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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카이로스가 베아트리체를 향해 휘두른 검에는, 과거의 복수를 함으로써 악연을 끊어내고 지난날의 과 오를 뒤늦게라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었다.

그렇기에, 칼날은 거침없었다.

서걱!

검이 베아트리체의 허리를 갈랐다.

털썩!

두 동강 난 베아트리체가 허물어졌다.

"그르르르르・・・!!!"

하반신이 잘린 베아트리체가 카이로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카이・・・ 로・・・ 스・・・ 네놈이・・・ 나・・・ 를・・・."

“・・・・・・.”

"폐・・・ 하・・・ 께서・・・ 네놈・・・ 을・・・ 가만・・・ 두・・・ 지・・・ 않・・・ 으실・・・ 한・・・ 낱・・・ 천하디・・・  천・・・ 한・・・ 용병・・・ 따위・・・ 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베아트리체.

이 악녀가 그 옛날에도 카이로스를 어떻게 생각했 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어휴."

오토는 두 동강 난 베아트리체가 악다구니를 시전 하자 혀를 내두르며 나서려 했다.

스윽.

그러자 카이로스가 팔을 들어 오토를 가로막았다.

"뭔데?”

"짐이 하겠다."

"으응?

카이로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오토에게 검을 돌려 주고는, 자신의 철퇴를 꺼내들었다.

"카이・・・ 로・・・ 스・・・ 지금・・・ 이・・・ 라도・・・ 나를・・・."

"이 요망한 년."

"・・・・・・!"

“뒈졌으면 곱게 뒈질 것이지 감히 짐의 추억을 더럽혀?” 

다음 순간.

콰직!

카이로스가 철퇴를 휘둘러 베아트리체의 등판을 찍어 버렸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섬뜩한 비명을 내지르는 베아트리체.

"네년이 감히 아르곤 그 새끼랑 붙어먹고 짐을 농락해?” 

퍼억!

"캬아아아아악!” 

퍼억!

"캬악! 캬아아아아악!" 

퍼억!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카이로스는 인정사정없이 철퇴를 휘두르며, 베아트리체를 아예 짓이겨놓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끔찍했던지, 마치 썩은 고깃덩이를 잘게 다지는 것 같았다.

"네년은 예나 지금이나 짐에게 고마운 줄 알아야한다."

“께에에에에엑・・・."

"구질구질하게 부활해서 또 악행이나 저지르고 다 닐 바에야 짐의 손에 뒈지는 게 나을 터. 살아 있어 봤자 업보만 쌓지 않겠느냐."

"오, 오라버니・・・.”

"지옥으로 가 회개하라." 

퍼억!

카이로스의 철퇴가 베아트리체의 머리통을 산산조각으로 박살냈다.

썩은 뇌수가 사방팔방으로 튀며 악취를 풍겼다.

카이로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퍽! 퍽!

카이로스는 이미 죽은 베아트리체를 아예 분해해버릴 기세로, 진짜로 잘근잘근 다져 버렸다.

마치 살점 하나조차 온전히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베아트리체를 썩은 육포로 만들어 버린 카이로스는, 마지막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불꽃을 만들어내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뒤이어 시퍼런 화염이 베아트리체의 시체에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칼로 두 동강을 내고.

철퇴로 머리통을 깨고.

육체를 잘근잘근 짓이기고.

심지어, 불태우기까지.

전형적인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형벌이었다.

'확실히 정리했네.'

오토는 카이로스가 단호하게 과거의 악연을 끊어 낸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게 복수지.'

아르곤 대제를 향한 복수를 다짐했던 카이로스가 베아트리체에게 흔들리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복수는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

그게 누구라 할지라도.

* * *

베아트리체를 처치한 오토 일행은, 즉시 아르곤 대제의 관 뚜껑을 열었다.

관 안에는 화려한 수의를 입은 백골이 매우 정갈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뼈에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것으로 보 아 관에 무슨 특별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알아서 처리해."

오토는 아르곤 대제의 유골을 카이로스에게 맡겼다.

"흐흐흐! 가루를 만들어주마!" 

카이로스는 좋다고 아르곤 대제의 백골을 향해 철퇴를 휘둘러, 뼈를 모조리 부숴버렸다.

'이거네.’

한편, 오토는 아르곤 대제의 관 바로 뒤에 장식되 어 있는 갑옷과 검을 챙겼다.

[알림: <제국의 심장〉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황금대검>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제국의 심장>은 순백색의 판금갑옷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모두 감싸는 풀 플레이트 아머의 형태.

전설 등급의 갑옷으로서, 그 값어치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방어구들 중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아이템이었다.

황금색 검신을 가진 <황금대검>은, 특이하게도 금 을 먹이면 먹일수록 공격력이 상승하는 자본주의의 검이었다.

이 역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고위급 아이템이기도 했다.

'개쩌는 템들이긴 하지.’

오토는 아르곤 대제가 <제국의 심장>과 <황금대검>을 들고 적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숙주에게 올라탄 율리우스는 그 막대한 자금력과 사업수완을 기반으로 국가의 경제권을 틀어 뿐더러, 엄청난 무력으로 대장군의 위치에까지 오르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돈이면 돈.

무력이면 무력.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SSS등급 영웅이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숙주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장기화되면 숙주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아르곤을 견제하기 시작할 테지만, 그땐 이미 늦었을 테지.

"쩝. 이 좋은 걸 써먹지도 못하네." 

오토는 입맛을 다셨다.

<제국의 심장>과 <황금대점> 모두 아르곤의 전유물인지라, 이걸 사용했다간 빼도 박도 못하고 도굴꾼이라는 게 들통 날 터.

'어디 저 멀리 바다 건너가서 비싸게 팔아먹어야지.’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너・・・ 뭐하냐?"

오토가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걸로 뭐하게?” 

“보면 모르겠느냐?"

카이로스가 아르곤 대제의 해골을 거꾸로 뒤집고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가죽 주머니를 꺼내 술을 콸콸콸! 따랐다.

그러더니 해골에 고인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죽인다!"

“・・・・・・.”

"앞으로 술은 이 잔으로만 마실 것이다! 크핫핫핫핫!"

해골물・・・ 아니 해골술이냐???

술 좋아하는 카이로스에게 딱 어울리는 술잔이긴 한데・・・.

‘내버려 두자. 지 복수한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할게 뭐가 있겠어.'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아르곤 대제의 묘비 역할을 하는 석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놀고자빠졌네."

오토가 마나를 일으켜 점을 오러로 휘감았다.

스윽.

죽음은 또 하나의 위대한 여정일 뿐이니.

영원한 반려자와 이곳에 함께 잠들고, 또 재회하리라.

쫙 줄을 그어 아르곤 대제의 유언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넣었다.

응. 좆까.

・・・라고.

"그럼 이제 슬슬 보물 챙겨서・・・ 으응?"

고개를 돌려보니 카이로스의 엉덩이가 보였다.

“뭐, 뭔데!"

"보면 모르겠느냐? 크핫핫핫핫!" 

카이로스가 아르곤 대제의 무덤을 향해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야이! 내 눈!"

졸지에 못 볼 것을 보게 되어버린 오토가 눈을 질끈 감고 버럭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이로스는 아르곤 대제의 관을 향해 시원하게 오줌을 갈겨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하, 하지 마!"

"으헤헤헤헤헤헤헤!"

"야 이 미친놈아! 그것까진 하지 마! 그건 너무・・・ 으아아아아악!"

오토는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묘실에서 도망쳐버렸다.

* * *

묘실을 나선 오토는 즉시 무기고에 있는 장비들과, 보물 창고에 쌓인 금은보화들을 챙기는 작업에 나섰다.

다행히도 무덤을 지키던 석상들이 좁은 입구에서 허우적대다가 모조리 파괴된 덕분에,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심, 조심!"

"정리는 필요 없고! 대충 다 쓸어 담아서 들고 나가!"

"신속하게 물건을 실어라!" 

이오타 왕국군과 하브르 초원의 유목민들은 명령 에 따라 무덤 안의 보물들을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렇게 한창 작업이 진행되던 중.

"전하, 급히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마검사 하나가 오토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뭔데요?"

"가이우스를 심문한 결과 율리우스 일행이 여기까지 당도하는 데 1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빨리요?"

"예, 전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고, 보고체계가 2 시간 간격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지금쯤이면 이곳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챘을 거라고 합니다."

"12시간이라・・・ 시간이 얼마나 있죠?" 

“물량이 워낙 많아 다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최대한 서두르면 6시간 안에는 철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시간. 추적을 뿌리치기엔 좀 아슬아슬하네요. 운이 좀 필요하겠어."

이 많은 인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거든 최소한 10시간은 필요할 터.

‘꼬리 잡히는 거 아닌가?’

오토는 살짝 고민했다.

만약 꼬리를 잡혀 도굴이 들통 나게 되면, 아르곤 대제를 이용해 먹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보물의 양을 생각해 봤을 때, 그 계획을 포기해도 그리 나쁠 것 같진 않단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아르곤 대제는 어떤 식으로든 오토의 손바닥 위에서 놀 수밖에 없다.

왜?

이대로 아라드 제국에 아르곤을 고발한다면, 대업을 이루기는커녕 평생을 쫓겨 다니며 비참한 신세로 살아야 할 테니까.

“어떻게 합니까?” 

“못 먹어도 고."

오토는 조금 시간이 빠듯하더라도 보물들을 모조리 챙긴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약 6시간 후.

"철수, 철수!"

"모두 이동한다!"

이오타 왕국군과 하브르 초원의 유목민 전사들은, 말에 보물들을 잔뜩 실은 채 발굴 현장을 떠났다.

때마침 발굴 현장이 하브르 초원과 맞닿아 있는 곳 이라서, 유목민 전사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게 천만 다행이었다.

유목민 전사들과 그들이 타고 온 말이 없었다면, 이 많은 보물들을 옮긴다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경로를 우회해 돌고 돌다가다시 하브르 초원 방향으로 틀었을 무렵.

"크으! 좋다!" 

“맛있냐?"

“꿀맛이로구나! 껄껄껄! 술이 달구나! 달아! 껄껄!" 

카이로스는 아르곤 대제의 해골을 잔 삼아 연거푸 술을 퍼마셔 대었다.

'마냥 좋지만은 않겠지.' 

오토는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복수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과거 마음에 담아두었던 여인을 자기 손으로 박살낸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터.

카이로스 본인의 말마따나, 차라리 부활하지 않고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면 한 줌 추억이라도 남았을 텐데・・・.

'그러게 왜 구질구질하게 꾸역꾸역 부활을 해? 업보만 쌓는 격인데. 어휴.’

바로 그때였다.

"어?"

차가운 무언가가 콧잔등 위로 떨어졌다가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눈이네?" 

때는 12월.

이런 북쪽 오지에서는 진작 내리고도 남았어야 할 눈이 뒤늦게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늦은 걸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엄청나게 쏟아져 내린 눈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버렸다.

"이걸 날씨가 도와주네." 

오토가 펑펑내리는 눈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 많은 눈이라면, 발자국이나 말발굽과 같은 흔적을 모조리 덮어 주고도 남을 터.

아르곤 대제가 뒤늦게 발굴 현장으로 달려온다고 한들, 오토 일행을 추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왜?

지금 오토 일행의 발자국과 말발굽 역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라질 테니까.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솜을・・・." 

오토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 * *

“・・・이럴 수가.”

뒤늦게 발굴현장에 도착한 아르곤 대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허리까지 쌓인 눈 덕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분간하기 쉽지가 않았다.

다만 눈이 덮이지 않은 곳에 꽁꽁 언 채로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만이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을 뿐・・・.

"아, 안돼"

아르곤 대제는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황급히 말에서 내려 무덤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니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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