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1화
잘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로 돌아온 지안카를로는, 곧장 오토를 찾았다.
“……로웨나를 만나러 갔단 말입니까?”
지안카를로는 콘라드로부터 오토가 이미 로웨나의 영토로 갔단 소식을 전해 듣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설마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엔 해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이 시국에 로웨나를 만나러 갔다?
명백한 의도가 있다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네.”
콘라드가 그런 지안카를로에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형님.”
“우리 오토가 얼마나 똑똑한 녀석인지는 잘 알겠지?”
“그거야…….”
지안카를로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콘라드 앞에서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오토의 지략이 뛰어나다는 것은 지안카를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녀석은 이미 모든 걸 내다보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 로웨나에게 간 것일 테고.”
“허어.”
“황제가 오토를 가만히 내버려두려 하겠는가? 그 피가 어디 가는 게 아닌데?”
현 황가의 피는 무서우리만치 진했다.
아무리 온화하고 아둔하다 평가받는 황제라 할지라도, 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만큼은 선조들에 못지않았다.
게다가 황가의 혈통을 가진 이들에게서는 특별한 능력이 발현되고는 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기도 했다.
“이미 이오타 왕국과 연합군, 그리고 아라드 제국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게야.”
“…….”
“이오타 왕국을 통째로 바치지 않는 한 황제는 오토를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일세. 지금이야 자네의 말 몇 마디를 믿고 인내심을 보이는 것 같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불안감과 의심은 더욱 커질 테지.”
지안카를로는 그런 콘라드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당장 황제가 오토와 연합군을 경계하고 견제하려 들지 않던가?
“어디 오토뿐이겠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자네와 자네의 가문은?”
“아닐 겁니다.”
지안카를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잘츠부르크 가문이 제국에 충성을 바친 게 수백 년입니다. 그간 우리 잘츠부르크 가문은 제국을 위해 북부장벽을…….”
“더는 지킬 필요가 없을 터인데.”
“……!”
“그간 역대 황제들이 잘츠부르크 가문을 충신으로 대우한 것은 이곳 북부 대장벽을 지키기 위해서였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
“자네가 황제라면 어떻겠나? 대장벽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잘츠부르크 가문이 부담스럽겠나, 아니면 여전히 믿음직한 충신이겠나? 중앙귀족들은 또 어떻고?”
콘라드의 물음에 지안카를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현실이 그랬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아라드 제국에 봉사해 온 잘츠부르크 가문의 공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애초에 아라드 제국이 세계 최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다 잘츠부르크 가문 덕분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위협이 된다면 피를 나눈 형제자매마저도 제거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
황제도 그런 권력의 속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만 지난 세대에서 모든 황족들이 죽어버리고, 현 황제도 후계가 없어 유독 형제들인 로웨나와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을 아끼는 것일 뿐.
즉, 지금 황제는 정작 제일 경계해야 할 황족들은 내버려둔 채로 엄한 충신들만 의심하고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생각해 보게.”
콘라드가 지안카를로에게 조언했다.
“잘츠부르크의 검이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형님.”
“우리 오토가 무엇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는지.”
“아아.”
지안카를로는 콘라드의 말에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오토가 북부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연합군을 결성한 이유.
목숨을 걸고 북부제국군과 맞서 싸운 이유.
그것은 결코 권력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권력 때문이라면, 오토는 그렇게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다.
정말 권력을 잡아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고 싶었다면, 북부제국이 대장벽을 넘어 아라드 제국을 초토화시키도록 내버려두는 게 유리했다.
아라드 제국이 쑥대밭이 되는 동안 중간에서 이득을 취할 다른 전략을 짜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오토 그 녀석은 야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일세. 제 몸 편한 걸 제일로 여기는 놈이 뭘 위해서 그렇게 고생을 했을 것 같나.”
“그야…… 평화가 아니겠습니까.”
지안카를로가 대답했다.
“잘 아는군. 녀석이 바라는 건 그게 전부라네. 대륙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는 것 말일세.”
“알지요…….”
“난 말일세.”
콘라드가 멋쩍게 웃었다.
“한때 야망에 미쳐서 내 소중한 딸아이마저 내 손으로 내쳤었네.”
“…….”
“그래서 뭐가 남은 줄 아는가? 없네. 아무것도 없더군. 쿤타치 가문을 대륙 제일의 명가(名家)로 만드는 것? 공국을 더 확장해서 왕국을 만들고, 나아가 제국을 세우는 것? 그게 다 무얼 위한 일인가? 다 내 욕심일 뿐이었네.”
콘라드의 말은 진심이었다.
오토가 나타나 무적황제의 권능을 얻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콘라드는 쿤타치 가문의 부흥을 꿈꿨다.
그러나 오토가 차츰차츰 성장해 가며 대의를 위해 애쓰는 걸 지켜보며, 콘라드의 생각은 달라졌다.
나이 탓에 무뎌진 것도 있겠지만, 오토의 행보에 의해 평생의 가치관마저 뒤바뀌었던 것이다.
“잘 생각해 보게. 진정한 잘츠부르크 가문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이곳 대장벽에서 수백 년 동안 아라드 제국에 봉사했는지 말일세.”
“형님…….”
콘라드의 말은 지안카를로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수백 년 헌신의 역사는 결코 황가를 위한 충성이 아닌, 대륙을 지켜내기 위한 대의였기 때문이다.
* * *
한편, 로웨나는 자신을 찾아온 오토를 보고 크게 놀랐다.
“도, 동생! 어떻게 된 거야???”
로웨나가 보기에, 오토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오토는 백발이 되고 눈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는데다가 얼굴은 혈색이 매우 나빠서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누님.”
오토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하하하…….”
“동생……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그렇게 아파 보이는 거야…….”
로웨나가 당장에라도 통곡할 것만 같이 눈물을 글썽였다.
살육을 벌일 땐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광기를 드러내더니, 정작 오토 앞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여린 여자 같았다.
그런 이중적인 성격이 로웨나가 가진 무서운 점이었다.
“전투 중 부상을 입었어요.”
“괜찮은 거야?”
“저는 괜찮…… 콜록! 콜록콜록!”
오토가 기침을 하며 울컥 피를 토해내었다.
“도, 동생!!!”
로웨나가 황급히 오토를 부축했다.
“뭣들 하느냐! 당장 의사를 불러라! 어서! 치유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도 부르고! 당자아아아앙!”
“예! 대공 전하!”
로웨나의 불호령에 기사들이 황급히 의사와 마법사를 부르러 달려갔다.
한편, 카미유는 그 광경을 보고 내심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사기다.’
카미유는 오토가 조금 전 슬쩍 고개를 돌리며 볼 안쪽 살을 깨무는 걸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오토의 몸 상태가 나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를 토할 정도는 아니기도 했고.
“누님…….”
오토가 로웨나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의사와 마법사는 필요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오토가 힘겹게, 정말이지 고통스럽다는 듯 말했다.
“저는 오래 살지 못해요.”
“뭐어?!”
“저는…… 곧 죽을 운명입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곧 죽다니? 동생이 왜 죽어?”
“북부제국군과의 전투에서 생명력을 다 써 버렸…… 쿨럭! 쿨럭쿨럭!”
“동새애애애애애애애앵!”
“미안해요, 누님.”
오토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함께하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동생이 죽긴 왜 죽어. 절대 그럴 리 없어. 절대로.”
로웨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니 진짜 반쯤 정신이 나가 오토에게 매달렸다.
이제 그녀에게 있어 오토가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
그런데 오토가 곧 죽는다니, 로웨나로서는 정신이 나갈 만했다.
‘그 작전이군.’
카미유는 오토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일명 병약 미소년 작전.
지금 오토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미남으로서 로웨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 * *
오토는 로웨나에게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며, 앞으로 살날이 불과 1~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 안 돼…… 그럴 수 없어…… 난 어떡하라고…… 동생 없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흑흑…… 흑흑흑흑…….”
오토의 거짓말에 깜빡 속아 넘어간 로웨나가 털썩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래도 누님을 만났는걸요.”
“동생…… 흑흑흑…….”
“그래도 제 마지막 소원은 이루고 갈 시간이 있을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마지막 소원……?”
“제 마지막 소원은…….”
오토가 말했다.
“누님을 황위에 앉히는 겁니다.”
“……!”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만…… 그래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누님의 대업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 순간.
‘아아!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아아!’
로웨나는 잠시나마 오토를 의심하고 불안해했던 걸 뼈저리게 반성했다.
혹여 오토에게 버림받고 황위를 빼앗길까 봐 불안해하던 게 엊그제 일이었다.
그런데 시한부라니?
곧 죽을 사람이 뭐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황위를 노리겠는가?
게다가 마지막 소원으로 자신을 황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여생을 보내겠다는 사람인데?
“나, 나는…… 그럴 줄도 모르고…… 그런 줄도 모르고오…… 흑흑…… 흑흑흑…….”
로웨나가 또다시 오열하며 눈물을 쏟았다.
결국, 오토의 시한부 선언으로 로웨나의 의심은 싹 씻겨 내려갔다.
병약 미소년 작전이 아주 성공적으로 먹혀든 것이다.
‘됐어. 곧 죽을 사람한테 버림받을 걱정은 애초에 안 해도 될 테니까.’
오토는 로웨나의 반응을 보고, 그녀가 자신을 절대로 의심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로웨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오토를 신뢰할 게 분명했다.
황제,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황가의 존속을 위해 오토를 제거하려 든다 해도 로웨나만큼은 절대 돌아서지 않으리라.
“남은 시간 동안 누님을 황위에 올려놓고…… 누님의 곁에서 평온하게 잠들고 싶습니다.”
“동생…….”
“그게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누님.”
“아냐.”
로웨나가 세차게 도리질을 쳐댔다.
“내가 어떻게든 동생을 살릴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생을 살릴 방법을 찾을 거야.”
“누님…….”
“우리 꼭 행복하자, 응? 그럴 수 있어. 지금부터 방법을 찾아볼게. 황위에 올라서도 동생을 살릴 방법을 찾을 거야. 걱정하지마. 날 믿어.”
로웨나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으으.’
오토는 그런 로웨나를 보며 속으로 몸서리쳤다.
‘내가 진짜로 죽으면 날 언데드로 만들어서라도 곁에 둘 것 같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로웨나의 말에서 무시무시한 광기가 느껴져서, 정말로 그럴 것만 같았던 것이다.
* * *
그날 밤.
오토는 건강을 핑계로 로웨나와 동침하지 않았다.
애초에 동침한 적도 없었지만.
“이제 어떡하실 작정이십니까?”
“글쎄.”
오토가 창밖 너머 보름달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우선 로웨나의 신뢰는 얻었으니까. 그다음을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지.”
“전하께서도 고민하실 때가 있습니까?”
“있지 왜 없겠어?”
오토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대꾸했다.
“이기는 게 어려운 게 아냐. 희생을 줄이는 게 어려운 거지. 어느 쪽이든 피를 덜 흘리게 하는 거, 그게 너무 어려워.”
“아!”
카미유는 그제야 오토가 고민하는 이유를 깨닫고 감탄했다.
북부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낸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세계대전까지 막으려 부단한,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다니…….
역사상 이렇게까지 이 대륙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오토는 숭고한 영웅의 행보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오토가 카미유를 돌아보았다.
“돌아가서 할아버님을 설득해 봐야겠어.”
“할아버님이라 하심은…….”
“엘리제의 할아버님 말야.”
오토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려거든 잘츠부르크 가문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왕조가 바뀔 테니까.’
오토가 생각하기에, 최소한의 피해로 세계대전을 막으려거든 아라드 제국의 황가를 갈아치워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