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아버지의 유산이…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이었다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드레이크.
“그럼.”
오토가 드레이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붉은 여신이 전부일 줄 알았어?”
“마, 말도 안 돼. 바르도의 보물이라니. 해적왕의 보물이라니.”
“생각을 해 봐.”
“생각?”
“너희 아버지께서 비록 바다의 신사라 불리셨을 정도로 인품도 훌륭하시고, 인망도 두터우셨지만 어디까지나 해적이셨잖아.”
“그랬지.”
“해적으로 활동하신 세월이 15년이나 돼. 그럼 그 긴 기간 동안 과연 범죄를 안 저지르셨을까? 살인도 한 건도 안 저지르셨을까?”
“그건….”
드레이크는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을 리 없다고,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해적으로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믿고 싶었지만….
“해적의 사면은 쉬운 일이 아냐. 특히, 너희 아버지 같이 유명한 해적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을…?”
“그래.”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에이버리가 네 아버지를 죽이고 빼앗아 간 보물은 그냥 보증금이었어.”
“보증금?”
“네 아버지는 카스티야 왕국에 보증금을 줘서 일단 신뢰를 사고,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까지 바치려 했던 거야. 그 정도면 사면은 물론 최소 후작의 지위까지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맙소사.”
“정말 그렇게 됐다면, 해군 제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달았겠지. 해적 출신 해군 제독으로.”
“아버지….”
드레이크는 오토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만큼 네 아버지는 해적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심하셨어.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을 얻었으면, 해적왕은 못 돼도 최소한 해적 영주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었을 텐데도.”
“아.”
“업보란 게 그런 거야. 청산이 쉽지 않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넌 운이 매우 좋은 거야.”
“내가?”
“계속 복수를 해 나가다 보면 업보가 얼마나 쌓일까? 복수행이란 게 그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미치게 만들거든. 나중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돼서, 복수와는 별반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이게 되겠지.”
“…그렇겠지.”
“근데 날 만난 이상 쓸데없는 업보를 안 쌓아도 된다는 말씀. 아무튼, 저기 좀 봐.”
오토가 피식 웃으며 저 멀리 바다를 가리켰다.
휘이이이이이이이!
그곳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지도에 따르면 저 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네?”
“소용돌이에 휩쓸리라고?”
“해적왕의 보물이라면 소용돌이 안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근처에 있는 밧줄을 꼭 움켜쥐었다.
“어어어? 어어어어어어어어!”
“소,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빌어먹을! 모두 꽉 잡자!”
<붉은 여신>을 포함한 이오타 왕국의 선단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꼬르르르르르르륵!
소용돌이가 <붉은 여신>과 이오타 왕국의 선단을 꿀꺽! 삼켜 버렸다.
그로부터 약 1분 뒤.
촤라라락!
첨벙!
소용돌이에 삼켜져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갔던 <붉은 여신>과 이오타 왕국의 선단이 다시 수면 위로 솟구쳤다.
“여긴… 어디지?”
드레이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곳은 망망대해였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저 멀리 해골 모양의 바위가 우뚝 솟은 섬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어디긴.”
오토가 강아지처럼 고개를 세차게 휘둘러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는, 드레이크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지.”
* * *
오토는 즉시 동료들을 이끌고 <해골섬>으로 향했다.
“근데 말입니다.”
막 백사장에 도착했을 무렵 카미유가 의문을 제기했다.
“왜 해적왕 바르도는 이런 곳에 해적왕의 함대와 보물을 숨겨 놓은 겁니까? 해적왕의 자리를 물려주지도 않고.”
“아, 그거.”
오토가 대답했다.
“당시에 해적왕의 자리를 물려줄 만한 해적영주가 없었거든.”
“예?”
“바르도는 눈이 높았어. 해적왕으로서의 자부심이 엄청났거든. 범죄자 주제에 자부심이라니 좀 웃기긴 한데, 그때는 그럴 만했어.”
“아, 저도 역사서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카미유도 기사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만큼 학식이 깊어 아는 게 많았다.
“바르도는 역사상 최강의 해적왕이란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까?”
“맞아.”
“해적 왕국을 건설할 기세였다고 하니, 위세가 대단했나 봅니다.”
“말년에 병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딱히 물려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여기에 처박아 둔 거야. 여기저기 흔적을 뿌려 놓긴 했지만.”
“흔적…?”
“훗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자기 함대를 가져가길 바란 거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왔으면, 해적왕이 될 최소한의 자격은 갖춘 사람일 거라고 판단했던 거고.”
“이제 이해가 갑니다.”
오토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해골섬> 안쪽까지 쭉 파고들었다.
“뺀질아, 함정이나 괴물 같은 건 없느냐?”
“응, 없어.”
“명색이 해적왕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인데 그런 게 없단 말이냐?”
“바르도는 최소한의 양심이란 걸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게 양심이랑 무슨 상관이냐!”
“어휴. 이 꼰대. 생각을 좀 해라, 생각을.”
“생각…?”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큰 시련과 역경을 거쳤겠냐고. 근데 최후의 시험이랍시고 함정을 설치해 두거나, 괴물을 풀어놨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양심이 없냐?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으음. 듣고 보니 뺀질이 네놈 말이 맞는 것도 같구나.”
“최후의 시험 같은 거 기대하지 마. 여기까지 왔으면 끝인 거야.”
오토가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이어나갔고, 그 발걸음은 동굴까지 이어졌다.
“다 왔어.”
오토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 앞에는 커다란 궤짝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게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입니까?”
“응.”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답하며 상자를 열었다.
덜컥.
뚜껑이 열리고.
“이게 전부입니까?”
“뺀질아! 고작 이게 해적왕의 보물이란 거냐!”
“정말 해적왕의 보물 맞아?”
카미유, 카이로스, 그리고 드레이크가 의문을 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궤짝 안에 든 것이라고는 웬 맥주병 크기의 유리병 하나와 낡은 해적 모자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럼 뭐 대단한 거라도 들어 있을 줄 알았어? 고정관념을 깨!”
오토는 그리 말하고는 궤짝 안에 들어 있던 유리병과 해적 모자를 챙겨 동굴을 나섰다.
그리고는 다시 <해골섬>의 백사장으로 나왔다.
“정말 이게 전부야?”
드레이크가 오토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노력해서 찾아내신 해적왕의 보물이라는 게 고작….”
“고작?”
오토가 피식 웃었다.
“과연 이게 고작일까?”
오토가 그렇게 말하고는 유리병을 바다에 힘껏 내던졌다.
퐁당!
다음 순간.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총 열두 척의 군함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과거 <무적함대>라 불리던 해적왕 바르도의 함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
모두가 놀라는 사이.
“자.”
오토가 드레이크에게 해적 모자를 건넸다.
“해적왕 바르도의 무적함대. 네 아버지가 너한테 남긴 유산이야.”
“아버지의… 유산….”
“써 봐.”
드레이크는 오토의 권유에 홀린 듯 해적 모자를 머리에 눌러 쓰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드레이크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당신이 써.”
“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야. 이걸 왜 내가 써.”
“난 당신의 신하가 될 거니까.”
“……!”
“함대는 당신 소유야. 나는 당신의 신하로서, 함대를 지휘하는 제독이 될 거고. 그러니까, 당신이 써.”
드레이크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복수하는 데 도움을 주면 신하가 되겠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래?”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어차피 네가 지휘하게 될 함대니까.”
오토가 해적 모자를 눌러 썼다.
스으으으!
그러자 평범해 보이기만 하던 해적 모자에서 초록색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해적왕>에 등극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펑펑! 펑! 펑펑펑! 펑! 펑!
바르도의, 아니 이제는 오토의 소유가 된 무적함대의 함포들이 붐을 뿜었다.
마치 오토가 해적왕에 등극한 것에 대해 축포라도 터뜨리듯이 말이다!
* * *
이틀 후.
“해적왕의 보물… 해적왕의 보물….”
“보물! 보물!”
에이버리는 그날 이후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절부절 방 안을 서성거리며 보고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지난 20년 동안 그리고 갈망하던 것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되었으니, 밤잠을 설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모드레드… 뭐 하고 있느냐… 어서 내게 보고를 올리지 않고….”
“보고를! 보고를!”
“보고만 올라오면 내 당장 한달음에 달려갈 것을….”
“달려가! 달려가!”
사실 여기서 드레이크를 제거한다는 건 마음에 안 드는 부하들을 제거할 기회를 놓치는 셈이었다.
황금알을 넣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랄까?
하지만 드레이크를 키워 부하들을 견제한다는 계획보다 해적왕의 보물이 더욱 중요했다.
해적왕의 보물만 얻는다면 굳이 드레이크를 통해 제거할 필요 없이, 직접 손봐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기분이로군.”
“피가 말라! 피가 말라!”
“시끄럽다! 이 멍청한 앵무새 놈아!”
“시끄러워! 시끄러워!”
에이버리가 앵무새 존슨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을 때.
“선장! 모드레드가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뭐라? 모드레드가? 뭐라더냐! 모드레드 그놈이 뭐라고 했어!”
“드레이크가 해적왕의 보물이 숨겨진 곳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지금 바로 오시랍니다!”
“당장 출항하라! 어서!”
“예! 선장!”
모드레드는 즉시 대기 중이던 함대를 움직여 모드레드가 보내온 좌표로 향했다.
한편, 연락을 받은 건 비단 에이버리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선장, 에이버리가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을 찾았답니다.”
“에이버리가 해적왕의 보물을 찾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에이버리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은밀하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바르도의 보물을 찾았다고 합니다.”
에이버리의 밑에 있는 선장들은 부하들로부터 기이한 보고를 받았다.
“이런 교활한 늙은 뱀 같으니라고!”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거지?”
선장들은 에이버리가 얼마나 교활하고 영리한 인물인지 알았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버리가 판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버리 선장의 함대가 출항했다고 합니다!”
“에이버리의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에이버리가 급하게 어디론가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선장들의 마음은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걸 어째야 하나… 어째야 해….”
“만약 함정이 아니면 어떡하지? 크흐으음!”
수상쩍은 보고.
그리고 에이버리의 갑작스러운 출항.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적 선장들의 마음은 갈대마냥 이리저리 흔들렸다.
해적왕 바르도의 보물.
그 이름 앞에 평정심을 유지할 해적은 단언컨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적왕의 보물은 모든 해적들의 로망!
괜히 그 에이버리조차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출항! 출항이다!”
“빌어먹을! 일단 가 보자!”
“이건 못 참는다! 알면서도 속는 수밖에!”
선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을 사리며 눈치게임을 펼치던 선장들은, 에이버리뿐 아니라 다른 선장들까지 출항에 나서자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저 새끼들까지!”
“속도를 높여라! 어서!”
<꼬르륵 군도>에 정박해 있던 거의 모든 해적선들이 하나둘씩 출항해 앞다투어 <해골섬>으로 향했다.
오토가 <꼬르륵 군도>에 푼 독이 모든 해적 선장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