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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겨우 세 합 만에 끝이라고?”

“어르신이나 아가씨나 드높은 경지를 이룩한 분들이니만큼 그 정도로 충분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개뿔이. 저게 뭔 대련이야. 누가 강한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야 이.”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지금 나한테 허접이라는 거야? 나도 이래 봬도 무적의 검술을….”

“허접 맞잖습니까. 저 두 분에 비하면.”

“…….”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한 수 배울 생각이나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지금 전하의 수준으로는 두 분을 이해하지 못하잖습니까.”

“…그래.”

오토는 순순히 인정하고, 카미유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긴.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

오토는 자신의 검술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무적검술>을 익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현재 <무적검술>의 성취는 1성.

최고 단계가 12성이니, 이제 갓 입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확실히 달라. 게임에선 레벨이 오르면 무적검술의 성취도 자동으로 올라갔는데. 계속 제자리잖아.’

이 또한 게임과 현실의 차이점.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적검술>의 성취를 높여야 했는데, 계속 제자리걸음이라 오토도 답답해하던 참이기도 했다.

“와라.”

엘리제가 오토를 불렀다.

“…네에.”

오토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끌끌끌.”

카이로스가 오토의 곁을 스치며 웃었다.

“앞으로 네놈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구나. 끌끌끌.”

“뭐 인마?”

“네놈 같은 뺀질이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약혼녀이기는 하다만 평생 노력해도 매 맞는 남편 신세는 못 벌어날 것 같구먼. 끌끌끌.”

“이… 이이…!!!”

오토는 카이로스의 조롱에 약이 잔뜩 올라서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하늘같은 약혼녀님께서 기다리시는데, 카이로스와 드잡이질을 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오토가 약혼녀인 엘리제 앞에 섰다.

‘그래도 첫날인데 적당히 하겠지? 개 패듯이 패진 않고?’

패배는 확정.

더 맞냐, 덜 맞냐가 중요할 뿐….

오토는 어떻게 하면 덜 맞을 수 있을지,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주제에 세계관 최강자를 상대로 대련에서 이겨 보겠다는 심보 자체가 양심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먼저 갑니다.”

“얼마든지.”

오토는 엘리제를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헉?’

오토는 순간 숨이 턱 막힌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못했다.

‘이게… 가능해?’

마치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

단지 마주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져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목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엘리제가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가만히 있는데도 압박감이 느껴지지? 내가 겁을 먹은 건가?’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미 맞을 걸 각오한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자세조차 너무나도 완벽하다는 건가?’

오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휙!

오토가 목검을 휘둘렀다.

스윽.

엘리제가 몸을 최소한으로 틀어 오토의 공격을 피하고, 슬쩍 반격을 찔러 넣었다.

툭.

엘리제의 목검이 오토의 옆구리를 지그시 눌렀다.

“……!”

오토는 자신의 공격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빗나가고, 또 반격까지 허용한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만약 이게 실전이었다면….

‘단 일 합에 죽었다.’

소름이 끼쳤다.

실력 차이가 이만큼이나 심했을 줄이야….

“기대 이하.”

엘리제가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약하군.”

“…….”

“다시 와라.”

“예.”

오토가 엘리제의 명령(?)에 따라 다시 검술을 전개했다.

* * *

대련은 그 후로도 무려 1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엘리제는 첫 일 합 이후 오토에게 제대로 된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

대신 오토가 검술을 모두 쏟아낼 수 있도록 대련의 강도를 조절해 주었다.

마치 어른이 아이와 놀아주듯이….

그러던 중.

‘어?’

오토는 순간 길이 보이는 듯해서, 속는 셈치고 엘리제의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보았다.

툭.

그러자 검이 엘리제의 목 언저리를 스쳤다.

“어? 이게 되네?”

오토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는 걸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결과.

[알림: <무적검술>의 성취가 올랐습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무적검술>의 성취가 2성에 도달했습니다!]

그간 멈춰 있던 검술 실력이 거짓말처럼 발전했다.

“약혼자.”

“네?”

“넌 완벽에 가까운 검술을 지니고 있다. 그대로만 수련한다면 무적의 경지에도 오르는 게 가능할 만큼, 네가 가진 검술은 뛰어나다.”

“…….”

“하지만 넌 그 검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검술을 몸이 기억하게끔 수련한 것 같군. 혹시 맞으면서 배웠나? 강제로 움직임이 몸에 익게끔?”

“헉!”

엘리제는 오토가 어떻게 <무적검술>을 익히게 되었는지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기염을 토했다.

“검술이란 몸으로 익히는 것이지만, 결국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위력을 낼 수 없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서 네가 가진 검술을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게끔 움직임을 유도해 봤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하… 하하하….”

오토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족집게 과외선생님도 아니고, 오토의 현재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다니….

“훈련 강도를 올리겠다.”

“예?”

“한 단계를 뛰어넘었으니 다음 단계도 뛰어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 그건 그렇지만….”

“이번엔 먼저 가겠다.”

“헉!”

오토는 엘리제가 자신을 덮쳐 오자 화들짝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빠악!

엘리제의 검이 오토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꾸웩!”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오토.

“훈련 강도를 높이겠다고 말했을 텐데.”

“으으으으으!”

“다시 간다.”

“으아아아아악!”

강도가 올라간 만큼 훈련의 가히 지옥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목검이 인정사정없이 날아오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엘리제가 오토의 수준에 맞춰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제는 오토가 <무적검술>을 이해할 수 있게끔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쥐 잡듯이 몰아붙여 봤자 본능적인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을 뿐, 오토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었기에 숨 쉴 틈 정도는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엘리제의 훈육방식(?)은 옳았다.

[알림: <무적검술>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알림: <무적검술>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무적검술>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오토는 엘리제와 더불어 검을 섞으면 섞을수록 <무적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다.

그동안에는 몸에 밴 동작들을 본능적으로 쏟아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련이 시작된 지 3시간이 되었을 무렵.

철푸덕!

오토가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쓰러졌다.

장장 4시간에 걸친 대련 끝에 그만 탈진해 버린 것이다.

“오늘은 이만하자.”

엘리제는 오토를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았다.

“약혼자.”

“예….”

“넌 이게 모자라다.”

엘리제가 자신의 옆통수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제, 제가 멍청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적어도 검술에 한해서는.”

“……?”

“인간의 모든 능력은 이곳에서 나온다. 그건 검술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을 단련해야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오토는 엘리제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겠지. 하지만 계속 수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말뜻을 이해하게 될 거다.”

“네.”

“그럼, 이만 쉬도록.”

엘리제는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채….

* * *

“끙. 끄응. 끙끙.”

비록 엘리제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것은 아니었지만, 오토는 몸져눕고 말았다.

뼈만 부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오토의 부상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중간 중간 목검으로 세게 얻어맞은 덕분에 근육이 파열되고, 피부가 찢어지고, 시뻘건 피멍이 드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만약 오토가 <신마지체>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골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그간 막혀 있던 <무적검술>의 성취를 2성까지 끌어올리고, 숙련도도 올렸으니 엄청난 이득을 본 셈이었다.

어디 가서 억만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운이 좋다면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단, 너무 아파서 문제지….

“숙면을 도와주는 포션입니다. 통증 때문에 밤을 못 주무실 것 같아서 받아 왔습니다.”

“고마워.”

“푹 쉬십시오.”

오토는 카미유가 건네준 약을 먹자마자 30분도 채 되지 않아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안 그래도 지난밤에 폭음을 한 탓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엘리제와 대련까지 하느라 완전히 지쳐 버린 것이다.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십니다.”

카미유는 안쓰럽다는 듯 잠든 오토를 내려다보고는, 조용히 침실을 나섰다.

그로부터 약 1시간 후.

스윽.

누군가 창문을 통해 오토의 침실로 침입했다.

그건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곳 쿤타치 공국 안에서, 오토의 경호는 콘라드 이상이었다.

숙소 주변에 100명이 넘는 기사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데다가, 침실 밖에는 마검사 넷이 2시간마다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어디 그뿐인가?

문 밖에는 마검사들뿐 아니라 카미유까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붙이고 있건만….

하지만 그 모든 경호 인력조차 이 침입자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왜?

침입자는 오토의 약혼녀이자 세계관 최강자인 엘리제였으니까.

엘리제는 한동안 잠들어 있는 오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끙. 끄응.”

오토는 진통제 성분이 든 수면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면서 끙끙 앓고 있었다.

“살아남아야 해… 어떻게든… 끙… 끄응.”

“……?”

“끙… 끙끙… 생각… 하자… 미리미리 준비하고… 끙… 강해지지 않으면… 끄으응… 끙끙….”

엘리제는 조용히 끙끙 앓으며 알 수 없는 잠꼬대를 해대는 오토의 머리맡에 앉았다.

“약혼자. 힘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엘리제의 손길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오토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비록 그 손은 거칠었을지언정….

“그렇게 잡생각이 많으면 검이 무뎌지는 법이다.”

엘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불을 걷었다.

그리고는 오토의 상의를 벗겼다.

그러자 평소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단련된 탄탄한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엘리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허리 들어라.”

엘리제는 오토의 허리를 손으로 떠받치고, 입고 있던 하의까지 벗겼다.

그렇게 속옷 바람이 된 오토.

하지만 엘리제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스윽.

엘리제가 속옷 바람이 된 오토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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