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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당초 오토가 예상했던 대로, 대륙의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 때문이었다.

황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가 연합군을 해체하고 트리톤들을 바치겠다고 밀서를 보낸 시점에서, 황제는 느긋해졌다.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므로,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은 달랐다.

그들은 평소 반란을 일으킬 것에 대비해 친분을 쌓아 두었던 주변국들의 군주들을 만나 관계를 돈독히 다지고,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오토가 황위에 올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날에 대비해서 미리 동맹을 맺어 두려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대전의 불씨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을 중심으로 성물을 가진 여러 군주들이 똘똘 뭉침으로서 대륙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빨리 빨리 움직여!”

“예!”

연합군, 정확히는 이오타 왕국은 아라드 제국에 보낼 트리톤들을 개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트리톤들을 아라드 제국에 보내기 전에 개조하는 과정을 거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은 황제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크핫핫핫핫!”

황제는 트리톤들의 개조가 한창이라는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했다.

“과연 오토 드 스쿠데리아로다! 껄껄껄!”

약속대로 트리톤을 바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정황이 보이자 황제는 더욱 안심했다.

트리톤의 도색이 바뀌고, 아라드 제국의 문장이 새겨지기 시작하자 일이 약속대로 진행되는 듯해 마음이 놓인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폐하, 이오타 왕국에서 트리톤들을 은밀하게 보내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인가?”

“보안이 중요한 일이기에 밤을 이용해 이동할 예정이라 전해 왔사옵니다.”

“좋구나.”

황제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라 전하라. 그 누구도 트리톤들이 본국의 수도로 들어오는 걸 알아서는 안 된다. 알겠는가.”

“예, 폐하.”

“그 밖에 특이사항이 있는가?”

“트리톤 조종은 숙련된 마검사들이 할 수 있사온데, 이오타 왕국에서 마검사 100명도 함께 보냈사옵니다. 한동안 본국의 기사들에게 마법과 검술을 가르쳐 트리톤 조종사 양성을 도울 것이라고 하옵니다.”

“오오오!”

황제는 오토의 배려에 더욱 크게 기뻐했다.

트리톤을 바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귀한 마검사들을 무려 100명이나 교관으로 보내준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순 없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충신 중의 충신이로다!”

오토의 배려에 감동한 황제는, 비로소 모든 의심을 내려놓았다.

트리톤을 보내오기 시작한 이상 이제 황제는 더 이상 연합군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트리톤을 보낸 이후에는 연합군마저 해체할 것이라 약속 또한 이행될 것이었기에, 그저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그날 밤.

“드르렁…… 쿠울…… 드르러엉…… 쿠우우울……!!!”

곤히 잠든 황제는 여느 때처럼 코를 골아 대었다.

* * *

‘지긋지긋하군.’

늘 그렇듯 황제의 곁을 지키던 핫산은 귀를 막고픈 심정이었다.

오토의 명령에 따라 황제를 호위한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 가는 중이었지만, 저놈의 코골이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황제는 평소 기름진 음식을 즐기고 살이 찐 덕분에 코를 심하게 골았는데, 얼마나 심했는지 맨정신에는 듣기 힘든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황제의 침실을 지키는 기사들마저 매일 밤 귀마개를 착용했을 정도로.

‘이것도 다 수련이다.’

하지만 핫산은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고, 늘 황제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그를 호위했다.

암살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역시나 인내심.

황제의 그 무시무시한 코골이는 인내심을 기르기에 매우 좋은 수련 방법이 될 수도 있었다.

애초에 황제 호위 임무를 맡은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고.

그렇게 오늘도 황제의 무시무시한 코골이를 들이며 인내심을 시험하던 핫산은, 문득 들려오던 코 고는 소리가 멎었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핫산이 슬쩍 은신한 장소에서 나와 황제를 살폈다.

황제는 괴로운지 온몸을 비틀어대며 소리 없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 황제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걸 보면, 딱 봐도 수면 무호흡증으로 인해 돌연사하기 직전이 분명했다.

‘이런 빌어먹을!’

핫산은 황급히 황제의 목 뒷덜미를 들어 기도를 확보하고, 심장을 압박했다.

“……푸우우우우우!”

그런 핫산의 노력 덕분에, 황제는 다시 호흡을 되찾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죽을 뻔했는지도 모른 채…….

“헉, 허억.”

핫산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황제가 죽을 뻔했기에, 심장이 다 철렁거렸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의 죽음은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황제가 갑작스레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대륙의 정세는 급변할 게 분명했다.

황제의 죽음이 알려지는 순간 아라드 제국은 그 즉시 분열될 테고, 그럼 오토의 계획이 틀어지는 터.

황제는 죽더라도 딱 알맞은 타이밍에 죽어야만 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전하께서 괜히 황제의 호위를 명하셨던 게 아니구나.’

한편으로는 등골이 서늘했다.

핫산은 이 임무를 맡기 전 오토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핫산, 황제의 곁에서 그를 호위해.’

‘호위를 합니까? 죽이는 게 아니라?’

‘황제란 죽는 것도 시기를 잘 맞춰서 죽어야 되는 존재야. 그가 돌연사하면 곤란하니까, 곁에서 지켜 줘.’

‘알겠습니다.’

‘특히 밤에 잘 지켜봐. 낮이야 황제가 쓰러지면 주변에서 알아서 챙길 테지만, 밤엔 다르니까.’

‘예, 전하.’

이제야 오토가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전하께선 다 알고 계셨다는 건가? 황제가 돌연사할 수도 있다는 걸?’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밖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핫산에게 황제 호위 임무를 맡기며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었다.

‘과연 대천사 지브라일의 화신이시다.’

그도 그럴 것이, 오토는 칼리프 왕국 주변에는 대천사 지브라일의 화신이라 불리고 있었다.

오토는 살라딘 왕자에게 신의 뜻이 담긴 경전을 건네주고, 그를 천국으로 인도한 장본인이 아니던가?

‘역시. 대천사 지브라일 님의 화신이라면 미래를 예지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핫산은 끄덕끄덕 수긍하며 다시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가 황제를 지켜보았다.

“드르렁…… 쿠울…… 드르러엉…… 쿠우우울……!!!”

황제는 언제 죽을 뻔했냐는 듯 다시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날 이후.

핫산은 매일 밤 황제의 돌연사를 막느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황제가 그날 이후로 매일 밤 수면무호흡증을 일으켜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오토는 용기사단을 이끌고 대륙의 동쪽으로 향했다.

대륙 동쪽에는 수없이 많은 세력들이 자리해 있는, 일종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었다.

지금이야 아라드 제국의 강력한 힘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만, 언제든 영토 확장을 꾀하는 세력들이 수십여 개나 난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력들 대부분은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고, 배신하고, 공격하는 등 각종 권모술수와 모략이 난무하는 곳이 바로 대륙 동부였던 것이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이런 면에서는 편하지.’

오토는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대륙의 변방 중의 변방에서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단 점이었다.

만약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시작지점이 이곳 대륙 동부였다면, 게임을 클리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워낙에 여러 세력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곳인지라 오토 드 스쿠데리아와 같은 약자는 살아남는 게 아예 불가능할 게 분명했다.

‘아주 지옥이 따로 없지. 어휴.’

카미유가 생각에 잠긴 오토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마칸 왕국.”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

“예……?”

“정말이야. 아무것도 없어. 마칸 왕국에선 아무 일도 안 벌어질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카미유는 오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곳에는 왜 간다는 말인가?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범인은 무사한 법이지.”

“……?”

“마칸 왕국의 군주가 지저세계의 군주와 동맹을 맺었거든.”

“지저세계의 군주……?”

“대륙 동부의 지하에는 거대한 지하세계가 있어.”

“그거 혹시…….”

카미유가 뭔가 짚이는 데가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가르타 전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바로 그거.”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르타 전설이란, 아주 오래된 이야기였다.

과거 대륙 동부에는 아가르타라 불리는 문명이 존재했기에,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화산 폭발, 대홍수, 운석 낙하, 신의 분노를 샀다는 등 아가르타 문명이 멸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아가르타 문명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런 아가르타 문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인간들이 모여들어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지금 이 시대에는 여러 세력이 난립하는 각축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대륙 동부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라진 아가르타 문명이 사실 지하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단 거였다.

이른바 대륙공동설이라 불리는 전설로서, 대륙 동부의 아가르타인들이 건설한 지저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게 진짜였습니까?”

“그럴 리가.”

오토가 피식 코웃음 쳤다.

“아가르타인들이 무슨 기술이 있어서 지하세계를 건설해?”

“그럼 아가르타 전설을 언급하신 이유가 뭡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니까.”

“예……?”

“아가르타 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별 게 아냐. 성물을 잘못 사용하다가 문명 전체가 지하로 가라앉아 버린 거니까.”

“성물이라면…….”

“아가르타 문명은 매우 발전된 마법체계를 지니고 있던 일종의 마도제국이었어. 문제는 그 발전된 마법으로 금지된 실험을 너무 많이 진행했다는 거지.”

오토의 입에서 아가르타 전설에 대한 진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가르타 문명은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성물들을 연구했고, 그중에서는 지진을 일으키는 성물인 천지개벽도 있었지.”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지개벽을 연구하던 중에 주문이 폭주했고, 문명 전체가 지하로 가라앉아 버린 거야.”

“맙소사.”

“졸지에 어마어마한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문명 전체가 생매장을 당해 버린 거지.”

“다 죽은 겁니까?”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당시 연구에는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조작하는 성물에 대한 것도 있었거든? 그 성물도 금지된 마법에 의해 본래 권능이 뒤틀려 버리면서, 몇몇 아가르타인들은 끔찍한 괴물이 되어 버렸어. 덕분에 살아남게 됐지만, 더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 거지. 심지어 지성을 가진 괴물이.”

“그러니까 대륙 동부 지하에…… 괴물들이 산단 말씀이십니까? 아가르타인들이 변이한?”

“맞아.”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르타인들의 목표는 다시 이 세상으로 나와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거야.”

“그럼 마칸 왕국은…….”

“아가르타의 군주와 계약을 맺고 주변국들을 공격하도록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지. 그 괴물들이 다시 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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