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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쿠란의 본체를 직접 본 적이 있는 카미유는, 드래곤의 그 어마어마한 체급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적… 불가.’

카미유는 쿠란의 본체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드래곤은 인간이 상대하라고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과거 드래곤을 사냥한 인간인 <드래곤 슬레이어>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한 것.

실제로 본 카미유가 생각하기에, 드래곤을 사냥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체급부터가 그 어떤 생명체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를 어떻게 사냥한단 말인가?

“저, 정말 전하께서 드래곤에게 납치당하신 거란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카엘의 물음에 카미유가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정말 그런 거라면, 전하를 구출해야지 않겠습니까?”

“…….”

카미유는 대답하지 못했다.

구출?

해야 하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무슨 공주님도 아니고.’

카미유는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에서 드래곤에게 납치당한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책에 따르면 어느 날 사악한 드래곤이 공주를 잡아갔고, 옆 나라 왕자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드래곤의 둥지로 쳐들어갔다고 했다.

사투 끝에 드래곤을 처치한 왕자는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의 칭호를 얻었고, 공주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나?

하지만 이건 동화책 속 이야기가 아니었고, 철저한 현실이었다.

“카, 카미유 경. 어떻게 합니까.”

“귁, 귁귁귁.”

카심과 펭이가 카미유에게 물었다.

그러나 카미유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오토를 구하러 가긴 해야 했는데, 어디로 잡혀갔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

아무리 와이번을 타고 정찰을 한다고 한들 이 드넓은 헤즈볼라 산맥을 이 잡듯 구석구석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카미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카심과 펭이를 돌아보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드래곤에는… 드래곤. 아무래도 쿠란 어르신을 모셔 와 사건을 해결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러자 카심과 펭이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가 드래곤에게 납치당했다면, 그런 오토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같은 드래곤인 쿠란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마침 쿠란은 다이애닌을 복용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으므로, 오토를 납치해 간 드래곤으로부터 구출 작전을 펼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맞나?’

미카엘은 카미유, 카심, 펭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어질어질해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화의 흐름상 카미유, 카심, 펭이는 드래곤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드래곤을 불러오겠다는 것 같았다.

‘에이, 설마.’

미카엘은 카미유, 카심, 펭이의 대화가 어떠한 암호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할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심 경.”

“예, 카미유 경.”

“지금 즉시 본국으로 가서 쿠란 어르신을 모셔 와라.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다.”

“예, 카미유 경.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카심은 카미유의 명령에 다시 까막이를 타고 전속력으로 이오타 왕국을 향해 비행했다.

문제는 시간.

‘대륙의 끝과 끝이다. 너무 멀어. 쿠란 어르신을 모셔 온다고 한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카미유는 쿠란만 믿고 있을 순 없었다.

‘내가 직접 수색해야….’

바로 그때.

번쩍!

새하얀 섬광이 빗발치고, 전쟁의 여신이 강림했다.

저 멀리 북부 장벽 너머에서부터 달려온 엘리제가 이곳 헤즈볼라 산맥까지 달려온 것이다.

“약혼자는 어디 있나.”

엘리제가 다짜고짜 카미유에게 물었다.

“보고받은 바로는 전하께서 골드 드래곤에게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그 드래곤은 어디 있나.”

그 순간.

오싹!

카미유는 엘리제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그만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르르르르르!

실제로, 엘리제의 검은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러 파이어.

검을 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꿈꾸는 꿈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카미유는 엘리제를 보고, 드래곤 슬레이어의 전설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드래곤 사냥이 가능할 것 같은 사람을 딱 한 명 꼽자면, 카미유는 망설임 없이 엘리제를 뽑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분노한 엘리제라면, 드래곤조차 도륙을 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 * *

까막이를 탄 카심은 밤낮없이 비행해 이오타 왕국으로 향했다.

“캬악… 캬아아악….”

까막이는 이오타 왕국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탈진해 버리고 말았다.

그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비행한 후유증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버린 것이다.

“정말 고생했다. 미안해. 전하께서 납치당하셔서 어쩔 수 없었다. 좀 쉬고 있어.”

“캬악, 캬아악….”

카심은 고생한 까막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준 뒤 곧바로 쿠란을 찾아 나섰다.

쿠란은 이오타 왕국의 정원에서 직접 꽃을 심고, 물을 주며 한가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벌컥벌컥!

이따금 품속에서 다이애닌을 꺼내 물처럼 들이켜긴 했지만…….

“어르신! 헉! 헉헉!”

카심이 숨을 헐떡이며 쿠란에게로 달려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엥? 너는 카심이 아니냐?”

쿠란이 카심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기에 큰일이 났다 그러느냐?”

“저, 전하께서! 헉! 헉헉!”

“……?”

“전하께서 골드 드래곤에게 납치당하셨습니다!”

“에엥???”

쿠란이 눈을 번쩍 뜨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와락 얼굴을 구겼다.

“오토 녀석이 골드 드래곤에게 잡혀갔다고?”

“예! 어르신!”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게냐?”

“예…?”

“우리 드래곤은 이미 멸종한 지 오래거늘. 어떻게 오토 녀석이 드래곤에게 잡혀갈 수 있단 말이냐?”

쿠란은 본인도 드래곤인 주제에 다른 드래곤의 생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어르신도 살아 계시잖습니까.’

카심은 쿠란의 반응이 황당해서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상대는 ‘진짜’ 드래곤.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무슨 재앙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아무리 늙었다 하더라도 드래곤은 드래곤인 것이다.

“우리 드래곤은 이미 멸종되었단다. 내가 최후의 드래곤인데, 또 다른 드래곤이 어떻게 생존해 있을 수 있겠느냐?”

“진짭니다.”

카심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드래곤을 목격한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커다란 골드 드래곤이랍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예! 어르신! 전하께서 골드 드래곤에게 납치당하셨다니까요? 비상사태입니다! 비상사태! 지금 전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어르신뿐입니다!”

카심이 털썩 무릎을 꿇고 쿠란에게 빌었다.

“귁? 귁귁.”

펭이도 카심이 무릎을 꿇자 주춤주춤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사악한 골드 드래곤으로부터 전하를 구해 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퍼억!

카심이 땅바닥에 머리를 내리찍으며 쿠란을 향해 울고불고 애원했다.

“허허.”

쿠란이 카심을 일으켜 주었다.

“그 녀석이 정말로 골드 드래곤에게 납치되었다면, 내 어찌 도와주지 않겠느냐? 당연히 도와줄 것이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 녀석을 납치해 간 것은 드래곤이 아니라 드레이크일 확률이 높다.”

“드레이크라 하심은…….”

“그들은 우리 드래곤들의 하위 종족이다. 우리 드래곤들에 비해 대단히 떨어지는 지능과 마법 능력을 가진 생명체들이지. 아마 너희 인간들의 동화 속에 나오는 드래곤들은 대부분 진짜 드래곤이 아니라 드레이크란다.”

“그, 그런 겁니까?”

“물론 우리 용족의 피가 흐르는 놈들답게 지성이 있고, 약간의 마법도 부릴 줄 알지만 엄연히 드래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등한 놈들이니라. 껄껄껄.”

쿠란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너는 걱정 마라. 내 지금 당장 그 드레이크를 혼내주고, 오토 녀석을 구해 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둘러야겠구나. 우리 오토 녀석에게 변고라도 생기면 큰일이니.”

쿠란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르신! 제가 모시겠습니다!”

“느려터진 와이번을 타고 언제 거기까지 가겠느냐?”

“예…?”

“내 직접 비행해서 갈 것이다.”

쿠란은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럴 때마다 인간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던 쿠란의 육체가 점점 변이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되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래간만에 본체로 현신한 쿠란이 그야말로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만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쨍그랑!

와장장창!

와르르르르르!

그 소리와 날아오를 때의 충격파가 어찌나 컸던지, 왕궁 내 모든 창문들과 집기들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나고 작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드,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나타났다!”

“으아아아악!”

왕궁 사람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레드 드래곤을 보고 비명을 질러 대며 사방팔방으로 도망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쒜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어느새 음속을 돌파한 쿠란이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가더니, 이내 곧 사라져 버렸다.

가속도가 좀 붙었다 싶자 즉시 공간 도약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 * *

한편, 카미유와 엘리제가 오토를 찾아 헤즈볼라 산맥을 뒤지기 수색 작전을 펼치는 사이.

“이슈타르의 이름으로! 적들을 쳐부숴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카엘은 군대를 이끌고 몬스터 웨이브를 토벌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카미유, 엘리제와 함께 헤즈볼라 산맥을 수색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아즈란 제국의 수도가 초토화될 것이었기에, 부득이하게 급한 불부터 꺼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엘리제와 함께 헤즈볼라 산맥을 뒤지며 오토를 찾아 헤매던 카미유는 저 멀리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날아오는 걸 보고 소리쳤다.

“쿠란 어르신께서 오셨습니다!”

“아!”

엘리제는 쿠란을 발견하고 안도했다.

며칠째 헤즈볼라 산맥을 뒤졌지만 오토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쿠란이 나타나 주니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제아무리 엘리제가 강하다고 한들 골드 드래곤을 찾아내야 싸워보기라도 할 텐데, 도무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니 안 그래도 답답하고 걱정돼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카미유가 어느새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온 쿠란을 향해 달려가 물었다.

“정말로 골드 드래곤이 우리 오토를 잡아간 모양이로구나.”

“예…?”

“이 근처에서 골드 일족의 기척이 느껴지는구나.”

쿠란이 심상치 않다는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카심에게 얘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드레이크가 나타나 오토를 잡아간 줄만 알았는데, 막상 헤즈볼라 산맥에 와 보니 정말로 골드 드래곤의 흔적이 느껴졌던 것이다.

“나 말고도 다른 드래곤이 더 남아 있었다니…….”

쿠란은 자신 외에 또 다른 드래곤의 생존을 확인하고는, 혼란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제 약혼자는 찾을 수 있는 겁니까, 어르신.”

엘리제가 평소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로 쿠란에게 물었다.

애가 타기는 카미유나 엘리제나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물론 찾을 수 있다.”

쿠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골드 드래곤 녀석이 용언마법으로 이 일대의 공간을 조작해 놓은 모양인데… 어림도 없을 것이다.”

이윽고 쿠란이 주문을 외우자 저 멀리 절벽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거대한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핑그르르르!

그러자 엘리제가 가진 나침반 바늘이 마친 듯 회전하더니, 그 동굴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입니까?”

“그렇단ㄷ….”

엘리제는 쿠란이 미처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반드시 무사해야 한다, 약혼자.’

엘리제는 오토가 걱정되어서 도저히 느긋할 수가 없었고, 위치가 확인되자마자 곧장 드래곤의 둥지로 쳐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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