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 부, 분하다. 크윽.
결국, 귀신나무 왕은 오토 일행의 무자비한 도끼질에 쓰러지고 말았다.
쿠웅!
육중한 귀신나무 왕의 몸뚱이가 허물어지고.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에 걸맞게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물론 상태창이 흐릿해서 정확히 몇 레벨이 올랐는지, 지금 몇 레벨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카미유는 늘 그렇듯 오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마검사들 역시 오토에게 예를 취했다.
“취이이이이익!”
바그람과 오크 전사들도 도끼를 하늘 높이 치켜 올리며 포효했다.
“역시 잔머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 돌아가는구나, 뺀질아.”
카이로스가 오토를 칭찬했다.
“눈치 빠른 놈. 귀신들린 나무의 약점을 아주 훌륭하게 파악하다니.”
“뭘 이런 걸 가지고.”
오토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아직 쉴 때 아니니까. 다들 움직여. 나무 팰 시간이야.”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죽은 귀신나무 왕을 도끼로 패서 쪼개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이 나무를 쪼개서 몽둥이를 제작할 거야. 신경 써서 패. 너무 얇게 패면 안 돼.”
귀신나무 왕의 몸… 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귀신목(鬼神木)은 매우 진귀하고, 유용한 재료템.
기괴한 숲의 지배자인 귀신나무 왕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몬스터였다.
[알림: <귀신목 나뭇잎>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귀신목 통나무>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귀신목 나뭇가지>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귀신목 뿌리>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물론 상태창이 흐릿해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오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귀신나무 왕을 해체해 통나무, 나뭇가지, 나뭇잎, 그리고 뿌리를 얻었단 거였다.
“이걸 다 어디에 쓰실 겁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귀신 들린 나무라 뭔가 쓰임새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있지.”
오토가 대답했다.
“보여 줘?”
“예?”
“자, 봐.”
오토가 귀신목으로 카미유의 팔을 툭, 하고 건드렸다.
움찔!
그러자 카미유가 몸을 흠칫 떨었다.
“이, 이게 뭡니까?”
카미유가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저릿저릿!
귀신목에 살짝 툭, 하고 맞은 팔뚝이 마치 쥐가 난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왜 이러는 겁니까?”
카미유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주, 마비.”
오토가 대답했다.
“귀신목에 그런 속성이 있거든.”
“그런 거였습니까?”
“또 몇 가지 더 있긴 해.”
“……?”
“나뭇잎, 뿌리, 껍질은 최상급 포션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기도 하고. 룰루랄라♬.”
오토는 신이 나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귀신목 재료들을 수집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이제 복귀합니까?”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수확할 게 남았어.”
“뭡니까?”
“앞쪽으로 더 가면 귀신들린 나무들이 더 있어.”
“설마….”
카미유는 귀신나무 왕 같이 강력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더 있는 줄 알고 놀랐다.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귀신들린 나무들은 아니고.”
“예…?”
“직접 보면 알아.”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토가 도착한 곳에는 밑동이 마치 엉덩이처럼 커다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 아잉~♡
- 오빠아아아앙~~~~
- 언니♡
- 자기이이이~ 이리 와아아앙~
- 앗흥~~~♡♡
반짝반짝 핑크색으로 빛나는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오토 일행을 향해 추파를 던졌다.
“…….”
“…….”
“…….”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귀신이 들리긴 들렸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뭐, 뭡니까.”
카미유가 역겹다는 듯한 표정으로 오토에게 물었다.
“뭐긴 뭐야. 귀신 들린 나무들이지.”
“변태 귀신이라도 들린 겁니까?”
카미유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핑크색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진짜 변태 같았기 때문이었다.
귀신들인 나무들 주제에 몸을 배배 꼬면서 애교와 교태를 부리고, 느끼하고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추파를 던지는 모습이란 정말이지…….
“취익~♡”
그 와중에 바그람의 부하들 중 하나가 눈에서 하트를 뿅뿅 뿜어내며 귀신들린 나무들을 향해 다가갔다.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문제는 그게 한 명이 아니었다는 것.
“세, 섹시해.”
“하앍!”
“취이이익!”
몇몇 오크들과 마검사들도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귀신들린 나무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휴.”
오토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혹에 걸려도 유분수지, 저런 변태 같은 나무들한테 유혹당하는 게 말이 되냐고.”
저 나무들의 이름은 <뒤틀린 황천의 매혹의 엉덩이 나무>라고 했다.
줄여서 매혹목(魅惑木).
주변을 지나는 생명체들을 유혹하고 현혹시켜서, 그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주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었다.
매혹목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외형과는 별개로, 아주 강력한 매혹 마법을 구사했다.
그래서 레벨이 낮거나, 혹은 마법저항력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허무하게 유혹당할 수가 있었다.
몇몇 오크들과 마검사들처럼 말이다.
“어떻게 합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물었다.
“놔! 놓으라고! 지금 저 아름다운 나무와 내 사랑을 방해하는 거야?”
“취이이익! 나 저 나무와 교미할 거다! 취이이익!”
매혹에 걸린 마검사들과 오크들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온갖 몸부림을 치면서 매혹목을 향해 다가가려 애썼다.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동료들 간에 칼부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오토가 허리춤에 매달린 쇠막대기를 슥 하고 꺼내 들었다.
“이렇게 해야지.”
퍼억!
오토가 부지깽이로 근처에 있던 마검사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
마검사가 정신이 번쩍 든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그대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퍽! 퍼억!
오토는 각성의 부지깽이로 매혹목에 유혹당한 이들의 머리통을 일일이 내리쳐, 그들을 기절시켰다.
약 30초 후.
“취, 취익!?”
“크윽!”
유혹당했던 이들이 깨어나 얼굴을 붉혔다.
그들의 머리에는 하나같이 커다란 혹이 나 있었지만, 그건 정말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다.
저 변태 같은 나무들에게 유혹 당해서 피를 쪽쪽 빨리다가 말라 죽느니, 차라리 조금 창피하고 혹 하나 달고 있는 게 나을 테니까.
“성능 좋고.”
오토는 각성의 부지깽이의 확실한 성능에 만족하며, 귀신목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조악한 야만의 몽둥이]
귀신목을 대충 깎아 만든 몽둥이.
아직 제대로 가공하지 않아 제 성능을 내지는 못한다.
오토가 꺼낸 귀신목 몽둥이는 게임 영지 전쟁에서도 존재하는 아이템으로서, 매혹목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했다.
“다들 내가 하는 거 보고 따라해.”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매혹목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 오빠아앙~ 아이이잉~♡
매혹목들이 유혹했지만, 오토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토의 경우 레벨도 높고 마법저항력도 매우 높아서, 매혹목들의 유혹에 조금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슥, 스윽.
오토가 다가가자 매혹목들이 가지를 뻗어 흡혈을 시도했다.
“…느려 터졌네. 어휴.”
오토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흡혈가지들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매혹목들이 뻗는 가지들의 속도가 정말이지 너무 느려서,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무슨 나무늘보도 아니고.”
물론 매혹목에게 유혹을 당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매혹목에게 유혹을 당하면 나무에 착 달라붙어서 몸을 쉴 새 없이 비비게 되는데, 그런 상황까지 가면 흡혈가지들이 느린 건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흡혈가지들이 다가오는 것도 모를 테고, 몸을 푹 찔러서 피를 쪽쪽 빠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귀찮아라.”
오토는 왼손으로 검을 뽑아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흡혈가지들을 대충 잘라내서 치워 버리고는, 오른손으로 조악한 야만의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엉덩이처럼 생긴 매혹목의 밑동을 힘껏 후려쳤다.
그 결과.
- 또호옹~♡ 따흑~~~♡
매혹목이 이상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핑크색 수액을 뿜어내었다.
콸콸콸!
흘러나온 수액이 오토가 미리 대놓았던 수액채취용 말통에 담겼다.
[매혹목 수액]
끈적끈적한 핑크색 수액.
엉덩이처럼 생긴 매혹목의 밑동을 때리면 채취할 수 있다.
매우 귀중한 수액이므로, 그 가치는 대단히 크다.
“…….”
“…….”
“…….”
동료들은 오토가 매혹목 수액을 채취하는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작업에 동참했다.
퍽!
퍼억!
이윽고 숲에 매혹목들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 따흐악~♡
- 뿌아아아아아앙~~~♡
- 아흐으응~♡
매혹목 수액이 쏟아지는 소리도 울려 퍼졌다.
콸콸콸!!!
누가 들으면 단단히 오해할 수도 있었지만, 오토 일행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거 알아?”
오토가 수액을 채취하다 말고 카미유에게 말을 걸었다.
“예?”
“이 나무들….”
“……?”
“다 수컷이야.”
“…X발.”
카미유는 그냥 더 이상 듣지 않기로 했다.
이 변태 같고 기괴한 나무들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매혹목의 수액까지 채취한 오토 일행은 미련 없이 기괴한 숲을 떠나 다시 천둥발굽 부족의 근거지로 향했다.
오토는 즉시 천둥산으로 향하지 않았다.
천둥산으로 가기 전에 기괴한 숲에서 채취한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 아이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심 경.”
“예, 전하.”
“지금 본국으로 날아가서 드워프 몇 분만 모셔 와 줄 수 있겠어요?”
재료템들을 가공하려면 숙련된 대장장이가 필요한 법.
이오타 왕국에는 최고의 대장장이들인 드워프들이 수두룩했기에, 굳이 다른 대장장이를 찾아가 의뢰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오타 왕국에서 데려오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예, 전하. 신속하게 드워프들을 데려오겠습니다.”
“귁! 귁귁귁!”
오토의 명령을 받은 카심은 즉시 드워프들을 데리러 이오타 왕국을 떠났다.
한편, 에르제베트 왕국에서는…….
“실패… 하였다 했느냐.”
바토리는 와지르 대공 암살에 실패했단 보고를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와지르 대공 같은 거물을 암살할 때는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했고, 또한 완벽해야 했다.
그런데 실패를 했다?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저, 전하. 와지르 대공이 전하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
바토리는 와지르 대공이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편지에는 그간 잘 지냈느냐, 요즘 좀 급한 것 같은데 괜찮냐, 보내준 선물은 잘 받았다, 나도 곧 선물을 보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건 와지르 대공이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의 배후가 바토리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앞으로 확실하게 보복하겠단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와지르 대공은 정치가·외교관·행정가로서 전 대륙에 걸쳐 존경받는 인물.
그런 거물을 암살하려다 실패했으니, 와지르 대공과 친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어떤 식으로는 에르제베트 왕국에 이런저런 압력을 가해 올 게 분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