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1화
“하하… 하하하하…….”
오토는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이 앞다퉈 악수를 청하자 크게 난감해져 버리고 말았다.
‘하 씨. 왜 둘이서 한꺼번에 몰려오고 난리야.’
난감한 상황.
여기서 누구 하나의 손을 먼저 잡았다가는 나머지 하나를 적으로 돌리는 셈이라, 오토 입장에선 매우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기대에 찬 눈으로 오토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내 손을 먼저 잡겠지.’
‘형님보단 내 손을 잡는 편이 나을 거다. 형님, 헛걸음하셨구려.’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서로 자신이 오토에게 간택당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에, 오토가 자신을 선택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어떡하지?’
난처해져 버린 오토는 테르테미안과 파라곤 어느 누구와도 악수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시간은 흘러가는데 딱히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그 순간.
‘아!’
불현듯 뇌리에 이거다 싶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네. 나 왜 이렇게 똑똑한 거야? 헤헤헤.’
오토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즉시 어릿광대의 재간 권능을 사용해 분신 두 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분신들로 하여금 각각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이 내민 손을 맞잡아 악수를 나누게끔 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테르테미안 대공 전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파라곤 대공 전하.”
오토의 분신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멘트를 치며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에게 미소를 지었다.
“…….”
“…….”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누구 하나의 손을 맞잡고 악수해 줄 줄 알았는데, 이렇듯 분신을 만들어 내서 대응할 줄이야…….
차라리 하나는 분신이고 하나는 본체였다면 진짜 오토의 손을 잡았거니, 하고 정신승리라도 할 텐데 이건 너무나도 똑같은 대우라 그럴 수도 없었다.
심지어 멘트까지 똑같아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두 분 대공 전하를 대함에 있어 한 치의 서운하심도 없게 하려고 그런 것이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분신들을 앞세운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에게 양해를 구했다.
“크흠.”
“흠흠.”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괜히 헛기침을 하며 민망함을 표시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은 오토에게 싫은 기색을 내비치진 못했다.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다.
잘츠부르크 가문, 이오타 왕국, 그리고 로웨나 이 3개 세력이 혈연으로 묶여 버린 상황.
만에 하나 잘츠부르크 가문이 그간 지켜오던 중립을 풀고 오토와 합심해 로웨나를 밀어준다면,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그 길로 끝장이었다.
어느새 이 대륙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라드 제국의 황제가 아닌 이 신흥강국의 젊은 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대의 배려가 이리 사려 깊을 줄은 몰랐군. 현명하시오, 오토 국왕.”
“그대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 같은 표정으로 오토에게 미소를 지었다.
전형적인 접대용 미소라고나 할까?
‘읍읍! 읍읍읍!’
오토는 그런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이 접대남 미소를 짓자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콧대 높은 삼인방 중에서 두 명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던 것이다.
‘진정, 진정하자.’
오토는 최선을 다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는,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에게 말했다.
“마침 두 분 대공 전하와 말씀을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이렇게 뵙게 되네요. 정말로 영광입니다.”
그러자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의 얼굴이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오토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로웨나가 손잡고 그들을 토벌할 생각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누이와 붙어먹을 리 없지!’
‘하긴. 대륙 제일의 미녀를 곁에 두고 누이와 눈이 맞을 리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기분이 좋아졌지만, 이내 곧 다시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이 하이에나 같은 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와서 이 형님의 일에 훼방을 놓는단 말이냐.’
‘형님만 없었다면 오토 국왕과 오붓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터인데.’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살기등등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일지라도, 그들은 적.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빼앗아야만 하는 관계.
황족이란 이렇듯 남보다 못한 사이일 때가 더욱 많았던 것이다.
“어느 한 분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다면 다른 한 분이 서운해하실 것 같네요.”
오토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따 밤이 되면 같은 시간에 분신들을 보내 말씀 나누겠습니다. 어떠세요?”
오토의 분신들은 평범한 분신들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겠소. 그런 마법까지 쓸 수 있다니. 그대의 능력은 정말이지 대단하군.”
“놀랍구려. 내 오토 국왕의 뜻에 따르리다.”
괜히 토를 달았다가는 미운털이 박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오토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왜?
오토가 곧 대륙이었으니까.
오토를 얻는 사람이 대륙의 패권을 거머쥐고, 나아가 아라드 제국의 황위에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그날 밤.
약혼식 피로연을 마친 오토는 엘리제의 할아버지인 북부대공 지안카를로 대공을 찾아갔다.
지안카를로는 오토의 외조부인 콘라드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그래도 소원 푸셨습니다. 하하하.”
“껄껄! 내 손주가 이 정도라니까? 크핫핫핫!”
서로 아주 오래전부터 막역한 사이인지라, 대화를 나누면서도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나, 콘라드는 정말이지 엄청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콘라드의 인생에서 오토란 캄캄하던 앞날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오토가 나타나기 전까지 쿤타치 가문은 서서히 쇠락해 가고 있었고, 콘라드 역시 자식농사를 망쳐서 비참한 말년이 예정되어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오토가 나타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쇠락해 가던 쿤타치 가문을 일으킨 것으로도 모자라 불과 몇 년 만에 강대국을 일구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잘츠부르크 가문과의 약혼도 지키게 되어서, 이제는 엘리제라는 훌륭한 손주며느리마저 생긴 마당이었다.
안 그래도 자식 복-콘라드 본인의 과실도 상당했지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팔자였는데, 오토가 이렇게까지 해 주니 열 자식 부럽지 않았던 것이다.
“오오! 우리 오토 왔느냐!”
콘라드가 예뻐 죽겠다는 듯 오토를 반겼다.
“손녀사위 왔는가.”
반대로, 지안카를로는 오토가 조금은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며칠 전 나누었던 대화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이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느냐?”
“예, 할아버님.”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지안카를로의 물음에 답했다.
“지금부터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의 숙소에 제 분신을 보내 대화를 나눠 볼 생각입니다.”
“분신을 보내 대화를 나눠? 그것도 동시에?”
“예.”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그러자 콘라드가 끼어들어 지안카를로에게 면박을 주었다.
“어허! 우리 쿤타치 가문이 검과 마법의 가문이라는 걸 잊었는가? 우리 성역에 잠들어 있는 무적황제의 권능은 전지전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세!”
“크흠!”
지안카를로는 콘라드의 자랑질에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자리가 자리인 만큼 꾹 참고 오토에게 물었다.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에게 분신을 보내서 뭘 어쩔 작정이냐?”
“예, 할아버님.”
오토가 대답했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를 할아버님께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럼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걸 확실하게 아시게 될 겁니다.”
“으음!”
“테르테미안, 파라곤, 그리고 로웨나가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 아라드 제국은 내전의 불길에 휩싸일 겁니다.”
“내전이라…….”
“그러는 사이 북부제국이 침공해 온다면, 그땐 이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통째로 빨려 들어갈 겁니다. 할아버님께서 제게 증거를 요구하셨던 만큼, 우선 황자들의 속마음부터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좋다.”
지안카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는지 한번 두고 보도록 하겠다.”
“자네!”
콘라드가 지안카를로를 향해 인상을 팍 구겼다.
“지금 우리 오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겐가? 자네의 손녀사위이자 이 형의 손주의 말을?”
“형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지안카를로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밑도 끝도 없이 믿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질 않습니까.”
“으음.”
“대륙의 운명이 걸린 일입니다.”
“두고 보게.”
콘라드가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오토기 틀린 말을 하는지.”
“두고 볼 것입니다.”
지안카를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느긋한 태도로 오토가 대화 내용을 들려주기만을 기다렸다.
스륵, 스르륵.
즉시 분신 2개를 만들어 낸 오토가 그들을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의 숙소로 보냈다.
- 오셨구려. 정말 잘 오시었소.
- 어서 들어오시오, 오토 국왕. 하하. 분신이니 진짜 온 것은 아니지만, 내 이렇게 그대를 환영하오.
이윽고 펼쳐진 대학살의 서 위에 오토의 분신들이 보는 시야가 공유되며, 환영이 떠올랐다.
“저는 계속 마법을 유지하겠습니다.”
오토는 그렇게 말한 뒤 분신들을 조종해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깔깔깔깔깔!”
한편, 로웨나는 계속해서 학살을 저지르며 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하는 중이었다.
오토와 엘리제의 약혼 소식이 발표된 후로 로웨나는 단 하루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시녀 하나를 죽인 것을 시작으로, 로웨나는 분노가 들끓을 때마다 이성을 잃고 살인을 저지르기 일쑤였다.
포로로 잡은 에르제베트 왕국군을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한 것을 계기로, 그녀는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피에 대한 갈망을 각성한 상태.
평소에는 어떻게든 참고 있지만, 한 번씩 감정이 요동칠 때면 도저히 그 욕구를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이렇듯 오토와 엘리제의 약혼식 같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면 도저히 피를 보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 그 살인욕구를 채워야만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 밤은 오토와 엘리제의 약혼식이 있는 날이라 로웨나의 광기는 더욱 치솟아 있는 상태였다.
“죽여 버릴 거야… 모조리… 모조리 죽여 버릴 거라고…….”
로웨나가 광기에 희번덕거리는 눈을 빛내며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로웨나의 주변에는 끔찍하게 토막 난 시체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로웨나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의 황녀이자 대공을 건드렸다간 무슨 끔찍한 보복을 당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들후들!
그렇게 근위기사들마저 벌벌 떨면서 눈치만 보던 그때.
“대, 대공 전하!”
한 기사가 다급히 로웨나의 앞으로 달려가 철퍼덕! 몸을 납작 엎드렸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동생이 편지를 보내왔다고?”
피에 미친 악귀와도 같던 로웨나의 눈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오토가 편지를 보내왔다는 그 한 마디에 피에 미친 악귀에서 다시 황녀 로웨나 대공으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