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바토리의 불길한 상상은 이내 곧 현실이 되어 펼쳐졌다.
나도 곧 선물을 보내겠다던 와지르 대공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런 빌어먹을.”
바토리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유명인들로부터 수십여 통의 편지를 받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 편지들에는 하나같이 바토리에 대한 협박성 멘트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와지르 대공을 암살하려던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확실하니 앞으로 몸조심하란 내용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주변 세력들은 아예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고, 동계 훈련을 실시하며 무력시위에 나서기까지 했다.
바토리가 제아무리 간첩들과 친 에르제베트 왕국 인사들을 키워 놓았다고 한들, 이런 사건이 터져 버린 이상 주변 세력들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아, 내가 큰 실책을 범했구나.”
바토리는 실질적인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와지르 대공의 암살을 시도했던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급한 마음에 건드려서는 안 될 거물을 건드렸더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생겼다.
어디 그뿐인가?
“저, 전하. 로웨나 대공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로웨나 그 망할 계집이…?”
바토리는 아라드 제국의 황제의 여동생인 로웨나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과거 공식적인 자리에서 살짝 언쟁을 벌인 후 감정이 급격히 나빠져서, 지금은 서로의 이름만 들어도 이를 부득부득 가는 사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편지를 보낸 게 로웨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테르테미안 대공과 파라곤 대공도 편지를….”
“아.”
현 황제의 동생들 전원이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은 황위를 노리고 있다. 만약 반란을 일으킨다면 와지르 그 영감탱이를 자기 진영으로 데려오고 싶겠지. 그래서 나를 압박하는 거구나.’
안 그래도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은 와지르 대공을 자기 진영으로 데려오기 위해 군침을 줄줄 흘리고 있던 상황.
그런 와지르를 건드렸으니, 황제의 동생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어쩌면 그들의 압박이 현 황제보다 더 거셀지도 몰랐다.
현 황제와 와지르 대공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지만, 황제의 동생들은 그렇지 않았으므로.
“전하, 당분간 몸을 낮추시고 이번 사건에 대해 극구 부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보국장이 바토리에게 조언했다.
“만약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움직인다면 제아무리 본국이라 할지라도 큰 타격을 입을 겁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과인도 알고 있느니라.”
바토리는 정보국장의 조언에 따라 몸을 바짝 낮추기로 했다.
와지르 대공의 암살에 실패한 이상 더 나댔다가는 에르제베트 왕국이라는 강대국 하나를 통째로 말아먹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모습에서 몸을 사리겠단 뜻에 불과했다.
“오크들을 움직여라.”
“예?”
“오크들을 움직여 주변 세력들의 국경을 공격하게 하고, 시선을 끌어라. 이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결국, 바토리는 우르크 평원의 오크들을 이용해 이 사건을 덮어 버리기로 했다.
오크들이 인간들의 영토를 침범해오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와지르 대공 암살 미수 사건도 덮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 전하.”
정보국장은 바토리의 말뜻을 이해하고, 즉시 명령을 이행하기로 했다.
에르제베트 왕국이 우르크 평원의 정세를 주무른다는 건 기밀 중의 기밀이라, 들킬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몸을 바짝 낮추라고 조언했던 정보국장이 오크들을 이용하겠다는 바토리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즉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리하라.”
정보국장이 떠난 후.
“오토 드 스쿠데리아….”
홀로 남겨진 바토리의 입에서 오토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천둥벌거숭이인 줄 알았더니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하지만 내 실수는 여기까지일 것이다. 네놈이 이 바토리와 대립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바토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토를 향해 이를 갈았다.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반드시 복수해 주기로 다짐하면서.
* * *
카심은 드워프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데리고 와 주었다.
와이번들은 비행 속도가 매우 빠른데다가, 지구력과 힘이 매우 좋은 생명체.
그런 와이번들이 드워프들을 데리고 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공중 병력의 특성상 이동 시 지형에 구애받지 않으니, 오가는 속도가 따를 수밖에.
그래서 오토는 드워프들을 예상보다 며칠은 더 빨리 만날 수 있었다.
“저, 전하!”
오토가 보란 듯 내놓은 재료템들을 본 에릭슨의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커졌다.
“어찌 이런 귀한 재료들을 구해오셨사옵니까? 허어!”
“역시 가치를 알아보시네요.”
“어찌 모르겠습니까? 귀신목과 매혹목이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나무들 중 하나이지요!”
“헤헤헤.”
“이런 귀한 재료들을 가공할 기회를 주시다니! 망극, 또 망극하옵니다! 전하!”
에릭슨은 너무나도 기쁘고 고마워서, 오토에게 넙죽 엎드려 절까지 했다.
그만큼 귀신목과 매혹목은 매우 희귀한 재료라서,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드워프들도 고대 문헌을 통해 귀신목과 매혹목의 특징과 쓰임새, 그리고 가공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지 직접 본 적은 없을 정도였다.
“아이고, 왜 이래요. 일어나세요.”
오토가 에릭슨을 일으켜 주었다.
“눈치채셨다시피 제가 에릭슨 님께 와 달라고 한 이유는 귀신목과 매혹목의 가공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대장장이들이 있는데, 어중이떠중이들한테 맡길 순 없잖아요.”
“성은이 망극, 또 망극하옵니다!”
“가공 방법은 다 아시죠?”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뭘 만들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오토가 에릭슨에게 자신이 필요한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정말 그거면 되겠습니까?”
“충분합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요청하신 가공이 끝나고 나면, 남는 재료가 엄청 많습니다.”
“그거야.”
오토가 에릭슨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남은 재료는 다 에릭슨 님 몫이죠.”
“……!”
“설마 무보수로 일을 시킬 줄 알았어요?”
“하, 하오나 전하.”
에릭슨은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줄을 몰랐다.
“귀신목과 매혹목의 가공을 맡겨주신 것만으로도 저희 드워프들은 그저 망극할 따름인데, 남은 재료까지 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에이.”
오토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전하….”
“맡긴 일만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에릭슨을 포함한 드워프들이 오토에게 넙죽 엎드려 절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절을 마친 드워프들은 신이 나서 귀신목과 매혹목을 들고 작업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취, 취익?!”
바그람은 그런 오토와 드워프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드워프들이 인간인 오토와 이렇게까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드워프는 이 세계에서 고집불통의 아이콘 같은 종족이었다.
굉장히 자존심이 세고, 고집도 세고, 오만하며, 예민하기로 유명한 종족이 바로 드워프 아니던가?
그런 드워프들과 이렇듯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토의 인품이 훌륭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드워프들이 오토를 왕으로 인정하고, 넙죽 엎드려 절까지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귀신목과 매혹목 같은 희귀하고 진귀한 재료를 준다 할지라도.
“취익.”
바그람이 오토에게 다가가 물었다.
“드워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군. 취익.”
“말했잖아.”
오토가 바그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종족에 대한 차별 같은 거 없다고. 다 같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고, 그렇게 만들 생각이야.”
“취, 취익.”
“아무튼, 푹 쉬고 있어. 드워프들의 작업이 끝나면 바로 천둥산으로 갈 테니까.”
“알겠다, 취익.”
바그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토의 인품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서로 다른 종족들끼리 다 같이 사이좋게 잘 지낸다.
이는 지금까지 그 어떤 군주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었던 이야기였다.
인간들은 대륙의 패권을 차지한 이후 이종족들을 탄압하고, 차별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토는 달랐다.
기꺼이 이종족들과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바그람의 입장에서는 오토에 대한 평가가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귀신목과 매혹목의 수액을 얻은 드워프들은, 즉시 오토의 의뢰에 따라 가공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전하, 작업이 끝났습니다.”
에릭슨이 귀신목과 매혹목의 수액으로 만든 아이템들을 오토에게 보여 주었다.
[야만의 몽둥이]
귀신목을 깎아 만든 곤봉.
어지간한 강철보다 강력한 내구도를 자랑한다.
매우 강력한 기절, 마비 효과가 있다.
형태 : 둔기 (곤봉)
내구도 : 25,000 / 25,000
효과 :
- 적중 시 대상에게 저주 효과
- 적중 시 대상에게 마비 효과
- 저주와 마비 효과가 3회 중첩되면 적을 기절시킴
참고 :
- 수속성 내성 +500%
- 화속성 내성 +300%
- 암속성 내성 +400%
- 비전도체 (감전 효과가 통하지 않음)
귀신목으로 제작한 아이템 중 가장 많은 것은 <야만의 몽둥이>였다.
“다들 하나씩 나눠 줘. 천둥산에 갈 사람들만.”
“예, 전하.”
오토가 카미유에게 <야만의 몽둥이>들을 넘겨주며 명령했다.
“그리고 이건.”
오토가 커다란 도끼 자루를 바라보았다.
[불멸의 도끼 자루]
귀신목으로 만든 도끼 자루.
영원히 썩지 않고,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도끼 자루이다.
형태 : 둔기 (자루)
내구도 : 무한 (∞)
효과 :
- 적중 시 대상에게 저주 효과
- 적중 시 대상에게 마비 효과
- 저주와 마비 효과가 3회 중첩되면 적을 기절시킴
참고 :
- 수속성 내성 +500%
- 화속성 내성 +300%
- 암속성 내성 +400%
- 비전도체 (감전 효과가 통하지 않음)
오토는 <불멸의 도끼 자루>를 바그람에게 건네주었다.
“자, 받아.”
“취익?”
“도끼날은 따로 구하게 될 거야. 우선 가지고 있어.”
“알겠다, 취익.”
그렇게 귀신목으로 만든 아이템의 분배가 끝나고.
[고무고무 망토]
매혹목의 수액으로 만들어낸 망토.
꽤 대단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며, 방수·방풍 효과가 끝내준다.
오토는 매혹목의 수액으로 만든 <고무고무 망토>도 일행들에게 나눠주었다.
물론 오토에게는 아이템들의 상태창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별로 상관없었다.
이미 오토의 머릿속에는 어떤 아이템에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가 다 기록되어 있었기에, 굳이 흐릿한 상태창을 뚫어지라 쳐다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들 준비해.”
아이템 분배를 마친 오토가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지금 바로 천둥산으로 갈 테니까.”
시간은 금.
오토는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천둥산 공략을 위한 준비가 끝난 이상 더는 밍기적거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