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2화
‘그 탕약’을 들이부은 오토의 노력(?) 덕분에 케레스는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그 탕약’ 은 오크 군주 바그람의 동생 투리안의 심장이 꿰뚫을 때에도 살려낸 적이 있었던 명약이 아니던가?
물론 손상된 생명력을 회복하려면 몇 주 정도는 푹 쉬어야 할 테지만, 위독한 상태를 벗어난 것만 해도 천운이었다.
“컥! 커헉! 우웨에에에에엑!”
케레스는 연신 헛구역질을 해 대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탕약’ 의 재료가 재료이다 보니 솟구쳐 오르는 역겨움과 구역질을 참는 게 여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제, 제발! 그만! 커헉!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케레스가 애원했다.
“카미유! 꽉 잡아!”
“예! 전하!”
하지만 오토는 카미유로 하여금 케레스를 제압하게 하고는 집요하게 ‘그 탕약’을 먹였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고.
“……크윽.”
케레스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소, 속이 울렁거려. 으으으.”
“그래도 살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도대체 뭐로 만든 약이야?”
“아, 이거요?”
오토가 히죽 웃었다.
“이게 뭐로 만든 거냐면…….”
속닥속닥.
오토가 케레스의 귓가에 ‘그 탕약’의 비밀을 이야기해 주었다.
“뭐, 뭐라고?! 이게 드래곤의 ㄸ……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케레스가 병실 바닥에 시커먼 똥물을 게워냈다.
오토와 카미유는 케레스가 게워낸 토사물을 피해기 위해 화들짝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여보……!”
쿠사키나는 손수건으로 케레스의 입가와 얼굴을 닦아 주며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흑흑흑.”
“여, 여보.”
“당신이 죽는 줄 알았어요.”
“죽긴 누가 죽어. 하하하. 걱정시켜서 미안해.”
케레스는 그래도 남편이랍시고 쿠사키나를 달래 주었다.
“당신과 곧 태어날 우리 아기가 있는데 죽을 순 없지.”
죽을 뻔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나름 아내를 안심시켜 주려는 것이었기에 오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토와 카미유는 케레스와 쿠사키나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약간의 시간을 배려해주었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어떻게 된 겁니까?”
오토가 케레스에게 물었다.
“정말 드미트리를 해치우신 거예요?”
“응.”
케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어. 이 검이 없었다면 죽었을 거야. 잘 썼어. 덕분에 살았어.”
“아!”
“실력으로 이긴 게 아냐. 이 검 덕분에 이긴 거지.”
케레스가 침대 한 편에 놓여 있던 쿠란을 오토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게 그러니까…….”
케레스가 당시 상황을 오토에게 설명해 주었다.
* * *
쾅! 콰앙!
쩌엉-!
케레스와 드미트리는 격렬하게 맞부딪히며 한 판 승부를 벌였다.
검술의 명가 잘츠부르크 가문의 삼남인 케레스.
그리고 북부제국의 용병대장 드미트리.
둘은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드미트리의 실력이 케레스보다 조금 더 우위였다.
‘크윽!’
케레스는 자신이 조금씩 밀리며 주도권을 잃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드미트리가 가진 재능과 실력이란 북부제국 내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오죽했으면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가 자신의 주군을 죽이고 그 아내를 범할 정도로 흉악한 범죄자를 사면해줬을까.
그만큼 드미트리의 가치가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드미트리가 자신의 재능을 범죄가 아닌 검술을 갈고 닦는 데 썼다면, 북부제국의 최강자는 그가 되었으리라.
“키이우의 기사여.”
드미트리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케레스를 압박했다.
“훌륭하다만, 여기까지다.”
“크으윽!”
“죽어라.”
드미트리가 케레스를 향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죽는다……!’
케레스는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하며, 최후의 발악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촤라락!
용골검 쿠란이 시퍼런 검광(劍光)을 내뿜으며 드미트리의 검을 두 동강 내고, 그의 목을 갈랐다.
덕분에 케레스는 살 수 있었다.
반쯤 잘린 드미트리의 검이 케레스의 가슴팍을 갈라 놓았지만, 목이 잘린 드미트리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결과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드, 드미트리 경!”
“이런 씨발!”
북부제국의 용병들은 드미트리의 목이 날아간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앞다투어 도망쳤다.
드미트리가 전사로 인해 사기가 꺾였음은 물론, 잘츠부르크 가문 기사들을 감당할 능력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케레스 경을 보호하라!”
“의무병!”
“놈들을 쫓지 마라!”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사들은 황급히 케레스를 보호하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한편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왔다.
오토가 혹시나 싶어서 빌려주었던 쿠란이 정말로 케레스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 * *
“……그래서 살았지, 뭐.”
케레스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신기한 검이야.”
“신기하다고요?”
“솔직히 그 무지막지한 놈이 나보다 셌거든.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인정은 해야겠지. 그놈, 엄청 강했어.”
케레스가 혀를 내둘렀다.
“그 검이 아니었으면 정말 죽을 뻔했어. 마치 내 소원을 들어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소원이요?”
“나, 죽기 싫었거든. 그때 검이 도와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살려주겠다고, 이기게 해 주겠다고. 검이 내 간절함을 들어주는 것 같더라니까? 근데 정말로 그 자식의 검을 두 동강 내버리더라고.”
“아……!”
오토는 케레스의 말뜻을 이해했다.
‘붉은색이 내 뼈로 만든 것. 그리고 황금색이 아내의 뼈로 만든 것이란다. 붉은색은 오토 네 것이고, 황금색은 엘리제 네 것이다. 검신에 용언까지 새겨 넣었지.’
쿠란이 검을 만들 당시 용언을 새겨 넣었다 했으니, 아마 그런 이유인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케레스가 검이 간절함을 들어주었다고 느꼈을 리 없었다.
“정말 좋은 검이야. 검을 쥔 자로서 부러울 만큼.”
“별말씀을요.”
“덕분에 내 목숨을 두 번 구했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가족끼리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오토가 피식 웃었다.
그래, 가족.
오토와 케레스는 한 집안 사람이었다.
혈연으로 묶인 사이인데, 고맙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나.
서로 돕고 사는 건 당연했다.
적어도 오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동안 푹 쉬세요. 몇 주는 쉬셔야 할 테니까.”
“알겠어.”
케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당장 움직이긴 힘들어. 끄응. 온몸이 욱신거리고 찢어질 것 같이 아프거든.”
“그럴 만하죠.”
“수련해야 하는데. 하아.”
“예?”
오토가 어이없다는 듯 케레스를 돌아보았다.
“수련이요? 몸이 그 지경인데?”
“해야지, 그럼.”
케레스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이 지경은 안 됐을 거 아냐. 자존심 상해. 가문에 먹칠을 한 기분이야. 엘리제나 형들이 알면 날 엄청 놀릴 거야. 하아.”
“…….”
“나름 깨달음도 얻은 것 같아서. 몸이 좀 회복되면 수련에도 집중하려고.”
“하하하…….”
오토는 케레스의 말을 듣고 기가 질려버렸다.
누가 잘츠부르크 가문의 직계 혈족 아니랄까 봐 걸레짝이 된 상태에서도 수련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니…….
“그래도 몸 좀 나아지면 하세요.”
“알겠어. 아, 그리고…….”
“……?”
“우리 기사들이 그놈 시체를 챙겨서 왔대.”
“아?”
“어떻게 해?”
“그야…….”
오토가 대답했다.
“북부제국에 보내야죠? 토막토막 내서?”
“역시 그래야겠지?”
“당한 만큼 되돌려줘야죠.”
오토가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드미트리와 그 일당들이 키이우 왕국의 기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려 보면 토막이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도 시원치 않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수고하셨어요. 쉬세요.”
“응.”
오토는 케레스를 뒤로하고 카미유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 * *
오토는 다시 크바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다행입니다. 후우.”
크바르는 케레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단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이따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저는 케레스 경이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친구를 잃는 줄 알았지요.”
“친구……?”
“꽤 친한 사이입니다.”
크바르가 씩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겠네.’
오토는 케레스와 크바르가 죽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시로 개그 욕심을 부리는 크바르와 바보 삼형제의 한 사람인 케레스라면 궁합이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 슬슬 베즈도리자 평야는 넘겨주죠. 천천히 밀리는 척 야금야금 넘겨주세요.”
“예?”
크바르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베즈도리자 평야를 넘겨주잔 말씀이십니까?”
“그래야죠.”
“어째서…….”
크바르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현재 키이우 왕국군은 북부제국군을 상대로 베즈도리자 평야를 아주 잘 지켜내고 있었다.
물론 북부제국군이 전선을 넓히면서 조금씩 불리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피해는 북부제국이 몇 배는 더 컸기에, 키이우 왕국군이 굳이 베즈도리자 평야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베즈도리자 평야를 포기하고 북부제국군에게 넘겨주자는지, 크바르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못 지켜낼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북부제국군이 더 많은 병력을 보낼 겁니다. 제1차 원정군의 대부분을 급파해서 어떻게든 베즈도리자 평야를 장악하려 할 겁니다.”
“헉……!”
“전술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물량이 아닙니다. 아군 피해도 어마어마하겠죠. 베즈도리자 평야는 방어하기에 별로 좋은 지형이 아닙니다. 전선도 너무 넓고.”
“그럼 그다음에는…….”
“시가전.”
오토가 힘주어 말했다.
“차라리 시가전이 훨씬 낫습니다. 지형적으로도 유리하고요. 수도까지 쭉 빨아들인 다음 시가전을 벌이면 북부제국군은 엄청나게 고전하겠죠.”
“아하!”
“북부제국군을 쭉 빨아들여서 괴롭혀주다가, 퇴각할 때를 노릴 겁니다. 그럼 베즈도리자 평야가 퇴각하는 북부제국군의 발목을 잡게 되겠죠.”
그 순간.
오싹!
크바르는 그제야 오토의 의도를 이해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게 북부제국군에게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할지 깨닫고 나니 문득 소름이 끼쳤다.
‘당신은 도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시는 겁니까?’
크바르는 놀랍다 못해 오토가 두려워졌다.
괜히 불패의 지휘관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내리는 판단 하나하나가 적들에게 치명적이다.
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북부제국군조차 오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세요?”
“아, 아닙니다.”
크바르는 오토의 물음에 시선을 회피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군이라서, 적이 아니라서 정말로 다행이다.’
만약 오토가 적이라면?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혀왔다.
이런 사람이 아군이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축복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시가전이 벌어지더라도 큰 피해가 있을 겁니다. 아군 피해도 어마어마하게 클 거예요.”
“예, 전하.”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베즈도리자 평야에서는 곧 들이닥칠 북부제국의 대규모 병력을 막아낼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미리 대피령을 내리시고, 수도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미리 피난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세요. 북부제국은 민간인 학살도 서슴지 않을 놈들입니다.”
오토는 북부제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들은 적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족속들.
그런 북부제국군이 키이우 왕국의 수도 바흐무트에 입성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지금부터 미리 백성들을 대피시키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키이우 왕국군은 수도 바흐무트의 백성들로 하여금 피난을 가도록 하는 한편, 베즈도리자 평야에서 조금씩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미트리의 시체를 북부제국에 보내라. 키이우 왕국의 이름으로.”
“예, 전하.”
오토는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를 자극하기 위해 드미트리의 시체를 선물로 보내는 강수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