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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어검술.

마나와 정신력을 이용해 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스킬.

어지간한 영웅 유닛들조차 구사하는 이들이 극히 드물 정도로, 어검술은 최상급 스킬이었다.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물리 공격형 근접 캐릭터들이 꿈에 그리는 스킬이라고나 할까?

사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는 근접 캐릭터의 한계점을 완벽하게 극복하게끔 만들어 주는 스킬인 것이다.

‘지, 진짜 어검술이야…?’

오토가 놀라는 사이.

쾅! 콰앙!

철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키메라의 염소 머리통을 연거푸 강타했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란 건 비단 오토뿐만이 아니었다.

“어, 어검술?!”

카미유도 놀라고.

“맙소사….”

“영주님께서… 어검술을 사용하신다고…?”

“내 살아생전 저런 기술을 보게 될 줄이야….”

지켜보던 기사들과 병사들도 놀랐다.

영주님 어검술 쓰신다!

왜일까?

어느 북부 왕국의 독재자가 축지법을 쓴다는 내용의 노래가 생각나는 건?

‘설마… 진짜 어검술이냐?’

오토가 놀라서 카이로스에게 물었다.

- 끌끌끌….

카이로스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 어검술을 알아보다니. 꼴에 보는 눈은 있군.

‘뭐 인마?’

- 짐이 딱지치기라도 해서 대륙의 3분의 1을 통치하는 황제가 된 줄 알았느냐? 달랑 철퇴 한 자루를 들고 제국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다 막강한 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카이로스의 목소리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져 나왔다.

오토도 그걸 인정했다.

어검술을 구사할 정도의 무력이라면, 지금 시대에도 대륙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강자란 뜻이었으니까.

- 짐이 힘을 빌려주마.

‘알겠어.’

오토는 휘리릭! 되돌아온 철퇴를 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는 키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르르!”

“캬아아아아악!”

“메에에에에에!”

키메라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염소의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타격을 입은 게 분명했다.

‘날개부터.’

키메라는 공략법이 있는 몬스터.

그 첫 번째는 다름 아닌 날개였다.

날개 하나를 파괴해서 키메라가 더 이상 날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어흥!”

키메라가 달려드는 오토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앞발을 휘둘렀다.

데구르르르!

오토는 몸을 굴려서 그런 키메라의 공격을 아주 간단하게 피해내었다.

카이로스가 힘을 빌려준 덕분에, 평소라면 꿈도 꾸지 못할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이다.

‘날개!’

오토가 키메라의 어깻죽지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무기가 철퇴인지라 날개를 자를 수 없으니, 아예 날개 뼈를 부숴버리려는 것이다.

콰앙!!!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키메라의 오른쪽 어깨가 주저앉았다.

오토의 의도대로 철퇴가 날개와 이어진 어깨뼈를 아예 부숴버린 것이다.

그다음은?

‘염소.’

오토의 다음 목표는 키메라의 세 개의 머리 중 염소의 머리였다.

키메라가 가진 세 개의 머리는 각기 다른 능력을 지녔다.

가운데 자리한 사자의 머리는 무시무시한 화염을 내뿜고, 오른쪽에 자리한 와이번의 머리는 맹독을 품은 독가스를 뿜는다.

그리고 왼쪽에 자리한 염소의 머리는 적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석화[石化]의 광선을 쏜다.

바로 지금처럼.

지이이잉!

염소의 머리에 달린 두 눈에서 회색 광선이 뿜어져 나와 오토를 노렸다.

“으악!”

오토가 허리를 활처럼 뒤로 젖혀 석화 광선을 피해내었다.

지이이이이이이이잉!!!

“으아아아악!”

오토는 석화 광선을 피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 이런 멍청한!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호통쳤다.

- 놈의 등에 올라타라!

‘으응?’

- 등에 올라타면 놈의 공격을 맞을 일이 없지 않느냐!

‘그, 그렇지!’

- 피하지 말고 애초에 안 맞을 생각을 하란 말이다!

‘알겠어!’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언에 따라 훌쩍 점프에 키메라의 등에 올라탔다.

그다음은?

“뒈져! 이 새끼야!”

오토가 철퇴를 미친 듯이 휘둘러 염소의 머리통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메에! 메에에에에에에에!”

염소의 머리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크르르르르르르르!”

“캬아아아아아아악!”

사자의 머리와 와이번의 머리도 함께 고통을 느끼는지 비명을 질렀다.

오토는 왼손으로 키메라의 가죽을 꽉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계속해서 철퇴를 휘둘러 염소의 머리를 공략했다.

그 결과.

퍼억!

염소의 머리통이 깨지며 허연 뇌수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와이번.’

오토는 기세를 몰아 와이번의 머리통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악!”

와이번의 머리가 맹독을 품은 독가스를 내뿜었지만, 등 뒤에 있는 오토에게 닿지 않았다.

퍼억!

그렇게 와이번의 머리도 염소의 머리와 마찬가지로 반쯤 으깨졌다.

“크어어어어어어어!”

머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키메라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때문에, 오토는 키메라의 등 뒤에서 내려야만 했다.

계속 등에 올라타고 있다가는 키메라의 몸통에 깔려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르…!!!”

사자의 머리가 오토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 쫄지 마라.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조언했다.

- 놈이 화염을 내뿜을 때. 그때가 기회다.

‘뭐?’

- 놈이 아가리를 벌리면 철퇴를 던져라.

‘……!’

- 지금이다!

쩌억!

키메라의 사자 머리가 화염을 내뿜기 위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에라, 모르겠다!’

오토가 철퇴를 힘껏 내던졌다.

쒜에에에에에엑!

그러자 미사일처럼 날아간 철퇴가 화염을 내뿜으려던 키메라의 목구멍에 콱! 박혔다.

뒤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어어어어!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키메라가 고통스럽다는 듯 몸부림을 치더니, 갑자기 스스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화염이 뿜으려던 찰나에 철퇴에 목구멍을 막으면서, 그 불길이 역류해버린 것이다!

* * *

도끼로 제 발등 찍는다.

지금 키메라에게 딱 알맞은 말이었다.

“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염이 역류한 키메라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뜨거운 화염이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몸속을 불태우는데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 끝내라.

카이로스가 오토에게 또다시 조언했다.

‘굳이? 냅둬도 죽을 것 같은데?’

- 이런 멍청한!

‘으응?’

- 보여주란 말이다! 네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아.’

오토는 카이로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퍼포먼스.

카이로스는 오토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란 듯 키메라를 끝장내는 걸 보여줌으로써, 무력을 어필하길 원했다.

그래야 오토에 대한 부하들의 충성심과 존경심이 더 올라갈 테니까.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카이로스는 왕년에 황제까지 해본 인물인지라 부하들을 휘어잡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와라.’

오토가 손을 뻗어 철퇴를 불러들였다.

슈우우우우!

그러자 키메라의 목구멍 깊숙이 박혀 있던 철퇴가 오토의 손아귀를 향해 되돌아왔다.

오토는 되돌아온 철퇴를 멋지게 잡아채… 기는 개뿔!

“악! 뜨거어어어어어어어어! 으뜨뜨뜨뜨!”

오토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키메라의 목구멍을 막느라 철퇴가 뜨겁게 달구어져 있어서, 그만 손에 화상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 참아라! 네놈이 불러들인 철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으아아아악!’

- 가서 놈을 끝장내라! 어서!

오토는 손이 너무 뜨거웠지만, 꾹 참고 키메라를 향해 접근했다.

“크어어어어어어!!!”

그리고는 고통스러워하는 키메라의 머리.

마지막 남은 사자의 머리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퍼억!

수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마지막 남은 사자의 머리가 함몰되었다.

털썩!

쓰러진 키메라.

“여, 영주님께서… 영주님께서 키메라를 물리치셨다… 영주님께서 키메라를 물리치셨어!!!”

어느 한 병사가 소리치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알림: 키메라를 처치하셨습니다!]

오토는 키메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림: 교역로를 확보하셨습니다!]

[알림: <왕조건설!> 퀘스트의 진행률이 올랐습니다!]

키메라까지 처치한 덕분에 <왕조건설!> 퀘스트의 진행률이 올라갔다.

이제는 이 지역 일대를 상인들이 오가는 교역로로 만들어 통행료를 받아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각성 전에 키메라를 잡게 될 줄은….”

바로 그때.

퍼억!

“어…?”

오토는 순간 뭔가가 머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털썩!

뒤이어 오토가 키메라의 시체 앞으로 쓰러졌다.

오토가 쓰러진 이유는 탈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쓰러진 오토의 뒤에는 부지깽이를 움켜쥔 카미유가 서 있었다.

오토가 카이로스에게 몸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카미유가 부지깽이로 뒤통수를 후려쳤던 것이다.

* * *

다음 날.

“으… 머리야.”

오토는 누가 도끼로 정수리를 찍은 것만 같은 두통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셨습니까.”

곁을 지키던 카미유가 오토에게 말을 걸어왔다.

“엥? 여기 어디야아~?”

오토가 멍텅구리 같은 표정을 지으며 카미유에게 물었다.

“침실입니다.”

“나 왜 여기 있어?”

“이번에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만 아픈데…? 으으으!”

“키메라를 해치우셨습니다.”

“내가 그랬다고?”

“예.”

“으음.”

오토는 두통을 이겨내면서 애써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맞다. 그랬지. 키메라를 처치했었지.”

“기억이 좀 나십니까?”

“잠깐.”

오토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내 뒤통수를 쳤어? 이번에도?”

“예.”

“야 이.”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치란 말도 안 했는데, 치면 어떡해! 아오!”

“예…?”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해?”

“영주님께서 그 철퇴에 육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으으!”

오토가 괴로워했다.

“이번에는 아니었거든?”

“그, 그랬습니까?”

“어어? 혹까지 났잖아!”

오토가 빽! 소리쳤다.

“일부러 그런 거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지깽이로 뒤통수 때린 거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카이로스랑 잘 얘기해서 몸을 뺏길 염려도 없었는데!”

“그런 거였습니까?”

“그래!”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영주님이 걱정되어….”

“걱정은 개뿔.”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저~ 어떻게 하면 이 자식 한 번 때려볼까~ 그 궁리만 했던 거겠지~.”

“절대 아닙니다.”

“웃기네.”

“맹세코 아닙니다.”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가만 안 둘 줄 알아. 나 뇌진탕으로 치매 걸리면 책임질 거야? 어?”

“…주의하겠습니다.”

“내가 기절한 지 얼마나 지났어?”

“하루 지났습니다.”

“하루?”

오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루면… 지금 몇 시야?”

“오후 1시입니다.”

“보자… 지금 날짜가… 시간이….”

오토가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보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손님 맞으러 가야지!”

“찾아올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응.”

“약속이 되어 있다면….”

“약속은 무슨!”

오토가 헐레벌떡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에고 상단이 이 근처를 지나고 있을 거라고!”

“예…?”

“거래를 터야 돼! 거래를!”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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