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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아.”

오토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압둘 2세가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았으므로….

“이 아비를 대신해 군대를 끌고 가 역적들을 쳐부숴도 모자랄 판국에! 감히 이 아비의 명을 거역해?”

“아, 아바마마!”

“이런 물러터진 놈! 나약한 놈! 그런 약해빠진 정신머리로 어찌 술탄이 될 수 있다는 게야!”

“아바마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전쟁은 아니 되옵니다!”

“닥쳐라, 이놈!”

“……!”

“왕세자임에도 우리 왕조의 군대를 이끌고 역적들을 쳐부수지 않겠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느냐!”

“역대 그 어떤 제국도! 그 어떤 왕조도 우리나라의 대통합을 이루지 못했사옵니다! 아바마마! 그들을 자비심으로 대하소서! 오직 자비와 교단의 교리만이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옵니다!”

“감히 네놈이 이 아비를 가르치려 들어!!!”

“아바마마….”

“네놈의 그 약해빠진 정치는 이 아비가 서거하고 그 뒤를 이었을 때나 펼쳐라! 지금은 이 아비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다!”

“소자가 아바마마의 명에 따라 다른 부족들을 토벌하는 데 앞장선다면, 훗날 아바마마의 뒤를 이어 술탄이 된다 한들 그들이 소자의 유화정책을 따르겠사옵니까?”

“뭣이?”

“대통합은 오직 자비와 포용과 지혜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옵니다! 성인(聖人)이 되셔야 하옵니다! 아난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소서!”

“허어! 아주 가관이로구나! 가관이야!”

“지금 대륙의 정세가 심상치 않사옵니다! 예로부터 수없이 많은 강대국들이 우리의 마정석을 노리고….”

그 순간.

“이런 고얀!”

화가 난 압둘 2세가 옆에 있던 도자기를 들어 살라딘의 머리를 내리쳤다.

와장창!

도자기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주르르르륵!

살라딘의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오냐.”

압둘 2세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살라딘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정 그렇다면 어디 두고 보자. 언제까지 이 아비의 명을 거역하는지 짐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아, 아바마마….”

“아비라고 부르지도 말거라! 괘씸한 놈! 나약한 놈! 내게 자식이 하나 더 있었다면 네놈을 당장 폐위시켰을 것이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압둘 2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매정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따 보자.”

“예, 전하.”

오토는 살라딘을 나중에 만나기로 했다.

괜히 집안싸움에 휘말렸다가 불똥이 튀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할 일일 테니까.

* * *

그날 저녁.

시종을 보내 양해를 구한 살라딘은 오토를 다시 초대했다.

살라딘을 만나러 가는 길.

“살라딘 왕세자가 왜 그렇게 술탄에게 미움받을 짓만 하는 겁니까.”

카미유가 물었다.

“살라딘 말이 다 맞아.”

“예?”

“무력으로 찍어 눌러 봤자 안 돼. 역사가 그걸 증명하잖아. 역사상 성공 사례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냐고.”

“그건 그렇지만.”

“대현자 엘돌로곤이 왜 화합의 성서를 만들었겠어. 내가 왜 개고생을 해 가면서 그걸 손에 넣었고.”

“아.”

카미유는 그제야 오토의 말뜻을 깨달았다.

인간은 다르다.

매일 부대끼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성격과 가치관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하물며 타인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문화, 관습, 인종, 사상 등등등.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고 대통합을 이룬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

어쩌면 그게 진정한 신의 영역일지도.

“근데 그 화합의 성서조차 어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 종교야.”

“……!”

“신앙에 한해서는 화합의 성서도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근데 칼리프 왕국의 분열 원인이 뭐야?”

“종교적인 문제 아닙니까?”

“그렇지. 각 부족마다 교리 해석이 달라서, 그거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우다 보니 이 지경이 된 거잖아. 부족 간의 갈등과 대립은 나중 문제고.”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칼리프인들은 하루에 기도를 몇 번 하는가를 가지고도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어느 부족은 하루 3번.

어느 부족은 5번.

또 어느 부족은 7번.

이렇듯 부족마다 교리 해석이 다르니 다툼이 잦을 수밖에.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무력으로 찍어 누르겠어. 최소한 100배 이상의 군사력으로 찍어 누른 다음에 가축처럼 대하는 것밖엔 답 없어.”

“그럼 압둘 2세가 잘못 판단하고 있단 말씀이십니까?”

“한참 잘못 판단하고 있지. 지금 수렁에 빠져들기 직전이야. 살라딘은 어떻게든 그걸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거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왕세자 부부의 궁궐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붕대로 머리를 칭칭 둘러멘 살라딘이 오토와 카미유를 반겼다.

“낮엔 사고가 좀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만남을 취소한 점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별말씀을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차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살라딘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게 된 오토.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오토가 대뜸 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꾸 그렇게 아버님의 말씀을 거역하셨다간 아무리 왕세자님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아.”

“안위는 생각하지 않으세요?”

“제 안위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습니다.”

살라딘이 미소를 지었다.

“대통합을 이룰 수만 있다면 제 한목숨쯤 아깝지 않습니다. 기꺼이 바칠 수도 있습니다.”

“하아.”

오토가 깊은 한숨을 토했다.

‘이래서 2번 시나리오가 인기가 없는 건데.’

하지만 게임과 현실은 다른 법.

살라딘이 이런 인물이라면 앞날이야 뻔했다.

“방법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오토가 살라딘에게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압둘 2세를 폐위시키고 살라딘이 술탄이 될 수 있느냐 하면, 단언컨대 절. 대. 로. 불가능했다.

현 술탄인 압둘 2세의 권력은 절대적.

그에 반해 살라딘은 지지하는 세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반란을 일으키면?

죽는다.

성공한다 해도 지지기반이 빈약한 살라딘으로서는 왕위를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

살라딘의 성격상 반란을 일으킬 리도 없었고.

‘화합의 성서를 빌려줄 수도 없고. 그럼 내가 망하니까. 빌려준다고 해도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고.’

그렇다고 이오타 왕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다.

이오타 왕국은 대륙 진출을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는 상태.

이 이역만리 칼리프 왕국까지 원정을 온다는 건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할 일.

‘이건 내가 살라딘이 된다고 해도 답이 없어. 자신도 없고.’

결국, 살라딘의 운명은…….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난께서 길을 밝혀 주시리라 믿습니다.”

살라딘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왕세자 저하께선 군주보다는 성직자가 더 어울리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왕세자의 신분만 아니라면 교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향이 좋네요.”

오토는 차마 살라딘과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화제를 돌렸다.

‘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지.’

마음을 내려놓았다.

‘억지로 뭘 바꾸려고 하지 말자.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오토는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한들 사람의 천성까지 바꾸어 놓을 순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은인께 보답하고자 황금 10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예?”

“본국으로 돌아가실 때 가지고 가십시오.”

“그렇게나 많이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칼리프 왕국이 전하와 카미유 경께 입은 은혜가 큽니다. 약소하지만, 받아주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오토는 보답의 스케일에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 *

그 후 오토와 카미유는 살라딘 부부. 그리고 왕세손 마수드와 함께 나름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 뒤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본국으로 돌아갑니까?”

“잠깐만.”

오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떠날지.

아니면 좀 더 남아서 뭔가를 해줄지.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금 떠나는 게 맞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만약 압둘 2세와 살라딘의 갈등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된다면… 그건 변수다. 칼리프 왕국의 정세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을 거다.’

‘세계 최대 마정석 생산국이자 수출국의 정세가 불안해지면 나도 곤란해지겠지. 마정석 수급이 어려워질 테니까.’

전략 물자인 마정석의 수급이 어려워진다면, 이오타 왕국의 전쟁수행능력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터.

“딱 열흘만 더 머무르자.”

“열흘 말씀이십니까?”

“응.”

“뭘 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찾을 물건들이 좀 있어서.”

“……?”

“성물을 좀 찾아야 할 것 같아.”

살라딘 역시 주인공 캐릭터인 100인의 군주 중 하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고유의 성물이 없을 리 없었다.

‘성물이라도 찾아주고 가자. 성물을 손에 넣을 시간적 여유조차 없을 수도 있으니까.’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 * *

살라딘이 시나리오상 획득 가능한 성물은 무려 두 개.

하나는 살라딘이 폭군으로서의 길을 선택했을 때 획득하게 되는 <마신의 요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살라딘이 성인으로서의 길을 선택했을 때 획득하게 되는 <계시록>이었다.

하지만 살라딘이 두 개의 성물을 다 가지는 건 불가능했다.

두 성물의 성질이 극과 극이라, 한 사람이 다 손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라딘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시나리오의 방향성에 따라 하나의 성물만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괜히 살라딘이 시나리오 선택에 따라 폭군 혹은 성인(聖人)으로 갈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팀을 나누자.’

두 개의 성물들은 각기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었으므로, 오토는 팀을 나누어 두 가지 성물을 동시에 획득하기로 했다.

“카심.”

“예, 여기 있습니다.”

오토는 살라딘의 성물 중 하나인 <마신의 요람>을 찾아오는 임무를 카심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검사들을 지휘해서 여기로 가세요.”

오토가 지도에 카심이 가야 할 곳을 짚어 주고, 자세한 작전 내용을 브리핑해 주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서 전하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귁! 귁귁귁!”

카심은 오래간만에 특수작전다운 임무를 맡자 어지간히도 좋아했다.

지난번 오버하우저 상단의 밀무역을 적발했을 당시 공을 세운 건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그저 모드레드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획득한 정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된 특수작전을 지휘하게 되었으니,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라고 맡긴 것이기도 했고.

‘마신의 요람은 됐고. 계시록은….’

오토의 시선이 나머지 신하들을 쭉 훑었다.

남은 건 카미유, 카이로스, 그리고 영혼기사들뿐.

“흠.”

오토가 카미유에게 다가가 마치 상품을 살펴보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외모는 합격. 이만하면 미남이긴 해?”

“예…?”

“근데 성격이 불합격. 지랄맞아서 안 돼.”

“뭡니까.”

카미유가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뜬금없이 외모를 품평당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성격까지 지랄 맞단 소리를 들으니 발끈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깡통들이라 다 불합격.”

오토의 시선이 영혼기사들을 지나쳐 카이로스에게 머물렀다.

“외모는 합격. 남자답게 잘생기긴 했지. 근데 성격이 불합격. 너무 꼰대야. 눈치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고.”

“뭐라? 말 다했느냐! 뺀질이!”

“그리고 성적 취향이 그쪽이라 더 불합격.”

“서, 성적 취향?”

“남자 좋아하잖아. 여장한 남자.”

그 순간.

툭!

카이로스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이 빌어먹을 뺀질이 자식! 오늘 아주 제대로 혼쭐을 내주마!”

카이로스가 오토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 참으십쇼! 끌끌!”

“맞는 말인데 뭐! 호호호!”

“여장남자들이랑 신나게 놀아난 건 사실 아닙니까? 크흐흐흐!”

아가토·힐데가르트·막시무스가 카이로스를 뜯어말렸다.

“어휴. 사람이 없네, 사람이 없어. 결국 내가 해야 되는 건가.”

오토가 한숨을 내쉬더니 카미유를 돌아보았다.

“가서 화장 잘하는 시녀 좀 불러 와.”

“예?”

“오랜만에 미남계(美男計) 좀 쓰려고.”

오토는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계시록>을 얻기 위해서는 잘생겼을수록 유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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