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가 기습적으로 <성역>을 연 이유는 간단했다.
‘이러면 누구도 나를 못 막지. 후후후.’
오토는 하비에르와 쿠조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다가 당해주느니, 이렇듯 기습적으로 <성역>을 열고 도망친 것이다.
“카미유~ 나 다녀올게~.”
오토는 그 말을 남기고는 <성역> 안으로 쏙 내뺐다.
“…….”
카미유는 오토의 돌발행동에 당황해서,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3일 후에 <성역>을 열겠다더니….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기사단장이 카미유에게 물었다.
“어… 그게….”
“갑자기 이렇게 성역을 열어버리시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카미유가 기사단장에게 사과했다.
“아무래도 전하께서 몸이 달아오르셨던 모양입니다.”
“허어!”
“부디 양해해주시기를… 저희 전하께서 가끔 충동적으로 돌발행동을 하시곤 하십니다.”
카미유가 기사단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양해하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일단 대공 전하께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성역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라! 대공 전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 근처에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는가!”
“예! 기사단장님!”
명령을 내린 기사단장은 보고를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성역이… 열리다니.”
그때, 한 기사가 탐욕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활짝 열린 입구를 향해 다가섰다.
“잠ㄲ….”
카미유가 말리려던 사이.
파지지직!
활짝 열린 <성역> 입구에서 섬광이 빗발치는가 싶더니, 어마어마한 전류가 뿜어져 나와 다가갔던 기사를 덮쳤다.
“……!”
“……!”
“……!”
카미유와 쿤타치 가문의 기사들은, 조심성 없던 자의 최후를 목격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으으!
<성역>의 입구에 다가섰던 기사가 새카맣게 탄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성역은 연 사람만 드나들 수 있어. 최초로 연 사람한테만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이 생겨. 그러니까 성역을 연다 한들,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야. 권능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고’
카미유는 오토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 조심!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시체를 옮겨!”
쿤타치 가문의 기사들이 서둘러 시체를 치우는 동안 콘라드가 <성역>에 도착했다.
“이 무슨….”
콘라드는 <성역> 입구가 활짝 열린 걸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워했다.
“성역이 진짜 열리다니… 드디어 1,000년의 비밀이 풀리는가.”
콘라드가 홀린 듯 <성역>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안 됩니다!”
“가주님! 멈추십시오!”
그러자 기사들이 콘라드의 앞을 가로막고 조금 전에 벌어졌던 끔찍한 비극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결계야 부수면 그만일 터.”
콘라드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피처럼 붉은 콘라드의 검은 적들의 피를 빨아들인다는 무시무시한 마검[魔劍]이었다.
휘이이이!
콘라드는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는 마검을 휘둘러 결계를 깨뜨리려 했다.
하지만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휘이이이!
콘라드가 검을 휘두르자마자 붉은 기류가 튕겨져 나와 <성역> 입구를 휩쓸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크아악!”
튕겨져 나온 붉은 기류는 <성역> 입구 근처에 있던 쿤타치 가문의 기사들을 덮쳤고,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다.
“이런 낭패라!”
콘라드가 황급히 수습하기는 했지만, 거의 10여 명에 가까운 기사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사고가 터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카미유는 콘라드의 물음에 그저 모르쇠로 일관했다.
콘라드가 오토가 거짓말한 것을 안다면 분노할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성역이 열쇠를 가지지 않은 자를 거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으음.”
“일단 지켜보시는 게 옳을 듯합니다.”
콘라드는 카미유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보기로 했다.
괜히 <성역>을 건드렸다가 더 큰 사고라도 터질지도 모르니, 일단은 오토가 나오길 기다려보기로 한 것이다.
* * *
오토가 <성역>을 열었단 소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갔다.
“맙소사!”
“진짜 열렸다니!”
소문을 듣고 달려온 쿤타치 가문의 수뇌부들은 <성역>의 입구가 활짝 열린 걸 보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비에르와 쿠조 부자[父子]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맙소사… 성역이 열리다니… 성역이….”
하비에르와 쿠조는 활짝 열린 <성역> 입구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토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 사이 <성역>이 진짜로 열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결계를 깨고 들어가야 합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질 않습니까!”
하비에르는 아득바득 소리를 질러대며 결계를 깨부수고 <성역>에 들어갈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오토가 <성역> 안에 있는 무적황제의 권능을 손에 들고나오기라도 한다면, 후계자가 되겠다는 야망이 허망하게 스러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결계를 깬다라….”
콘라드는 그런 하비에르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나조차도 깨지 못한 결계를 대체 어떻게 깰 테냐? 지난 1,000년 동안이나 열지 못한 곳이 성역이다. 그런 곳에 쳐진 결계를 깨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더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럼 네가 직접 깨라. 단, 결계를 건드린 대가로 몰아치는 후폭풍은 당연히 네가 책임져야 할 테지.”
“…….”
“허락은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마.”
콘라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성역>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 특이사항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그리고 그 녀석이 성역에서 나온다면, 누구도 해칠 수 없도록 철저히 보호하라. 내가 올 때까지 털끝 하나라도 다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알겠는가?”
“예! 대공 전하!”
콘라드는 현명했다.
결계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성역>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그냥 자리를 떠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합니까?”
쿠조가 하비에르에게 속삭였다.
“성역이 열린 이상, 가문 내에서 우리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겁니다.”
“일단은 그 쥐새끼 같은 놈이 성역 안에서 죽기를 바라는 수밖에.”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하비에르와 쿠조는 기우제(?)를 지내보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오토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만이 최상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 * *
한편 <성역>에 들어온 오토는 눈앞에 보이는 원형의 탕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탕은 텅 비어 있었는데, 가운데 수도꼭지 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대 문자로 무어라 적혀 있었다.
오토는 고대 문자는 몰랐지만,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알았다.
‘성역에 든 자여… 인간의 몸으로는 신의 권능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이 탕 안에 몸을 담가라… 담그면 신의 힘을 담아낼 수 있는 육체를 얻게 될 것이다… 였던가?’
오토는 과거 게임 속에서 보았던 글귀를 떠올리며 수도꼭지를 잡아 돌렸다.
끼익, 끼익!
콸콸콸!
그러자 수도꼭지로부터 황금색 액체가 뿜어져 나와 탕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알림: <육체개조>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육체개조]
내용 : 탕에 들어가 육체의 재구성을 이뤄라!
타입 : 히든 퀘스트
레벨제한 : 70
진행률 : 0% (0/1)
보상 : 신마지체
참고 :
- <신마지체>는 마법과 검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육체를 뜻합니다.
- 육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