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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화

헬무트가 지휘하는 이오타 왕국군은 마지막 힘을 짜내 체로키 왕국군의 총공세에 맞섰다.

2시간.

딱 2시간만 버티면 지원군이 온다는 말이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이번 한 번만 버티면 쉴 수 있다.

지원군이 와 적들을 쳐부숴 줄 것이다.

그 믿음만이 이오타 왕국군을 싸울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체로키 왕국군 진영에서 새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나타났을 때 이오타 왕국군은 절망했다.

백사자 기사단.

새하얀 갑옷에 황금색 사자가 새겨진 갑옷을 입은 그들은, 체로키 왕국의 최정예 기사단이었다.

개개인이 뛰어난 검술 실력을 보유했음은 물론.

부대 단위 전술훈련을 통해 숙달된 집단전에서의 전투력은, 여느 강대국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력하기만 했다.

그런 백사자 기사단의 기사들이 성벽 위까지 기어오르자 이오타 왕국군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악!”

“크으으윽!”

성벽 위 이오타 왕국군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마나를 운용할 수 있고, 강도 높은 교육훈련으로 단련된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백사자 기사단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오타 왕국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백사자 기사단과 같은 고급 전투원들과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도 했다.

“아아-”

헬무트는 백사자 기사단이 성벽 위까지 올라와 한바탕 살육을 벌이는 광경을 목격하고, 깊고 긴 탄식을 내뱉었다.

‘끝이다.’

헬무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성벽 위를 장악당하기 시작한 이상 이오타 왕국은 이 요새를 지킬 수 없었다.

곧 백사자 기사단에 이어 체로키 왕국군 병사들 역시도 성벽 위로 기어 올라올 테고, 그러면 요새가 점령당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실제로, 체로키 왕국군 병사들이 마치 개미 떼처럼 성벽 위를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후ㅌ….”

결국, 헬무트는 요새의 방어를 포기하고 후퇴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러던 그때.

쿠웅!

하늘 저 높은 곳으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가 싶더니, 시커먼 무언가가 성벽 위로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몸길이 15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검은 와이번이 크게 포효를 내질렀다.

“브, 블랙 와이번!”

“블랙 와이번이라니!”

백사자 기사단과 체로키 왕국군은 갑작스레 나타난 블랙 와이번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블랙 와이번은 와이번 가운데서도 매우 희귀한 개체로, 평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든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까막아!”

“귁! 귀귁귁!”

블랙 와이번 까막이 위에 탄 카심이 소리쳤다.

“다 쳐부숴 버려!”

- 크어어어어어어-!!!

어느새 몸길이가 15미터까지 성장한 까막이가 크게 포효하며, 가까이에 있던 백사자 기사단원 한 명을 그대로 밟아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 콰아아아아아아아!

쩍 벌린 까막이의 아가리로부터 초록색 불꽃이 뿜어져 나와 성벽 위를 기어오르던 체로키 왕국군 병사들을 모조리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다.

“카, 카심 경!”

헬무트가 카심을 향해 소리쳤다.

“헬무트 후작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전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게 정말이오!”

“예! 지금 오고 계십니다! 곧 우리 군이 도착할 겁니다! 힘을 내십시오!”

“알겠소이다!”

헬무트는 카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카심의 말은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거짓말이 아닐 게 분명했다.

왜?

까막이를 타고 오면서 오토가 이오타 왕국군을 이끌고 달려오는 것 또한 보았을 테니까!

* * *

카심의 등장은 위태롭던 전투의 판도를 180도 바꿔 놓았다.

- 크어어어어어어!!!

까막이는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며 초록색 화염을 뿜어 대는 까막이는, 체로키 왕국군의 진영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

체로키 왕국군은 까막이가 뿜어 대는 화염 앞에 속수무책으로 타 죽으며,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쏴아아아아!

화살 세례가 퍼부어졌지만, 까막이에게는 그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까막이의 비행 속도가 워낙에 빨라서, 아무리 활을 쏴 대도 맞추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마법사들의 마법 역시도 까막이를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맞춘다 한들 까막이의 방어력은 가히 막강했다.

어지간한 금속보다 단단한 비늘과 가죽이 까막이를 보호해 주고 있었기에, 작은 생채기 하나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기세 좋게 성벽 위를 기어오르던 체로키 왕국군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만 했다.

까막이가 성벽 주변을 향해 집중적으로 화염을 뿜어 대는 터라, 도저히 성벽을 기어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감히 이오타의 본토를 노리다니.”

“귁! 귁귁귁!”

까막이에서 내린 카심이 백사자 기사단을 향해 분노를 드러내었다.

카심은 이오타 왕국 최고의 애국자이자 오토의 충신 중의 충신.

그런 카심으로서는 이오타 왕국을 침공해온 체로키 왕국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눈앞에서 이오타 왕국군을 죽이는 백사자 기사단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카심은 그렇게 선언하고는, 두 자루의 검을 빼 들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

스으으으으으으으으!

두 자루의 검에서 새하얀 불꽃과 시퍼런 한기가 솟구쳤다.

“악!”

백사자 기사단의 단장 로베르토는 카심의 검을 한눈에 알아보고 경악에 찬 비명을 내뱉었다.

“배, 백화검과 수벽검! 네놈은 누구냐!”

백사자 기사단장이 놀란 이유는, 카심이 뽑아 든 두 자루의 검이 너무나도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과거 대륙을 풍미했던 절대강자인 검성.

그가 사용하던 네 자루의 검은 너무나도 유명해 기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그렇다는 말은…….

“네, 네놈은 검성의 후예인가.”

카심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오타의 영토를 침공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그렇게 말한 카심이 백사자 기사단을 향해 쇄도했다.

화르르르르!

시뻘건 화염.

스으으으으!

그리고 호흡조차 얼려 버릴 한기까지.

거기에 더해, 검성의 검술까지.

카심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이었다.

“크아악!”

“아악!”

백사자 기사단은 체로키 왕국 최정예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카심 한 사람에게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검성의 가르침을 받은데다, 한 자루, 한 자루가 전설적인 명검을 든 카심의 실력은 이전과는 180도 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카심의 주변을 맴도는 정육면체들이 쏴 대는 레이저는, 백사자 기사단원들이 입은 갑옷을 한 번에 관통해 버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어느새 카심은 규격 외 절대강자로 성장해 있어서, 동급의 강자가 아니면 상대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후, 후퇴하라!”

결국, 백사자 기사단장 로베르토는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카심의 무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퇴하기엔 이미 때는 늦어 있는 상황이었다.

“단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네놈들이 갈 곳은 오직 지옥뿐.”

어디선가 나타난 쿤타치 가문 출신의 마검사들이 백사자 기사단원들을 포위하더니,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

헬무트는 마검사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본토 쪽을 바라보았다.

마검사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드디어!”

헬무트는 저 멀리 이오타 왕국군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걸 발견하고 환호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원군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 * *

“전군, 돌격하라.”

오토가 명령하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오타 왕국군이 후퇴하는 체로키 왕국군을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투의 판도는 180도 뒤바뀌었다.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버티던 이오타 왕국군이 오히려 체로키 왕국군을 뒤쫓는 구도가 연출된 것이다.

“후퇴! 후퇴하라!”

“신속히 퇴각하라! 최대한 빨라야 한다!”

궁지에 몰린 체로키 왕국군은 가진 장비와 물자들까지 모두 버린 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그러나….

“적들을 섬멸하라!”

“한 명도 살려 보내지 마라!”

또 다른 이오타 왕국군이 나타나 후퇴하는 체로키 왕국군의 퇴로를 막았다.

그들은 본래 발틴 왕국과 슬레인 왕국에 소속되어 있던 병력들로서, 지금은 이오타 왕국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즉, 본래 이오타 왕국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전투력이 약하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이오타 왕국군에는 옛 슬레인 왕국 기사 아카데미 출신들이 많았다.

그들은 매우 유능한 기사이자 장교들이었기에, 전투력은 물론 지휘력 또한 뛰어난 자원들이었다.

즉,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제대로 된 군대였던 것이다.

“아!”

헬무트는 그 광경을 보고 이마를 탁! 치며 감탄했다.

‘이게 다 전하의 계략이었구나!’

헬무트는 비로소 깨달았다.

‘어쩐지 지원군이 안 오더라니. 우리가 적들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미끼 역할이었구나.’

헬무트에게 적은 병력을 쥐어주고 요새를 지키라고 했던 것은, 체로키 왕국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오토의 큰그림이었다.

뚫릴 듯 말듯 체로키 왕국군을 애태워서 무리한 군사작전을 벌이게끔 유도했다.

국경 요새에 집착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다음은?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체로키 왕국군을 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고 있었다.

앞뒤로 포위당한 체로키 왕국군은 후퇴조차 못한 채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는 중이었다.

이번 전투에 대규모 병력과 백사자 기사단이라는 고급 병력까지 모조리 갈아 넣었지만, 끝끝내 국경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처참한 패배만을 당하게 된 것이다.

* * *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퇴로가 막힌 체로키 왕국군 장병들은 항복하거나, 죽거나, 혹은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치는 등 완전히 궤멸되어 버렸다.

이오타 왕국군은 그 과정에서 무려 만 명이나 되는 체로키 왕국군 장병들을 포로로 잡는 전공을 거두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카미유가 모든 이오타 왕국군을 대표해 오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이오타 왕국! 만세!”

“만세!”

“국왕 전하! 만세!”

“만세!”

국경지대에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다들 고생 많았다! 여러분들의 희생과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오토는 진심으로 이오타 왕국군 장병들을 치하했다.

“당분간 전투는 없다! 체로키 왕국군은 한동안 침공해 오지 못할 것이다! 이에 나 이오타의 국왕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우리 군에 절대적인 휴식을 보장하고! 또한 보상을 약속한다!”

오토는 이번 전쟁에 참여한 장병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보상금을 줄 생각이었다.

지금 장병들에게 필요한 건 보상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과 대우를 해 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누가 나라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목숨 걸고 싸우겠는가?

‘칼마르 너 이 새끼.’

전투가 끝났지만, 오토는 멀리 서쪽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손봐 줄 테니까.’

오토는 이오타 왕국을 침공해 온 칼마르를, 체로키 왕국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단지 이번 전투로서 소강상태를 맞이한 것일 뿐, 이오타 왕국과 체로키 왕국의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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