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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체로키 왕국에서 복구작업에 힘쓰고 있던 오토는, 갑작스러운 보고를 받고 크게 놀랐다.

“…괴수들이 본토를 침공했다고?”

“예, 전하.”

소식을 전하는 카미유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사태의 심각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수만 마리의 괴수들이 헬무트가 지키고 있는 국경 요새를 공격하고 있는데, 상황이 매우 급박하다고 했다.

얼마나 상황이 안 좋냐면, 지금 당장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길어야 하루이틀 정도밖에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단다.

문제는 현재 이오타 왕국군의 대부분이 이곳 체로키 왕국에서 복구작업에 임하는 중이라, 즉시 투입이 불가능했다는 것.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병력들을 불러 모으는 데만 며칠은 걸릴 터였다.

문제는 헬무트가 지키고 있는 국경 요새가 뚫리면, 이오타 왕국의 수도가 위험하다는 것.

“전하, 어떻게 합니까?”

“바로 가야지.”

오토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급한 대로 병력을 소집했다.

그런 뒤 치안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기고, 즉시 헬무트의 요새로 진격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

“전하, 제가 모시겠습니다.”

카심이 와이번 무리를 이끌고 오토에게 제안했다.

타타르 품종의 말이 제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하늘을 나는 와이번보다는 빠를 수 없을 터.

“좋습니다.”

오토는 급한 대로 정예 중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마검사들을 이끌고 와이번 무리에 올라탔다.

“가자!”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의 외침과 함께, 와이번 무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헬무트의 요새로 향했다.

‘도대체 뭐지?’

한편, 오토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괴수들이 나타났다고? 대체 어디서?’

오토는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괴수들이 나타날 만한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변수라는 건가.’

오토는 지금의 이 사태가 게임으로는 구현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토가 아는 한 괴수들이 출현할 만한 마땅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사태는 오토가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떠한 실마리라도 있었다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마음가짐으로 조심했을 텐데, 이번엔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오토라 할지라도 게임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사건·사고들까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토에게 무슨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슨 이유로. 괴수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

오토는 와이번을 타고 가는 동안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려 애썼다.

혹시나 놓친 건 없는지, 뭘 간과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본 것이다.

* * *

카심이 와이번을 태워 준 덕분에 오토 일행은 매우 빠르게 헬무트의 요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새 앞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까막이에 탄 채 아래를 내려다보던 오토는, 괴수들의 숫자에 놀랐다.

“그륵, 그르륵!”

“그르르르르!”

새카맣게 모여든 괴수들은 최소 수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

‘미친!’

오토는 괴수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괴수들의 행렬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까지 끝도 없어 펼쳐져 있었다.

요새를 공격하고 있는 괴수들은 전체 숫자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카심! 내려줘요!”

“예! 전하!”

카심은 와이번들을 지휘해서, 오토와 카미유와 마검사들을 요새에 내려 주었다.

“가자!”

“귁! 귁귁귁!”

카심은 다시 와이번들을 지휘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까막아! 다 불태워 버려!”

“귁! 귁귁귁!”

카심이 까막이에게 명령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까막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요새를 향해 달려드는 괴수들에게 시퍼런 불길을 뿜어내었다.

그러는 사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오토는 황급히 성벽 위로 이동해서, 헬무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

헬무트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공격이라 아직 파악된 게 하나도 없습….”

그때.

“그르르르르!”

성벽을 타고 올라온 괴수 한 마리가 헬무트를 향해 덤벼들었다.

푸욱!

헬무트가 엄청난 반응속도를 발휘하며, 괴수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헬무트 역시 뛰어난 무력을 지닌 기사답게, 괴수 한 마리쯤 골로 보내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르르르륵!”

“그륵! 그르르륵!”

괴수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오타 왕국군의 저지력이 떨어졌다는 뜻.

이대로라면 요새가 점령당하고, 괴수들이 수도로 들이닥칠 게 분명했다.

이곳을 지키던 모든 이들은 괴수들에게 잡아먹힐 테고.

‘싸움이 급하다.’

오토는 헬무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성벽을 타고 기어 올라오는 괴수들부터 처치해야 했다.

“이오타 왕국군!”

오토가 야만용사의 함성을 내질렀다.

“곧 지원군이 온다! 조금만 버텨라! 힘을 내라! 우리는 지지 않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토가 함성을 내지르자 이오타 왕국군 장병들도 덩달아 함성을 내지르며 몰려드는 괴수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기 시작했다.

오토의 함성에 실린 버프 효과는 그만큼 대단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장병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용맹하게 싸우는 것만 봐도,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촤락!

촤라락!

오토는 아예 성벽 위에 올라서서 싸웠다.

괴수들이 성벽을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 최전방에서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상태창이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양의 경험치가 들어온 것만은 분명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괴수들이 주는 경험치가 엄청나서, 레벨이 쭉쭉 오르는 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거 완전히 개꿀이잖아?’

오죽했으면 지금 이 상황이 반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걸 다 잡으면 레벨이 얼마나 오를까?’

사실 이제는 정확한 레벨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레벨업에 따른 성장을 느낄 수는 있었다.

감이 예민해졌다고나 할까?

어느새 오토는 굳이 상태창에 의지할 필요 없이, 스스로의 성장에 따른 변화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 * *

막대한 양의 경험치가 주어졌고, 그만큼 레벨도 올랐지만 오토는 웃지 못했다.

“그르르르륵!”

“그륵! 그르르륵!”

몰려드는 괴수들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는데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2시간 뒤.

“헉, 허억….”

오토의 입에서 가쁜 숨이 토해졌다.

‘이래서는 끝이 없다.’

오토는 깨달았다.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괴수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성벽 밑에 쌓인 시체들이 괴수들에게 발판이 되어 주고 있었다.

괴수들이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밝고 성벽 위를 너무나도 손쉽게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성벽이 제 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괴수들의 시체가 어찌나 쌓였던지, 거의 성벽 높이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오토는 결국 대학살의 서를 꺼내 들었다.

스으으으!

영혼에너지를 흠뻑 빨아들인 대학살의 서가 초록색 섬광을 내뿜고 있었다.

괴수들은 영혼이란 게 없다시피 한 존재인지, 영혼에너지를 거의 주지 않았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있듯이, 워낙에 많은 괴수들이 죽은 만큼 흡수한 영혼에너지의 양 자체는 매우 많았다.

질보다는 양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뭐든 좋으니까. 지금 상황을 해결할 주문을 줘.’

오토의 염원이 대학살의 서에 스며들었다.

촤라라라라라라라!

대학살의 서가 저절로 펼쳐지며 오토에게 지금 상황을 해결할 만한 마법을 추천해 주었다.

뒤이어 오토의 입에서 지금은 잊힌, 과거 금지되었던 고대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주문이 끝났을 때.

치익!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성벽이 붉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성벽으로부터 시뻘건 화염이 뿜어져 나와 몰려드는 괴수들을 덮쳤다.

이글이글!!!

그 불길이 어찌나 뜨거웠냐 하면, 마법을 펼친 오토조차 그 열기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을 정도였다.

“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르! 그르르르르르르!”

괴수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대었다.

하지만 성벽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화염은 무자비하게 괴수들을 불태웠고, 숯덩이로도 모자라 아예 한 줌 재로 만들어 버렸다.

성벽 아래 쌓였던 괴수들의 시체 더미 역시 재가 되어 흩날렸다.

가히 어마어마한 위력.

대마법사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주문력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오타 왕국군 장병들은 오토가 이루어낸 기적을 보고 하늘이 떠나가라 함성을 내질렀다.

그 많던 괴수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타죽는 광경이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

성벽은 계속해서 화염을 내뿜으며 몰려드는 괴수들을 불태웠다.

악마의 화염 장벽이라 부르는 이 마법은, 성벽으로 하여금 초고온의 화염을 내뿜도록 만드는 주문이었다.

그것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불길을 내뿜었다.

적어도 마법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적들이 감히 요새를 함락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최고의 방어 주문이나 공격 주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오토의 대활약으로, 이오타 왕국군은 괴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몇 시간 정도는 벌게 되었다.

하지만 오토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이건 버티기에 불과해.’

괴수들의 행렬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었다.

지금 괴수들을 막아낸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마법이 끝나면 또다시 싸워야 할 테고, 지금처럼 대학살의 서를 이용해 금지된 마법을 펼치지 않으면 요새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그륵!”

“그르르르륵!”

성벽이 화염을 내뿜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괴수들은 끊임없이 성벽을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성벽이 내뿜는 화염에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지는데도 괴수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오직 공격성과 식욕이라는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모두 휴식을 취하라! 화염이 멈출 때까지 최대한 힘을 비축한다!”

“예! 전하!”

오토는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하늘 위에서 활약하고 있던 카심을 불러들였다.

“카심 경.”

“예, 전하.”

“갑시다.”

오토가 까막이 위에 훌쩍 올라탔다.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괴수들의 행렬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아봐야죠.”

오토가 지평선 너머를 가리켰다.

‘분명 뭔가 있다.’

오토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자 했다.

최소한 저 괴수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도는 파악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모시겠습니다.”

카심이 오토를 태우고 괴수들의 행렬을 따라 비행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괴수들의 행렬을 추적하던 오토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이제는 갯벌로 변해 버린 뒤틀린 황야에서 괴수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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