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푸화아악!
리볼트의 가슴팍에서 피가 확 튀어 올랐다.
치명상.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하지만 리볼트는 거기서 무너지지 않았고.
“크윽…!!!”
그 와중에 오토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
그 반격이 얼마나 매서웠던지, 오토가 공격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잠깐 쉬고.’
오토는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리볼트를 향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리볼트의 입에서 버럭 분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리볼트의 움직임은 많이 무너져 버린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중독, 슬로우, 석화 효과에 의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는데 치명상까지 입었으니 싸움을 계속해 나가기 힘든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볼트는 자신의 강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매우 뛰어난 검술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크윽… 이… 비겁한… 새끼이….”
리볼트가 오토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리볼트를 상대하는 오토는 엄청나게 비열했다.
계속해서 석화를 걸고, 중독을 걸고, 심지어 슬로우까지 걸어 대는 통에 리볼트는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토는 욕심 부리지 않고, 매우 침착하게 리볼트의 왼쪽 사각지대만을 아주 집요하게 노리는 영악함을 보였다.
천천히 리볼트를 갉아먹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리볼트가 쌍욕을 퍼부어 대며 오토를 향해 일격을 날리려던 바로 그 순간.
움찔!
리볼트는 차마 공격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 더러운 새끼!’
리볼트는 오토의 입이 움찔움찔 당장에라도 침을 뱉어낼 것만 같아서 도저히 공격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처음에 당했던 게 생각이 나서, 자꾸만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황했다.’
오토는 그런 리볼트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표정만 봐도 평정심이 무너진 것이 훤히 드러나 보여서, 리볼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비열한 죽음구슬을 의식하고 있다.’
그건 심리전의 승리였다.
언제 어느 때 비열한 죽음구슬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
중독, 석화, 슬로우로 인한 컨디션의 저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왼쪽 사각지대.
이미 리볼트는 오토라는 거미가 친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벌레 신세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촤라락!
오토의 검이 리볼트의 허벅지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크악!”
비명을 지르는 리볼트.
‘한 번 더 쉬고.’
오토는 리볼트의 반격을 의식해 추가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물러났다.
“이 비열한 새끼야! 이 개새끼야!”
리볼트는 그런 오토의 전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었다.
리볼트는 한평생 오토 같은 전투 스타일을 가진 사람과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치사하고, 야비하고, 비열하고, 집요하게 싸울 수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했을 줄이야….
그렇게 한참을 고통받던 리볼트는, 어느 순간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커헉!”
리볼트가 보라색 피를 토했다.
맹독응시의 저주가 누적되어서, 이제는 피까지 보라색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리볼트의 피부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석화 효과에 의해 피부마저 돌처럼 굳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리볼트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비열한 놈에게… 이렇게 허무하게….”
리볼트는 말을 더 이어가지 못했다.
툭.
리볼트가 고개가 맥없이 떨어졌다.
중독사.
누적된 맹독응시의 저주로 인해 그만 죽어 버린 것이다.
제 실력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말이다.
* * *
“쩝.”
오토는 리볼트가 죽은 걸 보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슬슬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 했는데, 독에 중독되어 제풀에 죽어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
“…….”
“…….”
한편,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야.”
오토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박수 안 쳐?”
오토는 리볼트란 강자를 쓰러뜨렸음에도, 주변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런 반응이 아닌데?
이거 맞아?
“어. 음. 그게.”
카미유가 대답했다.
“뭐. 왜.”
“너무 비열한 거 아닙니까?”
“뭐?”
“승전을 축하드리긴 합니다만, 전투 방식이 너무 비열하셔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야 이.”
오토가 눈을 부라렸다.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해? 이기면 된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박수 쳐.”
오토가 카미유를 윽박질렀다.
“안 쳐? 박수 치라고.”
“아, 예.”
카미유가 마지못해 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지켜보던 사람들 역시 재빨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지금 박수를 안 쳤다간 앞날이 한없이 피곤해지고 괴로워지리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내 곧 열렬하게 환호하기까지 했다.
“전하! 멋지십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휘이익!”
오토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엣헴!”
억지 호응이긴 했지만, 오토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이대로 계속 실전을 치러나가면서 발전하는 거다. 아직 갈 길이 멀었으니까.’
오토는 리볼트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게 만족스러웠다.
마검사로서의 전투 스타일에 대한 감을 잡은 건 꽤나 큰 성과였다.
리볼트와의 대결로 검술과 마법을 조합시켜 나가는 과정의 첫 발걸음을 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261레벨 달성!]
[알림: 262레벨 달성!]
[알림: 263레벨 달성!]
[알림: 264레벨 달성!]
[알림: 265레벨 달성!]
비록 희미하기는 했지만, 경험치가 오르며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창도 보였다.
‘그래. 이렇게 성장해 나가는 거야. 지금 좀 어설프면 어때. 계속 강해지고 있는데.’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건 발버둥 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강함이란 계단식으로 성장하기 마련.
오토는 이렇듯 차근차근 조금씩 강해진다면, 어느 순간 무적의 무력을 뿜어낼 수 있는 날이 온다고 굳게 믿었다.
왜?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적의 힘을 손에 넣을 터.
조급해할 것은 없었다.
중요한 건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발전해 나가는 것이었으니까.
“이건 챙겨야지.”
오토는 죽은 리볼트로부터 마이트리야의 묵주를 풀어냈다.
그리고는 카이로스에게 다가가 마이트리야의 묵주를 건넸다.
“자.”
“음? 이게 무엇이냐?”
“마이트리야의 묵주. 아트로포스 교단의 성물이야.”
카이로스는 과거 아트로포스 교단에서 수도승 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었고, 그 교단의 교리에도 꽤나 심도 있는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술주정뱅이 전직 황제 폐하께 그런 종교적인 모습이 있다는 게 솔직히 좀 놀랍긴 했지만.
“이게 아트로포스 교단의 성물이란 말이냐?”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을 찾은 거 같아서.”
“으음.”
“가지고 있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테니까.”
“알겠다.”
카이로스가 묵주를 받아 들었다.
스으으!
그러자 묵주로부터 황금색 서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오토는 그 광경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잠잠하던 묵주가 저렇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마치 진정한 주인을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 * *
오토가 기억하는 마이트리야의 묵주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마이트리야의 묵주]
구원자가 오리니.
- 아트로포스 교단의 선지자.
설명 : 아트로포스 교단의 성물.
등급 : ★★★
효과 :
- 세력 내 불만을 품은 자들에 대한 친화력, 지배력, 통솔력 500% 증가.
- 세력 내 불만을 품은 자들에게 모든 능력치 35% 증가.
특이사항 : 세력 내 민심이 흉흉하면 흉흉할수록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런 마이트리야의 묵주가 어째서 카이로스의 손에 들어가자 스스로 상서로운 빛을 뿜어내는지, 오토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그 신비한 효과를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끌끌끌.”
카이로스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랬구먼.”
“뭐야?”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짐이 맞았다.”
“뭐가.”
“짐이 해석한 교단의 교리가 맞았단 말이다.”
“자세히 설명 좀 해 봐.”
“묵주를 손에 쥐자 교단의 교리에 대한 진리가 뇌리에 흘러들어왔다.”
“아?”
“진정한 구원이란 구원자가 나타나는 게 아닐지니.”
“……?”
“결국엔 사람이니라.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이니라.”
“그게 뭔 소리야.”
카이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어떠한 생각에 잠겼다.
“음. 으음.”
마치 마이트리야의 묵주로부터 얻는 깨달음을 음미하려는 것처럼.
‘하여간 이상한 인간이라니까.’
오토는 카이로스가 어떤 인간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떨 땐 애새끼 같고.
또 어떨 땐 상남자 그 자체고.
또 어떨 때는 술주정뱅이고.
그런가 싶다가도 무력을 드러낼 때는 한없이 강해 보이고.
이제는 과거 몸담았던 아트로포스 교단의 진리에 심취한 모습이라니.
다만 한 가지.
‘하긴. 저런 면이 있으니까 장벽을 쌓았겠지.’
오토는 카이로스가 절대 악인이 아니고, 악인이 될 수도 없는 인물이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 무리하게 북부 장벽을 쌓았던 이유도, 다 대륙의 안보를 위해 희생했던 거였다.
애초에 카이로스는 통일왕조를 열어 대제국을 건설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온 세상 사람들이 보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지, 결코 야망에 미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리볼트의 죽음으로, 이오타 왕국군은 그 세력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었다.
리볼트라는 정신적 지주이자 지도자를 잃은 세력은, 이오타 왕국에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덕분에 이오타 왕국군은 큰 전투 없이 로우레딘 왕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오토는 리볼트의 세력을 흡수하자마자 그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식량을 아낌없이 풀었다.
칼리프 왕국과의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그 엄청난 자금으로, 굶주린 로우레딘 왕국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것이다.
덕분에 오토는 점령 지역의 민심을 매우 손쉽게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던 중.
“전하, 아르곤 대제가 또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카미유가 오토에게 보고했다.
“끔찍한 음모?”
“정보원들에 따르면, 아르곤 대제 일당이 점령지역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어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답니다.”
현재 아르곤 대제가 장악한 세력 내에는 이오타 왕국의 간첩들이 매우 많이 들어와 있었다.
아르곤 대제가 또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몰랐으므로, 미리 간첩들을 많이 심어 놓았던 것이다.
“뭐? 백성들은 노예로 만들어 팔아?”
“예, 전하.”
카미유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백성들을 징집한 뒤 사하라 왕국에 노예로 팔려는 것 같습니다.”
“이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 새끼가.”
오토는 분노했다.
지난번 황릉 사건 때도 그렇고, 무고한 백성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아르곤 대제의 행태에 분노한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오토는 이쯤 됐으니 아르곤 대제를 끝장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래 오토는 아르곤 대제 당장 죽이기보단 철저하게 이용하고, 골려주고, 괴롭히려고 했다.
왜?
그게 더 고통스러운 일일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계속 살려 두었다간 더욱 끔찍한 짓을 저지를 테고, 그렇게 되면 무고한 피해자들과 희생자들만 늘어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 이거 안 되겠네.”
오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죽여야겠어.”
오토는 아르곤 대제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오토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