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5화
“다, 당신은.”
오토는 자신에게 관심을 드러내며 다가온 성좌가 어마어마하게 강한, 그야말로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위압감은 이곳 성좌의 전당에 자리한 그 어떤 존재보다 거대했다.
당장 악귀처럼 달려들었던 사악한 성좌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나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오토가 생각하기에, 그는 신격을 갖추기 이전에도 자기 세계의 마왕쯤은 손쉽게 두들겨 팼을 것 같았다.
- 이름이 뭐냐.
성좌들의 황제.
과거, 현재, 미래의 황제가 오토에게 물었다.
“저는…….”
오토가 대답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고 합니다.”
- 이게 짐에게까지 약을 팔아?
“예……?”
- 본명을 물었지, 가짜 이름을 물은 게 아닐 텐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지구, 한국인 아닌가?
“……!”
- 짐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놀랍게도, 황제는 오토의 출신 성분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기까지 했다.
이곳 성좌의 전당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신적인 존재답게, 통찰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었다.
- 두 번 묻게 하지 마라, 뺀질아.
황제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싹!
오토는 그런 황제의 미소에 흠칫! 몸서리쳤다.
그것은 위험한 미소였다.
익살스러워 보이지만, 그 뒤에 이어질 황제의 행동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된다. 저자의 앞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오토는 그 사실을 깨닫고, 솔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말했다.
“김…… 도진이라고 합니다.”
- 역시.
황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 영혼과 육체가 살짝 엇나가 있는 걸 보면…… 빙의자겠군. 거의 일치해 있는 상태이긴 하다마는.
“마, 맞습니다.”
- 무슨 일을 겪은 건가.
“그게…….”
오토가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간략히 들려주었다.
- 그랬던 건가.
황제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오토는 그런 황제의 외모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었다.
오토의 능력으로는 그의 정확한 용모파기를 보는 게 불가능했다.
그저 느낌으로서 알 수 있었을 뿐…….
- 그래서 힘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기어들어왔다는 거냐? 겁도 없이?
“방법이…… 없었습니다.”
- 쯧.
황제가 혀를 찼다.
- 약해빠진 놈 같으니. 제 힘으로 마누라 하나 못 지켜서 여기까지 와?
“…….”
-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야 이해한다만. 짐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면 네놈은 영원히 고통받았을 것이다. 전 우주를 떠돌며 잡스러운 것들의 하수인 노릇이나 해야 했겠지.
“저는 상관없습니다.”
오토가 진심을 담아 황제에게 호소했다.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해도 좋습니다. 다만, 제 아내 될 사람을 살리고 세계를 지켜낼 힘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 큭.
황제가 웃었다.
- 절실하다 이건가? 모든 걸 바칠 만큼?
“예, 절실합니다.”
- 좋다.
황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네놈에게 짐의 힘을 빌려주마.
“정말이십니까?”
- 단, 조건이 있다.
“어떤 대가라도…… 달게 치르겠습니다.”
오토가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그래, 최소한 사악한 성좌들과 계약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
- 큭…… 어떤 대가라도 달게 치르겠다라…….
“예. 제 영혼을 바치라 하시면…….”
- 짐이 네놈 같은 사기꾼 녀석의 영혼을 가져서 어디다 쓰겠냐.
“예……?”
- 대가는…… 네놈이 황위에 오르는 것으로 하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네놈이 황위에 올라 최소 20년 동안 제국을 경영하는 게 짐이 힘을 빌려주는 조건이다.
기이한 요구사항이었다.
보통은 영혼을 가져간다거나, 혹은 어떠한 큰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인데.
오토는 황제가 어째서 이런 대가를 요구하는지, 좀처럼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곳 성좌의 전당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가장 격이 높은 존재가 힘을 빌려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좋다.
황제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단 5분이다. 5분 동안 네놈에게 짐의 힘을 빌려주겠다.
“하지만 5분은 너무 적…….”
- 5분이면 충분할 텐데?
“……!”
- 네놈 주제에 짐의 힘을 5분 이상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마저도 짐의 힘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
황제는 너무나도 큰 격을 가진 존재.
그의 힘을 담아낸다는 건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일일지도 몰랐다.
- 짐의 손을 잡아라, 절박한 자여.
황제가 오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짐이, 이 ■■■가 네놈에게 힘을 빌려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말했지만, 오토는 듣지 못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오토로서는 성좌의 전당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자의 이름을 알 자격이 없었으므로…….
오토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성좌들의 전당과의 접속이 종료되었다.
* * *
눈을 떴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엘리제와 마신 라미레스 간에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엘리제와 라미레스.
둘은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은 공간을 지배하려는 자들의 싸움이었다.
엘리제의 의지와 라미레스의 의지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또한 밀어내며 치열한 다툼을 이어갔다.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다.
누구 하나 당장 죽어 나가떨어진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
우웅!
오토는 전신이 어마어마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힘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이게…… 황제의 힘인가.”
황제는 자신의 힘의 극히 일부분만을 단 5분 동안만 빌려주겠다고 했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황제의 힘은 차원이 다른 그 무엇이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적어도 황제의 힘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라미레스와 같은 자들이 100명이 덤벼들어도 거뜬히 때려눕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자.’
오토가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파직, 파지지지지지지지직!
그런 오토의 몸 주변으로 강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주변의 시공간을 일그러뜨렸다.
“……!”
“……!”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던 엘리제와 라미레스는, 문득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고 싸움을 멈췄다.
저벅저벅!
오토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여태까지의 오토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 엄청난 존재감과 압도적인 위압감은 엘리제와 라미레스조차 움츠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엘리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던 그때.
“지금부터 나한테 맡겨.”
오토가 엘리제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라미레스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오싹!
라미레스는 오토의 시선에 흠칫 놀랐다.
그것은 라미레스의 의지가 아니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의 오토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오죽했으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을 정도였다.
“내 아내 될 사람을 건드렸으면…… 그 대가도 치러야겠지.”
오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네, 네놈은 정체가…….”
“시작하지.”
그와 동시에 오토가 라미레스를 향해 쇄도했다.
우웅!
라미레스는 황급히 자신의 공간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그래, 실컷 반항해 봐.”
“……!”
“그래 봤자 벌레 새끼의 몸부림에 불과할 테니.”
오토가 라미레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 어느 틈에?’
라미레스는 오토의 목소리에 경악했다.
언제, 어떻게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일 수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닥쳐라―!”
라미레스가 기형검을 휘둘렀다.
촤라라락!
기형검이 수백 갈래로 갈라져 오토를 향해 날아들던 그 순간.
촤아아아아아!
무형검이 기형검의 쇠사슬들을 가르고, 라미레스의 오른팔을 잘라내었다.
“……!”
놀란 라미레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촤아아아아!
무형검이 재차 라미레스의 왼팔을 잘라내었다.
파스스스스스스스!
땅에 떨어진 라미레스의 두 팔이 한 줌 재가 되어 흩날렸다.
무형검은 영혼마저도 베어 버리는 검.
플라즈마 에너지로 이루어진 정신기생체라 하더라도, 무형검의 칼날 앞에서 무사할 순 없었다.
“이, 이 무슨……!”
라미레스가 황급히 팔의 재생을 꾀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무형검에 당한 상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콰직!
“컥!”
오토가 라미레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파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즈!
라미레스의 플라즈마 에너지가 오토의 손을 침범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파직,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직!
오토의 힘.
성좌들의 전당에서도 가장 격이 높고 강력한 황제의 힘은, 그런 라미레스의 플라즈마 에너지를 너무나도 손쉽게 밀어내었던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오토의 주먹에 파멸의 권능이 실렸다.
‘위, 위험!’
라미레스는 저 주먹에 맞으면 무슨 결과가 벌어질지 알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오토의 주먹이 라미레스의 가슴 정중앙을 꿰뚫으며, 대폭발이 일어나 주변을 집어삼켰다.
* * *
폭발은 엄청났다.
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얼마나 강한 폭발이 일어났는지,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대기가 뜨겁게 달아올랐을 정도였다.
“크윽!”
오죽했으면 엘리제조차 수백여 미터나 날아가 땅에 처박혔을까.
“……!”
“……!”
“……!”
모두의 시선이 싸움의 현장으로 향했다.
“저, 전하!”
카미유는 너무나도 놀라서, 황급히 싸움의 현장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폭발로 인해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거짓말처럼 착! 하고 가라앉았다.
“……이건.”
카미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커, 커헉!”
저 멀리 마신 라미레스가 오토의 주먹에 의해 가슴 정중앙이 꿰뚫린 채 울컥울컥 플라즈마 에너지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힘을…… 믿을 수가…… 없…… 커헉!”
라미레스가 경악이 담긴 눈빛으로 오토를 바라보았다.
오토는 말없이 라미레스의 몸통에 박혔던 주먹을 빼내고,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더 괴롭혀 주고 싶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
“이만 끝내자.”
오토가 라미레스의 머리통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아, 안 돼……!”
라미레스는 절망했다.
지금은 그릇에 빙의된 상태가 아닌, 본체를 드러내서 싸우던 상황.
여기서 머리통이 박살난다면, 아무리 정신기생체라 한들 소멸을 피할 수 없을 터.
덜덜덜!
라미레스는 공포에 떨었다.
그는 긴 시간을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종족들을 멸망시켜온 시타델 종족의 군주.
그의 일생에서 죽음의 공포를 겪어본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였다.
라미레스는 지금 일생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소멸.
존재 자체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최후였다.
게다가 다른 생명체들에게 빙의해서 살아가는 시타델 종족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그들은 육체적 죽음에서 자유로운 존재들이었기에, 본체의 죽음을 극히 두려워하는 모순된 이들이었다.
그런 시타델 종족의 군주인 라미레스에게 있어서, 소멸의 공포란 가히 어마어마했다.
“제, 제발…… 자비를……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라미레스가 비명을 지르며 오토에게 애원했다.
“제발 죽음만은…… 뭐든 할 테니…… 제발 자비를…… 제바알…….”
“소용없으니.”
오토가 냉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만 뒈져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미레스의 머리통이 퍽! 하고 터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대폭발이 일어나며,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