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공식 설정에서도 미남이라고 못 박아놓은 인물이었다.
관리만 좀 해준다면, 전 대륙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정도의 존잘남이었던 것이다.
그런 오토가 <지지리도 못난 놈> 저주로 인해 살이 쭉 빠지자 잘생김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살이 빠져서 이목구비가 더 뚜렷해지고, 건강 악화로 인해 피부가 도자기처럼 창백해져서, 이제는 오토의 말마따나 <병약 미소년>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
거기에 더해 올리브의 메이크업까지 더해진다면?
“오오.”
오토는 거울을 보며 감탄했다.
“어떤가? 마음에 드나?”
올리브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쩌, 쩌는데요…?”
올리브의 메이크업 실력은 엄청났다.
화장품을 떡칠한 게 아니었다.
올리브는 약간의 터치만으로 오토의 이목구비와 턱선을 더욱 또렷하고 자연스럽게 부각시켰다.
피부 톤과 입술 톤도 아주 기가 막히게 맞춰놔서, 오토의 매력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시켜놓았다.
과연 아라드 제국의 시녀장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야만부족 전사 같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메이크업 솜씨가 거의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이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건가?’
오토는 올리브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해도 유명세를 떨칠 것이라 확신했다.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계시네요. 감탄했습니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올리브가 피식 웃었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지만.”
“네…?”
“남자다움이 없질 않나! 남자다움이!”
“…….”
“아주 기생오라비가 따로 없다! 그런 몰골로 강한 수컷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염과 가슴 털이 없는 남자라니! 이건 남성성에 대한 모독이다! 모독! 그리 여리여리하고 약해 빠진 몰골이 무슨 남자란 말인가!”
야만부족 출신답게, 올리브의 취향은 아주 확고한 모양이었다.
“몸 상태가 좀 괜찮아지거든 벌크업을 해라. 알겠나.”
“네에….”
오토는 시녀장 올리브의 윽박지름에 겁을 집어먹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만약 토를 달았다가는….
‘척추가 반으로 접힐지도 몰라….’
오토는 죽고 싶지 않았다.
* * *
오토의 잘생김은 삽시간에 왕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봤어? 나 막 설레….”
“어쩜 그렇게 잘생기셨지? 막 안아드리고 싶어.”
“전하께서 저런 미남이실 줄 누가 알았겠어?”
“품에 안고 쓰다듬어드리고 싶구나.”
취향을 좀 타긴 했지만, 병약 미소년으로 변신한 오토는 시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을 한 금발의 미남자가 병약한 매력까지 풍겨대니 뭇 여성들의 모성애와 보호본능을 자극했던 것이다.
“어디 가십니까?”
“헌팅.”
카미유의 물음에 오토가 대답했다.
“사냥을… 갑니까? 사냥을 가시는 복장이 아니신데…?”
“어휴.”
오토가 답답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앞뒤가 꽉 막혀서 어떻게 살아?”
“……?”
“누가 사냥 간대? 헌팅 나간다고! 헌팅!”
“설마… 길 가다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에게 말을 붙이고 만남을 추구하는, 그 행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딱딱하게 표현할 말이야? 헌팅이?”
“한동안 여색을 멀리하시더니… 가실 때가 되니까 아쉬우십니까?”
“갈 땐 됐지만 죽을 생각은 없거든? 어휴! 말을 말자! 말을!”
오토는 투덜거리고는 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고 왕궁―이라 부르기에는 한참은 부족한―을 나섰다.
그리고는 왕국 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백성들이 오토를 알아보고 예를 취했다.
“그저 민생을 살피러 나온 것이니, 백성들에게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던 일 하라 이르세요.”
“예, 전하.”
오토는 자신을 수행하는 기사들에게 그리 명령을 내리고는, 정말로 민생을 살피는 척 거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이시지… 죽음을 3일 앞둔 사람이 민생을 살필 이유가 있나?’
카미유는 오토 지켜보며 의아해했다.
그러던 중.
“꽃 사세요. 꽃. 예쁜 장미꽃이 있어요.”
오토의 주변으로 검붉은 망토를 쓴 아리따운 꽃장수가 접근해 왔다.
후드가 달린 망토를 입고 있어 인상착의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루엣만으로도 대단한 미녀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꽃이라… 장소를 잘못 골랐군.’
가난한 왕국인 이오타에 꽃 같은 사치품을 살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장미꽃의 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장미꽃은 늦은 봄부터 피어 한여름에 지는 꽃이기에, 지금 같이 추울 계절에는 구경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도 했고.
그리고 카미유의 예리한 통찰력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잠깐, 장미꽃? 이 겨울에? 대도시도 아니고 이런 시골에서?’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강대국들의 경우 마법을 이용한 온실이 있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작물을 소량―당연히 대량 재배는 불가능하다―이라도 재배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오타 왕국 같은 시골 깡촌에서 계절과 맞지 않는 작물을 구경하기란 단언컨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입을 해온다고 해도 보관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다.’
카미유는 장미꽃을 팔고 있는 여인을 예의 주시했다.
그러는 사이.
“앗! 눈이다!”
“어머! 너무 예뻐요!”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던 그때.
“어? 장미다! 장미!”
오토가 장미꽃을 팔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전하.”
카미유가 오토를 가로막았다.
“장미꽃을 팔고 있는 저 여자, 뭔가 이상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시는 게….”
“내 스타일인데?”
“예…?”
“이상형을 여기서 만나네.”
“그게 도대체 무슨….”
“앙겔레스.”
“……!”
“저 여자가 그 마녀니까, 잠자코 지켜보다가 맞장구나 쳐줘.”
오토가 카미유의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고는, 장미꽃을 파는 여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다.
* * *
사악한 마녀 앙겔레스는 굳이 찾아갈 필요 없이,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빌런이었다.
앙겔레스는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지지리도 못난 놈> 저주로 죽기 3일 전에 나타나 근처를 맴돌게 되어 있었다.
자신이 저주를 건 아이가 죽는 걸 지켜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이 시작되고 다음 해 1월 1일을 3일 앞으로 남겨둔 때까지 살아남는단 가정하에.
‘이제부터는 쉽지.’
오토는 앙겔레스를 향해 다가가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장미 한 송이 살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이죠.”
앙겔레스는 오토가 다가올 것을 전혀 몰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추운 겨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레이디.”
“별말씀을….”
“받으세요.”
오토가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앙겔레스에게 건네주었다.
“갑자기 장갑을 벗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손.”
오토가 은근슬쩍 앙겔레스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얼어있네요. 이렇게 추운 겨울에 장갑도 없이 밖을 돌아다니셨다간 손이 동상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그렇죠.”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받아주세요.”
“어머….”
앙겔레스는 오토의 스윗함에 살짝 감동한 듯했다.
‘윽. 역겨워.’
오토는 자신이 친 멘트에 구역질이 나서 그만 미쳐버릴 지경이었지만, 꾹 참고 계속 작업(?)을 걸었다.
멘트가 좀 많이 구리고 오글거리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꼬시기만 하면 장땡이지. 후후.’
오토는 앙겔레스의 취향과 행동 패턴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심각한 얼빠에 금사빠지. 사랑에 빠지는데 단 1초도 안 걸리는.’
오토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오글거리는 멘트를 밑도 끝도 없이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저는… 뭘 드리면 되죠?”
“아무것도 주실 필요 없습니다. 장갑을 드린 건 단지 저의 호의일 뿐….”
그때.
“쿨럭! 쿨럭쿨럭!”
오토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국왕 전하!”
앙겔레스가 오토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쿨럭! 쿨럭쿨럭!”
“전하….”
“참… 얄궂은 인생입니다.”
오토가 핏물을 쓱 닦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에 그리던 이상형을 오늘에야 만났는데….”
“네에…?”
“아, 아무래도… 저는 오래 살지는 못할 것… 크윽!”
오토는 그 말을 남기고 눈밭에 쓰러져버렸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전하!”
카미유와 기사들이 황급히 달려와 쓰러진 오토를 둘러업었다.
“어서 전하를 왕궁으로 모셔라! 어서!”
카미유가 소리쳤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동행해도 될까요?”
앙겔레스가 카미유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런 앙겔레스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평생에 그리던 이상형을 오늘에야 만났는데….’
오토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했던 말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것이다.
“동행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서쪽 숲에 사는 약초꾼의 딸로, 약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요. 전하께서 몸이 좋지 않으신 것 같으니, 제가 전하의 상태를 한번 살펴보고 싶군요.”
“하지만….”
“요즘 전하께서 자주 심장마비를 일으키시거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시지는 않으셨나요? 피도 자주 토하시고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카미유가 놀랐다는 표정―물론 연기였다―을 지어 보였다.
“제가 잘 아는 병이에요. 지금 전하께선 목숨이 위태로우세요. 이대로라면 병이 더 깊어져 1주일도 넘기시지 못할 거예요.”
“맙소사.”
“제가 전하를 치료할 방법을 알아요. 그러니 부탁건대, 부디 동행을 허락해 주셔요.”
“알겠습니다.”
카미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앙겔레스의 동행을 허락했다.
‘됐어.’
기절한 척하고 있던 오토는 카미유와 앙겔레스의 대화를 엿들으며 속으로 히죽 웃었다.
* * *
그날 밤.
왕궁으로 옮겨진 오토는 앙겔레스의 간호를 받게 되었다.
“여긴….”
“이제 정신이 드세요?”
오토가 정신을 차리자 앙겔레스가 말을 걸어왔다.
물론 기절한 척 연기를 한 거고, 사실은 낮잠을 좀 잤을 뿐이었지만….
“당신은… 아까 거리에서 장미를 팔던….”
“맞아요.”
“당신이 왜 여기에….”
앙겔레스는 오토의 물음에 왕궁까지 동행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살 수 있습니까?”
“불치병이지만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요.”
“제발 부탁입니다.”
오토가 앙겔레스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삶에 미련이 많으신가요?”
“미련이라기보다는… 너무 아쉽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자니 참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아…!”
“완치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단지 제가 살아 숨 쉬는 동안만큼은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오토가 앙겔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디 단 며칠이라도 제 곁에 머물러주실 순 없겠습니까?”
“조, 좋아요.”
앙겔레스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오토의 청을 수락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편 오토는….
‘우웩! 이 미친 할망구 보소. 양심이 없네, 양심이. 나잇값 못하는 괴물 같으니.’
앙겔레스의 본모습을 너무나도 잘 아는 오토에게는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조차도 역겹게만 느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