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4화
오토는 분신을 만들어내 로웨나와 잠자리를 해 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영혼강탈의 권능까지 사용했다.
‘아무리 분신이라도 찝찝해. 싫어. 싫다고.’
오토는 로웨나를 경멸했기에, 분신으로라도 뭔가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혼강탈의 권능을 이용해 정욕에 취한 로웨나에게 암시를 걸었다.
로웨나와 같은 인물에게는 영혼강탈의 권능이 잘 먹히지 않아 세뇌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로웨나가 오토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오해하도록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지금의 로웨나는 정욕에 의해 이성을 잃었고, 그토록 원하는 걸 손에 넣은 상태라 온전한 판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
그러다 보니 영혼강탈의 권능이 잘 먹혀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토는 로웨나가 분신과 뭔가 그렇고 그런 행위를 했다고 여기게끔 정신조작을 가했다.
그 결과.
“하악! 하아악!”
착각에 빠진 로웨나는 가만히 있는 분신을 붙들고 온갖 몸부림을 쳐 댔다.
정작 분신은 목석처럼 가만히 있는데, 혼자서 훌러덩 옷을 벗더니 그렇고 그런 행위를 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빗자루와 씨름하는 사람 같아서, 오토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시킬 걸 시켜라! 이 나쁜놈아!’
분신이 억울하다는 듯 오토를 향해 항의했다.
‘내가 아무리 분신이라도 그렇지! 분신도 인권이 있다고!’
아무리 분신이라도 오토와 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인지라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억울하면 니가 본체 하든가.”
‘뭐라고?!’
“야, 어차피 진짜 하는 것도 아닌데 좀 참아.”
‘으으으!’
“분신 주제에 인권 같은 소리 하네.”
‘나 얘 싫다고! 난 엘리제만 좋아!’
“뭐 인마?”
오토가 벽 너머 분신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분신이다 보니 호불호 역시 오토와 똑같았던 것이다.
“분신은 분신답게 할 일이나 해라. 짜증나게 하지 말고.”
‘쳇.’
“그럼, 수고.”
오토는 벌거벗은 로웨나가 분신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걸 보기가 역겨워서, 아예 연결을 끊어버렸다.
눈과 귀를 보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새벽.
“진짜 ㅈ같네. 하.”
분신이 오토를 찾아왔다.
“끝났냐?”
오토가 졸린 눈을 비비며 분신을 맞이해주었다.
“야, 고생했다. 로웨나는?”
“혼자서 가 버리더니 잠들었어.”
“그래?”
“인간적으로 이런 건 안 시키면 안 되냐? 아무리 분신이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시끄럽고.”
오토가 분신을 해제해 흩어버렸다.
스르륵.
그러자 분신이 사라지면서, 마나 역시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본래 분신을 해제하면, 분신을 이루고 있던 마나를 다시 회수하는 게 정상.
하지만 오토는 그러지 않았다.
로웨나가 붙들고 있던 분신의 마나를 다시 흡수하자니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해서, 좀 아깝긴 했지만 그냥 흩어 버리기로 했던 것이다.
‘이러면 좀 잠잠해지겠지?’
오토는 이번 일을 계기로 로웨나의 광기가 좀 누그러지길 바랐다.
욕구를 채워 주었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얌전히 있어 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분신과 영혼강탈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야. 휴.’
오토는 그런 생각으로, 잠시 눈을 붙였다.
* * *
다음 날 아침.
오토는 로웨나와 함께 아침식사를 먹었다.
“동생, 어젯밤엔 정말 좋았어. 동생 덕분에 몇 번이나 가 버렸…….”
“쉿.”
오토가 로웨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어젯밤 일은 절대 흘러나가선 안 됩니다.”
“으응.”
“만약 이 일이 새어나갔다간…… 누님이나 저나 죽는 겁니다.”
“아, 알겠어.”
로웨나도 오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오토와 로웨나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건 정말이지 큰 재앙이었다.
오토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했다간 로웨나 역시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어쨌든…… 이제 우린 한 배를 탄 거네?”
“맞습니다.”
오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로웨나의 말에 공감해 주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내가 믿는 건 오직 동생뿐인걸.”
“저 역시 누님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오토가 로웨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학살은 자제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 그건.”
“제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알겠어.”
로웨나가 마치 순한 양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동생이 나를 안아 주지 않을 테니까.”
“…….”
“앞으로 동생의 계획은 뭐야?”
“우선 북부제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중입니다.”
“북부제국……?”
“예, 누님.”
오토는 로웨나에게 북부제국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도 북부제국의 침공에 맞서 싸워야 된다.’
오토는 그들이 북부제국과의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가진 병력을 소모해 주길 바랐다.
게다가 그들의 참전은 오토가 기존에 만들어 놓은 동맹군의 피해를 줄여 줄 테니, 반드시 끌어들여야만 했다.
오토가 그리는 큰 그림에는 동맹뿐 아니라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황위에 오르기 위해서 오토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테니, 이미 전쟁에 참전한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고.
“북부제국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업을 이루려 했다간 전 대륙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겁니다.”
“음.”
“만약 누님께서 황위에 오르신다고 한들 전후에 초토화된 제국을 경영하고 싶지는 않으시잖아요.”
“그건 그래.”
“그러니까 북부제국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때까지는 참아 주셔야 해요.”
“알겠어.”
로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생이 거기까지 내다보고 있을 줄은 몰랐어.”
“하하하.”
“알겠어, 내가 참을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오토가 혹시나 싶어 로웨나에게 물어보았다.
“뭔가 저 모르게 하고 계신 것 없죠?”
“으응?”
“저 모르게 진행하고 계신 일이 있으시다면…….”
“없어.”
로웨나가 딱 잘라 말했다.
“난 동생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걸. 맹세컨대 숨기고 있는 거 없어.”
“그렇죠? 하하하.”
“하지만 테르테미안과 파라곤, 그 머저리들이라면 모르지.”
“예?”
“황위에 눈이 멀어 오라버니를 암살하려고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헉? 그럼 안 되는데?”
“동생이 한번 얘기해 봐. 나는 단언컨대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 그럴 생각도 없고. 지금 오라버니가 죽어 버리면 동생이 곤란해지는데, 내가 그런 일을 하겠어?”
“역시 누님이십니다.”
오토는 일단 로웨나가 황제 암살의 배후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 제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알겠어, 동생.”
그 후 오토는 로웨나와 차까지 마시고, 다시 잘츠부르크 가문으로 향했다.
‘영혼강탈로 속여 놨으니까 한동안은 잠잠하겠지.’
부디 로웨나가 당분간은 순한 양처럼 조용히 지내주기를 바라며…….
* * *
오토는 잘츠부르크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에게 편지를 보내 혹시 무슨 일, 그러니까 황제 암살을 기획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의 답변은 로웨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적이 없다라…….’
그렇다는 결론은 두 가지.
‘정말 자연사했나? 아니면 제3의 인물이?’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아니라면 황제의 죽음은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그래도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북부제국이라는 구실을 던져줬으니 만에 하나 생길 변수를 사전에 차단한 셈이었다.
‘이제 준비는 거의 끝났다.’
오토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고민했다.
‘동맹은 완성했고. 신무기는 계속해서 생산 중. 드레이크를 불러 놨으니까 해전도 문제없고.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의 협조도 구해놨어. 이제 할 일은…… 정보전과 툰드리아인가.’
지금쯤이면 북부제국에서고 대륙을 침공하기 위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을 무렵.
지금쯤 북부제국군은 대륙 침공을 위해 병력을 전진 배치시켜 놓을 시기였고, 흑해를 건너오기 위해 한창 선박을 건조 중일 게 분명했다.
‘이제는 슬슬 정찰이나 첩보전이 먹힐 시기야. 먼저 흑해를 건너가서 북부제국군을 흔들 준비를 해야 돼.’
하지만 할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또한, 북부제국의 표적은 비단 대륙만이 아니었다.
툰드리아.
펭족의 왕자 펭이의 고향인 툰드리아는 각종 천연자원으로 가득한 세계의 보물창고 같은 곳으로서, 북부제국의 공격을 받을 예정이었다.
‘툰드리아와도 연합해야 돼.’
펭이의 고향인 툰드리야말로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할 마지막 퍼즐이었다.
그래서 오토는 즉시 카심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귁! 귁귁귁!”
오토의 부름에 카심과 펭이가 즉시 달려왔다.
“카심 경?”
“예, 전하.”
“툰드리아로 가 주실 수 있겠어요?”
“투, 툰드리아 말씀이십니까?”
카심이 눈을 깜빡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툰드리아는 대륙인들에게 있어 미지의 땅이었다.
그곳에는 인간이 거의 살지 않았고, 온갖 종류의 이종족들만이 살아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말하는 북극곰, 말하는 펭귄, 말하는 바다사자, 말하는 갈매기, 말하는 범고래 등등.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저는 카심이 적임자라 보는데요. 하하하.”
오토가 카심을 지목한 이유는,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이 인간 드루이드잖아. 그러니까 툰드리아로 보내 놓으면 딱 알맞을 것 같아.’
카심은 기묘할 정도로 이종족들과의 친화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기에, 툰드리아를 동맹으로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카심 말고는 다른 누군가를 툰드리아로 보내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기도 했고.
“어차피 펭이 고향에도 다녀와야 하잖아요. 안 그래?”
“귁! 펭이도 오랜만에 고향 가고 있긴 하다! 귁귁!”
펭이 역시 고향을 떠나온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터라, 툰드리아로의 여정에 동의했다.
“예, 전하.”
카심이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신 카심, 전하의 명을 받들어 툰드리아에 외교 사절로서 다녀오겠습니다.”
“좋습니다.”
오토가 카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카심을 믿습니다.”
“예! 전하! 맡겨 주신 만큼 좋은 결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카심은 오토의 특명을 받고 펭이와 함께 툰드리아로 향했다.
* * *
오토는 카심을 툰드리아에 보내 놓고 오래간만에 마검사들을 소집했다.
‘흑해를 넘어가야 돼.’
북부제국군이 전진 배치되면 정찰도 더욱 유리해지고, 첩보 활동에도 더 탄력이 붙는다.
지금까지야 북부제국이 전력을 후방에 꽁꽁 숨겨 두고 있어 침투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를 터.
이제는 미리미리 정찰을 해 두고, 첩보원을 심어놓고, 지형을 파악해 둘 시기였다.
“정말 괜찮겠나?”
엘리제가 오토를 걱정해 주었다.
“내가 같이 가줄 수도 있다.”
“아니.”
오토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여기서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충분히 상황을 제어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자기가 여기 있어 줘야 내가 마음 편히 작전을 수행하지.”
“하지만…….”
“애초에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라서 괜찮아.”
오토의 목적은 전투에 있지 않았다.
사실 전투가 벌어진다면, 작전이 철저히 실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북부제국은 대륙이 침공에 대비하고 있단 사실을 철저히 몰라야 했다.
괜히 적진 한복판에서 전투를 벌였다가 북부제국의 경계심을 자극하기라도 한다면, 일이 더 꼬이는 셈이었던 것이다.
“조심히 다녀올 테니까, 여기 있어.”
“알겠다. 대신 몸조심해야 한다.”
“그건 당연하지.”
“그리고…….”
엘리제가 스윽, 오토의 뺨에 키스를 해주었다.
“조, 조심히 다녀오란 의미다.”
엘리제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헤헤헤헤!”
오토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게 행운의 여신이 해 주는 키스지.’
오토에게 있어 엘리제의 키스란 그러한 의미.
“그럼, 다녀올게!”
“조심히 잘 다녀와라.”
“응!”
엘리제의 키스 덕분에, 오토는 발걸음도 가볍게 마검사들을 데리고 북부제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