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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끌끌끌.”

카이로스가 꽁꽁 묶여 있는 하사신을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입을 열지 않는다는 바로 그놈이렷다? 크흐흐흐! 오냐, 계속 입을 다물고 있도록 해라. 짐은 다 아는 수가 있느니라.”

뒤이어 카이로스의 한쪽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어디 보자….”

그로부터 약 1분 뒤.

“음. 아주 심지가 곧은 놈이로군.”

“뭐야? 안 돼?”

“정신력이 강한 놈이라 심상을 열지 않는구나.”

“그럼 안 되는 거냐?”

“짐을 의심하지 마라! 짐이 마음만 먹으면 마음을 열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 보고 말하셔.”

“기다려라, 뺀질이.”

카이로스는 그리 말하더니 마나를 끌어올려 몸속에 돌던 알코올을 흩어 버렸다.

그리고는 주문까지 외우며 꽁꽁 묶여 있는 하사신을 향해 심안을 전개했다.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5분 후.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ॐ मणि पदमे हुं….”

카이로스는 땀까지 뻘뻘 흘리며 하사신의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10분이 더 지났을 때.

털썩!

지친 카이로스가 모래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 이런 지독한 놈을 보았나. 짐의 심안을 철통같이 방어해 내다니….”

“진짜 안 돼?”

“그렇다. 아주 지독한 놈이다. 짐의 심안을 이렇게까지 방어해낸 걸 보면, 보통 놈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냥 심안이 약빨이 떨어진 건 아니고?”

“감히 짐을 의심하느냐!”

발끈한 카이로스가 벌떡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짐이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보통 놈이 아니라고!”

“알겠어~”

오토가 카이로스를 달랬다.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

“이놈이?”

“난 그냥 믿고 있었으니까 좀 아쉬워서 그랬지~”

“크흠!!!”

“얘 안 되겠으면 칼리프 왕국 쪽 애들이나 좀 해 볼래?”

“음?”

“아무래도 첩자가 있는 거 같아서 말이지.”

오토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칼리프 왕국군들을 슥 훑었다.

“잘랄라바드에서 알살람까지 가는 경로가 세 개가 있는데 어떻게 알고 하사신들이 매복을 해 있느냐는 말이지, 내 말은. 모래 속에 매복해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음! 듣고 보니 네놈 말이 옳구나!”

“그러니까 좀 봐봐. 쥐새끼가 있으면 알살람에 도착할 때까지 시달릴 테고, 그럼….”

“…….”

“하렘에 가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지겠지?”

“감히!”

카이로스가 버럭 소리쳤다.

“어떤 쥐새끼가 짐이 하렘에 가는 것을 막는다는 말인가! 기다려라! 뺀질아! 짐이 반드시 쥐새끼를 잡아내 주마!”

카이로스는 그렇게 선언하고는, 그 많은 칼리프 왕국군들을 일일이 심안으로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 * *

카이로스가 심안으로 쥐새끼를 색출해내는 사이.

“흠.”

오토가 입을 꽉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하사신을 바라보며 의심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심안은 뭔가 수준 높은 사람들한테는 안 통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개 말단 하사신한테까지 안 통한다고?’

딱 봐도 이 하사신은 고위급 간부가 아니었다.

모래 속에 숨어 있는 작전에 투입된 것만 봐도, 조직 내에서 입지가 그렇게 큰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모래를 뚫고 나오면서 단검을 휘둘렀던 걸 떠올려 보면, 무력도 특별히 강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심안이 통하지 않았다면…….

‘성장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건가?’

오토는 혹시나 싶어서 상태창을 열고 하사신에 대해 알아보았다.

‘…안 되네.’

하지만 상태창이 너무나도 흐릿해서, 하사신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너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지?”

“…….”

“그냥 깔끔하게 보내 줘?”

“…….”

“이거 독한 새끼네. 어휴.”

오토가 혀를 내둘렀다.

‘그 와중에 그냥 죽이란 말도 안 해? 살고 싶다는 거야, 아니면 그냥 죽이라는 거야. 최소한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정보유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가?’

오토는 하사신에 대해 정확히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전하.”

카미유가 오토에게 조언했다.

“아무래도 이자에 대한 심문은 전하께서 직접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응? 내가?”

“예.”

“고문이라도 하라는 거야? 나 그런 거 별로인데.”

“그게 아닙니다.”

카미유가 고개를 저었다.

“이 하사신은 어르신의 심안도 방어해낼 만큼 강한 정신력을 지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전하가 파라솔로 농락했을 때에는 못 참고 욕까지 했습니다.”

“아?”

“그렇다는 말은… 이자의 약점이 전하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뭔 말인데?”

“그냥 곁에 두고 틈날 때마다 말을 걸고, 갈구다 보면 알아서 입을 열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가?”

왠지 놀리는 거 같긴 했지만, 영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럼 일단 데리고 다녀볼까?”

“예, 전하.”

“그래, 그러지 뭐.”

오토는 카미유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설득당해서, 이 하사신을 당분간 데리고 다녀보기로 했다.

카이로스의 심안을 방어해내는 말단 하사신이라니, 괜히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 * *

비록 말단 하사신의 마음을 읽는 데는 실패했지만, 카이로스는 칼리프 왕국군에 숨어 있던 쥐새끼를 잡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네놈이로구나. 네놈이 왕세자의 정보를 팔아넘기고 중간 중간 흔적을 남긴 그놈이야.”

“히익?!”

“이 쥐새끼 같은 놈!”

“컥!”

카이로스는 심안을 이용해 기사 하나가 쥐새끼라는 걸 밝혀냈다.

‘심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네. 이 자식한테는 약빨이 안 드는 거였어.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냐.’

심안의 성능이 확실하다는 게 확인되자 하사신을 바라보는 오토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이 비열한 배신자!”

화가 난 기사단장이 쥐새끼를 단칸에 베어 버리려 했다.

“잠깐.”

오토가 기사단장을 뜯어말렸다.

“참으세요.”

“어찌 참으란 말입니까! 이놈은 왕세자 저하를 팔아먹은 반역자입니다! 아무리 은인이고, 국왕의 신분이시라 한들 이는 명백한 내정간섭입니다!”

“그게 아니라.”

오토가 기사단장을 달랬다.

“이 자식을 이용해서 역정보를 흘려야 우릴 습격하려는 놈들을 손쉽게 해치우죠.”

“으음.”

“막말로 정보가 끊겨서 무작정 쳐들어오면 더 귀찮아지잖아요. 그러니까 역정보를 흘려서 우리가 역으로 잡아먹어야죠.”

“아!”

“알살람에 도착할 때까지만 살려 두는 걸로 하죠.”

“아, 알겠습니다.”

기사단장은 오토의 설득으로 겨우 분노를 억눌렀다.

“은인께서는 이렇게 저를 또 살려주시는군요. 제가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살라딘은 오토가 숨어 있던 하사신들을 처리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쥐새끼까지 잡아내자 몸 둘 바를 몰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오토에게 입은 은혜가 너무나도 커서, 단순히 목숨을 빚졌단 표현으로는 부족할 지경.

하지만 오토는 살라딘에게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고, 으스대지도 않았다.

“괜찮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왕세자 저하께선 깊은 신앙심과 부족 화합의 큰 뜻을 품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을 돕는다는 것은 저에게도 즐거운 일입니다.”

“은인께서는 정말로 겸손하십니다. 어찌 그리 욕심이 없으십니까? 그 고결한 성품에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입니다.”

“별말씀을요. 자, 이제 차 한 잔 할까요? 한바탕 소란을 떨어서 그런지 목이 좀 마르긴 하네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살라딘은 오토를 위해 직접 차를 내려주고, 몸소 시중을 드는 정성을 보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이로스와 카미유는…….

‘저놈이 뭘 잘못 먹었나?’

‘뭐지.’

카이로스와 카미유는 오토가 평소답지 않게 매우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로 살라딘을 대하는 걸 보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었다.

평소의 오토라면 온갖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면서, 상대방으로부터 좀 더 큰 보상을 뜯어내기 위해 은근히 자신의 공로를 부풀리고 강조했어야 정상일 텐데….

“저놈이 왜 저러는 것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카미유는 카이로스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카미유로서도 속물 중의 속물인 오토가 왜 저렇게까지 살라딘에게 잘해주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카심만은 달랐다.

“크으!”

카심은 살라딘과 차를 마시는 오토를 바라보며, 존경스럽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남정네와 같이 아련했다.

빛나는 두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오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역시 전하께선 존경스러우신 분입니다. 어찌 저리도 고결하시고, 지혜로우실 수 있단 말입니까. 존경합니다, 전하.”

“귁! 귁귁귁!”

카심은 진심으로 오토를 사모하는 듯했다.

“쯧쯧쯧.”

카이로스가 카심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밖에서 구르면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다 보니 뺀질이 녀석에게 깊이 의지하게 된 모양이로구먼.”

“예?”

“생각을 해 봐라. 저 자식은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덕분에 틈만 나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개고생만 하지 않더냐?”

“예, 뭐. 동의합니다.”

“그런 녀석이 돌아왔을 때 반겨 주고, 다독여 주고, 인정해 준 사람이 누가 있었느냐? 뺀질이 녀석밖에 더 있었느냐?”

“아.”

“그러다 보니 저 녀석으로서는 뺀질이 녀석을 깊이 흠모하고 사모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겠지. 끌끌끌. 정작 뺀질이 놈은 녀석에게 딱히 뭘 해 준 것도 없거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뺀질이 놈은 인복 하나는 타고난 놈이다.”

카이로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자신의 가마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쥐새끼를 잡아낸 이상 더는 할 일이 없기에, 그저 가마에 짱박혀 술이나 퍼마실 생각이었던 것이다.

* * *

그날 밤.

오아시스를 낀 칼리프 왕국군의 군사기지에 도착한 오토 일행은, 편안한 잠자리에서 하룻밤 쉬게 되었다.

잠들기 직전.

“전하.”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뭐?”

귀여운 잠옷으로 갈아입고 잘 준비를 하던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대꾸했다.

“살라딘 왕자에게 왜 그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전하답지 않게?”

“으응?”

“설마 칼리프 왕국이 부자라서 그런 겁니까?”

“야 이.”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지금 내가 돈 때문에 살라딘한테 잘해 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흠.”

“뭐가 흠이야!”

오토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거 진짜 수상하네? 이젠 내 앞에서 대놓고 살라딘 왕자 얘기를 꺼내? 어?”

“못 꺼낼 건 또 뭡니까?”

“이게 진짜! 어디까지 갔어? 어?”

“예…?”

“어디까지 갔냐고!”

오토가 카미유를 윽박질렀다.

“설마 이미 갈 데까지 간 거 아냐? 어? 벌써 진도 다 나갔어? 그새를 못 참고….”

“적당히 하십시오.”

카미유가 더는 놀아주기 귀찮다는 듯 진절머리를 쳤다.

“진지하게 묻는데 왜 자꾸 뺀질거리십니까?”

“내가 언제 뺀질거렸어! 언제!”

“진짜 자꾸 그러시면….”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 카미유가 화를 내려던 그때.

“성인(聖人)이니까.”

“예?”

“우린 성스러운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거야, 지금.”

오토가 장난기를 싹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땅히 존경해야 할 사람을 대하는 데 돈이 뭐가 중요해. 나 같은 속물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고결한 사람이야, 살라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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