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은 순조로웠다.
날씨가 좋은 덕분에, 쿠란은 날갯짓을 얼마 하지 않고도 손쉽게 하브르 초원까지 날아갔다.
물론 중간에 사소한 사건이 벌어지기는 했다.
‘살다 살다 드래곤을 타고 날아보다니.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 꼭 말씀드려야겠다.’
마검사 카심은 이 놀라운 일을 쿤타치 공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이야기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근데 못 믿으시겠지? 하하하.’
워낙에 허무맹랑하고 신빙성 없는 이야기라서, 등짝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었다.
그것도 잠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 놀라운 경험의 흥분감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사그라졌다.
비행이 10시간을 넘어서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으. 졸려.’
카심은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던 중.
휘이이이이이이!
기우뚱!
난기류를 만난 쿠란이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고, 드래곤의 거대한 동체가 크게 요동쳤다.
그 결과.
“히익?!”
카심은 순간 중심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안장에서 떨어져 저 멀리 하늘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카심은 추락하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누구도 그 비명을 듣지 못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이!
빠르게 날아가는 중이라 소음이 워낙 심해서, 카심의 비명이 묻힌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들 꾸벅꾸벅 조느라 카심의 추락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아.”
카심은 추락하면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엄마… 저 먼저 가요….’
카심은 그냥 속 편하게 눈을 감고,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아무리 마검사라고 한들 수 킬로미터 상공에서 추락해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렇게 기절해버린 카심은, 낙하산도 없이 하염없이 추락했다.
바로 그때.
“키잇(으응)…?!”
우연히 근처를 날아가던 와이번 한 마리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추락 중인 카심에게로 향했다.
“캭?(오?) 캬악 캭 캬아악(이게 웬 떡이지)?”
와이번은 난데없이 하늘에서 먹이―카심―가 떨어지자 의아해했지만 이내 곧 생각을 비웠다.
그리고는 카심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 그를 낚아챘다.
“캬아아악(개꾸우울)!”
와이번은 예상치 못한 횡재에 기뻐하며 둥지를 향해 훨훨 날아갔다.
기절한 카심을 낚아챈 채로….
* * *
슈우우우우우우우!
숲을 향해 급강하하는 거대한 드래곤.
하지만 착륙은 결코 멋있지 않았다.
삐끗!
내려앉던 순간 발을 헛디딘 쿠란.
우당탕탕!
데구르르르르르르!
쿵! 쿠웅!
쿠란은 볼썽사납게 엎어지며 몇 바퀴나 굴렀고, 비행장(?)으로 삼았던 숲의 5분의 1 정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으아아아아악!”
“커헉!”
“이런 빌어먹을!”
오토 일행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쿠란이 나자빠지는 바람에 모두 튕겨 나간 것이다.
“으윽. 진짜 뒈질 뻔했네.”
만신창이가 된 오토가 신호탄을 터뜨리며 투덜거렸다.
이윽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다들 괜찮냐?”
오토가 물었다.
“전 괜찮습니다.”
“짐이 이 정도로 뒈질 것 같으냐?”
“저도 괜찮습니다.”
카미유·카이로스·아무칸은 여기저기 긁히고 찍히긴 했어도 큰 부상은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저희도 이상 없습니다.”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도 모두 무사한 듯했다.
“휴. 다행이네.”
누구 하나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오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카심이 안 보입니다.”
마검사 쇼난이 오토에게 보고했다.
“카심 씨가 안 보인다고요?”
“예, 전하.”
“그 양반 저번에도 사라지지 않았나요?”
오토는 카심이 지난 전쟁 당시 간첩으로 오해를 받아 낙오했던 걸 떠올렸다.
‘그때 좀 미안했는데.’
당시 상황이 너무 급해서 아무도 카심이 낙오한 줄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카심은 적으로 오해를 받아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추락 당시에 멀리 튕겨져 나갔다가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신호탄을 분명히 봤을 텐데.”
오토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저희가 찾아보겠습니다.”
마검사 셋이 나섰다.
“부탁드립니다.”
오토는 그들에게 카심의 수색을 맡기기로 했다.
지금은 상황이 급해서 모두가 카심을 찾으러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 명의 마검사들이 카심을 찾으러 떠난 후.
“어르신 좀 괜찮으세요?”
오토가 엎어져서 끙끙대는 쿠란에게 물었다.
- 끄응… 온몸이 쑤시는구나… 끄으으으으응!
“아이고….”
- 기력이 없다… 기력이… 끙…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날 힘도 없구나… 소싯적에는 일주일 내내 날아다녀도 끄떡도 없었거늘….
착륙에 실패한 것도 실패한 것이었지만, 이틀 동안의 비행이 더 힘에 부쳤던 모양.
늙고 병든 드래곤 쿠란(약 9,900세/치매 환자).
그에게는 비행마저 쉽지 않았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어르신, 이제 푹 쉬세요. 제가 모실게요.”
- 그래… 고맙구나….
쿠란은 힘을 쥐어 짜내서 인간으로 변신하자마자 축 늘어져 버렸다.
기력이 다해 기절한 것이다.
“어르신, 어르신!”
오토는 황급히 쿠란을 흔들어 깨우면서, 입가에 스태미나 포션을 흘려 넣었다.
그런데.
[알림: 쿠란의 스태미나가 3 회복되었습니다! (27/175,435,221)]
쿠란의 스태미나 용량이 무려 1억 7천 5백만이 넘었다.
‘1억 7천만? 그 와중에 상급 스태미나 포션을 먹였는데 고작 3이 찬다고?’
쿠란은 드래곤답게 생명력·마나·스태미나의 총량도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답도 없네.’
오토는 일단 가지고 있던 상급 스태미나 포션을 모조리 쿠란에게 때려 박았다.
[알림: 쿠란의 스태미나가 3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쿠란의 스태미나가 3 회복되었습니다!]
[알림: 쿠란의 스태미나가 3 회복되었습니다!]
(중략)
[알림: 쿠란의 스태미나가 3 회복되었습니다!]
그래 봤자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테지만….
“아이고, 어르신. 이렇게 기력이 없으셔서 어떡합니까. 기운 차리셔야죠.”
오토는 안쓰러운 마음에 쿠란의 팔·다리를 열심히 주물러주었다.
늙고 병들어 이제는 나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는 쿠란이 불쌍했기에….
* * *
오토 일행은 즉시 숲을 벗어나 초원에 도착했다.
하브르 초원은 사람을 질리게 할 만큼 넓었다.
푸른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서, 저 멀리 지평선마저 보일 지경.
거기다가 하늘은 드높고 공기는 차가웠으며, 바람은 건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푸르지만 척박한 대지.
그게 바로 하브르 초원이었다.
두두두두두두!
오토 일행은 하브르 초원의 특산물이자 명마인 타타르 품종 말을 타고 콩기라트 부족의 근거지인 울란바토르로 내달렸다.
“도대체 울란바트로가 어디야? 이 근처라며?”
“저기입니다.”
아무칸이 저 멀리 지평선을 가리키며 오토의 물음에 답했다.
“엥? 저기라고?”
“예, 거의 다 왔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제 눈에는 보입니다.”
“거짓말하지 마.”
오토가 아무칸의 말을 부정했다.
“지평선밖에 안 보이는데? 방향 잘못 잡은 거 아니야?”
“정말입니다. 저기 보이잖습니까. 이대로 쭉 가면 울란바토르입니다.”
“뻥치시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 뒈질래? 보이긴 뭐가 보여! 아무것도 없잖아!”
그때.
“쯧쯧쯧.”
카이로스가 불쑥 끼어들어서 오토에게 면박을 주었다.
“이런 무식한 놈 같으니.”
“뭐, 인마?”
발끈하는 오토.
“내가 무식하다고?”
“그럼 네놈이 무식하지, 안 무식하냐?”
“이게 진짜! 내가 뭐가 무식해!”
“이 멍청하고 어리석은 놈 같으니. 이런 드넓은 초원에 사는 유목민들은 대체로 시력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다는 것도 모르느냐?”
“으응?”
“이런 탁 트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원래 시력이 좋다. 게다가 오랜 세월 유목 생활을 한 덕분에, 주변을 경계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어서 시력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 그런 거야?”
“쯧쯧.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다니. 잔머리만 굴릴 줄 알았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다.”
부들부들…!!!
오토는 카이로스가 꼽을 주자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칸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 꼴이 되어버렸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두고 보자.’
오토가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두두두두두두!!!
저 멀리서 한 무리의 기병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쟤넨 뭐야? 콩기라트 부족인가?”
오토는 면박을 당한 게 쪽팔려서 <투시> 스킬을 켜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투시> 스킬은 멀리 내다보는 능력까지는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감히…!!!”
그때, 아무칸이 분통을 터뜨렸다.
“뭐야? 너 왜 갑자기 급발진 하냐?”
“저놈들… 마그리트 왕국의 군대입니다.”
“뭐?!”
“겁도 없이 신성한 울란바토르 근처를 내달리다니….”
오토는 마그리트 왕국의 군대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그리트 왕국은 하브르 초원과 국경을 마주하는 곳에 자리한 국가로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매우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군사 강국이었다.
‘마그리트 왕국의 군대가 여기 왜 있어?’
마그리트 왕국은 보통 하브르 초원에서 넘어오는 유목민 전사들로부터 영토를 방어하면 방어했지,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제아무리 군사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타타르 품종 말을 탄 유목민 기병들을 상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얘들이 갑자기 미쳐버리기라도 한 건가?’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쏴 오토 일행을 벌집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 * *
같은 시각.
마검사 카심은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나는 분명 죽었을 텐데? 설마 천국인 건가? 에이, 그럴 리가.’
그러기엔 설득력이 너무 없었다.
악행을 저지르며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죽어서 천국에 올 만큼 착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럼 안 죽은 건가?!’
카심은 기대에 찬 눈으로 주변을 쓱 돌아보았다.
하지만 카심은 이내 그 결정을 후회했다.
차라리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깨어난 것부터가 명백한 실수였다.
그냥 기절해 있었다면 차라리 편했을 텐데….
“캬악! 캬아아아악!”
“끼이이이이이이!”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이번, 와이번, 그리고 또 와이번.
수십여 마리에 달하는 와이번들이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지저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끼이이이!”
“끼이! 끼이이이!”
아직 날지도 못하는, 자그마한 덩치의 새끼 와이번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뒤뚱뒤뚱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새끼 와이번들의 발밑에는 깨진 알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심은 몇 가지 사실만큼은 아주 확실하게 깨달았다.
첫째, 죽지 않았다.
둘째, 이곳은 와이번들의 둥지다.
셋째, 이제 곧 새끼 와이번들에게 뜯어 먹힐 예정이다.
“…X됐네.”
카심은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뒤뚱뒤뚱 다가오는 새끼 와이번들을 바라보며, 절망에 찬 혼잣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