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 나선 이오타 왕국군은 마치 양 떼 무리에 풀어놓은 늑대와 같았다.
“크핫핫핫! 이 나약한 놈들!”
“어딜 도망가는가!”
“우릴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전설의 교관 스푸너에게 체력단련과 군사훈련을 받은 덕분에, 이오타 왕국군의 전투력은 엄청나게 강해져 있었다.
S급 영웅인 스푸너의 특기 <정예양성>은 병사들의 전투력을 20퍼센트가량 올려주었기에, 체력은 물론 전술적으로도 크게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베큠 영지군과 세오덴 영지군은 조금 전 벌어졌던 전투로 인해 크게 지쳐있는 상황이라, 팔팔한 이오타 왕국군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100퍼센트 컨디션인 상태로 싸운다고 해도 이오타 왕국군의 전투력이 우세한데, 이렇듯 전술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면 싸움이 성립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항복하는 자들은 건드리지 마라! 대신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마라!”
카미유는 말을 타고 달리며, 이오타 왕국군을 이끌었다.
기세를 탄 이오타 왕국군은, 베큠 영지군과 세오덴 영지군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며 그 전투력을 과시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이오타 왕국군이 활약할수록 오토의 경험치도 덩달아 올랐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54레벨 달성!]
[알림: 55레벨 달성!]
[알림: 56레벨 달성!]
<영지전쟁>은 플레이어가 전투에서 승리하거나, 영토를 확장하거나, 혹은 경영하는 국가나 영지가 성장하면 플레이어도 함께 성장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토는 이 정도 레벨업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나도 싸워야지.’
오토가 카이로스의 영혼이 깃든 철퇴를 뽑아 들었다.
병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는 건 언제나 좋은 레벨업 방법 중 하나!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오토가 아니었다.
그런 오토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우웅!
철퇴가 강하게 진동했다.
- 오! 애송이! 한바탕 하려는 건가?
‘해야지.’
- 가라! 힘을 빌려주마!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노라!
‘고고.’
전장으로 뛰어든 오토는, 적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철퇴를 휘둘렀다.
퍽!
“아악!!”
퍽!
“악!”
퍽!
“커헉!”
원 샷, 원 킬!
철퇴에 맞은 적들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고,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철퇴에 실린 파괴력이 가히 엄청나서, 단 한 방만 맞아도 즉사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기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어라!”
오토에게 덤벼들었던 기사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즉사를 피하지는 못했다.
퍼억!
“으아악!”
철퇴가 갑옷을 너무나도 손쉽게 찌그러뜨리면서, 가슴이 완전히 으스러져 버렸던 것이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철퇴에 쓰러지는 적들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획득하는 경험치도 늘어났고.
[알림: 57레벨 달성!]
[알림: 58레벨 달성!]
[알림: 59레벨 달성!]
[알림: 60레벨 달성!]
레벨도 쭉쭉 올랐다.
오토는 한껏 신이 나서, 적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렸다.
6개월 전.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겁에 질려 벌벌 떨었었는데, 이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전쟁터를 누빌 줄이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은 게 분명했다.
* * *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베큠과 세오덴 두 세력 모두 이오타 왕국군의 압도적인 전투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중상을 입은 병사가 12명 정도 나왔지만,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승.
압도적인 승리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이오타! 만세!”
“만세!”
“국왕 전하! 만세!”
“만세!”
이오타 왕국군은 크게 함성을 내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죄인들을 대령하라!”
“예!”
카미유의 명령하자 병사들이 벤츄라 영주와 페르난도 영주를 오토 앞으로 끌고 왔다.
“오토, 이 개새끼야!”
“이 쥐새끼 같은 놈!”
두 영주는 오토의 얼굴을 보자마자 쌍욕을 퍼부어대며 분노를 토해내었다.
삥을 뜯으려던 동네 찐따에게 실컷 농락을 당한 후 패가망신한 셈이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조공 안 바치면 쳐들어오겠다고 협박했던 주제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죄인들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처형해.”
카미유의 물음에 오토가 딱 잘라 말했다.
“이놈들에겐 인정을 베풀 필요가 없어. 다만 이놈들의 가족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어서, 추방시키는 선에서 끝내고.”
“예, 전하.”
그렇게 벤츄라와 페르난도는 오토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전쟁터에서 즉결처분으로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동네 찐따를 건드렸던 일진들의 최후라고나 할까?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카미유는 벤츄라와 페르난도를 처형한 직후 오토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알림: 베큠 영지를 점령하셨습니다!]
[알림: 세오덴 영지를 점령하셨습니다!]
[알림: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61레벨 달성!]
[알림: 62레벨 달성!]
[알림: 63레벨 달성!]
(중략)
[알림: 70레벨 달성!]
점령한 영지 하나당 5레벨씩 총 10레벨이 한꺼번에 오르며, 오토의 레벨이 70이 되었다.
‘됐어.’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70레벨.
<성역>으로 가 권능을 획득할 수 있는 최소 레벨에 도달한 것이다.
* * *
그날 밤.
“크윽….”
오토는 몸져누웠다.
카이로스의 영혼이 깃든 철퇴로부터 힘을 끌어다 쓴 대가로, 오토는 엄청난 후유증을 떠안아야만 했다.
‘몸이 못 버티네.’
철퇴는 일종의 스팀팩 같았다.
힘을 끌어다 쓸 때에는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지지만, 그만큼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어마어마했다.
생명력을 빨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철퇴를 계속 사용했다간 몸이 남아나질 않아서, 결국 폐인이 될 게 분명했다.
‘하긴. 지금 내 상태로 전장을 누빈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제아무리 저주가 풀린 뒤 레벨을 어느 정도 올렸다지만, 100레벨도 채 되지 않는 오토가 전쟁터에서 적들을 쓸어버린다는 건 어불성설.
검술의 기본도 모르는지라 움직임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어차피 철퇴에 오래 의지할 생각은 없으니까. 일단 푹 쉬고 회복되면 성역으로 간다.’
경험상 베큠 영지와 세오덴 영지를 정복한 뒤엔 다른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다.
베큠 영지와 세오덴 영지가 대륙 변방의 경계선 즈음이었기에, 딱 여기서 진출을 멈춘다면 크게 어그로를 끌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와지르 대공이 내정을 아주 탄탄하게 잡아주고 있었고, 스푸너 교관이 군사력을 키워주고 있었다.
오토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한들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달 정도 자리를 비울 생각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오토는 후유증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성역>으로 갈 것임을 밝혔다.
“그 성역이란 곳이 어딥니까?”
“가보면 알아.”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답했다.
“저도 갑니까?”
“나 혼자 가긴 좀 그렇지?”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다음 날.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잘 다녀오도록 해라.”
“예, 대공 전하.”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이오타 왕국을 떠나 <성역>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거의 다 왔어.”
오토가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역이 쿤타치 공국에 있는 겁니까?”
“응.”
쿤타치 공국[公國]은 쿤타치 가문의 영토였다.
쿤타치 가문에 대륙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집안 중 하나로, 대대로 뛰어난 마검사들을 배출해낸 명가[名家]였다.
비록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정도로 알아주는 집안이었던 것이다.
“정확히 어디 있습니까?”
“성안에.”
“예…?”
카미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성안은….”
“쿤타치 가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지.”
“거길 어떻게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어떻게 들어가긴. 대놓고 들어가지.”
오토가 히죽 웃었다.
“자살하실 생각은 아니실 거라 믿습니다.”
시골 깡촌의 왕이 무려 쿤타치 가문의 성안에 대놓고 들어간다?
아주 죽기 딱 좋은 자살계획이었다.
물론 들어가기도 전에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쫓겨날 확률이 더 높겠지만.
“당연히 아니지. 내가 왜 자살을 해?”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쿤타치 공국은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었다.
침엽수림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숲 한복판에 세워진 이 도시는, 모든 건물들이 하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건축양식도 고급스러웠다.
괜히 대륙 서북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평가받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게임에서만 봤을 땐 잘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까 진짜 멋있네.’
오토는 쿤타치 공국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도시 정중앙에 자리한 하얀 성을 향해 나아갔다.
“멈추시오.”
성문 앞에 도착하자 경비병들이 오토와 카미유의 앞을 가로막았다.
“보아하니 여행객들 같은데, 이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오. 그러니 돌아들 가시오.”
그러자 카미유가 오토에게 말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말했잖아. 대놓고 들어갈 거라고.”
“무슨 수로…?”
“이렇게.”
오토는 카미유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품속에서 웬 목걸이를 꺼내 경비병에게 보여주었다.
“콘라드 대공 전하께 이 목걸이를 보여드리세요. 그러면 나를 들여보내라 명령하실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콘라드 대공 전하께서 그대 같은 낯선 이가 보낸 목걸이 따위를 볼 시간이 있으실 것 같소?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는 건지는 모르겠소만,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썩 꺼지시오. 그러지 않으면….”
“내 말을 무시했다간 당신 목이 날아갈 텐데?”
“뭣이…?”
“나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고, 이 목걸이는 나와 콘라드 대공 전하와의 관계를 증명하는 징표 같은 겁니다. 그러니 잔말 말고 이 목걸이를 콘라드 대공 전하께 보여드리세요. 그러지 않았다간 당신 목이 날아갈 겁니다. 약속하죠.”
오토가 싸늘한 목소리로 경비병을 압박했다.
“크, 크흠.”
경비병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목걸이를 받아들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윗선에 보고를 해보겠소. 대신 헛소리를 지껄인 것이었다면, 우리 공국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하고 혹독한 형벌을 받게 될 테니 그리 아시오.”
“그러죠.”
오토는 경비병의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목걸이가 뭡니까?”
“프리패스라고나 할까? 만능 통행증 같은 거야.”
“끝까지 말해주시지 않을 겁니까?”
“그러면 재미없잖아.”
“…….”
“그나저나 여긴 선선하니 날씨가 좋네. 북쪽이라 그런 건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겨울엔 더 춥겠지? 이오타보다?”
“당연한 말씀을….”
오토는 성문 앞에서 카미유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경비병이 사라진 지 약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끼이이이익!
쿵!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콘라드 대공 전하 납시오!”
기사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쿤타치 가문의 가주 콘라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오토가 콘라드 대공으로 보이는 노년의 신사를 향해 한 쪽 무릎을 꿇고는 입을 열었다.
“외조부님을 뵙습니다.”
그 순간.
‘외조부…?’
카미유는 제 귀를 의심했다.
외조부라면… 오토의 어머니가 사실은 콘라드 대공의 딸이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