름다워지신 것 같습니다.”

오토가 로웨나를 향해 립서비스를 날렸다.

그건 사실… 은 개뿔!

‘뭘 이렇게 신경 썼어? 누가 보면 무도회라도 온 줄 알겠네.’

오토는 로웨나가 공식적인 예복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복도 아닌 화려한 동물 털 코트를 걸친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화장, 헤어스타일, 장신구 등 어지간히도 힘을 준 티가 역력했다.

‘이건 좀 과하지 않나? 공적인 자리에서? 뭐. 내 알 바 아니긴 하지.’

애초에 오토는 로웨나에게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큰 감흥도 없었다.

물론 로웨나가 아름답지 않는 건 아니었다.

로웨나도 충분히 성숙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갖춘 미녀로서,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주목받을 만큼의 뛰어난 외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엘리제라는 대륙 제일의 미녀를 약혼녀로 두고 있는 오토의 눈에는 로웨나의 아름다움이란 딱히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아니었다.

엘리제의 미(美)가 저 밤하늘의 환한 보름달이라면, 로웨나는 작은 반딧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그게 정말이냐?”

로웨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더 아름다워진 것 같으냐?”

“어. 음. 그게.”

오토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빈말에 로웨나가 떡밥을 문 물고기처럼 파닥대며 반응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침착하자. 지금의 나는 접대ㄴ… 이 아니라! 정상회담에 나온 일국의 군주니까!’

오토는 얼른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로웨나를 또다시 칭찬했다.

“대공 전하의 아름다움이 날이 갈수록 더 화려하게 피어나시는 것 같습니다.”

“아아.”

“이러다 곧 다가올 봄이 대공 전하를 시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 순간.

‘그거 전형적인 접대남 멘트 아닙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슬쩍 눈빛을 보냈다.

‘닥쳐. 지금 업무 중인 거 안 보여?’

‘…….’

‘큰손이신데 잘 보여야 나중에 지명해 주실 거 아냐!’

카미유는 오토가 보낸 눈빛을 찰떡같이 이해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라면서 접대남 맞지 않습니까.’

로웨나를 대하는 오토의 태도는 누가 봐도 살롱에서 일하는 접대남 같았던 것이다.

* * *

오토는 자리를 옮겨 로웨나와 회담을 가졌다.

“로웨나 대공 전하께서 만남을 윤허하여 주신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오토는 로웨나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자 즉시 선물을 건넸다.

선물필승!

일단 선물부터 주면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란 더욱 쉬운 법 아니겠는가?

“이게 무엇이냐?”

“열어 보시지요.”

“이건….”

오토가 건넨 선물을 열어 본 로웨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상자를 열자 나온 게 거무죽죽하고 걸쭉한 액체가 든 유리병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 설마… ㄸ….”

“아닙니다.”

오토가 단호히 부인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오토는 로웨나가 유리병 안에 든 걸쭉한 액체가 똥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자 속으로 뜨끔! 했다.

하지만 그 정체를 실토할 순 없었으므로, 오토는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그 약은 고대의 연금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영약으로…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는 신비로운 명약입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하지만….”

로웨나가 의심스럽다는 듯 유리병 안에 든 액체를 노려보며 말했다.

“꼭 생긴 게 대변 같지 생기질 않았느냐.”

“대변 맞… 아닙니다.”

오토는 무심코 똥이라고 대답할 뻔했다가,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고는 로웨나에게 입을 털었다.

“자고로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장이 관통당해 즉사할 위기에 처한 사람도 이 약을 먹으면 생존이 가능할 정도로, 재생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

“제작에 필요한 재료가 워낙에 귀한 것들이라 많이 만들 수가 없어서, 본국에도 딱 3병밖에 없는 귀한 약입니다. 지금은 미심쩍으실 수 있지만, 나중에 직접 그 효능을 눈으로 확인하신다면 제게 고마워하실 겁니다.”

“오호라.”

오토의 설명에 로웨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그 귀한 것을 내게 주었단 말이냐?”

“물론이지요.”

오토가 로웨나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던 그 순간.

두근!

로웨나의 심장이 훅! 하고 펌프질했다.

오토의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엄청난 설렘의 폭풍이 로웨나의 가슴 속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귀한 것을 내게 주다니… 이 약은… 네게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 아니더냐.”

“그, 그렇습니다. 하하하.”

“단 3병밖에 없는 귀한 명약을 선물로 주다니. 정말로 고맙구나. 어찌 이런 기특한 선물을 줄 생각을 하였느냐.”

“로웨나 대공 전하께서 본국이 에르제베트 왕국과 분쟁을 겪는 동안 후방을 흔들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것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서….”

오토는 한동안 로웨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쌓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오토는 호감을 쌓으려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호호! 그랬느냐? 정말 통쾌하구나! 호호호호!”

“네 눈은 어쩜 그리 영롱하게 빛난다는 말이더냐? 정말이지 아름답구나. 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다니.”

로웨나는 오토의 무슨 말만 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좋게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곧 바토리가 부활하면….”

“그깟 늙은 암사자 따위가 부활한다 해서 별수 있을 것 같으냐? 대제국 아라드의 군대로 혼쭐을 내어줄 것이다! 호호호! 나는 바토리가 너를 괴롭히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호호호!”

“하지만 저희로서는….”

“협정서를 써 주마!”

“예?”

“공식적인 문서로 남겨 두어야 내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그 말은 네가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이냐?”

“예?”

오토는 너무 노골적인 요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예의상 한번 거절했을 뿐인데, 로웨나는 그 말을 신뢰의 표시로서 받아들이는 오해(?)를 자진해서 해 주기까지 했다.

“호호! 정말 기분이 좋구나! 호호호!”

“…….”

“네가 나를 신뢰한다니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은 일이 있겠느냐? 호호호!”

“하하… 하하하하….”

“하지만 나는 말로만 신뢰를 말하는 여자가 아니니라. 여봐라! 당장 협정서의 초안을 마련하도록 하라!”

로웨나는 보란 듯 협정서의 초안을 작성하도록 명령해 보이기까지 했다.

‘개, 개꿀!’

오토는 뜻하지 않게 유리한 방위조약을 맺게 되자 너무나도 기뻐서,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만약 로웨나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바토리가 제아무리 부패여왕이 되어 돌아온다고 한들 전혀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서 오토는 로웨나를 만나러온 목적을 손쉽게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호관계를 맺게 된 것은 물론, 또 다시 에르제베트 왕국과 분쟁이 벌어질 시 로웨나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대공 전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ㅅ….”

“기념으로 오늘 저녁은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느냐?”

“예?”

“너를 위한 준비한 만찬이 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토는 로웨나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기껏 만찬을 준비했다는데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뿐더러, 같이 밥 한 끼 먹는 게 어려운 아니었으니까.

* * *

저녁 식사 전.

숙소를 배정받은 오토는 휴식을 취하는 한편 시중을 들어주는 시녀들에게 은근슬쩍 로웨나에 대해 물어보는 척을 했다.

“로웨나 전하께서는 어떤 분이시죠?”

“그, 그건.”

“기밀사항을 알려 달라는 게 아닙니다.”

오토가 시녀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발그레-

그러자 시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봐.’

작정하고 꾸민 오토의 모습이 황홀할 만큼 잘생겨서, 시녀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 어떤 부분이 궁금하시어요?”

“그저 로웨나 대공 전하께서 평소에 뭘 좋아하시는지, 취향은 어떠신지 여쭤보고 싶을 뿐입니다.”

“어머, 어머.”

시녀는 오토가 로웨나에게 관심이 생겨서 물어보는 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도니스에 대해서 물어보려면 미리 밑밥을 까는 수밖에.’

대뜸 아도니스를 아냐고 물어본다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에, 일부러 말을 빙빙 돌린 것뿐이었다.

“로웨나 대공 전하께서는….”

시녀는 오토의 물음에 평소 로웨나가 뭘 좋아하는지, 생활은 어떤지, 어떤 성격인지 술술 불었다.

‘어휴.’

오토는 그런 시녀의 말을 들으며,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군주에 대한 정보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 매우 민감한 비밀이라, 외부인에게는 절대 말해서는 안 될 기밀사항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소한 정보가 암살자에게는 아주 소중한 정보가 되어 군주를 암살하는 데 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종·시녀들은 이런 보안사항에 대한 것들을 철저하게 교육받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시녀는 그러한 보안사항을 너무나도 쉽게 깨뜨리고, 로웨나에 대한 정보를 오토에게 술술 불었다.

오토가 너무 잘생겨서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도 있지만, 군주인 로웨나의 연애사업이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오토가 영혼강탈의 권능을 사용한다면 몇 초 이내에 모든 비밀을 술술 불게 될 테지만.

“그런데.”

오토가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가만 보니 시종들이 없는데, 왜 시녀들만 근무하는 거죠?”

오토는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시녀에게 물어보았다.

로웨나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 남자를 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시종은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

있다면, 아도니스 단 한 명뿐.

“그건.”

시녀가 대답했다.

“로웨나 대공 전하께서 사적인 영역에 시종들을 들이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이어요.”

“그럼….”

오토가 물었다.

“지금 로웨나 대공 전하를 모시는 시종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씀이신가요? 아니겠죠? 한 명쯤은 있겠죠?”

“없습니다.”

“……!”

“현재 로웨나 대공 전하께서는 그 어떤 시종도 고용하고 있지 않으시어요. 단 한 명도.”

“뭐라고요?”

오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종이 없다고???’

이 시기에는 아도니스가 반드시 로웨나의 곁에 척 달라붙어 있어야 정상인데, 고용된 시종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설마 변수인가.’

오토는 어쩌면 정해진 미래가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비효과에 의해 로웨나와 아도니스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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