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1화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형검으로부터 뻗어나간 무형의 칼날이 강화 트리톤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 ……!
- ……!
- ……!
정신기생체들이 깃든 강화 트리톤들은 덮쳐오는 무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되, 보이지 않는다.
피할 수도 없다.
그렇게 영혼마저 베어버리는 검.
그게 바로 무적황제 최후의 권능인 무형검이었다.
쩍, 쩌억!
주변 시공간이 마치 충격을 받은 유리창처럼 깨져나갔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벌어진 시공간의 틈바구니 사이로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해 강화 트리톤들을 집어삼켰다.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으악! 으아아아악!
-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트리톤에 깃든 정신기생체들의 영혼이 처절한 절규를 내뱉었다.
무형검은 시공간을 일그러뜨리고, 공간마저 붕괴시키는 권능.
그것에 당한 자들의 말로는 영원한 죽음이었다.
소멸.
플라즈마 에너지로 이루어진 영혼마저 완전히 사라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죽음이었다.
“마, 맙소사.”
“저게 인간의 검이란 말인가…….”
오토가 무형검을 휘둘러 강화 트리톤 수백 기를 소멸시키는 광경이란, 지켜보는 이들의 경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일인군단의 위용이었다.
오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략병기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전쟁을 설계하고, 전략·전술을 성공시키며, 전투를 지휘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군의 최선봉에서 가장 강력한 적들을 단칼에 베어 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일 줄이야…….
“이 전투…… 질 수가 없구나.”
“전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상 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저런 존재가 우리 곁에 있는데, 어떻게 질 수가 있을까.”
연합군 장병들은 깨달았다.
오토만 있다면 그 어떤 전쟁이든, 그 어떤 전투든 승리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오토야말로 승리를 담보하는 보증수표이자 진리에 가까운 존재임을.
“저, 전하…….”
카미유조차 어찌나 놀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이 정도야. 엣헴.”
오토가 짐짓 뻐기는 투로 말했다.
전투 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다.
“그게 아니라.”
카미유가 살짝 인상일 찌푸렸다.
“머리칼에 탈색이 생기셨습니다.”
“으응?”
오토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얗습니다, 지금.”
“내 머리가?”
“예.”
오토가 품속에서 엘리제가 선물해 준 군용 손거울을 꺼내 스스로를 비쳐 보았다.
“어?”
카미유의 말대로, 찬란하게 빛나던 머리칼이 군데군데 하얗게 탈색되어 은발이 되어 있었다.
‘힘을 과하게 썼어.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아무래도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규모 병력을 연거푸 소환한 것으로도 모자라 권능을 계속해서 남발했다.
또한, 대학살의 서를 이용해 권능을 증폭시켜 사용하기까지 했다.
지금 당장은 신체에 크게 이상함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큰 무리가 갔을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전투가 끝나면 후유증이 상달하리라.
아마도.
‘상관없어.’
오토는 손거울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 주변을 경계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오늘 전투만 이길 수 있다면 백발이 된다 한들, 평생을 골골거리며 산다고 한들 괜찮았다.
이 전투에서 승리해 세계대전의 불씨를 꺼 수천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만 있다면.
엘리제가 죽지만 않는다면.
오토는 그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머리야 나중에 염색하면 되겠지.”
“그건 맞습니다만…….”
“됐어. 멀쩡하니까 신경 쓰지 마. 전투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아직 해치워야 할 적들이 많았다.
쿵쾅쿵쾅쿵쾅―!!!
적 트리톤들이 집중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또한, 기이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기사들이 접근해 오는 것 또한 느껴졌다.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강자들 간의 대결이 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을 터.
“가자.”
“예, 전하.”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 * *
오토의 예상대로, 전장 곳곳에서 강자들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정신기생체가 빙의된 북부제국의 기사들은 가히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크으윽!”
“으아아아아악!”
연합군 장병들은 그런 북부제국의 기사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거기! 좀 더 받쳐 줘!”
“크으윽! 제가 한 번 더 막겠습니다!”
“이 무지막지한 새끼! 크윽!”
그나마 말단 이등병조차 마나운용법을 익힌 이오타 왕국의 보병들만이 수십여 명씩 힘을 합쳐 겨우 하나를 상대하는 수준.
심지어, 그조차도 약한 적을 상대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일정 수준 이상 되는 정신기생체 빙의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고, 연합군을 학살하는 살육 기계나 다름없었다.
연합군의 주축이 되는 강자들은, 그런 정신기생체가 빙의한 자들과 싸워야 했다.
“어딜!”
카심은 전장의 북쪽에서 그런 빙의자들에 맞섰다.
촤라라라라라라!
촤라라라라!
징! 지이이이이이잉!
카심은 어검술을 이용해 무려 내 개의 명검을 동시에 휘두르며 전설로 남을 무위를 선보였다.
양손에 검을 쥐고, 나머지 두 개의 검을 어검술로 조종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고대문명의 정육면체들을 소환해 파괴광선을 뿜어내는 등 활약을 펼쳤다.
“귁! 귀이이익!”
펭족의 왕자인 펭이 역시도 특유의 빙결 마법을 발휘해 카심에게 달려드는 적들을 꽁꽁 얼려 버렸다.
“모조리 두 동강을 내주마! 크핫핫핫핫!”
야만부족의 왕 라그나르는 자신이 어째서 이 얼어붙은 영토의 지배자인지를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라그나르의 강함이란, 마치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빙과 같은 굳건함과 같았다.
그는 어떠한 공격에도 끄덕도 없었으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은 모조리 두 동강 내버리면서 자신의 무력을 증명해내었다.
그러나 그런 라그나르보다 더욱 큰 활약을 보인 사람은 다름 아닌 올리브였다.
올리브.
야만부족의 공주로 태어난 그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태어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호호호!”
올리브는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북부제국군 기사들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네놈들 약해 빠진 정어리들 따위가 감히 우리 영토를 침공해? 호호호호!”
그것도 잠시.
“모조리 찌그러뜨려 주마.”
올리브의 얼굴이 돌연 무서워졌다.
스으으으으으으으―!!!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녀의 두 주먹이 마치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쇳덩이처럼 붉게 빛나며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
후욱!
올리브가 주먹을 앞으로 쭉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먹으로부터 뻗어 나간 강한 충격파가 전방을 휩쓸며, 덤벼들던 북부제국의 기사들을 덮쳤다.
“……!”
“……!”
“……!”
북부제국군 기사들은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우득, 우드득!
우지끈!
퍼어어억!
그들은 충격파에 의해 사지가 뒤틀리고, 뱃가죽이 터지고, 머리통이 산산조각나는 등 끔찍한 주검이 되어 나뒹굴었다.
모조리 찌그러뜨려 주겠다는 말 그대로, 정말로 찌그러져 죽은 것이다.
“고철덩어리 주제에 어딜.”
심지어, 올리브는 트리톤 한 기의 다리를 움켜쥐더니 빙글빙글 돌려서 저 멀리 북부제국군 진영 한복판으로 날려버리기까지 했다.
압도적인 강함, 괴물 같은 괴력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활약이었다.
* * *
이전 전투에서 무력을 뽐낸 사람들 중 단연코 압권이었던 사람은 사실 올리브가 아니었다.
카이로스.
과거 철퇴 한 자루로 대륙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제국을 건설했던 자.
대장벽을 세워 야만부족과 북부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낸 장본인.
그런 카이로스에게 있어 북부제국의 침공을 막아낸다는 것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숙명과도 같았다.
전생에 야망보다는 대륙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모든 걸 바쳐온 그가,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대륙을 침공해 온 북부제국군을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장 한복판.
영혼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입정(入靜)에 들었던 카이로스가 지그시 눈을 떴다.
“짐이 명하노니.”
그러자 카이로스가 입고 있던 원혼귀갑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나의 기사들이여. 대륙의 수호자들이여. 혼탁한 환란의 종결자들이여. 짐의 부름에 응답하라.”
뒤이어 원혼귀갑으로부터 수만에 달하는 망령기사들이 빠져나와 카이로스의 주변에 강림했다.
초혼, 그리고 강림.
처억!
망령기사들이 일제히 카이로스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황제에 대한 예를 올렸다.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카이로스는 그런 망령기사들을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멍청하고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카이로스가 피식 코웃음을 치며 혼잣말했다.
“짐은 살아생전에도 지켜주지 못했는데, 네놈들은 죽어서도 짐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이 드느냐? 이 호구 같은 놈들아.”
그런 카이로스의 혼잣말에는 진한 회한이 담겨 있었다.
큰 깨달음을 얻은 지금에도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신하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짐은 그래서 네놈들이 좋다. 머저리 같은 짐에게 더 없이 어울리는 머저리들이 아니더냐. 크흐흐흐.”
카이로스는 그렇게 농담 반 진담 반 자조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황제로서 명하노니, 저 침략자들을 처단하라.”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이윽고 수만 명의 망령기사들이 북부제국군을 향해 덤벼들었다.
“가자, 이 자식들아.”
카이로스가 아가토, 힐데가르트, 그리고 막시무스를 포함한 영혼기사들을 돌아보았다.
“예, 폐하.”
그들이 카이로스를 뒤따랐다.
- 대륙을 침공해 온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 폐하의 위엄이 너희들을 징벌할 것이니.
그렇게 카이로스가 이끄는 옛 제국의 군대가 전장을 휘젓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크악!”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그런 옛 제국군의 등장에 북부제국군은 처참히 짓밟히며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애초에 망령기사들은 물리력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었으니, 북부제국군 장병들로서는 상대할 방법이란 게 없었다.
게다가, 망령기사들은 북부제국군의 고위급 기사들에게 빙의한 정신기생체들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 크, 크윽!
- 네놈들은 뭐냐! 크아아악!
영혼에는 영혼으로.
정신기생체들 입장에서는 천적을 만난 셈이었다.
* * *
아라드 제국군은 이 전투의 주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라드 제국군을 이끄는 잘츠부르크 가문이야말로 이 전투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부대공 지안카를로.
그의 아들 란돌 공작.
세 아들인 헤르메스, 아레스, 그리고 케레스.
그리고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사들까지.
그들은 역량과 저력이란, 북부제국군의 강대한 군사력과 기술력조차 뛰어넘을 만큼 강력했다.
개개인이 트리톤 한 대를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음은 물론, 북부제국의 기사 여럿을 단신으로 해치우는 무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정신기생체가 빙의한 강화 트리톤들조차도 잘츠부르크 가문의 핵심 인물들 앞에서는 그저 고철덩어리에 불과할 지경.
그러나 그런 잘츠부르크 가문의 활약도 엘리제의 무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엘리제 반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가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천재이자 대륙 최강자.
진정한 무(武)의 화신이자 전쟁의 여신.
그녀가 진정한 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물러서라.”
엘리제의 말에 연합군 장병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스릉!
드래곤의 뼈로 이루어진 명검 아드리안이 맑고 은은한 검명(劍鳴)을 연주해내었다.
촤라락!
엘리제가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휘몰아친 칼날의 파도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북부제국군의 머리 위로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
“……!”
“……!”
모두가 놀랐다.
엘리제의 앞을 가로막았던 수만의 북부제국군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심지어 트리톤들마저도 모조리 파괴되고 말았다.
단 한 번 검을 휘둘러 칼날의 해일을 일으키는 검술.
검과 마법의 경계가 희미해지다 못해, 자연재해를 검술로 구현해내는 경지에까지 오른 것이다.
그렇게 거침없이 북부제국군을 휩쓸며 적들의 전의를 꺾어 놓던 엘리제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엘리제는 문득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얼굴을 굳혔다.
쿵쾅쿵쾅쿵쾅!!!
여태 고요하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찌릿찌릿!
몸이 반응했다.
오싹―!
전신 솜털마저도 곤두설 소름이 훅! 하고 끼쳐왔다.
‘내가…… 긴장하고 있는 건가?’
엘리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존재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직접 대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할 리 없을 터.
이윽고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노기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게 그의 진짜 모습이라는 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게 겉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뛰어난 전사로군.”
그가 엘리제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름이 무엇인가, 열등한 종족의 전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