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8화
“신성 아즈란 성국을 공격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왜…….”
따악!
오토가 알렉스 국왕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악!”
알렉스 국왕이 머리통을 움켜쥐며 나가떨어졌다.
그런 알렉스 국왕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아무리 후유증으로 인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오토는 이미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강자.
그런 오토의 꿀밤은 오우거가 휘두르는 주먹질만큼이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담아내고 있었다.
단순한 꿀밤이 아니라, 거의 휘두르는 철퇴나 다름없는 위력이었던 것이다.
“니가 그건 알아서 뭐하게?”
“죄, 죄송…… 커헉!”
“쓸데없는 질문 같은 거 하지 말고, 시키는 거나 빠릿빠릿하게 잘하란 말야.”
오토가 쓰러진 알렉스 국왕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런 오토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인이나 다름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강대국의 국왕이 약소국의 왕을 상대로 폭거를 휘두르며 갑질을 일삼는다고 오해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왜?
알렉스 국왕은 희대의 전범이었으니까.
아무리 국익을 위해서라 한들, 그는 아가르타들과 손잡고 주변국들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희대의 학살자였다.
차라리 군부대만 공격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테지만, 알렉스 국왕은 집요하게 민간인들의 도시와 마을을 노렸다.
주변국들의 군대를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 위해 일부러 민간인들을 공격해서 영토 확장을 이뤄온 인물이니만큼, 당해도 싼 악인이었던 것이다.
“주제 파악 잘해라.”
“죄, 죄송합니다.”
“넌 그냥 비천한 노예일 뿐이야. 내가 살라고 하면 살고, 죽으라고 하면 죽으면 돼.”
“…….”
“쓸데없는 질문 한 번만 더하면, 그땐 반으로 접어 버릴 줄 알아. 알겠어?”
“……알겠습니다.”
오토는 알렉스 국왕에게 주제 파악을 확실히 시켜 주고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여기 이곳으로 아가르타들을 보내. 그 뒤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닥치고 있어.”
“예, 전하.”
“꺼져.”
“알겠습니다.”
알렉스 국왕이 물러난 뒤.
“아즈란 성국으로 아가르타들을 유인하시려는 겁니까?”
“응.”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차피 살려둬 봤자 골치만 아픈 괴물들이야. 이번 기회에 싹 쓸어버려야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미리 알려 주면 돼.”
지저세계의 괴물들인 아가르타가 무서운 이유는, 그 의외성에 있었다.
아가르타들은 대륙 지하 깊숙한 곳에 미로처럼 건설되어 있는 땅굴을 통해 이동하는지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복병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추적도 어려웠다.
꼬리를 잡는다 한들 땅굴을 통해 사라져버리니, 인간들로서는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마저도 땅굴 안으로 들어갔다간 아가르타에게 잡아먹힐 테니, 그저 당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기도 했고.
“미리 함정을 파놓으면 돼. 함정을 파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아?”
“아가르타들을 유인해 놓고, 폭탄을 터뜨릴 거야. 그럼 다 뒈지겠지? 영원히 땅속에서 잠드는 거야.”
“……맙소사.”
카미유는 오토의 계획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아가르타들이 이용하는 땅굴 속에 마정석으로 만든 폭탄 설치하고, 그곳으로 유인한다?
정말이지 잔인하고 악랄한 계략이 아닐 수 없었다.
당하는 아가르타들 입장에서는 뭔가를 해 보지도 못한 채 폭사할 게 분명했다.
“그럼 그사이에…….”
“우린 아가르타의 본진으로 들어가야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성물을 얻으려면 아가르타의 본진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물론 위험하겠지만…….
“준비되면 바로 출발할 테니까, 그때까진 푹 쉬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오토는 아가르타들을 유인할 계략을 실행시키는 한편, 지저세계로 향할 준비에 나섰다.
* * *
오토의 명령을 받은 알렉스 국왕은 왕궁 지하에 자리한 거대한 구덩이로 향했다.
이른바 <지혜의 샘>라 불리는 이 구덩이는 엄청나게 넓을 뿐 아니라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이라, 그 주변에는 신비로운 마력이 흘렀다.
예로부터 마칸 왕국의 국왕들은 이곳 지혜의 샘에서 알 수 없는 존재들에 의해 고대의 지식을 전수받으며 힘을 키워왔다.
지혜의 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지금은 잊힌 고대의 검술과 마법을 가르쳐주곤 했던 것.
사실 지식을 전달해 주던 목소리는 이제는 지저세계의 괴물이 된 고대인 아가르타의 것이었다.
아가르타들은 오랜 세월 마칸 왕국의 국왕들에게 지식을 전수해주며 신뢰를 쌓았고, 결국 지혜의 샘 밑으로 내려오도록 유도했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지혜의 샘 밑으로 내려갔던 인물이 알렉스 국왕이었다.
알렉스 국왕은 지혜의 샘 밑에서 아가르타와 조우했고,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아가르타들은 성물의 저주를 받아 계약이 없인 땅 위로 나올 수가 없는 신세.
즉, 알렉스 국왕만이 아가르타들로 하여금 지저세계를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계약자여. 모습을 드러내라.”
지혜의 샘 밑으로 내려간 알렉스 국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가르타를 불렀다.
슥, 스으윽.
그러자 어둠 속에서 마치 뱀과 같은 육체를 지닌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싹!
램프 불빛에 비친 아가르타의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몸길이가 10미터에 달하는 그 생명체는, 뱀이 아닌 지렁이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 와중에 인간의 얼굴과 작은 팔이 달려 있었고, 퇴화된 눈은 허옇게 뒤집어져 있었다.
고대인이 저주에 의해 지렁이와 융합하면서,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의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우리를 불렀는가, 계약자여.
아가르타의 전령이 알렉스 국왕의 부름에 응답했다.
- 이번에는 무슨 일로 우리를 불렀는가.
“부탁이 있다.”
알렉스 국왕은 오토의 명령대로 아가르타에게 신성 아즈란 성국을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 알겠다. 왕께 그대의 요청을 전달하겠다.
아가르타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끔찍하군.’
알렉스 국왕이 흠칫 몸서리쳤다.
아가르타들은 언제 봐도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존재들이었다.
전령 역할을 하는 저 지렁이 형태의 아가르타뿐 아니라, 다른 아가르타들 역시 매우 끔찍한 존재들이었다.
비단 지렁이뿐 아니라 각종 생명체와 융합해 변이해 버린 그들의 모습이란 절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 * *
오토는 미카엘 추기경에게 서신을 보내 아가르타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며, 그들을 소탕할 방법을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애초에 오토가 미치지 않고서야 혈맹인 아즈란 성국을 공격하라 했을 리 없을 터.
이제 수백여 마리의 아가르타들은 아즈란 성국을 공격했다가 몰살당하는 일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토는 카미유가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이곳저곳에 보낼 서신을 작성하던 중 알렉스 국왕의 알현 요청을 받았다.
“아가르타의 군주에게 전하의 명을 전달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오토는 알렉스 국왕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아가르타들이 아즈란 성국을 공격하는 동안 텅텅 비어 버린 그들의 수도 <샴발라>로 가 군주를 처치하고 성물을 획득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네 할 일은 끝났으니까, 앞으로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아.”
“명심하겠…….”
그 순간.
‘음?’
알렉스 국왕은 순간 눈앞에 있는 오토의 형상이 마치 사라질 것처럼 반투명하게 변했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걸 보고 순간 당황했다.
사람의 육체가 유령처럼 희뿌옇게 희미해졌다가 선명해지는 광경이란 정말이지 기이해서, 제 눈을 끔뻑끔뻑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뭔데.”
오토가 알렉스 국왕이 얼빠진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렉스 국왕은 오토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쓸데없는 질문 한 번만 더하면, 그땐 반으로 접어버릴 줄 알아. 알겠어?
괜히 말을 꺼냈다가 한 번 더 쥐어박히기라도 한다면 두개골이 함몰되어 죽을지도 모른단 두려움이 앞섰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쥐어박힌 것 때문에 뇌진탕 증세가 있는지 아직도 코피가 줄줄 흐르고 어지러운데, 더 얻어맞기는 싫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여러 개의 분신들을 만들어내 북부제국군을 쳐부쉈다더니. 어쩌면 오토 드 스쿠데리아 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알렉스 국왕도 들려오는 소문을 주워들은 게 있어서, 지금 눈앞에 있는 오토가 본체인지 분신인지 헷갈렸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그걸 또 물어봤다간 얻어맞을지도 모르니, 입을 꽉 닫고 있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 *
비슷한 시각.
오토와 카미유를 대신해 연합군 총사령관직을 맡고 있던 카심은, 한 통의 서신과 고풍스러운 군화 한 켤레를 전해 받았다.
“음!”
카심은 오토가 보낸 서신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신 안에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빼곡하게, 상세히 적혀 있었다.
또한,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한 근거도 확실했다.
“과연 전하시다…….”
카심은 서신을 내려놓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토에 대한 카심의 존경은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물론 카심은 처음부터 오토를 깊이 존경하고, 의지하고, 우러러보았다.
그만큼 오토가 보여 준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토의 능력은 끝이 없는 듯했다.
이쯤 되면 그러려니 할 만한데, 잊을 만하면 이렇듯 사람을 놀라게 만들곤 했던 것이다.
‘전하의 지혜란 어디까지인지…….’
카심은 깊이 감탄하면서, 즉시 오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카심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오타 왕국의 마검사들과 기사들을 이끌고 잘츠부르크 가문으로 쳐들어가는 거였다.
우르르르르르르르!
카심이 지휘하는 수백여 명의 마검사들과 기사들은, 즉시 잘츠부르크 가문으로 가 성문부터 냅다 때려 부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총사령관 각하! 지금 제정신이신 겁니까?”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당황했다.
뜬금없이 총사령관인 카심이 나타나 성문을 때려 부쉈으니, 당황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카심은 멈추지 않았다.
“비켜라!”
“귁! 귁귁귁!”
카심은 펭이와 함께 잘츠부르크 가문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러던 중.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카심 일행은 길을 지나던 엘리제와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진격을 멈춰야만 했다.
서슬 퍼런 기세로 버티고 선 엘리제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카심과 수백여 명의 기사들이 동시에 덤벼든다고 한들 엘리제를 제압하는 건 단언컨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몰살당하면 몰살당했지.
“감히 잘츠부르크 가문 한복판에서 이게 무슨 소란인가? 카심 경?”
“그, 그것이…….”
카심은 오금이 저려서 말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분노한 엘리제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여러 기연을 거치며 강해진 카심일지언정, 엘리제의 그 무서운 추궁 앞에서는 그저 고양이 앞에 쥐 신세에 불과했다.
“저, 전하의 명령입니다.”
카심이 애써, 억지로 쥐어짜 내듯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흠.”
엘리제가 표정을 풀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던 건가? 알겠다. 하던 일 계속하도록.”
카심은 엘리제가 너무나도 쉽게 길을 열어 주자 순간 황당해서 어버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는 카심과 같은 강자조차 바지에 오줌을 지리게 할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다가, 오토의 명령이란 한마디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기는 엘리제의 태세전환에 그만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으어어어어어어…….”
카심은 긴장이 탁! 하고 풀려서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다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카심이 향한 곳은 잘츠부르크 가문의 가주이자 북부대공 지안카를로의 어전(御前)이었다.
“……음.”
북부대공 지안카를로 역시 난데없는 상황에 황당해했다.
그러나 딱히 위기의식을 느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카심과 이오타 왕국의 기사들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잘츠부르크 가문에서 이렇듯 날뛰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였기 때문이다.
“카심이라 했던가? 손주사위의 신하가 어인 일로 이 늙은이를 찾았나.”
“예, 대공 전하.”
카심이 극진한 예를 올리며 지안카를로의 물음에 답했다.
“현 시간부로 대공 전하께서는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셨습니다.”
“뭐라?”
“이에 따라 잘츠부르크 가문의 모든 이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연합군의 통제에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흐으.”
지안카를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미소는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크핫핫핫핫핫핫핫핫―!!!”
지안카를로의 입에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