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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왜 그러십… 이런.”

오토의 외침을 듣고 번개처럼 달려왔던 카미유는,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을 굳혔다.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빨리!”

오토는 카미유가 사람들을 깨우러 간 사이 주먹에 이불보를 돌돌 말아 구멍을 막았다.

“으윽!”

수압이 세서 쉽지는 않았지만, 마나를 끌어올리니 물줄기를 뚫고 구멍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윽.”

한겨울 바닷물은 매우 차가웠다.

배 밖으로 빠져나간 오른손으로부터 차디찬 한기가 찡하게 전해져 왔다.

“하. 내 팔자야.”

어째 일이 좀 잘 풀리나 했다.

“아르곤 너 이 새끼. 두고 보자. 내 일에 훼방을 놔?”

사실 아르곤이 작정하고 훼방을 놓은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무덤을 도굴한 범인을 찾기 위해 들쑤시고 다녔을 뿐.

하지만 그로 인해서 에고가 제대로 된 선박을 구하지 못했고, 이런 썩어빠진 불법 어선이나 타게 되었으니 아르곤 대제의 지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긴 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륙국가인 이오타 왕국이 선박을 단 한 척도 보유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비상, 비상이다. 일어나라, 어서.”

한편, 카미유는 잠든 사람들을 깨워 봤지만 헛수고였다.

“음냐음냐.”

“드르렁… 쿠울. 드르러엉… 쿠우울.”

선원들은 하나같이 달짝지근하고 알싸한 술 냄새를 펄펄 풍기며 잠들어 있어 도저히 일어날 줄을 몰랐다.

초저녁부터 럼주를 퍼마셔 대며 술판을 벌이더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곯아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런 작자들이 선원이라니.”

카미유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하기야 불법 어업 및 밀수에 이용되는 선박에서 일하는 인간들이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했다.

‘미치겠군.’

카미유는 선원들을 깨우기를 포기하고, 위쪽 선실로 올라가 카이로스를 깨웠다.

“어르신.”

“…누구인가.”

“카미입니다. 어르신, 좀 일어나 보셔야겠습니다.”

카미유는 카이로스가 인기척을 느끼고 깬 줄 알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누가… 재채기 소리를 내었어.”

“예…?”

“이 무능한… 자식들. 음냐음냐. 네놈들이 짐의 신하들인지… 아니면 뒷간의 똥 막대기들인지… 분간이 안 간단 말씀이야… 음냐음냐.”

카이로스는 단지 잠꼬대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초저녁부터 벌어진 술판을 주도한 범인(?)이 카이로스였으므로….

“북벌, 북벌을 가야 해. 음냐음냐.”

그놈의 북벌.

“끄응. 아리엘. 으으윽. 으헉. 헉헉. 으어어억. 으아아악.”

난데없이 <아리엘>이란 이름을 부르짖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하기까지.

절레절레.

카미유는 카이로스도 포기해 버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이 배에 탄 사람들 전부가 술주정뱅이에 머저리들은 아니었다는 것.

“무슨 일입니까?”

“특이사항이 발생한 겁니까?”

인기척을 듣고 깬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이 달려왔다.

“전하께서 계신 선실에 구멍이 나서 물이 차오르고 있다. 비상사태다. 침몰에 대비해 구명정을 준비하고, 선원들을 깨워라.”

“예!”

그렇게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 * *

“괜찮으십니까?”

다시 돌아온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손이 좀 차갑긴 한데. 아직 버틸 만해.”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구명정을 준비하라 일렀으니, 혹시나 물고기밥이 되실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카미유 경.”

다급히 선실로 들어온 마검사가 보고했다.

“구명정이 없습니다.”

“뭐라…?”

“선장을 깨워 물어 봤사온데, 밀린 외상값을 갚느라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순간 카미유는 정신이 아찔해져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했다.

지끈지끈!

어째 이번 여정은 시작부터 삐걱대는 것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내게 자꾸만 이런 시련이 닥쳐오는 건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건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오토에게 눈길이 갔다.

“왜. 뭐.”

오토가 눈을 부라렸다.

“왜 그렇게 봐? 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나 때문에 인생 꼬였단 표정이잖아!”

“저,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오토가 빽 소리를 질렀다.

“만약을 대비해 뒤따라오는 배들에게 신호를 보내라.”

“예, 카미유 경.”

속마음을 들켜 버린 카미유는, 대꾸하지 않고 마검사들을 지휘해 만약을 대비했다.

“근데 나 진짜 어떻게 해? 이대로 있어?”

“일단 조금만 계십시오. 선원들 중에 배를 보수할 수 있는….”

“으아아아아아악!”

“전하!”

카미유가 황급히 오토에게 다가갔다.

“뭐가 날 물었어!”

“예에?”

“뭔가 나를 물… 으아악!”

배 밖으로 삐져 나가 있는 오른쪽 주먹으로부터 뭔가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

‘뭔데?’

황급히 <투시> 스킬을 켰다.

‘상어?!’

거대한 백상아리 한 마리가 배 밖으로 오토의 주먹을 노리고 있었다.

하필 근처를 지나던 백상아리의 눈에 띌 줄이야….

쩌억!

상어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오토의 주먹을 노렸다.

‘안 돼!!!’

오토는 오른손을 잃기 싫어서, 본능적으로 주먹을 뒤로 쭉 뺐다.

그 결과.

빠지직!

안 그래도 삭아 있던 나무판자가 부서지며, 더 큰 구멍이 생겨났다.

“아.”

그 광경을 본 카미유의 입에서 탄식이 터지던 순간.

쏴아아아아!

바닷물이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선실을 덮쳤다.

펄떡펄떡!

오토를 노렸던 백상아리도 선실로 쏙! 빨려 들어왔다.

“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

놀란 백상아리가 온몸을 파닥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돋아난 아가리를 빠르게 벌렸다, 닫았다 입질을 해 댔다.

“어푸! 어푸우우! 꼬르르륵!”

오토는 그 와중에 허우적거리며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전쟁터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적들을 냉혹하게 베어 버리던 사람이….

“전하!”

카미유가 재빨리 검을 뽑아 백상아리의 미간 정중앙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허억! 혀엉! 살려 줘! 어푸우! 어푸어푸!”

“오십시오.”

카미유가 허우적거리는 오토를 잡아끌고 어느새 가슴팍까지 물이 차오른 선실을 빠져나갔다.

“전하답지 않게 왜 그렇게 당황하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아직 침몰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카미유가 엄하고 혹독하게 오토를 몰아붙였다.

“나….”

오토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맥주병이야.”

오토 드 스쿠데리아.

정확히는 김도진은,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다.

* * *

선실 하나가 물에 잠기는 사소하고도 앙증맞은 사건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때마침 오토와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에릭슨과 몇몇 드워프들이 그들만의 장비와 기술로 물이 차오른 선실을 폐쇄함으로써, 물이 더 이상 차오르는 걸 막아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다만 이미 물이 차오른 부분까지는 보수가 불가능했고, 배는 15도 정도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간 수영도 안 배우고 뭐 하셨습니까? 그리고 왜 덜덜 떠십니까? 전하쯤 되면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닙니까?”

카미유가 담요를 뒤집어쓴 채 모닥불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오토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이.”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당황해서 그래! 당황해서! 그리고 나 수영 못 해! 물 공포증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일전에 성역에서 <신마지체>를 이룰 때.

당시 오토가 침착함을 잃었던 원인 중 하나도 탕 안, 그러니까 물속이었던 것도 있었다.

“아.”

카미유가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직도 못 고치셨습니까?”

“으응?”

오토는 카미유가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렸을 때도 수영 못하셨잖습니까. 기억 안 나십니까. 개울물에 자빠져서 허우적대시다가 엉엉 울던 거.”

알고 보니 김도진뿐 아니라 이 세계의 인물인 오토 드 스쿠데리아 역시 어려서부터 물 공포증이 있었던 모양.

이건 게임 히스토리에도 나오지 않는 유년 시절의 기록.

쉽게 기억해 낸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내가… 그랬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그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엉엉 우시면서 형, 살려 줘. 카미유 형, 제발 나 좀 살려 줘. 하고 눈물 콧물 질질 흘리시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만.”

“내가 언제 그랬어! 어? 내가 언제 그랬냐고!”

…라고 소리치긴 했지만 오토는 카미유와의 추억을 아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게이머 김도진에게 덧씌워진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기억이 과거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끔 해 주었던 것이다.

“기사 주제에 감히 왕을 놀ㄹ…”

부들부들…!!!

오토가 쪽팔림을 견디지 못하고 치를 떨며 으르렁거릴 때.

풀썩! 탈탈탈!

“감기 드십니다.”

카미유가 오토의 젖은 머리를 마른 수건으로 덮어서, 물기를 털어주었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 놓도록 일러두었습니다. 드시고 몸 좀 녹이십시오. 그 전에 마나라도 일으켜서 체온 좀 올리시길. 그리고 시간 내서 수영 좀 배우십시오. 전하쯤 되는 실력자가 수영도 못한다는 게 알려지면 다들 비웃을 겁니다.”

“해적왕이 될 남자라서 그래.”

“그건 또 뭔 소립니까?”

카미유가 눈살을 찌푸렸다.

“해적왕이 될 남자가 수영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원래 해적왕은 수영 같은 거 못하거든?”

“어련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시간 날 때 말씀하십시오. 수영,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카미유는 오토가 또 헛소리―당연히 헛소리 맞다―를 하는 줄 알고 눈을 한번 흘기고는 한마디를 툭 던진 뒤 발걸음을 옮겼다.

“저! 저! 괄시하는 거 보소?”

오토가 카미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그것도 잠시.

“고마워, 형.”

카미유에게는 들리지 않을, 아주 자그마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문득 떠올린 옛 기억이,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덧씌워지면서 살짝쿵 아련한 감정이 뭉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 * *

오토가 탄 배는 10도쯤 기울어진 상태로 계속해서 항해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배의 기울어짐이 심해졌고, 카미유는 오토에게 배를 버릴 것을 건의했다.

망망대해.

배를 버린다는 건 잔뜩 실어놓은 화물까지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과감함 결정이 필요했다.

다른 배들 역시 화물을 꽉꽉 실은 상태라 나눠 옮기는 것도 불가능했고.

최소한 자그마한 섬 같은 곳이라도 발견한다면, 그곳에 잠시 화물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텐데….

“배를 버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절! 대! 안! 돼!”

“이러다 침몰합니다. 화물은 옮겨 실을 수 있는 만큼만 옮겨 실고….”

“절대 못 버려! 내 화물 절대 못 잃어! 절대로! 버릴 거면 나도 같이 버려!”

오토가 갑판 위를 떼굴떼굴 구르다 대자로 드러누웠다.

“자꾸 고집부리실 겁니까?”

“어.”

“후우.”

“이게 다 얼만데? 내가 어? 같이 침몰했으면 침몰했지….”

기우뚱!

배가 갑자기 팍! 기울었다.

“이래도 안 버리실 겁니까? 장담하건대, 적어도 2시간 안에는 침몰할 겁니다.”

“그럼 나도 같이 침몰하지 뭐!”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뭐라고?”

“아닙니다.”

“이… 이이…!!!”

고집을 부리긴 했지만, 오토도 배를 버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배에 실린 화물의 값어치가 얼마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어디 갈아탈 배라도 한 척 안 나타나 주나…?’

바로 그때.

“전하! 전방에 해적선들이 나타났습니다!”

망원경을 통해 저 앞을 내다보던 마검사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어?

해저어어억?

씨익-

오토의 입이 귀 밑까지 쭉 찢어졌다.

갈아탈 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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