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8화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은 황제의 부름을 받고 곧장 수도로 달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대륙의 정세는 매우 기이한 형국을 띄고 있었다.
연합군이 북부제국군의 침공을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막아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금 이오타 왕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군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만약 연합군이 아라드 제국의 수도로 진격해 온다면, 황제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특히나, 이오타 왕국이 보유한 5,000기의 트리톤이 가장 큰 위협이었다.
아라드 제국은 트리톤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기인 게이볼그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그 위협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로서는 오토와 잘츠부르크 가문을 신뢰하고 싶어도 신뢰할 수 없을 정도의 군사력 차이가 벌어지고만 것이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황제의 부름에 황급히 달려왔던 것이고.
실제로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하기만 했다.
‘동생이 그렇게까지 커 버리면 곤란한데.’
‘크흠. 오토 국왕이 가진 힘이 그 정도라면 나를 배신하고 직접 황위에 오르려하지 않을까?’
‘이거 잘못하다간 죽 쒀서 개 주겠군. 내가 황위에 오르는 게 아니라 대륙을 통째로 빼앗기고 말 거다.’
북부제국이 침공해 오기 전까지, 오토는 모두가 탐내는 인재였다.
오토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이 차기 아라드 제국의 황제가 될 테니, 모두가 군침을 줄줄 흘렸던 게 사실이었다.
그가 가진 세력과 인맥, 그리고 지략이라면 황위를 꿰차고도 남는다는 게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합군의 군사력이 저렇게 비대해지고, 또한 강력한 이상 이야기는 달랐다.
이제 황제뿐 아니라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은 오토를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오토가 직접 황위에 오르려 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황급히 모인 황족들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번 만남의 이유가 오토 때문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으음.”
결국,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황제였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황족들 가운데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황제 본인이었기에…….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예, 폐하.”
“오늘 짐이 너희를 부른 것은…… 부른 이유는…… 흠흠. 흠흠흠.”
황제는 차마 말을 꺼내 놓기 힘들다는 듯 한껏 뜸을 들이다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짐이 너희를 부른 것은…… 오토 드 스쿠데리아에 관한 문제 때문이다. 이런 말을 꺼내기 참으로 민망하나…… 그자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황제의 말에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의 얼굴에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예상대로, 황제는 오토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북부제국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낸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황제의 가장 큰 정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은 그런 황제의 말에 좀처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동생을 역적으로 만들 순 없어. 하지만 동생이 나를 버리고 황위에 오르려 한다면…… 나는…….’
로웨나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오토와 힘을 합쳐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을 쳐부수고, 나아가 황제까지 실각시켜 황위에 오르는 거였다.
그러나 오토가 지나치게 강해져 버려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는 게 문제였다.
‘크흠. 어떡한다. 이대로라면 황위를 차지한다고 한들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꼭두각시가 될 텐데.’
‘이런 젠장. 이러다가 제국을 통째로 빼앗기는 것 아닌가?’
그건 테르테미안과 파라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의 입장에서도 오토와 손잡고 황위에 오르는 게 최선이었으나, 역으로 토사구팽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게 사실이었다.
로웨나야 오토를 사랑하는 입장인지라 그래도 좀 나았지만,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황제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로웨나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무어라 명쾌한 대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 회의 내용이 오토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오싹!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은 등골이 서늘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지금의 오토는 잠자는 용과 같은 자.
심지어, 북부제국군과의 전투에서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드래곤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가?
오토가 사실 용의 후손이라는 소문마저 도는 판국인데.
“아무래도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오라버니.”
로웨나가 황제에게 조언했다.
“형님 폐하의 뜻은 백 번 이해하겠사오나, 지금은 시국이 좋지 못합니다. 지금 오토 드 스쿠데리아를 잘못 건드렸다가 자칫 대륙 전체의 민심을 잃을 것이 두렵습니다.”
“그가 형님 폐하의 충신일 수도 있는데, 섣부른 판단을 내리신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실 것입니다.”
테르테미안과 파라곤 역시 로웨나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그, 그런가? 크흠!”
그런 동생들의 반응에 황제는 짐짓 무안해져서 괜한 헛기침을 터뜨리며 얼굴을 붉혔다.
“하긴. 지금 논의하기엔 시기상조긴 하지. 흠흠.”
당장 황위에 올라 있는 황제와 그렇지 않은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의 입장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에게는 나중 문제였지만 황제에게는 코앞에 닥친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테르테미안이 말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황가의 존속이 최우선적인 목표가 아니겠습니까, 형님 폐하. 우리 황족들은 황가와 황위를 지켜낼 것이옵니다.”
그러자 로웨나와 파라곤 역시 동의를 표시했다.
“물론이에요. 황가의 존속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요.”
“오래간만에 테르테미안 형님이 말씀을 아뢰었사옵니다.”
황족은 황족.
각자의 입장과 야망이야 어찌 되었든, 그들은 황가의 존속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아라드 제국은 대륙 최강이어야 하고, 그 황위는 지금 황가의 혈통을 가진 이가 올라야 한다는 것만은 절대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이다.
* * *
오토와 엘리제는 잘츠부르크 가문의 영지에 머무르며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휴식을 취했다.
다른 연합군 수뇌부들이 전후처리와 북부제국의 본토 점령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에도 오토와 엘리제만큼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왜?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
사실상 이번 전쟁의 승리는 오직 오토와 엘리제가 일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년 전부터 전쟁을 예측하고, 준비해 왔으며, 결국 승리를 일구어낸 오토.
그리고 잘츠부르크 가문의 혈족들과 함께 북부제국군의 본대를 저지하고, 나아가 마신 라미레스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엘리제.
그런 두 사람의 공로는 비단 연합군뿐 아니라 전 대륙에 칭송하고, 경배해야 할 만한 크나큰 업적이었다.
게다가 오토나 엘리제나 전투의 후유증으로 인해 몸 상태가 굉장히 나빠져 있었기에, 지금으로서는 휴식이 최우선적인 과제였다.
앞으로도 몇 달 정도는 꾸준한 영양섭취와 수면을 통해 후유증을 치료하고, 회복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토와 엘리제는 매우 소소한 일상을 영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열흘쯤 지났을까?
“……으음.”
오토는 또다시 병(?)이 도져서 지도를 들여다보며 골머리를 앓았다.
“당분간 푹 쉬기로 하지 않았나.”
엘리제가 담요를 덮은 채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던 오토에게 다가와 말했다.
“왜 또 지도를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건가. 제발 쉬어라. 부탁이다.”
“하하하…….”
“잘 쉬는 것도 수련이라 말했을 텐데.”
오토를 바라보는 엘리제의 표정에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이럴 때일수록 푹 쉬는 게 중요한데, 또 지도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오토를 보고 있노라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자고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안 그래도 푹 쉬면서 후유증 치료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또다시 사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 말인가?
휴식을 취하기로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도 쉬고 싶은데, 상황이 복잡해져서 어쩔 수가 없어.”
“그게 무슨 말인가?”
“사냥이 끝난 개는 솥에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아.”
엘리제는 오토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황제 폐하의 견제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황족 전체.”
“……!”
“황제 폐하든. 로웨나 대공이든. 테르테미안 대공과 파라곤 대공까지. 지금 우리는 황족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야.”
과연 오토는 상황이 변했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내다보고 있었다.
북부제국의 침공을 너무 쉽게 막아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차라리 병력의 절반 정도를 잃었다면 황족들의 경계심을 사지 않았을 텐데, 오토가 생각하기에도 전력이 지나치게 많이 남아 버린 게 화근이었다.
이는 오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구도였고, 덕분에 계획은 엎어지기 직전이었다.
황제뿐 아니라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연합군의 군사력을 크게 경계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을 터.
그렇다고 일부러 병력 손실을 자처해 애꿎은 장병들을 희생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토로서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즉, 북부제국의 침공을 너무나도 잘 막아낸 덕분에 오히려 세계대전의 불씨가 더욱 커진 것이다.
‘이것도 변수라면 변수겠지.’
오토는 어쩌면 정해진 미래를 바꾼 대가가 이러한 나비효과가 되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되, 아는 이상 도저히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지금쯤 황제 폐하뿐 아니라 황족들도 우릴 경계하고 있을 거야. 어떤 식으로든 우리 힘을 약화시키려고 견제가 들어오겠지.”
“하지만 우리는 대륙의 패권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지 않은가.”
“없지.”
오토가 딱 잘라 말했다.
대륙의 패권?
그딴 건 개나 줘 버리라지.
오토의 꿈은 엘리제와 더불어 소소하게, 또한 나태하게 살아가는 것.
대륙 같은 건 공짜로 준다 해도 싫었다.
“근데, 황족들 생각은 달라. 우리 의도는 상관없어. 문제는 위협이 되느냐, 마느냐니까.”
“그게 권력이라는 건가?”
“그런가 봐.”
오토가 남 얘기하듯 말했다.
그 누구보다 강한 권력과 세력을 손에 거머쥔 자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보다 권력이 관심 없는 자였기에 가능한 입장이었다.
“여기서 까딱 잘못했다간 대륙 전체와 싸워야 할 수도 있어. 우리로 인해 세계대전이 발발…… 하아.”
오토가 그제야 뭔가를 깨닫고는 불현듯 탄식했다.
생각해 보니 참 아이러니하게도, 어느새 오토 본인이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토는 깨달았다.
이렇게 큰 세력을 손에 넣은 이상 이제는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연합군이라는 세력과 아라드 제국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