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0화
오토와 엘리제의 약혼식은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오토는 검과 마법의 명가 쿤타치 가문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고, 신흥강국 이오타 왕국의 왕.
엘리제는 북부대공의 손녀로서, 이 세계에서 최강이라 평가받는 강자.
그런 두 남녀의 결합이란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결혼식이 아닌 약혼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수없이 많은 유력자들이 참석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지경이었다.
“어서 오너라! 크핫핫핫핫!”
미리 잘츠부르크 가문에 와 있던 콘라드와 쿤타치 가문의 장로들은 오토와 엘리제가 도착하자마자 크게 반겨 주었다.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콘라드에게 다가갔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할아버님.”
“뭘 그런 것 가지고 사과를 다 하느냐? 이 할아비는 하나도 서운한 게 없다!”
“네?”
“신흥강국의 왕이 바쁜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크핫핫핫!”
예전 같았으면 서운하다면서 투덜거렸을 콘라드는, 이제 오토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오토는 가만 놔둬도 쿤타치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이었다.
코딱지만 한 영지를 불과 몇 년 만에 신흥강국의 자리에 올려 놓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해낸 적이 없는 업적이었다.
게다가 치매 치료제인 다이애닌을 유통하면서, 전 대륙의 쿤타치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오타 왕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지라, 콘라드는 오토가 자신을 자주 찾아오지 않았음에도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토야.”
“예, 할아버님.”
“나는 네 녀석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구나.”
콘라드가 오토를 예뻐 죽겠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대 쿤타치 가문의 위상을 이토록 드높이다니.”
“별말씀을요.”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 할아버님과 가문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인데요, 뭘.”
그건 결코 립서비스 같은 게 아니었다.
쿤타치 가문의 성역에 잠들어 있던 무적황제의 권능.
그리고 가주인 콘라드의 각종 지원.
이 두 가지 도움이 없었다면, 오토는 결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특히나, 콘라드가 흔쾌히 마검사들을 지원해 주었던 건 오토에게 있어 가장 큰 도움이었다.
영토는 넓혔을지언정 실력 있는 기사들이 없던 오토에게 있어 마검사들은 정말이지 소중한 자원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기사와 같은 고급 인력들은 하루 이틀 만에 뚝딱 키워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소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훈련과정이 필요한 게 바로 기사.
때문에, 지금 이오타 왕국의 핵심 기사들은 모두 쿤타치 가문 출신의 마검사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콘라드는 마검사들뿐 아니라, 수준급의 마법사들도 수십 명이나 오토에게 지원해 주었다.
쿤타치 가문이야말로 이오타 왕국을 떠받드는 핵심 전력이었던 것이다.
“오토야.”
“예, 할아버님.”
“나는 곧 우리 가문을 네 녀석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예?!”
오토가 깜짝 놀랐다.
벌써 쿤타치 가문을 물려주려 하다니?
“나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껄껄껄.”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그리 알도록 해라. 대신.”
콘라드가 덧붙였다.
“앞으로 네 녀석은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아니라, 오토 쿤타치 스쿠데리아가 되어야 할 게야.”
“……!”
“이미 왕가(王家)를 이룬 네 녀석에게 성을 바꾸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
“할아버님…….”
“조만간 네 녀석에게 쿤타치 공국의 왕권을 이양하고, 정식으로 가주의 직위를 물려줄 생각이다. 그러니 그리 알고 있도록 해라.”
“할아버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 *
오토는 약혼식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잘츠부르크 가문의 가주이자 북부대공인 지안카를로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돼.’
사실 오토의 계획에 있어 지안카를로는 매우 중요한, 핵심 인물이었다.
현재 오토는 여러 개의 세력들을 동맹으로 한데 묶어 북부제국의 침공에 대비하고자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안카를로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 손녀사위.”
지안카를로가 오토를 반겨 주었다.
“나를 보자고 했다지?”
“예, 대공 전하.”
“이렇게 따로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텐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대공 전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떤?”
“장벽 너머 야만부족들과 휴전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뭐라!”
지안카를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런 지안카를로로부터 엄청난 마나의 폭풍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그가 어마어마하게 분노했다는 뜻이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지안카를로가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잘츠부르크 가문과 장벽 너머 야만부족들의 역사는 무려 200년이 넘는, 그야말로 피로 쌓아 올린 악연이었다.
죽고, 죽이고.
또 죽고, 또 죽이고.
두 세력의 피의 역사를 기록하자면,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오토가 흔들림 없이 말했다.
“뭐라!”
지안카를로가 번개처럼 검을 뽑아 들고 오토를 겨눴다.
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말도 꺼내지 않았을 터.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지안카를로의 분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를 설득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수천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날 테니까.
“잘츠부르크 가문과 야만부족이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압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딴 소리를 내뱉는 것이냐?”
“지금까지 두 세력은 철천지원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공동의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공동의 적……?”
“곧 북부제국이 남하합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지안카를로는 북부제국의 남하를 그리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북부제국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였다.
북부제국은 바다 건너 대륙에 자리하고 있었고, 대륙의 다른 국가들과 그 어떤 무역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부제국은 강합니다.”
“그것들이 강하다?”
“예.”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판단하기에, 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아라드 제국이 아니라 북부제국입니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맹세코 사실입니다.”
오토가 힘주어 말했다.
“북부제국은 지난 10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왔습니다. 그들이 가진 기술력은 대륙을 압도합니다.”
“허어!”
“그들은 그 기술력으로 식량 생산량이 적다는 한계점을 극복했고, 인구를 늘려 왔습니다. 또한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개발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남하하면, 야만부족뿐 아니라 북부장벽마저 무너질 것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안카를로가 버럭 소리쳤다.
“어찌 그따위 개소리를 지껄이느냐!”
“지금이라도 북부제국에 정보원들을 침투시켜서 확인해 보십시오. 그럼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크흠!”
지안카를로는 오토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살짝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손녀사위 녀석이 아무런 근거 없이 이런 소리를 하지는 않을 터인데.’
오토는 단기간에 강대국을 이룩한 자.
그 능력이나 통찰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괜히 헛소리나 지껄일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번.”
지안카를로가 검을 거두고 다시 제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자세하게 얘기해 보도록 하여라.”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 * *
오토는 지안카를로에게 북부제국의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한편,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까지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안카를로가 말했다.
“저 야만인 놈들과 손잡고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하면서, 로웨나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까지 제거하자는 말이냐?”
“예.”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내전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미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의 세력은 너무 커졌습니다. 황제 폐하조차 어쩌지 못할 만큼 커졌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 뒤에, 그들을 토벌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라드 제국이 살고, 이 대륙에 세계대전에 휩쓸리는 걸 막을 수가 있습니다.”
오토는 거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열변을 토해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안카를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런 오토의 설득은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내 북부제국에 정보원들을 침투시켜 네 말이 사실인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기꺼이 야만인 놈들과도 손을 잡을 것이다.”
지안카를로는 앞뒤 꽉 막힌 고집불통이 결코 아니었다.
잘츠부르크 가문은 단순히 아라드 제국을 위해서 북부장벽에 주둔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야만부족의 침공으로부터 대륙 전체를 지켜내기 위해 대를 이어서 희생을 자처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간 아라드 제국에서 벌어졌던 숱한 권력다툼에도 철저히 중립을 지켰던 이유도, 그들이 정쟁에 휘말리는 순간 야만부족이 침공해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잘츠부르크 가문이야말로 그 어떤 세력보다 대의를 생각할 줄 아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 잘츠부르크 가문을 설득하는 건 차라리 쉽지.’
문제는 그다음.
‘야만부족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하나.’
산 넘어 산.
진짜 걱정거리는 북부장벽 너머에 있는 그 많은 야만부족들을 무슨 수로 설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북부제국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던 것이다.
* * *
오토와 엘리제의 약혼식은 생각보다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쿤타치 가문과 잘츠부르크 가문은 많은 하객을 받지 않았다.
정식 결혼식이 아니었기에, 요란한 행사가 되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약혼식을 발표한 이유도 대외적으로 오토와 엘리제가 약혼한 사이이며,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오토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제와 약혼반지를 주고받음으로써, 간단하게 약혼식을 치렀다.
성대한 결혼식은 1년 뒤에 정식 결혼식에서 그만이었으니까.
“우리 꼭 결혼하자, 1년 뒤에.”
오토가 엘리제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간절히 바란다.”
엘리제도 오토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짝짝짝짝짝짝!!!
약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오토와 엘리제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약혼식에 참석한 테르테미안과 파라곤도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겉으로는 웃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속내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빌어먹을. 파라곤 놈이 오다니.’
‘하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형님이 아니지.’
오토가 보낸 편지에 단단히 낚인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만사를 제쳐 놓고 약혼식에 참석한 상태였다.
약혼식을 핑계로 오토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빌미로 회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약혼식이 끝나고 벌어질 파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오토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약혼식이 끝나고 기념 파티가 알렸다.
‘지금이다!’
‘내가 먼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은 파티가 시작되자마자 앞다투어 오토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말 축하하네, 오토 국왕.”
“그대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일세.”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이 동시에 오토에게 악수를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